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를 기획한 서동환 대표 인터뷰

행복을 찾아가는 삶의 여정에서 만난 <ACC에 반한 스케치> 전시

개인적으로 거대한 국립아시아문화전당 공간 중 아름답다고 느끼는 곳 중 하나는 문화정보원 깊은 안쪽에 있는
<대나무정원>이다. 지하 공간이지만 외부의 빛이 스며들어 환하고 대나무의 초록이 잠시의 해방감을 주는 곳이다.
문화정보원 도서관에서 책을 읽거나 강의를 들은 후 잠깐의 휴식으로 걷기나 수다를 나눌 수 있는 쉼의 공간이다.
지금 이곳에는 국립아시아문화전당과 광주 동구의 오래된 모습과 변화된 현재의 모습을 스케치한 작품들이 <ACC에 반한 스케치>라는 주제로 전시 중이다. ‘어반스케쳐스광주’ 40여 명의 회원들이 손으로 그린 드로잉은 장소에 대한 개성 어린 시선과 이야기를 담아 인간적인 매력을 느끼게 한다. 대나무정원에서 <ACC에 반한 스케치> 전시를 준비한 ‘광주어반스케치&드로잉’ 서동환 대표를 만났다.

  • 천윤희

    만나서 반갑습니다. 먼저 어반스케치와 어반스케쳐스가 무엇인지 소개해 주시겠어요?

 

  • 서동환

    어반스케치는 한마디로 도시의 일상을 스케치하는 것입니다. ‘어반스케쳐스(Urban Sketchers)’는 2007년 일러스트레이터이자 기자인 가브리엘 캄파나리오(Gavriel Campanario)가 출범시킨 국제적인 미술 운동으로, 자신이 살고 있거나 여행하는 도시와 마을을 현장에서 스토리와 함께 그림으로 담아내고 있습니다. 전 세계 주요 도시에 수백 개의 지부를 두고 있으며 광주 지역에는 100여 명이 활동하고 있지요.
    <광주어반스케치&드로잉> 이라는 모임은 2020년 2월 4명의 일반 시민으로 결성된 이래, 올해로 4주년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이번 전시는 어반스케쳐스의 글로벌 챕터 승인을 받기 위해 준비 중인 ‘어반스케쳐스광주(운영자 서채은)’와 ‘광주어반스케치&드로잉(대표 서동환)’의 40여 명의 회원들이 국립아시아문화전당에서 교육과 워크숍 등을 진행한 결과로 200여 점의 작품을 전시한 것입니다.

 

  • 천윤희

    어반스케치의 핵심은 현장에서 스케치하는 것인가요?

 

  • 서동환

    현장에서의 스케치나 사진을 보고 그리느냐가 중요하기보다는 그렸던 대상과의 관계, 장소를 그리면서 행복하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마치 노래하고 글을 쓰는 것처럼 잘하고 못하고를 떠나 무의식적으로 그리고 싶은 것을 그리는 그 과정에서 다양한 경험과 치유가 일어나지요. 장소의 스토리와 감정이 더욱 중요하다고 봅니다.
    글로벌 어반스케쳐스에는 8대 규약이 있는데, 핵심 사항은 사진을 보고 그리지 않고 항상 현장에서 그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한 도시에 하나만 인정되는 글로벌 챕터인 <어반스케쳐스>로 광주가 승인받기 위해서는 규약 강령을 준수해야 하지만, 일반 시민이 일상에서 접근을 쉽게 하기 위해서는 사진을 보고 그릴 수 있는 것도 저는 중요하다고 봅니다.

  • 천윤희

    선생님께서 어반스케치를 시작하게 된 계기가 <그 해 우리는> 드라마라고 들었습니다.

