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리버리 댄서의 선: 인버스

ACC 미래상 2024: 김아영

예술극장 로비에서 복합전시관으로 들어가는 길은 짙은 어둠이지만, 통로를 벗어나면 1,560㎡(472평)의 광활하다 싶을 정도의 높고, 넓은 전시장과 공간 연출에 압도된다. 어디서 본 듯, 낯설은 동물 도상을 가리키는 거대한 해시계와 가로 11m 크기의 대형 스크린 3개가 천장에 삼각형 구조로 매달려 있다. 그 스크린을 마주한 세 개의 슬로프에 관람객은 앉거나 누워서 27분짜리 작품을 무한 관람할 수 있다.

전작의 배경이 서울이었다면, 이번 신작 <딜리버리 댄서의 선 : 인버스>에서 두 여성 배달 라이더 에른스트 모와 엔 스톰은 미래 가상 도시 ‘노바리아’라는 도시에 놓인다. 에른스트 모가 과거의 시간관이 담긴 유물들을 배달하면서, 시간의 느려지고 서로 다른 시간 들이 충돌한다. 비슷한 듯 다른 두 사람이 만나고 싸우듯 엉킨다. 시간과 연관된 독특한 아시아적 이미지들이 몽타주 되어 매력적인 사운드와 함께 지루할 틈 없이 쏟아진다.

‘매력적이다 vs 이해하기 어렵다’

관람객은 어둡고 낯선 매체의 전시가 불편하고, 마치 SF 같은 이미지와 세계관이 어렵게 느껴진다. 하지만 이미 일상에 깊이 스며든 게임이나 미디어, 컴퓨터 그래픽, AI 등 매체에 기반한 새로운 예술 언어들이 현대미술의 큰 축으로 자리 잡고 있다. 이 낯선 불편함과의 만남이라는 심리적 경계심을 뚫고, 새로운 배움과 예술 경험의 지경(地境)으로 확장될 수 있을까.

오랜만에 동경하는 테이트 모던 터너홀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대규모 프로젝트 전시 <ACC 미래상 2024: 김아영>전을 보고 나는 지적인 포만감을 느꼈다. 매우 흡족한데, 뭐라 설명할 길 없는 알 수 없음은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슬로프에 앉아서 그저 생각 없이 애니메이션과 그래픽 이미지, 사운드, 흘러가다 눈과 귀에 쏙 들어오는 시적인 언어들에 쉽게 매료되지만, 27분을 집중하여 볼 마음의 여유를 선뜻 찾지 못한다. 또한 기승전결의 명확한 서사에 익숙한 이로서는 모호하게 열린 내용들이 신경을 거스른다. 하지만 그래서 어느 타이밍에 보기 시작해도 무리가 없다. 뭔가 세계관이 있는 듯한데, 얼른 이해하기 어렵다. 이게 나의 첫 번째 관람 느낌이었다.

우리가 마주할 법한 미래에 대한 예술가의 상상적 내러티브

우리는 어떤 미래를 마주하게 될까? 인간, 환경, 기술 등이 급속도로 변화하는 시대 환경 속에서 인간은 미래에 대해 수많은 상상을 한다. 만약 ~ 한다면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새로운 생각들과 상상이 이어진다.

김아영 작가는 그동안 광범위한 리서치를 바탕으로 사실과 허구, 기록과 재현, 역사적 사건에서 비롯된 동시대의 문제와 그 관계에 대해 사회, 문화, 정치, 경제 등 다양한 영역을 넘나들며 탐구해 왔다고 한다. 또한 2017년 이후 이주, 자본주의, 국가 이데올로기와 같은 거시적 서사를 고고학, 미래주의, SF적 상상력이 지배하는 혼성적이고도 중첩적인 사변 서사로 재구성하는 독특한 작업 세계를 구축한 작업을 통해 국내외 미술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고 했다.

