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식탁’ 위엔 어떤 ‘기억’이 차려져 있나요?

ACC 창·제작공연 <속삭임의 식탁> <파인 다이닝> 연출가 인터뷰

혼밥의 섬, ‘혼밥래도’에 당신을 초대합니다!
<속삭임의 식탁>

<속삭임의 식탁>은 혼자서 밥을 먹는 사람, 일명 ‘혼밥러’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사람들과 함께하는 식사도 즐겁지만, 때로는 먹을 때만큼은 아무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싶을 때가 있다. 오로지 먹는 행위에 집중하다 보면, 깊은 나의 내면과 만난다.

<속삭임의 식탁> 연출가는 복잡한 인간관계에 시달리는 현대사회에서 ‘혼밥’은 ‘자신을 채우는 과정’이라고 말한다.

유선후 연출가에게 <속삭임의 식탁> 작품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보자.

<속삭임의 식탁> 유선후 연출가 인터뷰

  • <속삭임의 식탁>에 대해 짧게 소개해 주세요.

    혼밥을 즐겨 먹는 혼밥러가 어느 날 ‘혼밥래도’라는 판타지 섬으로 여행을 떠나는 혼행기를 그린 무용극입니다.

  • 에피소드는 어떻게 발굴하셨나요?

    저는 ‘식탁’ 하면 ‘음식’보다는, 혼자만의 시간을 담아내는 ‘공간’이라는 생각이 먼저 듭니다. ‘식탁과 기억’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ACC와 함께 연구하며 고민하는 과정에서 ‘혼밥’이라는 현대 사회적 현상에 주목하게 되었고, “왜 혼밥을 즐기는 시대가 되었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현대인이 스스로 사회 속에서 자신을 채우는 시간 중 하나인 ‘혼자의 식탁’이라는 소재와 함께 떠나는 판타지 혼행기를 만들면 어떨까 하는 상상으로 이 에피소드가 시작되었습니다.

  • 공연은 어떤 과정을 거쳐 탄생했나요?

    2023년, ACC의 ‘식탁과 기억’을 주제로 하는 「아시아콘텐츠 공연개발 연출가 선정 사업」에 연출가로 선정된 후, ACC와 함께 연구 과정을 거쳐 약 30분간의 쇼케이스(2023)로 처음 공연을 올렸습니다. 쇼케이스는 오직 분위기와 이미지로만 그 흐름을 전달했다면, 올해 본 공연은 배우들이 새롭게 들어와서 무용수와 호흡을 맞추며, 드라마와 흥미로운 극적 요소들을 표현하였고, 60분 간의 무용극으로 완성되어 새롭게 선보일 예정입니다.

  • ACC 아시아콘텐츠 개발사업에 창작자로 선정되어, 지금까지 창작작업을 이어오면서 느낀 점은 무엇인가요?

    ACC와 함께 작품을 창작하면서, 이런 좋은 기회들이 많은 무용 예술가에게 주어져서 더 좋은 환경 속에서 각 분야의 전문가들과의 체계적인 연구 과정을 통해, 고민되는 지점을 하나씩 해결해 나가는 과정을 겪으며 작업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저 역시 안무가와 무용수로 활동하고 있지만, 창작의 시간 속에는 좌절하는 시간이 존재하는데 그 고통을 체계적으로 나눌 기회가 주어진 것임에 감사함을 느끼는 과정이었습니다.

  • 「ACC 아시아 콘텐츠 공연개발」 사업 주제가 ‘식탁과 기억’인데, ‘식탁’의 어떤 특성에 주목했나요?

