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행위예술의 선구자, 이건용의 ‘신체 드로잉’

신체-장소-관계에 대한 탐구

이건용(1942년 출생) 작가는 1970년대부터 설치, 퍼포먼스, 신체 드로잉 작업으로 자신만의 방법론을 통해 새로운 실험예술을 보여준 한국 행위예술의 선구자이다. 특히 1970년대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던 AG(한국아방가르드협회)의 구성원이었고, ST(Space & Time) 그룹의 창립멤버로도 잘 알려져 있다. 최근 몇 년간 회화 작업으로 다시 주목받으며 재조명되고 있는 이건용 작가에 대해 ACC아카이브 컬렉션 자료와 함께 살펴본다.

어린 시절부터 미술가가 되기까지

이건용은 목사 아버지와 간호사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초등학교 시절부터 미술가를 꿈꿨다. 아버지의 영향으로 책이 넘쳐나던 집에서 어린 시절부터 수많은 책을 읽었다. 중학교 때부터 이미 대사관과 문화원을 뒤져 선진 문화를 이미 습득했던 그는 예술이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과 함께, 항상 ‘새로움’에 대한 갈증을 가지고 있었다.

어머니는 의사가 되기를 바랐지만, 그는 1963년 홍대 미대에 입학하게 된다. 앵포르멜이 유행하던 당시 그의 눈에는 그것이 재미없게 느껴졌고, 그는 새로운 미술, 전위적 미술에 큰 관심을 가졌다. 밤마다 대학 도서관에서 해외미술서적을 읽으며, 대학 시절부터 확고한 자신만의 노선을 가지게 된다.

이건용 인화 사진
*전시를 배경으로 촬영한 이건용의 인화 사진(1989년 나우갤러리에서 진행된 개인전 당시의 사진으로 추정)이다.
출처 [ACC 아카이브 컬렉션 1960-1970년대 한국의 행위예술 : 이건용 자료]

<신체항> : 미술 밖에서 미술을 바라보자

그의 출세작이라고 할 수 있는 <신체항>은 1971년 경복궁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처음 선보인 작품으로 뚝섬에 놀러 갔다가 공사장에서 느티나무가 뿌리째 뽑혀있는 것을 발견하고 그것을 전시장에 옮겨 놓았다. 나무의 하단부와 뿌리만을 남겨둔 채로 1000x1000x1500cm의 크기로 현장의 흙을 파서 채워놓고 이것을 전시장 바닥에 세워두었다.

미술을 미술 안에서만 보는 것이 아니라 미술 바깥에서 풀어보고자 한 것이다. 그는 미술가로서 무엇을 만들어서 조각대 위에 올려놓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전시장 안에 바깥에 있어야 할 자연의 현상을 그대로 갖다 놓음으로써 예술의 개념을 확장시키고자 했다고 말한다. 이후 1973년 제8회 파리비엔날레에 한국 대표로 참여하게 된다.

좌) <신체항> 전시 사진(한국미술협회전, 1971, 국립현대미술관(경복궁))
우) <신체항> 전시 사진(제8회 파리비엔날레, 1973, 파리시립미술관)
출처 [ACC 아카이브 컬렉션 1960-1970년대 한국의 행위예술 : 이건용 자료]

그는 파리비엔날레에 참여하면서, 부대프로그램이었던 장 자크 레베크(Jean-Jacques Lévêque)의 퍼포먼스를 보고 큰 충격을 받게 된다. 쌀, 동물의 뼈와 같은 것들이 등장하는 샤먼적인 퍼포먼스였는데, 실제로 살아있는 망아지가 등장했다. 망아지 흉내를 내는 것이 아니라 진짜 살아있는 망아지가 예술의 매체가 되는 것을 보면서, 예술매체로서의 신체성에 대한 가능성을 엿보게 된 것이다.

그는 그동안 ‘작가는 항상 돌, 흙, 나무 등 대상화된 사물을 매체로 쓸 뿐, 자기 자신을 매체로 쓸 수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지 못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는 이때를 계기로 자신의 작업에서 신체를 매체로 삼는 행위예술을 시작하게 된다.

“파리비엔날레에 참석하면서,
작가의 몸 자체, 작가 자체가 미술의 미디어가 될 수 있다.
이제 그것을 절실하게 깨닫고 오게 되는 과정이었죠.”