이번 전시는 서구 근대화 과정에서 사라진 수많은 전통적 역법과 시간관에 주목한다. 작품은 서구 근대화 이후 태양 중심의 그레고리력이 도입되면서 사라져간 여러 문화권의 전통적 우주론과 시간 체계를 소환하며, 이를 현대미술의 내러티브로 복원하려는 작가의 시도를 담고 있다.1)

딜리버리 댄서 시리즈의 시작 <딜리버리 댄서의 구>(2022)

김아영 작가는 코로나 시기 집에 갇혀 배달 음식만 시켜 먹으면서 ‘라이더’에게 관심을 갖게 되었으며, 최단 거리와 시간을 목표로 속도와 생산력을 위해 최적화를 요구받는 배달 기사의 세계를 이해하기 위해 바이크 뒤에 타고 직접 배달 체험도 했다고 했다. 가상의 서울을 배경으로 질주하는 여성 배달 라이더가 등장해 시공간의 뒤틀림과 가능 세계를 경험하게 하는 영상 작품 전작 <딜리버리 댄서의 구>(2022)는 그렇게 탄생했다. 주인공 에르스트 모는 배달앱인 ‘딜리버리 댄서 앱’의 인공지능 알고리즘의 ‘댄스 마스터’가 만들어낸 알고리즘 연산의 오류와 우발성으로 시간의 뒤틀림이 발생할 때, 자신과 완벽한 동일한 외모의 엔 스톰을 때때로 만나게 된다. 그러나 두 사람이 만날 때마다 에른스트 모의 시간은 자꾸만 느려지고 배달 지연 현상에 빠지게 된다.

개인적으론 왜 배달 플랫폼 노동자를 ‘딜리버리 댄서’라 표현했을까? 궁금했다. 전작을 알고서 비로소 힌트를 얻었다. 속도와 시간, 자본주의가 연결된 이 노동에서 최대의 효율성을 발휘, 즉 최단 시간 내 배달하기 위해서는 동작 단순화하고, 최단 거리 동선으로 가야 한다. 이때 움직임이 클수록, 길이 넓을수록 속도는 느려진다. 전작에서 딜리버리 배달자의 동선과 움직임이 춤과 같다고 비유하며 대사 중에 “짧을수록 아름다워”, 즉 춤추듯 유영하듯 끊임없이 세계와 도시를 움직이는 이들이 댄서와 같이 아름답고 표현한다.

미래 가상의 도시 '노바리아'의 세계 속 딜리버리 댄서

수만 년 이후 인류가 멸망하고, 인간이 완벽하게 컨트롤하는 완벽한 다른 세계 '노바리아'로 이주한다. 이곳은 지구 행성에서 사용해 왔던 태양주기로 지구가 도는 시간력인 양력이나 달의 주기로 인한 시간관인 음력을 사용하지 않는다. ‘루미나’라고 하는 가상의 기계 생명체의 생명주기에 따라 시간력이 발생, 이곳의 시간은 1년이 400일이다.

이 가상의 세계는 모든 것이 완벽해 보이고 에른스트 모와 엔 스톰은 잘 적응하는 것 같지만, 세관을 통해 시간의 유물을 우연한 계기로 배달하게 되면서 시간이 느려지고, 빈틈이 생긴다. 옛 지구 행성과의 관계를 회복하고자 하는 복원 주의자들의 유물이다.

몬스터Monster 단어의 철자를 교차하여 만든 두 이름 ‘에른스트 모’와 ‘엔 스톰’은 완벽하게 고립된 노바리아 세계에서 시간의 뒤틀림 속에 우연히 만나게 된다. 두 사람은 서로 만나고 흠모하고 도와주면서도, 시간이 늦어지고 지구행성과의 관계를 회복하기 위한 다양한 감정선을 드러낸다. 시간과 장소가 하나가 아닌 듯한 이미지와 함께 음악과 몸짓, 작가 목소리의 내레이션을 통해 두 주인공의 갈등이 표현되는데, 개인적으로 아시아 전통 별자리를 글과 그림으로 정리한 시화집 『보천가』의 가사가 동아시아적 감수성 짙은 사운드와 함께 인상적인 장면을 만들었다.

<김아영 전>을 제대로 맛보기 위한 몇 가지 팁

이번 전시를 위해 ACC 미래상 전시를 담당한 오혜미 학예연구사가 들려준 김아영 전을 흥미롭게 보는 팁을 나누어본다.

첫째, 전시장 둘레길에서 본다.

