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끝으로 만나는 아시아의 문화예술”

ACC 아시아 예술체험 <아시아 공예> <아시아를 새기다>

아시아 예술과의 새로운 마주침 <ACC 아시아 예술체험>

깨질 듯 작고 얇은 자개 조각을 핀셋으로 하나하나 조심히 들어 올린다. 풀칠한 자리에 최대한 섬세하게 붙여준다. 행여 깨지거나 틀어지지 않게 온 정신을 손끝에 집중한다.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을 만큼 초집중하는 사이 서서히 조각들이 모양을 잡아가기 시작한다. 반짝반짝 영롱한 빛깔의 자개 조각이 한 송이 들꽃으로 피어나고, 나비가 되어 팔랑거리고, 나뭇잎, 물고기, 새가 되어 날아오른다. 사라져가는 우리 전통 나전칠기 공예의 아름다움이 마음속에 콕 박히는 순간이다. 아시아의 예술을 직접 체험하며 그 가치를 재발견하게 되는 <ACC 아시아 예술체험> 시간이다.

나전칠기 공예의 재발견 <아시아 공예>
나만의 인장 만들기 <아시아를 새기다>

<ACC 아시아 예술체험>은 아시아 문화예술 가치의 확산을 위해 아시아의 다양한 예술을 직접 경험해보는 기회를 제공하는 프로그램이다. 올해는 한국의 전통 나전칠기 공예를 체험하는 <아시아 공예>와 나만의 인장을 만드는 <아시아를 새기다> 두 개 프로그램이 진행되고 있다. 평상시 접하기 어려운 아시아의 문화예술을 체험하는 흔치 않은 기회로, 프로그램 접수창이 열리면 순식간에 마감이 완료되는 ACC의 오랜 인기 프로그램이기도 하다. 4월부터 6월까지 각각 6회차로 진행되는 프로그램도 조기 마감되는 등 큰 인기를 끌었다. 프로그램 진행을 맡은 권동연 강사는 국립고궁박물관과 대한민국역사박물관, 국립한글박물관 등에서 다양한 교육프로그램을 개발, 운영하고 있다. <아시아 공예> 프로그램은 공예를 통해 아시아와 더 가깝게 연결되는 시간으로, 아시아 공예에 대한 이론 강의부터 직접 공예품을 만드는 체험으로 구성된다.

  • 권동연 | ACC 아시아 예술체험 강사

    “공예는 단순히 기능적인 측면뿐 아니라 장식적인 측면까지 양면을 모두 조화시켜서 일상생활에 필요한 여러 가지 물건을 만드는 것을 뜻합니다. 당연히 일상생활에서 필요한 물건들을 만들기 때문에 재료와 디자인 등이 그 지역의 환경과 문화를 무척 잘 반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공예품은 단순한 물건이 아니라 그 사회를 엿볼 수 있는 소중한 문화자산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권동연 강사는 아시아의 공예가 그 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이해하는 소중한 통로가 될 수 있다고 강조한다. 동아시아부터 중앙아시아, 남아시아, 서아시아, 동남아시아에 이르기까지 공예품을 들여다보면 그 지역의 시대상과 사회상을 알 수 있다. 유프라테스강을 중심으로 일찍부터 문명이 발달한 서아시아 지역은 강가 주변의 풍부한 흙 점토를 이용한 점토 공예가 발달했다고 한다. 드넓은 초원을 간직한 중앙아시아는 가축과 함께 유목 생활을 했기 때문에 공예품의 재료도 대부분 가축에서 얻었다. 낙타나 염소 등 가축의 털을 이용해서 만든 전통 카펫은 유목민들이 혹독한 환경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던 생활필수품인 동시에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예술품이었다.

