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C 5월의 레퍼토리 <나는 광주에 없었다>
우리가 사랑했던 것, 헛됨은 없어라

[2020년 5·18광주민주화운동 40주년 기념작]

5월, 그곳에 없었던 나의 애도

나는 5월이 좋다. 길가 누군가의 집 담벼락에 핀 장미도 예쁘고, 연둣빛 짙어지는 초록의 흔들림 사이로 비치는 5월의 햇살이 무료한 일상에 한껏 설렘을 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직업상 광주에 내려와 만난 첫 직장 옆자리 첫 사수는 5월만 되면 몸이 매우 아팠다. 20대 내 젊음은 그의 슬픔이 몸에 미치는 영향을 미처 알지 못했다. 그는 5월의 현장에 있었고, 마지막에 살아 나온 부채감이 원래의 지병에 병을 더하게 했다.

그가 돌아간 나이가 된, 나는 아주 간혹 그의 아픔과 슬픔에 대해 궁금증이 일곤 한다. 나는 518을 잘 모르지만, 사랑하고 존경했던 내 사수의 아픔과 슬픔이 그를 너무도 일찍 하늘나라로 가게 했기에, 늘 이름 짓기 어려운 마음 한편에 부담감을 느꼈다. 알아야 하지 않을까. 선배를 기억하기에, 그의 몸과 마음에 새겨진 그날을 조금은 기억해야 하지 않을까.

<나는 광주에 없었다> 고선웅 연출가와의 인터뷰

2020년 518민주화운동 40주년 기념작 제작 공연 후 리뉴얼을 거쳐 4년 만에 선보이는 <나는 광주에 없었다>의 고선웅 연출가(극공작소 마방진 예술감독, 서울시극단장)를 만났다. 첫 공연의 감정적 여파가 진하게 남아있는 듯, 그의 눈과 언어는 더없이 형형했다.

  • 천윤희

    518 광주민주화운동 이후 많은 시간이 흘렀습니다. 저는 청소년 동반 네 가족이 함께 공연을 보았는데, 4~50대인 저희 부부도 경험치 못한 역사입니다. 518을 경험하지 못한 세대들이 대다수 보는 이 공연, 역사와 예술적 재현 사이, 방점을 어디에 둘지 고민이 많으셨겠습니다.

 

  • 고선웅

    역사적 사실, 비극적인 소재를 현재의 관객과 만나는 일은 조심스럽고 막중한 책임감이 있습니다. 늘 이런 작품을 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본질’입니다. 피상적으로 포장하고 새로운 관점을 내세워, 관객을 애매모호한 상황에 놓지 말고 더욱 선명해야 합니다. 광주항쟁의 본질은 시민이 자발적으로 참여하여 민주주의의 복원을 외쳤다는 점입니다. 광주에서 있었던 사실, 즉 1980년 5월, 10일 간의 기록을 연극이라는 장르로 잘 보여주고 싶었고 사실에 충실하되, 동어 반복이어서는 안 되겠기에 우리는 시민들이 저항하고 그렇게 반응할 수밖에 없었던 당시 상황과 마음을 담백하게 담고자 했습니다.

 

  • 천윤희

    4년 전 첫 공연과 지금 달라진 점은 무엇일까요?

 

  • 고선웅

    4년 전 당시는 코로나 시국이었고, 입마개로 인한 거리감이 있어 가장 중요한 관객들의 참여에 거리감이 있었습니다. 이번 공연에 4년 전 배우들이 그대로 참여했는데, 그동안 배우들이 엄청나게 성장했습니다. 그 성장들이 지금의 역할에 녹아들어 보다 안정감이 있어졌고, 배우들이 시민군의 마음을 내면 깊이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가장 큰 변화는 배우들의 눈빛이 달라졌다는 점일 겁니다.

