다큐멘터리 3부작 《위대한 유산 남아시아》
‘무형문화유산이 품은 오래된 미래의 가치를 전하다’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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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져가는 아시아의 무형문화유산을 기록하다
중앙아시아 타지키스탄 ‘이스파라’ 지역의 작은 시골 마을. 여덟 살 소녀 ‘아지자’와 친구들은 전통 명절인 ‘나브루즈’를 맞아 연날리기, 달걀치기 놀이를 하며 흥겨운 시간을 보낸다. 우즈베키스탄 페르가나 지역의 전통혼례식 날, 가족들은 ‘요르-요르’ 노래를 부르며 신부를 떠나보내는 슬픔을 달랜다. 필리핀 ‘코르디예라’ 지역의 계단식 논과 그곳에서 천년 넘게 농사를 지어온 ‘이푸가오족’의 줄다리기 축제 ‘푸눅’, 앙코르 시대부터 천년을 이어온 캄보디아의 전통 가면극 ‘르콘콜’, 미얀마 인레 호수에 정착한 ‘인따족’의 수상생활 풍경... 모든 것이 빠르게 변해가고 사라져가는 요즘 세상에 여전히 옛 선조들의 삶의 방식과 문화를 이어가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다큐멘터리 <위대한 유산>이 담아낸 아시아의 무형문화유산들이다.
<위대한 유산 남아시아>편 11월 11일 EBS1 방영
언제든 사라질 수 있는 무형문화유산의 찰나를 전 세계 사람들 앞에 생생하게 펼쳐 보이는 다큐멘터리 <위대한 유산>이 2년 만에 남아시아 편으로 돌아왔다. 아시아의 무형문화유산을 디지털 영상으로 기록하는 <위대한 유산> 다큐시리즈는 2017년 중앙아시아 편을 시작으로 2019년과 2022년 동남아시아 1,2에 이어 올해는 남아시아 편 3부작이 11월 11일부터 EBS1에서 연속 방영된다. <위대한 유산> 프로젝트는 ACC 국립아시아문화전당과 EBS 한국교육방송공사, 유네스코아태무형유산센터(ICHCAP)가 2015년부터 협의를 시작해 2016년 업무 협약을 체결, 10년에 가까운 대장정을 이어가고 있다. 도시화와 서구화로 빠르게 소멸해 가는 아시아의 무형문화유산을 기록하고 보존하기 위한 노력이다. 그동안 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 우즈베키스탄, 타지키스탄 등 중앙아시아 4개국과 필리핀, 캄보디아, 미얀마, 태국, 캄보디아, 베트남의 동남아시아 6개국에 이르기까지 아시아의 소중한 무형유산을 재조명해왔다. 프로젝트의 네 번째 성과인 남아시아 편은 2년에 걸친 제작 기간 동안 네팔, 스리랑카, 방글라데시 3개국의 무형문화유산을 담아냈다.
담벼락에 그린 전설 ‘네팔 미틸라 회화’
《위대한 유산 남아시아》 편이 첫 번째로 찾은 나라는 히말라야산맥으로 잘 알려진 네팔이다. 안나푸르나 등 히말라야 고지대와 달리 네팔 남쪽에는 따스하고 드넓은 평원지대가 펼쳐져 있다. 이곳에서 지금은 신화로만 전해지는 고대 ‘미틸라 왕국’의 흔적을 만날 수 있다. 바로 미틸라 왕국의 수도였던 ‘자낙푸르’ 지역에서 오랜 세월 이어져 온 ‘미틸라 회화’의 전통이다. 자낙푸르의 마을에서 큰 축제나 명절이 되면 농사를 짓고 집안일을 하던 여성들이 예술가로 변신한다. 집과 마을의 담벼락에 신에게 바치는 그림을 그리는 것이다. 할머니에서 어머니로, 다시 딸로 세대를 이어가며 흙벽에 나무, 새, 코끼리 등 자연숭배의 마음을 새기는 ‘미틸라 회화’의 화가들이다. ‘미틸라 회화’는 최근 들어 흙벽에서 캔버스로 화폭을 옮겨 무형문화유산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관습적으로 집안에서만 생활하도록 제한되었던 여성들의 삶을 변화시키고 확장시키는 소중한 자산이 되고 있다. 다큐멘터리에서는 네팔에서 큰 명절인 티하르 축제를 앞두고 자낙푸르 지역 마을 사람들이 미틸라 회화를 그리는 모습을 생생하게 전한다.
