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C SF 연극 시리즈 「대리된 존엄」, 「거의 인간」

“인공지능 시대, 인간은 무엇으로 사는가”

ACC가 첫선 보이는 SF 연극의 세계로 초대

역대급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올여름, 산으로, 바다로, 계곡으로 떠나는 피서도 좋지만, 어느 곳보다 쾌적하고 편안한 휴가지를 찾는다면, ACC만 한 곳이 없다. 게다가 휴가철에 맞춰 ACC에서 준비한 특별한 연극 무대가 관객을 기다리고 있다. 바로 ACC의 첫 SF 연극 시리즈인 「대리된 존엄」과 「거의 인간」 두 작품이 7~8월 예술극장 무대에 오른다. 주로 영화나 소설로 접해왔던 SF 장르가 연극 무대에서는 어떤 느낌으로 펼쳐질까. 올여름 ACC가 그동안 경험하지 못했던 SF 연극의 세계로 초대한다.

바야흐로 인공지능의 시대. 인간과 자연스러운 대화를 하고, 궁금증을 해결해 주고, 소설이나 시를 짓기도 하며, 간단한 프로그래밍까지 가능한 ChatGPT가 인간의 영역을 더 깊숙이 더 넓게 파고 들어가는 요즘이다. 상상 이상으로 빠르게 진화하는 인공지능을 바라보면서 한 번쯤 묻게 된다. 인공지능이 인간을 대체할 수 있을까? 인공지능으로 결코 대체될 수 없는 인간만의 영역이 있을까? 인공지능 시대 인간의 존엄은 지켜질 수 있을까? ACC가 처음으로 선보이는 SF 연극 작품 「대리된 존엄」과 「거의 인간」은 이런 질문에서 출발했다. 인공지능 시대를 살아가는 인간에 대한 예술적 상상력을 무대화한 작품으로, 인간의 본질에 대한 철학적 사유와 질문을 담고 있다. 두 작품 모두 ACC 공연 레지던시 사업을 통해 창작, 무대화된 작품으로 올해 처음 ACC 예술극장에서 관객을 만난다.

‘「대리된 존엄」, 인공지능 시대 인간의 존엄은 가능한가’

7월 12일, 13일에 초연된 「대리된 존엄」은 미래 시대의 ‘인공자궁’과 ‘대리모’에 대한 이야기다. 어느 머지않은 미래, ‘인공자궁’을 통해 자녀를 갖는 것이 보편화된 시대에 돈 많은 상류층들은 ‘인공자궁’ 대신 ‘대리모’를 선호한다. 주인공인 소녀 앨리스는 가족을 돕기 위해 ‘왕립대리모센터’에 입소해 부유한 전문직 부부의 대리모가 된다. 대리모를 통해 자녀를 낳으려는 상류층 부부는 앨리스가 임신한 것을 알고도 더 나은 대리모를 구하기 위해 갈등한다. 인공지능이 지배하는 미래 사회에서도 이 시대의 자본주의 논리와 불평등은 여전한 현실을 실험적인 서사로 보여주는 작품이다. 관객들은 최하계층 소녀인 앨리스의 삶을 통해 ‘대리될 수 없는 인간의 존엄은 가능한가’ ‘돈으로 사고, 팔 수 없는 것이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스스로 찾아가게 된다.

「대리된 존엄」은 지난해 국립아시아문화전당 공연 레지던시에 선정되어 낭독 공연을 선보인 후, 올해 ACC 레퍼토리로 공연화되었다. 20여 년 넘게 극본을 집필해 온 문정연 극작가의 작품으로, 특유의 간결하면서도 빠른 전개, 풍부한 연극성과 탄탄한 극적 구조를 느낄 수 있다. 특히 이번 작품은 총 7명의 배우가 40여 개가 넘는 배역을 연기하면서 연기의 향연을 즐길 수 있는 점도 매력이다. 「대리된 존엄」 최여림 연출가는 SF 장르에 너무 얽매이지 않으면서 ‘관객과의 공모’라는 연극 무대의 장점을 한껏 살리고자 노력했다고 한다. 최여림 연출에게 궁금한 공연 이야기를 더 들어본다.