  • 천윤희

    배우와 관객 사이, 무대와 객석의 거리를 좁히고 관객이 연극 안에 참여하게 하는 ‘관객 참여형 공연(Immersive Theater)’으로 만드셨습니다. 공연 속 관객의 역할은 무엇이며, 궁극적으로 관객이 무엇을 경험하기를 원하셨습니까?

 

  • 고선웅

    ‘관객참여’는 이 공연의 대전제였습니다. 10일 간 항쟁의 기록이 동어반복, 주입식이 아니라, 관객이 시민군으로서 느끼고 경험하고 참여할 수 있는 방식으로 기획했습니다. 막연하게 영상과 사진으로 보는 것과, 내 옆으로 뛰어가며 바람을 일으키고 내 옆 사람 때리는 것을 보면서 내면에 일어나는 감정 기복은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은 분명 연극적인 설정이나, 서서히 달구어지는 마음, 분통 터지고 화나고 그때 그 시절 시민군들 감정에 자연스럽게 이입하면 같은 경험을 하게 되지 않을까를 상상했습니다.

    광주라고 하는 곳에서 이런 아픔이 있었고 고통 속에서 꿋꿋하게 버텼다는 것을 경험하는 효과가 있는 현장 연극, 체험 연극으로 구상하였고 관객이 연극적 상황으로나마 그 감정을 경험한다면, 기억은 보다 오래갈 겁니다. 518 광주민주화운동은 우리의 생각보다 훨씬 민주주의의 뿌리로서 미친 영향이 큽니다. 이 작품이 여전히 계속되고 있는 518 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한 왜곡된 시각을 바로 잡고 진실을 전달함으로써 1980년 5월의 광주를 겪은 세대와 그렇지 못한 현세대를 잇는데 큰 힘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 천윤희

    첫날 공연을 보았는데 극 중 518 당시 분수대 광장 국민대성회(시국토론회)를 연상시키는 장면에서, 관객의 발언을 끌어내셨는데요. 65세 518을 직접 경험한 어르신의 발언이 더 없이 극적이어서, 모두가 숭고함을 느꼈던 것 같아요. 이분의 발언은 순전한 우연이었는지요?

 

  • 고선웅

    계획된 것이 아니어서, 저도 더없이 감동하였습니다. 그분이 자신은 당시의 기억을 떠올리고 싶지 않은데, 딸이 공연 표를 예매해 줘서 올까 말까 엄청난 고민 끝에 결국 극장에 들어오셨다고 하셨는데 그 고민하는 마음에 일었을 감정적 격동이 느껴져 마음 아프고, 더욱 감사했습니다. 공연을 보시면서 당시의 기억이 떠올리며 마음 아프고 또 분노하고, 그날의 나와 현재의 내가 마주하는 감정적 경험을 하신 듯합니다. 그것이 이 공연의 의미이겠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어르신이 마지막에 이 공연이 더 없이 사실적이었다고 느끼고, 고마움을 표하신 듯합니다.

  • 천윤희

    죽은 자의 장례식에서 계속 눈물 훔치는 배우들을 가까이서 보았습니다. 깊이 몰입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는데요. 518이라는 소재로 만들어지는 이 공연에 참여하는 제작진과 배우들의 책임감이랄까. 많은 부담도 있었을 것 같습니다. 어떻게 준비해 오셨는지요.

 

  • 고선웅

    작가와 오랜 시간 많은 토론을 했습니다. 배우들과 518과 관련된 장소들도 답사하고 자료도 많이 찾아보고 전문가 조언도 받았습니다. 구호 외치고 구타하는 장면의 재현들이 많을 수밖에 없는데, 어떻게 하면 구성안에서 가장 효과적으로 광주를 보여줄 수 있을까 고민했습니다. 연극적인 흥미를 잃지 않으면서 지속적 호흡을 끌어 나갈 수 있도록 음악, 춤, 오브제, 무대 디자인 등 과감한 방식들을 찾고자 했습니다.