스리랑카의 전통 줄 인형극 ‘루카다 나트야’
남아시아의 위대한 유산을 만나러 간 두 번째 나라는 스리랑카다. ‘루카다 나트야’는 스리랑카의 유일한 전통 줄 인형극으로 2018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대표 목록에 등재되었다. 인형술사들이 줄인형을 절묘하게 움직이며 연기하는 ‘루카다 나트야’ 공연은 스리랑카 옛이야기와 불교 설화를 스토리로 삼고, 흥겨운 음악과 춤과 결합하여 한편의 감동적인 공연을 완성한다. 스리링카 루카다 나트야 극단의 인형술사들은 직접 인형을 만들고 무대 제작, 연주, 노래, 인형 줄 조정 등 다양한 역할을 소화해 낸다. 지금도 전통 방식으로 나무에 제사를 올리고, 나무를 베어 직접 인형을 만들고, 인형 옷을 제작하는 등 한편의 인형극을 위해 온갖 정성을 쏟는 인형술사들의 모습이 잔잔한 감동을 자아낸다. 스리랑카의 역사와 문화, 전통을 품고 있는 소중한 문화유산이지만, 루카다 나트야 인형극이 처한 현실이 녹록지만은 않다. 갈수록 도시화, 현대화되어가는 시대 속에서 전통을 이어가려는 젊은 세대가 많지 않기 때문이다. 다큐멘터리는 혼신의 노력으로 루카다 나트야 공연을 이어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통해 인류가 꽃피어온 무형문화유산의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기후위기의 대안, 방글라데시 ‘수상농장’
《위대한 유산 남아시아》 편의 마지막 나라는 세계에서 인구 밀도가 높기로 유명한 방글라데시다. 방글라데시는 국토의 80%가 해안가 등 저지대인 나라로, 현재 기후위기로 인한 피해가 심각한 상황이다. 기후위기로 농작물을 재배할 수 있는 땅이 점점 사라지고, 홍수 등 자연재해도 빈번하다. 2050년까지 국토의 11%가 사라져 1300만명의 기후난민이 발생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다큐멘터리에서는 방글라데시의 ‘수상농장’을 소개한다. 방글라데시 고팔간지 지역에는 전통적인 방식으로 물 위에 땅을 만들어 식물을 재배하는 ‘수상농장’이 있다. 수상농장을 운영하는 농부들은 ‘부레옥잠’을 모은 땅 ‘베드’를 물 위에 띄우고, ‘떼마’라는 씨앗을 뿌려 농사를 짓는다. ‘수상농장’에서 오이, 강황, 수박, 토마토, 오크라 등 질 좋은 농작물을 얻으며 농부들의 살림살이에도 큰 보탬이 되고 있다. 비가 많이 와 농사를 짓기 어려운 우기 때도 농사가 가능하다. 다큐멘터리는 기후위기를 극복하는 새로운 대안이자, 지속가능한 농업을 실현해가는 ‘수상농장’의 가치를 조명한다.
방송뿐 아니라 전시·학술·교육 콘텐츠로 다양하게 활용
아시아의 소중한 무형유산을 널리 알리고 보존하기 위한 다큐멘터리 <위대한 유산> 시리즈는 방송 영상 콘텐츠뿐 아니라 전시·학술·교육 콘텐츠로도 다양하게 활용되고 있다. 국립중앙박물관의 <황금인간의 땅, 카자흐스탄> 특별전, ACC 아시아 이야기 지도 <마나스의 길> 전시, 아시아문화박물관의 아시아 문화 VR 실감 콘텐츠, ACC 어린이문화원의 ‘계단식 논’ 체험공간 등 다양한 형태의 원소스 멀티유스 문화 자원으로 활용 중이다. 위대한 유산의 첫 번째 시리즈인 중앙아시아 3부작은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선정한 ‘이달의 좋은 프로그램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지난해에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문화다양성 우수사례’에 선정되는 등 아시아 지역의 문화 확산과 보존을 위한 지속적인 노력을 인정받고 있다.
인류무형문화유산이 품은 오래된 미래의 가치
인류의 원형이 오롯이 담겨 있는 인류무형문화유산. 선조들이 물려준 삶의 지혜를 바탕으로 오늘의 삶을 더욱 충실히 살아가고 그 속에서 미래의 희망을 일궈가는 사람들. <위대한 유산> 프로젝트는 아시아의 무형문화유산이 품고 있는 ‘오래된 미래’의 가치를 재발견하여 현대인들에게 알려준다. 지속 가능한 미래는 오래전부터 존재해왔음을, 후손들에게 이어질 수 있도록 우리가 기억하고 기록해야 함을... 책 속의 텍스트가 아닌 살아 있는 무형의 유산을 만날 수 있는 시간, 《위대한 유산 남아시아》 편은 11월 11일(월), 12일(화), 18일(월) 밤 10시 45분에 EBS1에서 3일간 방영된다. 보석처럼 빛나는 아시아의 위대한 유산을 만나보길 바란다. 더불어 <위대한 유산>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지금까지 현지 연구조사 등에 참여해온 심효윤 ACC 학예연구사의 이야기를 들어본다.