바다와 섬이 많은 동남아시아 지역은 배를 이용한 교역이 발달했기 때문에 공예 문화도 풍부하게 꽃피워왔다. 열대 과일 모양을 한 화장품 용기부터 야자수, 대나무, 조개껍질을 이용한 목공예품, 거북이 껍질인 대모로 만든 장신구 등 재료가 풍부한 만큼 공예품도 다채롭다. 그중에서도 조개껍데기에서 추출한 ‘자개’는 동남아시아와 동아시아에 이르기까지 공예 재료로 많은 사랑을 받아왔다. 특히 옻나무가 자생하는 동아시아에서 옻칠 공예와 자개가 결합한 독특한 전통 공예가 바로 우리나라의 ‘나전칠기’ 공예다.

나전칠기는 그 옛날 부의 상징으로 여겨질 만큼 오랜 시간 귀한 대접을 받아왔다. 전복의 안쪽 껍질을 숫돌에 갈아서 약 1mm 정도의 얇은 종잇장처럼 만들어낸 자개와 옻나무 수액을 이용한 옻칠기법이 더해졌으니 그럴 만도 하다. 어릴 적 할머니 집에서 보았을 법한 자개장롱이 대표적인 나전칠기 공예품이다. 자개장롱은 7, 80년대 크게 대중화되었다가 이후 세월이 흐르면서 점차 우리 주변에서 사라져갔다. 하지만 최근 들어 외국인이 좋아하는 한국 공예품 1위이자 독특함을 추구하는 MZ세대 사이에서 인기를 끌면서 새롭게 주목받는 추세다.

  • 권동연 | ACC 아시아 예술체험 강사

    “외국인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 따르자면 한국에 왔을 때 봤던 공예품 중 가장 마음에 드는 걸 물었을 때 1등이 바로 ‘나전칠기’였다고 해요. 굉장히 완성도가 있고 미적으로도 정말 아름다운 작품인데 어느 순간 생활환경이 바뀌면서 나전칠기가 점점 사라져가는 추세라서 무척 안타까워요. 이번 수업을 통해서 사라져가는 우리 전통 나전칠기에 관한 관심을 갖게 하고, 기억하고 되살펴 볼 수 있게 하는 그런 시간이 되면 좋겠습니다.”

영롱하고 화려한 빛깔의 나만의 자개함 만들기

점점 사라져가는 전통 나전칠기 공예로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나만의 자개함을 만들어보는 <ACC 아시아 예술체험-아시아 공예> 시간. 무지갯빛 같기도, 깊은 바다색 같기도 한 영롱한 자개 조각이 어떤 특별한 작품으로 탄생할까. 줄음질, 끊음질, 타발법, 할패법 등 나전칠기 기법부터 자세한 만들기 방법에 대한 설명이 이어진다. 강사의 안내에 따라 원하는 문양을 미리 밑그림하고 천천히 완성해가는 손길에 진지함과 섬세함이 가득하다. 장인 못지않은 집중력으로 1시간 남짓 정성 들여 만든 작품이 완성되는 순간. 감탄이 절로 나온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하나하나 다른 빛깔을 간직한 자개 조각이 함께 어우러지니 더없이 아름답고 화려하다. 나만의 소중한 작품을 완성해 낸 참가자들의 얼굴에도 기쁨과 뿌듯함이 스며든다. 나전칠기 공예가 낡고 촌스러운 옛것이 아니라 지금 시대에도 여전히 사랑받는 소중한 우리 문화자산임을 확인하는 시간이다.

  • 홍수현 | 아시아 공예 참가자. 광주 광산구

    “저번부터 공예 프로그램에 참여해 보고 싶었는데 선착순 마감이 빨리 돼서 이번에 운 좋게 신청해서 참여하게 됐어요. 나전칠기 자개 공예는 처음으로 접해보는 건데 정말 새로운 경험이 된 것 같아요. 만드는 과정이 쉽지는 않았는데 정성 들여서 만든 만큼 오래 간직하면서 잘 사용할 것 같습니다.”

  • 정미영 | 아시아 공예 참가자. 광주 광산구

    “옛날에는 자개장롱을 많이 봤는데 요즘은 보기가 어려워졌잖아요. 옛날 조상 때부터 내려오던 전통 공예를 새롭게 배울 수 있어서 좋았고 특히 젊은 사람들이 전통 공예를 접할 수 있는 시간이라 참 좋은 것 같아요. 오늘 만든 자개함은 저희 아이에게 선물로 주려고요.”