    당시 너무 젊은 사람들, 어린 사람들이 죽음을 받아들였기에 더욱 마음 아픕니다. 도청에서 최후의 항전은 대단한 용기와 기백이고 사명감과 의리였습니다. 나는 못할 것 같은데, 더 어렸던 그분들이 해냈지요.

    우리는 518의 정신과 의미, 동시에 연극과 연극인으로서의 본질을 생각하고자 했습니다. 그렇기에 배우들이 감정적으로 시민군의 마음에 깊이 이입되어 있으나, 스스로가 배우로서 긴장감과 고조된 마음을 다잡는 일이 중요했습니다. 무대에서 샤우팅 장면이나 뛰고 넘어지는 장면이 많아 위험하지만, 안전과 체력 관리도 배우로서는 무대에 대한 책임감이 있기에, 이 또한 많은 주의를 기울여야 했습니다. 이 공연에 임함에 있어 가장 강조한 것은 “딛고 일어서야 한다”입니다. 감정을 딛고 일어서서 춤추는 배우로서 기본적인 태도와 사명감이 중요합니다. 몸을 사리지 않고 최선을 다한 모든 멤버들이 굉장히 자랑스럽습니다.

  • 천윤희

    개인적으로, 총소리나 분노의 함성, 죽음이 오가는 장면을 춤이나 군무로 즉 ‘소리 없는 움직임의 힘, 혹은 침묵’으로 표현한 연출이 인상적이었습니다.

 

  • 고선웅

    탁월한 안무와 훌륭한 무용수가 있어 가능했습니다. 그분들께 감사합니다. 연극은 연극답게 해야 합니다. 그래서 전남대 정문 앞에서 계엄군들과 맞서 밀고 나서는 그 처절한 상황을 ‘소리 없는 함성과 춤’으로 표현했습니다. 거기서 그냥 소리쳐 외치면 연극은 훅 지치게 되는데, 말이 없으니 관객들은 도리어 소리쳤구나 상상할 수 있습니다. 넌버벌 형식을 차용해서 표현하여, 관객의 숨 쉴 틈을 주고자 했습니다. 정보와 사실만 주입하면, 관객은 시선을 돌리게 됩니다. 연극은 그렇게 이성적인 상태에서 거리를 두고 보아도 이완과 동화가 일어날 수 있습니다. 연출은 이를 효과적으로 안배하는 것입니다.

  • 천윤희

    장면 중에 시위 현장에서 ‘남행열차 노래’와 ‘비 내리는 호남선’ 떼창과 한껏 오른 분위기가 모순되면서도, 실제 그랬을 것 같다는 생각이 동시에 들었습니다. 이것 역시 연극적 요소인가요? 관객들이 다 참여해서 자신이 앉은 의자로 바리케이드를 쌓고 함께 강강술래 하듯 돌면서 행진에 참여하는 장면도 기억에 많이 남습니다.

 

  • 고선웅

    사람이 낙담만 해서는 못살지요. 낙담이 있을 때 춤과 노래, 해맑은 여흥 장면이 더욱 필요하다고 봅니다. 극단의 상황으로 갔을 때 희로애락의 사이클이 보이니까 몰입하게 됩니다. 쉬지도 않고 힘들어 보이면 관객들은 딴생각에 빠지게 됩니다. 즐기기도 해야지요. 연극은 그런 것입니다. 황영희 씨를 비롯하여 배우들이 관객들의 흥을 잘 돋우어 주었습니다.

    시민들이 행군해서 금남로를 거쳐 도청으로 가는 가두 시위 장면은 극장에서 이를 어떻게 표현할지 고민했던 지점입니다. 관객들이 5월 그 현장에 있는 듯, 적극적으로 참여해 주셔서 감사했습니다. 일순간 극장이 아닌 그날의 현장 같은 열기가 느껴졌습니다.

  • 천윤희

    이 공연을 보는 관객들이 꼭 기억했으면 하는 장면이나 대사가 있다면 말씀 부탁드려요.