<인터뷰> 심효윤 | 국립아시아문화전당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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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유산> 프로젝트를 처음부터 기획하고 참여해오셨는데,
어떤 계기로 기획하게 되었나요?<위대한 유산> 프로젝트는 연구사업과 전시기획 등 학예 업무를 담당하는 저에게 근본이 되는 프로젝트입니다. 제가 인류학을 전공했는데 아시아라는 땅 위에 선조들이 무엇을 남기려 했고, 어떻게 인간다움을 후대에 전해왔는지를 가장 잘 보여줄 수 있는 것이 ‘아시아의 전통지식과 무형문화유산’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아시아의 무형유산을 대중에게 전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공중파 다큐멘터리가 아닐까 생각했고요.
그렇게 2015년부터 EBS와 유네스코아태무형유산센터(ICHCAP) 와 함께 공동 기획을 시작하게 됐는데요, 그게 벌써 10년이 다 되어 가네요. -
아시아 각국의 무형문화유산을 다큐멘터리로 제작하기까지 어떤 과정들을 거치나요?
아시아 지역의 권역별로 보존 가치가 있는 무형유산들을 소개하기 위해서 저희 ACC는 조사와 연구를 하고 EBS는 다큐를 제작하고 저희 ACC는 조사와 연구를 하고 EBS는 다큐를 제작하고 ICHCAP은 해외 협력 네크워크를 관리하는 역할을 함께 하는데요. 소재 선정부터 사전 조사, 현지 촬영 등 하나의 방송이 완성되기까지 보통 2년 정도가 소요되는 것 같아요. 하나하나 정말 쉽지 않은 과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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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지조사 및 촬영에도 동행하셨는데 가장 기억에 남는 나라가 있다면요?
첫 번째 프로젝트였던 중앙아시아 편이 특히 기억에 남습니다. 그중에서도 타지키스탄의 작은 시골 마을인 ‘이스파라’에서 다큐멘터리의 주인공이었던 여덟 살 소녀, ‘아지자’를 만났던 일이 인상 깊습니다. 저희는 그 마을에서 약 일주일 넘게 촬영을 진행했는데요, 촬영을 마치고 모두와 인사를 나누며 떠났습니다. 하지만 아직 어린 아지자는 저희가 떠났다는 사실을 실감하지 못한 듯, 철수한 다음 날에도 저희가 머물던 숙소를 찾아왔다가 울고 돌아갔다는 이야기를 현지 코디네이터로부터 전해 들었습니다. 정이 깊고 따뜻한, 아직도 ‘동네’의 정서가 살아 숨 쉬던 그 마을과 사람들은 제 기억 속에 오래 남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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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든 만큼 감동적이고 뿌듯한 경험도 있었을 것 같은데요?
필리핀 ‘이푸가오족’을 촬영할 때였는데요, 산간 지역에 계단식 논을 만들어서 생활하는데 추수 기간이 되면 마을 축제로 ‘푸눅’이라는 줄다리기 축제를 크게 하거든요. 마을 사람들이 다들 강변으로 모여서 물 안에서 줄다리기를 하는데 정말 인상 깊었어요. 줄다리기 자체도 좋았는데 더 흥미로웠던 건 그 축제를 위해서 도회지에 나가서 생활하는 이푸가오족 사람들이 고향으로 돌아와서 모이는 모습이 감동이었습니다. 행사성으로 무대화된 축제가 아니라 삶 속에 배어 있는 축제의 모습이 참 아름답고 부러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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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유산> 다큐멘터리를 통해서 사람들에게 어떤 점이 전달되길 바라나요?
우리나라는 선진국이라고 하지만 사실 우리가 가진 문화유산에 대한 관심은 부족한 편입니다. K-문화라고 할 정도로 예술 산업이 발달했지만, 너무 소비중심적인 것 같아요. 꼭 전시장이나 미술관, 공연장만 가서 즐기는 것만이 문화예술이 아니라 우리 삶 속에 투영되어있는 살아 있는 문화를 <위대한 유산>을 통해 만날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 by
- 유연희 (heyjeje@naver.com)
- Photo
- ACC 제공, 디자인아이엠 포토그래퍼 송기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