 

  • 서동환

    처음 이 모임이 시작될 때는 저는 없었습니다. 당시 고창에 사시던 닉네임 곰아재 (인스타그램) 송선민 님이 공황장애가 와서 심리적으로 힘들 때 어반스케치를 알게 되었고, 당시 뜻 맞는 네 분이 모임을 시작하셨다고 합니다.
    저는 2022년 6월에 처음으로 시작했습니다. 당시 저는 여러 내외부적인 상황으로 불면증에 시달리고 있었던 때인데, 어느 날 대학생 아들이 밤늦게까지 <그 해 우리는>이라는 드라마를 너무 재밌게 보고 있기에 같이 보게 되었습니다. 그 내용이 고등학교 전교 꼴등과 일등이 짝꿍이 되면서 상호 변화를 관찰하는 다큐로 찍는 것이었지요. 전교 꼴등은 뇌가 없는 듯. 잠만 자고, 전교 1등은 뭘 해도 열심히 하는 캐릭터였지요. 이후 10년이 지나, 전교 꼴등 하던 아이는 어반스케치하는 작가로 살며, 시간에 쫓기지 않으면서 잠자고 싶으면 낮잠 자고 그리고 싶은 것 그리면서 유명한 작가(어반스케쳐스)가 되었습니다. 전교 1등이었던 또 다른 친구는 광고대행사에 들어가, 십 년 전 꼴등 친구를 섭외하고 인터뷰하게 되는 그런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그 드라마를 보면서 전교 꼴등이 불행해지라는 법도 없고 전교 1등이 행복하다는 보장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중요한 건, 내가 얼마나 행복하게 사는가, 스케치하면서 지금 내가 행복한가가 중요하겠지요. 네. 저에게는 그 드라마가 분명 계기가 되었지요.

  • 천윤희

    어반스케치는 주로 어떤 분들이 어떤 계기로 참여하시나요?

 

  • 서동환

    30대에서 80대까지 다양한 연령층이 참여하고 있습니다. 최근에 오신 80대 어르신은 학교 다닐 때 미술에 소질이 있다는 소리 들었는데, 팔십 인생 살면서 못 해본 것을 하고 싶다 하셨습니다. 그림 그리는 수학 선생님도 계시고, 일반 직장인들이 많습니다. 또는 미대를 졸업하셨으나 결혼과 양육으로 경력 단절된 작가들이 어반스케치를 통해 그림을 다시 시작하는 분도 많습니다. 올봄에 들어오신 분 중에는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에 계셨던 선생님이 계시는데, 코로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그간 고생하시고 힘들어하신 것들을 어반스케치 모임을 통해 지친 심신을 풀고 있는 듯합니다. 김정업 선생님의 경우 정년퇴직 후 제3의 인생을 사는 중이라고 하시는데요. 전혀 생소한 분야에 입문하여 매일 조금씩 실력이 늘어나는 느낌이 재밌다고 하십니다.

  • 천윤희

    이번 <ACC에 반한 스케치> 전시는 어떻게 기획하게 되셨나요?

 

  • 서동환

    <ACC에 반한 스케치> 전시는 사전 기획된 것은 아니고, 광주 동구를 스케치 해오다가 올 2월 정기 모임에서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을 그리자는 의견이 나왔습니다. 2월은 아직 추울 때라, ACC에 시민들이 야외에서 그림 그리는 모임이 있는데, 날씨가 좋지 않은 상황이면 실내에서 스케치해도 되는지, 유의 사항 등을 ACC에 문의하면서 시작되었습니다. 그렇게 우리의 스케치 현장을 지켜본 설보영 주무관이 찾아와 전시를 해보자고 제안해 주셨습니다. 이후 우리는 ACC의 지원 속에서 2월에 국립아시아문화전당 곳곳을 스케치하며 정모를 진행하고 3월과 4월에 2회의 어반스케치 워크숍을 ACC 청년 기자단. 서포터즈와 함께 진행하였고, 참여 회원들의 작품으로 컬러링 엽서와 아트 상품 등도 제작하였습니다. 저도 펜화로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을 그린 작품을 출품했는데, 꼬박 두 달이 걸려 완성했습니다. 겸재 정선이 금강산도를 그렸던 하늘에서 내려다본 것 같은 부감법으로 그린 것입니다.

  • 천윤희

    어반스케치를 할 때 강조하는 것이 있나요?