인장 문화를 통해 아시아를 이해하는 시간

<ACC 아시아 예술체험>의 또 다른 강좌인 <아시아를 새기다>는 아시아의 다양한 인장(印章) 문화를 주제로 저녁 시간에 진행됐다. 다양한 시간대에 강좌를 열어 더 많은 사람을 초대하기 위해서다. 아시아 문명 속에서 인장이 어떻게 발전해 왔는지, 전통 인장은 어떤 형태를 띠고 있는지, 그 시대 사람들의 삶의 모습은 어떠했는지 강사의 설명이 더해질수록 몰랐던 아시아의 인장 역사가 새롭게 다가온다.

공예품처럼 인장 역시 시대와 환경에 따라 서로 다른 독특한 모습으로 발달해왔다. 티그리스강과 유프라테스강을 끼고 있던 메소포타미아 문명에서는 점토판에 찍을 수 있는 원통형 인장을 사용했고 사후세계를 믿었던 이집트문명에서는 미라의 가슴 위에 영혼 불멸과 재생의 상징인 쇠똥구리 모양의 스카라베 인장을 올려놓았다고 한다. 황하문명에서는 대나무를 쪼개 만든 책을 봉인할 때 진흙에 인장을 눌러찍은 ‘봉니’가 있었으며, 이후 다양한 재료와 형태의 인장 문화가 발달했다. 특히 왕은 ‘거북이’ 문양의 인장을 사용하고 황제만이 ‘용’ 문양을 사용할 수 있었다고 한다. 때문에, 대한제국 고종 황제의 ‘용’ 문양 인장에서는 황제의 권위와 함께 고종이 대한제국을 설립하면서 품었던 자주 국가에 대한 의지도 엿볼 수 있다.

왕과 황제의 권위를 상징했던 인장처럼 나만의 고유함을 상징하는 인장을 직접 만들어보는 시간. 양각과 음각, 주문과 백문 등 인장 만들기에 대한 간단한 설명을 들은 뒤 드디어 조각칼을 잡는다. 칼로 돌을 파서 이름을 새기는 과정이 생각보다 수월하지 않다. 적잖이 정교함과 기술이 요구되는 작업이기에 강사님과 보조 강사님들의 도움은 필수다. 행여 다른 곳을 파게 됐을 때는 재빨리 손을 들어 도움을 청해야 한다. 한 자 한 자 나의 이름을 새겨가는 동안 아무런 잡념 없이 오롯이 집중하는 순간에 빠져들기도 한다. 쉽지 않은 작업이기에 나만의 도장을 완성했을 때의 뿌듯함도 크다.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나의 인장이 앞으로 삶의 어떤 순간에 어떤 기억을 새기게 될까. <아시아의 공예>와 <아시아를 새기다> 프로그램을 통해 두고두고 간직할 귀한 선물을 받은 느낌이다.

  • 정명숙 | <아시아를 새기다> 참가자. 광주 서구

    “오늘 우리 딸이랑 같이 와서 참여했는데 인장의 역사도 배우고 직접 만들기도 하고 정말 알찬 시간이었어요. 집에 인감도장도 있고 다른 도장이 여러 개 있는데 그건 다 그냥 기계로 찍어낸 거잖아요. 오늘 만든 도장은 정말 오랫동안 소중하게 간직하면서 잘 사용할 것 같아요.”

  • 딜란 | <아시아를 새기다> 참가자. 전남대 유학생

    “도장을 한 번도 사용해 본 적이 없는데 오늘 직접 제 손으로 제 도장을 만들게 돼서 너무 뿌듯하고 재밌었어요. 앞으로 제 이름을 써야 할 때 도장을 많이 찍어보고 싶어요.”

by
유연희 (heyjeje@naver.com)
Photo
디자인아이엠 포토그래퍼 송기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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