    ‘사회 속에서 나는 어떤 식탁에 앉고 싶은지, 어떤 장소 어떤 식탁에서 어느 곳을 바라보고 식사를 하고 싶은지, 식탁에서 나는 매일 누구와 만나고 있는지 혹은 할 수밖에 없는지’ 등 식탁은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죠. 식탁은 내 마음을 닮은 가장 맛있고 소중한 장소이고, ‘거울처럼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저장고’ 같다는 점에 주목했습니다. 핵 개인주의 시대에 사는 우리가 스스로 ‘혼자의 온전한 채워짐’을 갈망하는 인간의 본능적인 ‘고독’이라는 정서가 ‘혼밥’을 즐기는 시대로 만들지 않았나 생각했습니다.

  • ‘식탁’이란 주제의 어떤 점에 끌려서, 본 사업에 참여하게 되었는지요? 1년여 간의 작업을 통해 ‘식탁’은 어떤 존재, 사물로 기억하게 되었나요?

    처음에는 단순히 ‘식탁’ 위에 홀로 앉아 있는 에드워드 호퍼(Edward Hopper)의 작품 이미지들이 떠올라서 인간의 ‘고독’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이 사업에 참여했어요. 1년간의 작업을 거치면서 식탁은 정말로 제 삶을 여러 가지로 기록하고 담고 있는 저장고라는 생각과 함께, 식탁 위에서 우리는 스스로 많은 것을 채우기도 하지만, 사람들과 나누기도 한다는 점에, 새로운 이야기가 많이 나올 수 있는 아주 좋은 콘텐츠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 이 공연을 통해서 관객에게 어떤 이야기를 전달하고 싶나요?

    “당신은 혼밥을 좋아하나요? 저는 극 I 성향에 많은 사람들과의 시간 속에서 에너지가 소진되고 힘들어하는 성향이라, 식사할 때만이라도 조금 더 내 마음에 쉼을 주고 싶어서 ‘혼밥’을 선택하는 혼밥러입니다. 당신도 그런가요? 당신은 혼자 있는 시간을 어떻게 즐기고 계신가요?” ‘혼밥이 좋다, 나쁘다’ 혹은 ‘혼밥이 필요한가’라는 교훈적이거나 사회적인 메시지를 던지는 것이 아니라, 대화의 시작으로 첫 질문을 던지는 거죠. 마치 “식사하셨나요?”라는 안부의 인사의 첫 대화처럼요.

내 아버지와 경양식 돈가스, 밀려나고 사라져가는 것들에 대한
바람직한 애도, 그리고 헌사
<파인 다이닝>

<파인 다이닝>은 경양식 요리사였던 아버지의 삶과 노동을 되짚어보는 것으로, 그의 ‘식탁과 기억’을 공연으로 펼쳐낸다. 김미란 연출가에게 ‘식탁’은 어떤 의미일까? 그의 작품 제작기를 들어보자.

<파인 다이닝> 김미란 연출가 인터뷰

  • <파인 다이닝>에 대해 짧게 소개해 주세요.

    파인 다이닝은 ‘식탁과 기억’이라는 주제를 보고, 아버지의 경양식 요리사 시절 이야기를 하고 싶다는 생각에서 시작된 작품입니다. 제가 기억하는 아버지는 오랜 시간 동안 요리 노동을 성실하게 해오셨는데, 빠르게 변해가는 사회 분위기에 편승하지 못하고 밀려나야만 했습니다. 저는 ‘돈가스’를 보면 아버지 ‘김영학’을 떠올립니다. 그 음식 안에는 아버지의 30년 노동과 삶, 그리고 가족들의 시간이 들어있기 때문입니다. 한 세대를 잘 살아갔고, 잘 살아내고 있는 아버지, 어머니, 나, 그리고 우리를 마주하는 작품입니다.

  • 공연에 아버지의 이야기를 담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IMF 외환위기와 함께 찾아온 식문화의 변동은 아버지의 일에 큰 변화를 주었습니다. 그 모든 과정을 바라보며 딸로서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러던 중 ACC 아시아 콘텐츠 공연 개발의 주제를 보고 ‘이거다!’ 싶었죠. 돈가스라는 음식에 담긴 아버지의 삶과 노동을 공연이라는 방식으로 기억하고, 나누고 싶었습니다.