 

  • 서동환

    사실 조선시대 겸재 정선이 그린 게 지금의 어반스케치라고 생각합니다. 화첩에 당시의 풍경을 부분마다 그려 조합해서 펼쳐 놓은 것이 금강산도였습니다. 단원 김홍도가 조선시대 일상을 그린 것도 어번스케치로 용어가 다를 뿐입니다. 어반스케치를 하면서 기본적으로 중요시한 게 도시와 시골을 그리는 사람과 자신만의 이야기가 담긴 장소, 생명으로서의 나무를 강조합니다. 우리가 그린 것이 21세기의 풍속화로서, 도시를 기록한 스케치가 아카이빙 된다는 것이 멋지지 않나요!

  • 천윤희

    5월에는 특별한 어반스케치가 있었다고 들었습니다.

 

  • 서동환

    우리는 일상을 스케치하며 나의 일상, 도시를 뚜벅뚜벅 걸어야만 보이는 것들을 많이 그렸는데 그 중 기억에 남는 모임은 작년 5월에 했던 어반스케치입니다. 평상시에는 우리의 일상을 그리다가 매년 5월이면 5월의 이야기를 어반스케치로 해보자고 마음을 모으고 처음 시도했습니다. 올해는 인천, 서울, 경기 등 다른 지역 작가들도 초대해서 오월 해설사의 오월 이야기를 듣고 그렸습니다. 현장에서 오월 이야기를 듣고 그리는 것은 전혀 다른 느낌이었습니다. 우리 회원 중 한 분인 김정업 선생님이 당시 시민군이셨습니다. 당시 총을 들었던 그 분도 42년이 지나서 오월길을 걸으며 그때를 회상하면서 아픔을 그림으로 승화하여 스케치하는 게 감회가 남달랐다고 하셨습니다.
    오월길을 걸으면서 이야기를 들으며 스케치하는 과정은 주입식 교육으로 배우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역사 배움과 경험의 현장이 되었습니다.

  • 천윤희

    마지막으로 관심 있는 분들이 어떻게 참여할 수 있나요? 그림을 잘 그려야 하나요?

 

  • 서동환

    이름 석 자만 쓸 수 있으면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어반스케치는 재료 구분이 없는 게 특징입니다. 색연필로 그리든 유화든, 수채화든, 한국화든 제한 없으나 최근 유행은 펜 드로잉에 수채를 많이 선호하십니다. 펜과 마카로만, 무채색으로만 하는 분도 있습니다. 자신에게 맞는 것을 찾으면 됩니다.
    참여 방법은 카카오톡 오픈채팅방에서 <광주어반스케치&드로잉>을 검색하시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습니다.
    작년 겨울부터는 광주시립미술관에 문화센터 프로그램으로 개설되어 그곳을 통해 배울 수도 있습니다.

타지에서 오신 분이 광주에서 가 볼 만 한곳을 추천해달라는 요청을 받으면, 나는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을 많이 추천한다.
구 전남도청에 있었던 광주의 역사를 잘 모른다고 해도, 전당의 건축과 조경의 독특한 아름다움이 있어 공간을 보는 것만도 흥미롭고, 언제든 들어가 감상할 수 있는 좋은 전시와 프로그램, 도서관, 어린이문화원 등이 있기 때문이다.
국립아시아문화전당에서는 상시로 공간 투어, 공공미술 투어, 도슨트 투어 등도 진행한다.

이번 <ACC에 반한 스케치> 전시회를 통해 ACC는 거대하고 낯선 복합문화공간에서, 비로소 시민들의 눈높이에서 애정 어린 추억이 담긴 개인의 장소로 기억되고 기록되고 있는 것이 의미 있게 보였다. 시민들이 언제든 주저함 없이 찾아가 스케치하고 전시나 공연을 보고, 강의를 듣고, 커피 한잔할 수 있는 친숙하고 일상의 공간이자 문화 놀이터가 되었으면 한다. 어느 날 열어본 사진이나 어반스케치 속에 담긴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이 좋은 사람과 행복한 기억으로 담긴 추억의 장소로 자리매김했으면 한다.

 

 

 

 

by
천윤희 (uni94@hanmail.net)
Photo
ACC 제공, 디자인아이엠 포토그래퍼 송기호
공감 링크복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