- 이건용 -

<장소의 논리> : 저기, 여기, 거기, 어디

백묵으로 자신이 서 있는 둘레를 원으로 그린다. 그리고 원 밖을 가리키며 ‘저기’, 원안을 가리키며 ‘여기’, 그리고 그 원을 나와서 뒤에 있는 원을 가리키며 ‘거기’라고 외친다. 그리고 그가 그린 원을 돌면서 ‘어디, 어디, 어디, 어디, 어디’라고 반복적으로 외치고 군중들 사이로 사라진다.

<장소의 논리>는 1975년 《AG》전에서 벌인 이벤트로, 신체의 움직임에 따라 장소의 명칭이 변화하는 것에 주목하게 하고 신체와 장소의 관계를 새롭게 인식하도록 하는 작업이다.

<장소의 논리> 기록 사진(1975, 홍익대학교)
출처 [ACC 아카이브 컬렉션 1960-1970년대 한국의 행위예술 : 이건용 자료]

<신체 드로잉> : 제한된 조건에서 만들어지는 신체의 흔적

그의 <신체 드로잉> 연작은 ‘그린다는 행위’를 ‘신체’와 연결하고자 한 작업이다. 다른 작업과는 다르게 이 작품은 이벤트 자체로 사라져 버리는 것이 아니라 캔버스 위에 그림이 그려진다. 그는 캔버스 앞에서 그림을 그리는 전통적인 방식이 아닌, 예를 들어 그림을 그릴 때 다음과 같은 신체를 제한하는 설정을 한다.

‘화면 뒤에서 / 화면 앞에서(화면을 등지고) / 옆으로 서서
팔에 깁스를 하고 / 다리 사이로 / 양팔로 / 어깨를 축으로’

자신이 설정한 신체의 제한에 따라 움직이는 팔의 궤적이 화면을 구성한다. 제한된 조건에서 신체의 흔적을 만들어 내는 독특한 조형 언어를 통해 신체가 평면을 지각해 나가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신체드로잉 76-2> 기록 사진 출처 [ACC 아카이브 컬렉션 1960-1970년대 한국의 행위예술 : 이건용 자료]

<달팽이 걸음> : 그리는 동시에 지워나가는 신체

1979년에 상파울루 비엔날레에서 처음 선보인 <달팽이 걸음>은 달팽이의 느린 걸음 안에서 생명의 선을 만들어 가는 과정을 담는다. 달팽이가 가진 다소 제한된 신체의 스케일에서 생명의 속도와 유연성을 드러내고 있다. 또한 이 작업은 ‘그리는 주체가 그리는 행위와 동시에 그 행위를 무(無)효화시키고 지워가는 과정, 그러한 방법이 뭐가 있을까’ 생각하다가 만들어진 퍼포먼스이다.

그는 쪼그리고 앉아서 자신이 현존하고 있는 바닥에 끝없이 좌우로 선을 그으면서 두 발바닥으로 정말 느린 속도로 움직여 나가며 끊임없이 흔적을 만들어 나간다. ‘그리는 자의 신체’와 ‘그린 것을 밟으면서 지워가는 신체’가 서로 교차하면서 하나의 행위 안에서 만나는 것이다. 선을 끊임없이 그리고 지우는 행위를 통해 ‘회화의 본질’에 대한 탐구를 드러내고 있다.

1970년대 이후부터 그는 ‘신체’와 그 신체에 의한 행위예술이 일어나는 ‘장소’ 그리고 관람객의 ‘관계’를 끊임없이 탐구해 왔다. 자신의 행위예술을 ‘이벤트-로지컬(event-logical)’이라 부르며, ‘사건(이벤트)’에 논리의 영역을 결합했다. 그의 행위예술은 우연히 일어나는 ‘해프닝’이 아니라, 그 작업을 위해 치밀한 분석을 바탕으로 한 것이었다.

현재 80이 넘은 나이에도 동시대 작가로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는 그는 기존의 <신체 드로잉> 연작을 시대의 변화에 따라 재맥락화하고 확장시키는 작업을 하고 있다. 그의 예술에 대한 끊임없는 사유와 대중과 소통하고자 시도는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참고문헌] ACC 아카이브 컬렉션 「1960-1970대 한국의 행위예술 : 이건용 자료」, 구술채록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아시아문화아카이브 보고서 4, 「해프닝과 이벤트 : 1960-70년대 한국의 행위예술」

[작품 이미지 출처] ACC 아카이브 컬렉션 「1960-1970대 한국의 행위예술 : 이건용 자료」




by
소나영 (nayeongso@daum.net)
Photo
ACC 아카이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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