  • ‘식탁’이란 주제의 어떤 점에 끌려서, 본 사업에 참여하게 되었는지요?

    ‘식탁’이 많은 의미로 작용하기도 하지만 ‘기억’이 함께 배치되며 ‘아버지의 경양식 돈가스’가 단번에 떠올랐습니다. 그리고 언젠가는 음식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싶다는 생각을 막연하게 하던 중이었습니다. 이번 주제를 다루면서 아버지가 다시 돈가스를 튀길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흥미로운 상상들로 즐겁게 기꺼이 사업 참여를 결심했습니다.

  • 1년여 간의 작업을 통해 ‘식탁’은 어떤 존재, 사물로 기억하게 되었나요?

    1년간의 연구, 창작, 희곡 발굴, 공연 개발 과정으로 작품이 다양한 모습으로 변화하며 성장해 왔습니다. 잘 안다고 생각했던 돈가스는 일제강점기 시절에 들어와 많은 역사를 품고 있는 음식이었고, 아버지를 인터뷰하며 발견된 아버지의 ‘노동 이동사’에는 가족에 대한 책임감과 요리에 대한 진심이 담겨 있었습니다. 시범 공연을 거쳐 본 공연으로 개발하는 과정에서 실제의 이야기를 기반으로 창작이 가미되어 대본이 수정되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아버지의 노동을 목도 해 온 어머니와 딸(연출가 본인)의 이야기를 다루며 노동에 대한 고민으로 문제의식이 확장되었습니다. 이 작업을 통해서 ‘식탁’은 다양한 욕망과 개인의 이야기가 함축된 시간의 조각들을 품고 있는 공간으로서의 사물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 ACC 아시아콘텐츠 개발사업에 창작자로 선정되어, 지금까지 창작작업을 이어오면서 느낀 점은 무엇인가요?

    선정이 된 후, 아버지가 대장암이 발견되어 조직 검사를 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그때부터 어떻게 아버지의 이야기를 마주해야 개인이자 창작자로 진솔할 수 있을까 고민을 많이 하게 되었습니다. 아버지와 인터뷰하는 날, 집에 돌아가면서 이 작업을 하게 된 것에 감사함을 느꼈어요. 어쩌면 아버지가 돌아가시는 순간, 그렇게 성실하게 살았던 요리사로서의 삶과 경양식 돈가스는 그에 대한 기억에서 없었던 일처럼 사라졌을 거예요. 저와 아버지, 어머니가 기억하고, 본 것들을 공연이라는 방식으로 나누고, 기억할 수 있어서 감사함을 느낍니다.

  • 이 공연을 통해서 관객에게 전달하고 싶은 이야기는 무엇인가요?

    한 개인의 삶을 들여다보는 것이 하나의 역사를 새로이 발견하고 기록하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특별한 영웅들의 이야기보다는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경험과 기억을 끄집어내어 공연을 만드는 작업을 좋아합니다. 한 세대를 성실히 살아온 아버지 ‘김영학’의 이야기를 통해 노동의 관점에서 부단히 노력하며 살아왔음을 인정하고 존중하고자 함을 나누고 싶습니다. 또한 자신을 주변부에 위치시키며 오랜 시간 자신을 잃어버렸던 어머니 ‘박경연’과 지금도 열심히 달리고 있을 많은 분에게 삶을 지속할 수 있는 많은 질문이 생겨나길 바랍니다.

 

글을 마무리하며, 어쩐지 ‘혼밥’으로 ‘돈가스’를 먹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해진다. 무용극 <속삭임의 식탁>은 6월 21일(금)~22일(토)에, 연극 <파인 다이닝>은 6월 28일(금)~29일(토)에 만나볼 수 있다.

by
소나영 (nayeongso@daum.net)
Photo
ACC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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