「대리된 존엄」 최여림 연출과 일문일답

  • ‘인공자궁’이라는 소재가 흥미로운데요, 어떤 주제를 담고 있나요?

    「대리된 존엄」에서 ‘인공자궁’은 흔하고 당연한 출산 방식인 것으로, 그에 비해 ‘대리모’를 이용한 출산은 돈이 많은 상류층들의 전유물인 것으로 설정했습니다. 「대리된 존엄」 속의 미래는 마치 지금처럼, 국가 간 경제적 격차에 의해 수요와 공급의 역할이 분담됩니다. 그리고 지금처럼 자기 자식에게 최고의 것을 물려주고 싶다는 욕망이 정당하게 받아들여집니다. 우리가 작품을 통해 들여다보고 싶은 주제는 ‘이 두 가지 현실이 과연 당연한가’라는 질문입니다.

  • 공간과 시간이 제약되는 연극 무대에서 SF 장르를 연출하는 것이 어렵지 않았나요?

    어쩌면 연극이야말로 한계가 없는 장르일지도 모릅니다. 연극은 태생적으로 관객과의 공모를 전제로 합니다. 우리의 출발점은, 관객이 이미 가지고 있는 자료를 떠올리게 하는 접근으로 관객의 상상으로 완성되는 무대를 연출하고자 했습니다. 연극 속의 배우는 남녀노소는 물론 동물, 사물 등 인간과 비인간 무엇이든 그려낼 수 있습니다. 또한 바다, 우주, 누군가의 머릿속 등 어디든지 실재하도록 그릴 수 있습니다. 여기에 관객이 자연스럽게 스며들도록 하는 것이 연극의 묘미일 것입니다.

  • 「대리된 존엄」을 통해 관객들과 어떤 사유를 나누고 싶은가요?

    현실의 어떤 면을 극대화한 실험실이 SF라고 생각합니다. 동시대의 우리는 세상은 거대한데 개인은 작고 무력하다고 느끼기도 합니다. 지금보다 더 발전된 미래라면 우리는 더욱 존엄할 수 있을까, 더 발전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물어보고 싶었습니다. 특히, 과거와 현재의 변화를 떠올려 보았을 때, 여성의 삶의 일반적인 모습을 보면, 커다란 변화와 비약적인 발전도 있겠지만 여전히 남루하여 먹먹하기도 합니다. 이 변화의 양상이 미래에서는 어떻게 될지 실험해 보고도 싶었고요, 앨리스라는 구체적인 한 여성의 서사를 중심으로 인간 보편의 이야기를 만드는 것 자체가 미래적인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ACC SF 연극 시리즈의 두 번째 이야기 「거의 인간」

ACC SF 연극 시리즈의 두 번째 작품은 국립정동극장과 공동주최로 선보이는 「거의 인간」이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 이후, 포스트 휴먼’이라는 주제로 2022년 ACC 공연 레지던시를 통하여 대본이 개발되었고, 국립정동극장의 ‘세실 창작ing’에 선정되어 올해 처음 무대에 올랐다. 포스트 휴먼시대 ‘인공지능 소설가’와 ‘인공자궁’을 소재로 한 공연으로, 작품의 연출 및 극작을 맡은 김수희 연출은 「아들에게」라는 작품으로 2024년 백상예술대상 연극부문 백상연극상을 수상하며 연출력을 입증받기도 했다.

「거의 인간」이라는 제목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이번 작품은 ‘거의 인간’ 수준에 가까워진 인공지능이 인간의 어느 영역까지 차지하게 될지, 그 시대에 인간은 비인간과 어떤 관계성을 맺으며 살아갈지에 대한 궁극적인 질문을 던진다. 또한 기술을 이용하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인간성을 잃어가는 건 아닌지 사람이야말로 인간이라고 불릴 수 있는 상태인지에 관한 질문도 더하고 있다. 무대의 배경은 지금으로부터 10년 후인 2033년. AI 작가 ‘지아’를 설계하고 그가 쓰는 소설을 다듬는 일을 하게 된 소설가 수현, 남편의 설득으로 인공자궁을 통해 출산을 결심하게 된 발레리나 재영이 주요 인물로 등장한다. 인간문화재 심사를 앞둔 재영과 AI와 작업하게 된 수현은 복잡한 마음이 교차한다. 미래 시대 두 여성 주인공의 관점을 통해 ‘인공지능 시대에 예술가로 살아남으려면?’이라는 이 시대 예술가들의 필연적인 질문을 함께 사유하는 경험을 제공한다. 김수희 연출가는 이번 작품을 창작하면서 기술의 도래로 잃게 될 예술가의 위치에 대한 두려움이 사라지고, 오히려 자신감을 얻는 경험을 했다고 한다.

