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남아시아 춤의 성소 : 리미널 스페이스>

신과의 궁극적 합일을 경험하는 춤의 성소

춤추는 시바 신, 나타라자

인간은 세상이 무엇으로 만들어졌고, 우주는 어떻게 생겼는가 하는 등의 궁극적인 것에 대한 영원한 호기심을 가져왔다.
힌두교에서는 우주는 여섯 마리의 코끼리가 지구를 떠받치고 있으며, 코끼리 아래는 거북이, 그 아래는 뱀이 커다란 원을 그리고 있다고 생각했다. 힌두교의 신 중에서, 우주 소멸에 관련된 파괴의 신인 시바신이 있는데, 시바는 또한 춤추는 신이기도 하다. 춤추는 시바의 다른 이름이 나타라자(Nataraja, 춤의 왕)인데 힌두교 우주관이 잘 반영되어 있다.

ACC 아시아문화박물관 기획전시실2 중앙에는 인도미술박물관 소장품, 시바의 화신(化神) 춤의 왕 나타라자가 있다.
나타라자는 네 개의 손을 가지고 있는데, 오른손에는 북(창조를 상징), 왼손에는 불꽃(파괴를 상징)을 들고 있다. 또 다른 한 손으로는 두려워 말라는 제스처, 다른 한 손으로는 항복하라는 제스처를 취한다. 시바신을 둘러싼 원은 우주를 상징하고, 시바신이 밟고 있는 난쟁이는 무지와 망각을 상징한다고 한다. 힌두교는 시바가 춤을 추기 때문에 우주가 순환한다고 생각한다. 시바의 춤은 바로 창조의 활력이고, 우주의 질서와 무질서, 평화와 전쟁에 대한 거대한 메타포가 된다.

스위스 제네바와 프랑스 사이 국경지대에 있는 세계 최대의 입자물리학 연구소인, 유럽원자핵공동연구소(CERN) 입구에는 나타라자 동상이 있다고 한다. 둘레가 무려 27km에 달하는 대형 강입자 충돌기에서는 신의 입자(힉스 입자)를 발견하기 위해 엄청난 충돌실험을 하는데, 파괴의 신 시바의 격렬한 원형의 춤과 닮아 보인다.

고대 인도 문학예술의 보고, 나티아 샤스트라

미간의 붉은 점, 붉은 입술, 붉은 손바닥, 붉게 염색된 손가락과 발가락들. 눈썹과 눈 주변의 진한 검정의 아이라인들. 하얀 꽃으로 장식된 머리, 헤어밴드처럼 머리를 감싼 장신구, 독특한 손목 팔찌와 방울이 가득한 발찌. 더구나 무용수의 동작 하나하나가 예사롭지 않다. 요가 같은 동작은 물론이고, 수어처럼 보이는 손가락 연기. 더욱 놀라운 건 천(千)의 감정을 표현하는 것 같은 독특한 표정 연기다.

한국 최초 인도 전통무용 오디시(Odissi) 전수자 금빛나님의 춤과 연기다. 금빛나님이 표현한 춤과 연기는 고대 인도 문학예술의 보고인 <나티아 샤스트라 Nātya Śāstra>에 근거한다. <나티아 샤스트라>는 창조의 신 브라흐마로부터 성자 바라따가 직접 전수받아 백 명의 아들들에게 가르쳤다는 무용과 연극의 백과사전과 같은 문헌이다. 힌두교에서는 연극 특히 무용극(춤)이 브라흐마 신의 창조물이자 인간에게 내려준 선물이기 때문에, 춤은 인간이 신에게 바칠 수 있는 최고의 공양물이 된다. 특히 인도 무용의 정수는 표현 무용이다. 평범한 일상사가 아닌 신들의 이야기를 전달하는 것이기 때문에 다양한 감정과 표정을 연극적인 신체 연기법을 통해 전달한다. 이번 전시에서는 금빛나님의 인간의 9가지 감정과 표정, 손짓 언어인 <무드라 Mudra>의 시연 영상을 볼 수 있다.

남아시아 춤의 성소 : 리미널 스페이스

전시장 입구, 1부 전시 주제는 <춤의 성소 : 힌두사원의 춤 유적지>이다. 사진으로 볼 수 있는 비루팍샤 사원, 비탈라 사원, 라마찬드라 사원에는 춤추는 크리슈나, 춤추는 무용수 부조와 같은 장식과 댄스홀의 악기 기둥 같은 공간이 왜 있을까하는 의문이 들었는데, 힌두교의 세계관에는 춤추는 신 시바 나타라자의 상징과 <나티아 샤스트라>의 제의적 가르침을 통해 중요한 의미를 전달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즉, 춤을 통해 도달하는 신과의 궁극적 합일, 엑스타시, 자유, 해방 등을 뜻하는 <라사 rasa>가 인도 사람들에게 가장 중요한 구원의 방편이 되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여 남아시아 춤의 성소는 리미널 스페이스(Liminal Space)가 되는데, 리미널 스페이스는 경계 공간, 시간적 혹은 공간적 변화에 맞물려 있는 경계 지점을 뜻한다. 즉 “춤의 성소 안에서 인간은 춤을 통해 신성한 공간 성(聖)과 인간의 세상 속(俗)의 경계를 넘나들고, 무용수의 몸을 통해 인간과 신이 넘나들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철학자 니체는 말한다.

“차라투스트라는 심각한 얼굴로 자유와 사랑을 말하는 사람을 믿지 않는다.
사뿐사뿐한 발걸음으로 환하게 웃으며 춤출 줄 아는 사람만이 진정한 자유와 사랑을 체험한다.”

이번 남아시아 춤의 성소 전시를 통해 니체가 말하는 춤추는 차라투스트라는 춤추는 시바와 다르지 않음을 느낀다. 인류학적 역사에서 춤이 가지는 종교성과 제의성과 더불어, 관념을 넘어 인간에게 실질적 초월과 위로가 되었던 예술의 한 장르가 춤이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by
구태오 (rnxodh@naver.com)
Photo
ACC 제공, 디자인아이엠 포토그래퍼 송기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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