이번 전시에서 관객 동선으로 처음으로 ‘전시장 둘레길’을 열었다. 높은 위치에서 전시장을 내려다보면, 해시계와 함께 마치 미래 가상의 도시 노바리아의 한 광경을 보는 듯한 느낌이다. 전시장은 단순히 세개의 스크린과 관객석을 배치한 것이 아니라 축제가 벌어졌던 노바리아의 광장을 시각화한 것이다. 이곳에서 스크린을 함께 보다 보면, 발견하는 것들이 있다. 앞쪽 두 개의 슬로프는 짧고 깎아지른 듯한 불편함이 있고, 안쪽 대형 슬로프는 경사가 낮아 편안하다. 앞쪽 두 개는 가상 세계에서 충돌하는 시간과 공간감을 체험하도록 긴장감 있게 표현했다. 세 개의 영상은 하나의 사운드로 스토리를 전개해 나가는데 컴퓨터 그래픽, AI 제작기법에 따라 영상의 반 정도는 동일하고 나머지는 다르다. 전시장에서는 각자 위치한 하나의 스크린을 통해 감상하지만, 둘레길에서는 동시에 세 개의 영상을 조망할 수도 있다.

둘째, 27분 중 1분 30초 정도의 파열의 구간을 찾아보자.

김아영 작가는 이번 작업을 생성형 인공지능을 활용하여 작업하였고 그 역할 비중이 50:50이었다고 한다. 그럼에도 예술가가 원하는 결과의 작품을 만들기 위해 엄청난 돌봄 노동과 시간의 노력을 필요로 했다고 하며, 결국 인공지능 역시 포토샵이나 인디자인을 사용하는 하나의 툴일 뿐이라는 결론을 가졌다 한다. 원하는 결과를 찾아가는 과정과 숱한 시행착오 속에서 수만 수천 개의 버려진 이미지들을 모아 1분 30초 안에 쏟아지듯 셔플되는 구간이 있다. 이 부분은 전시를 관람할 때마다 다른 이미지를 볼 수 있다. 심지어 세 개의 스크린 속 이미지가 이 파열의 구간에서 서로 다르다. 이것을 찾아보는 묘미를 누려보자.

셋째, 전시장 안에 상영 중인 전작을 보자.

전시장 한편에 한국인 최초로 세계 최대 미디어아트 어워드인 오스트리아의 '프리 아르스 일렉트로니카'(Prix Ars Electronica)에서 2023년 뉴애니메이션아트 부분 최고상인 '골든 니카'(Golden Nica) 상의 명예를 안겨준 <딜리버리 댄서의 구>(2022) 작품을 보면, 연작인 이번 작품의 이해가 쉽다.

함께 보며 양파 까듯 대화할 때 재미가 배가 되는 전시

개인적으로 이번 전시는 도슨트 설명을 들을 것을 강력히 추천한다. 관람객 입장에서 무엇을 보고, 경험해야 할지 전문 도슨트들이 잘 알려주고, 놀랍게도 아주 쉽게 풀어준다. 대구에서 온 광고홍보학과 1학년 대학생은 애니메이션이고 공간 설치가 멋져서 매우 흥미로웠으나, 처음에 언뜻 이해하기가 어려웠다고 했다. 하지만 함께 온 친구들과 “왜 딜리버리 댄서일까? 혹은 저 시간 유물은 현실 세계에 진짜 있는 걸까?” 등 수다 떨다 보니 재미가 더해가는 걸 느꼈다고 했다. “꼭 정답을 알아야 하는 건 아니잖아요. 전 우리끼리 나눈 뒤의 대화가 훨씬 재밌었어요. 이 작품의 매력은 거기에 있는 듯해요.”라고 했다. 정말 그랬다. 나와 함께 전시 본 동료와 전시장을 나오며 마지막으로 한 말은 이거였다. “이 작품 다음 시리즈도 나올 것 같지 않아? 복원 주의자들과 노바리아의 세계 대전쟁 말이야!”

1) 『ACC 미래상 2024: 김아영 딜리버리댄서의 선 : 인버스』, 전시 브로슈어 발췌

by
천윤희 (uni94@hanmail.net)
Photo
디자인아이엠 포토그래퍼 송기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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