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어컨

주목할 아카이브

에어컨 air conditioner은 공기air를 공간 안에 가둘 수
있고, 습도와 온도를 일정하게 조절할 수 있는 물질로 보
는 장치다. 영어로 atmosphere는 공기나 대기를 뜻하지
만 ‘분위기’나 ‘기운’이라는 의미도 같이 들어있다.
마찬가지로 어떤 사람이나 장소에 서려 있는 고유한
분위기를 뜻하는 아우라 aura도 그 어원이 ‘바람’ 또는
‘공기’다. 우리를 둘러싼 공기에는 기계로 조절할 수 없
는 그 장소만의 특별함이 들어 있다.

에어컨은 지구의 대기를 달구고, 지구가 더워질수록
사람들은 에어컨을 더 많이 가동해야 한다고 느낀다.
전 세계적으로 건물에서 사용되는 전체 전기 사용량
가운데 에어컨 가동에만 거의 20%가 할당된다. 현재
전 세계에 설치된 1인용 에어컨만 총 10억대가 넘으며
2050년이 되면 에어컨은 45억 대가 넘어, 오늘날 휴대
전화만큼 흔해질 것이라고 한다. *

에어컨은 기후뿐 아니라 건축도 변화시켰다. 에어컨이
보급되면서 에어컨 관을 통해서만 공기가 흘러가는 밀봉된
상자 같은 건축구조도 함께 급증했다. 에어컨은 이제 건축
물에 들어가는 부속품이 아니라, 건축물이 에어컨을 감싸
주는 구조물이 되었다. 에어컨은 이렇게 해서 오랫동안 인
간이 개발해온 더위와 함께 사는 다양한 지혜를 몰아내고
있다.

캄보디아를 세운 건축가

캄보디아의 건축가 반 몰리반 (Vann Molyvann1926~
2017)은 1953년 캄보디아가 독립하고 나서 한참 국가 재건
계획을 세울 때 여러 기념비적 건축물을 설계했으며,
프놈펜을 비롯한 주요 도시의 개발 계획을 지휘했다.
사람들은 그를 캄보디아를 세운 건축가라 부른다. **

그는 프랑스 파리로 유학을 떠나 근대 모더니즘의 대표적인
건축가 르 코르뷔지에의 영향을 받으며 캄보디아 최초로
서양의 건축을 공부했다. 그는 서양의 모더니즘 원칙과
크메르 문명의 전통을 결합시켜 신 캄보디아 건축을 이끌었다.

그는 “에어컨이 있는 폐쇄된 공간이 아니라 바람
지나가는 열린 공간”을 지으려했다.캄보디아의 습하고
더운 자연환경을 고려해야 하며, 캄보디아 사람을 위해
집을 짓는다면 캄보디아인의 생활방식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건축가는 자신을 위해 건축하는 것이
아니라, 그곳에 사는 사람들을 위해 집는 짓는다는
자신의 의무를 명확히 해야 한다고 믿었다.

1963년 완공된 화이트빌딩 사진 © The White Building Archive 반 몰리반이 감수한 최초의 공동시설.

“건축가는 시민의 변호인이 되어 공간을 만들어야
하며, 공간을 위한 공간을 만들어서는 안된다”생각했던 그는 가난한 서민들도 프놈펜 도심에서 여러 계층과
어울리며 늦게까지 공공시설을 향유할 수 있도록 공동주거 시설인 화이트빌딩White Building을 짓고 그들이 주인이 되어 살도록 배려했다.

2016년 화이트빌딩, 아시아문화박물관 아카이브 반 몰리반 건축 다큐멘터리 The Age of Vision 캡처 사진

1975년 크메르 루즈가 집권하면서는 화이트 빌딩에
살던 사람들도 모두 쫓겨나가고 건물은 퇴락하기 시작했다. 1979년 폴 포트가 물러나자 오랫동안 버려졌던 이 건물로 사람들이 다시 돌아와 살기 시작했다. 베트남이 통치하던 시기에도 사람들은 건물을 수리하고 창의적으로 개조하면서 낡아가는 건물과 함께 살아갔다. 이 건물에는 예술가,
군인, 시민활동가 등 다양한 사람들이 어울리며 공동체를 이루었다.

2016년 화이트빌딩, 철거되기 1년 전. 아시아문화박물관 아카이브 반 몰리반 건축 다큐멘터리 The Age of Vision 캡처 사진

하지만 내전과 외세의 침략 속에서도 버텨냈던 화이트빌딩
은 90년대부터 밀어닥친 경제발전의 광풍에 밀려 2017년
마침내 철거되었다. 500여 가구가 이주하기 시작한 그해
반 몰리반도 세상을 떠났다. 뉴욕타임스는 그를 추모하는
부고 기사에서 “반 몰리반의 건축은 캄보디아인들에게 새로운 자신감을 심어주었다”고 말했다.

79년 전 이 땅에는 모두가 행복하게 사는 나라를 만들겠다는 뜨거운 기운atmosphere이 감돌았다. 그 첫마음을 우리는 잃지 않은걸까. 하지만 우리를 둘러싼 공기air는 그동안 훨씬 습하고 뜨거워졌고, 사람들은 점점 각자의 에어컨이 있는 자신들의 공간으로 들어가고 있지 않은지, 79년 전
그때를 돌아본다.

함께 보기

1. 에어컨과 폭염

제프 구델 지음 · 왕수민 옮김, 『폭염 살인: 폭주하는 더위는 어떻게 우리 삶을 파괴하는가』, 웅진지식하우스, 2023 *

2. 반 몰리반의 생애와 작품

  • Julia Wallace, "Vann Molyvann, Architect Who Shaped Cambodia's Capital, Dies at 90", The New York Times, 2017.9.28. **
  • 반 몰리반프로젝트 https://www.vannmolyvannproject.org/

3. White Building의 역사와 사람들

  • 화이트빌딩 아카이브.http://www.whitebuilding.org/
  • Erin Hale, "The Lost Future of Cambodia: Inside Phnom Penh's White Building", Salon, 2015. 9.4. 201

 

 

Photo
아시아문화박물관 아카이브 컬렉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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