「거의 인간」 김수희 극작·연출과 일문일답

  • 인공지능이 예술가의 자리를 대체할 수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아니요. 2022년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의 레지던시 공모에 응시하면서 4개월 넘게 ‘AI 예술가’라는 주제에 충실한 여러 가지 실험을 했어요. AI 생성프로그램으로 인물을 만들고 온라인으로 다양한 소스들을 송출하며 각기 다른 장소에서 원격으로 조정하는 실험을 했어요. GPT-2 버전의 인공지능과 함께 글 쓰는 수업도 받았어요. 그러다 보니 어느새 기술의 도래로 잃게 될 예술가의 위치에 대한 두려움이 사라지더라고요. 빅데이터 값에, 설계자에 따라 결과값과 한계를 보여주는 인공지능을 보면서 예술의 가치를 새삼 확인하게 됐어요.

  • 연극무대에서 SF 장르를 연출하기 위해 특별히 신경 쓴 부분이 있나요?

    너무 어려울 것 같아서 아주 소심하게 10년 후라는 근미래로 설정했어요. 예측 가능하면서도 섬세하게 그 이상을 넘어서는, 그럴싸한 가까운 미래를 보여드리면 관객분들이 믿어주시지 않을까 하는 소망 반 걱정 반으로요. 인공지능이 일상으로 깊게 파고들었을 뿐만 아니라 다양한 예술 장르가 인간문화재로 선정돼 보호받는가 하면, 인공자궁의 발달로 자궁 적출이 이상한 일이 아닌 그런 사회 분위기를 적확하게 표현하고 싶었어요.

  • 미래적 상상을 기반한 작품을 통해 현시대 관객에게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었나요?

    「거의 인간」 속에서는 글을 쓰고 싶은 수현은 AI 소설가에게 자리를 뺏기며 도태된 상태를 보여주죠. 발레하는 재영은 인간문화재가 되기 위해 애쓰지만 정작 심사는 AI가 하고요. 두 사람이 기술 발전으로 인해 달라진 예술 형식 속에서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해 기를 쓰고 고군분투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어요. 그런 상황이 꼭 예술가에게만 적용되는 건 아니잖아요. 공연을 보신 관객분들은 각자의 위치와 환경에서 인간의 본질에 대해 생각하게 될 거라 믿어요.

  • 관객들에게 알려주고 싶은 관람 포인트가 있다면요?

    「거의 인간」 공연은 정말 재미있으니까 꼭 보러 오세요!라고 얘기하고 싶습니다. 보시고 함께 이야기 나눠요. 그럴 거리가 많은 연극이에요. 과학기술의 도래로 인한 인간들의 혼란이라는 대주제 안에 사랑과 질투, 욕망과 좌절, 포기와 전진이 공존합니다. 사람 사는 이야기이지요. 편안한 마음으로 극장에 들러 주세요. 8월에 만나요!

ACC SF 연극 시리즈 「대리된 존엄」은 7월 12일과 13일에 공연을 마쳤으며, 「거의 인간」은 8월 23일과 24일 두 차례의 공연을 앞두고 있다. 자세한 내용은 ACC 누리집(www.acc.go.kr)에서 확인할 수 있다. ACC가 처음으로 펼쳐 보이는 SF 연극무대를 통해 공연의 짜릿한 즐거움도 누리고,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해 진지하게 성찰하는 시간도 가져보길 추천한다.

 

 

by
유연희 (heyjeje@naver.com)
Photo
ACC 제공
공감 링크복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