 

  • 고선웅

    아무래도 도청에서 최후를 맞이한 마지막 유언입니다. 우리 홍보물에도 있듯이 “우리가 사랑했던 것, 헛됨은 없어라” 이정연 열사의 일기에서 발췌한 이 문장이 모든 것을 표현했다고 봅니다. 개인적으로 가장 아끼는 장면은 마지막 아이와 망자들의 ‘위령’ 장면입니다. 아이가 나이 들어 할머니가 되기까지 망자들과 대화하는 수십 년 세월의 흐름을 타임랩스처럼 툭툭 뛰어넘어 가는 것이 무엇보다 연극적이고, 또한 그 아이의 대사는 극 중 가장 중요한 의미를 주고 있습니다. 시민군들, 자신을 기억해 달라는 듯 아이를 바라보는 가운데 위령의 초가 밝혀집니다. 참여한 모든 관객도 촛불을 켜고 위령의 초를 올리며 퇴장하는 것으로 마무리되는 장면입니다.

  • 천윤희

    518의 역사적 사실을 지켜가면서, 예술적 창작으로서 연극의 본질에 대한 연출님의 치열한 모색이 느껴지는 작품이었습니다. 마지막으로 518이 어떻게 기억되길 바라시는지요.

 

  • 고선웅

    장엄한 서사에 짓눌리곤 했지만, 우리는 ‘딛고 일어서야 한다.’ 연극 내내 강조한 바 있습니다. ‘연극’ 그 자체를 깊이 고민하면서도 내내 이 처절한 경험을 승화하는 방식들과 그 부담과 슬픔을 내려놓아야 하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518 광주민주화운동은 궁극적으로 승리의 역사로 518이 민주주의에 미친 큰 영향들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역사는 후대가 평가하기에, 지금 우리는 비극의 서사를, 승리의 서사로 극복 해가야 할 때가 되지 않았나 합니다. 예술이 가진 힘으로, 주제나 내용적 승화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딛고 일어서서, 슬픔과 분노를 딛고 일어서서 말입니다.

연극은 끝나고, 다시 현실로

휘몰아치듯 공연이 끝났다. 시간이 흐를수록, 뒷자리에 구경꾼처럼 앉아 있던 아이가 자꾸 아빠 손을 잡고 앞으로 나아가길 원했다. 연극이 진행되는 동안, 우리와 같이 시민군 틈에 나아가는 이들이 늘어났다. 안전한 공연을 위해 일련의 참여를 저지했다. 연극과 현실이 순간 혼돈된다. 공연이 끝나고, 너무 아쉬워 공연을 다시 한번 보고자 했으나, 4일 간의 공연은 모두 이미 매진되었다고 했다. 연극적 상황에서 몰입했던 그 감정, 느낌, 애도와 추모를 좀 더 깊이 우려내고 기억하고 싶었다.

극장 문을 나서면 다시 2024년, 우연적인 하나의 공동체가 되었던 관객들은 개개인의 일상으로 돌아가고, 518의 기억은 다시 가뭇해질 것이다. 그래도 5월이 되면, 내가 존경한 선배를 나의 방식으로 기억하고 애도하듯, 한 편의 공연이 다음 세대들에게 그렇게 해줄 수 있으면 좋겠다. 다행히도,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이 5월의 공연으로 매년 지속화하는 계획이 있다고 한다. 5월, 누구라도 광주에 오면, 오늘의 내가, 그날을 만날 수 있는 바로 그 시간과 공간을 만들어주는 공연 <나는 광주에 없었다>가 되었으면 한다. 잊어버릴 것 같으면 기억의 길을 찾아갈 수 있도록, 그곳에 한결같이 있기를 바란다.

by
천윤희 (uni94@hanmail.net)
Photo
ACC 제공, 디자인아이엠 포토그래퍼 송기호
공감 링크복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