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하기/감각하기-경험의 공동체>

2023 ACC상호작용예술 연구개발 쇼케이스 <인터랙티브아트랩>

가상현실 안에서 만난 전쟁 속 그 사람의 기억

전시장 코너를 돌아 들어가니, 공간 가득 초록의 조명과 함께 벽면의 위아래에 전쟁 이미지가 보인다. 고요한 중에 등고선인지 좌표인지 모를 평면 바닥 위를 헤드셋을 쓰고 걷고 있는 관객이 보인다.

스태프는 먼저 주의 사항을 말해주었다. 그리고 무선 헤드셋을 씌워주었다. 잠시 후 이미지가 바뀌었다. 곧 주변에 둘러보니 나는 자판을 두드리며 글을 쓰고 있는 누군가의 방에 와 있는 듯싶었다. 담배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나는 그 사람의 움직이는 손에 내 손을 일치시켜 동작을 함께 했다. 얼마간 그 사람에게 집중했을까 곧 그 사람의 기억 속으로 연결되었다. 그렇게 나는 한국전쟁 이야기임에도 잘 알지 못했던 경기도 양평 지평리 전쟁의 현장 한가운데로 들어왔다. 전쟁에 참여했으나 잊힌 개개인들 군인, 종군기자, 간호사 등의 기억으로 들어가 그 들의 시점과 시선 속에 놓였다. 총을 쏘는 그의 손 움직임에 내 손을 맞출 때, 기분이 미묘했다. 분명 가상인데도 주저되었다. 그의 생각 속에 내가 있는 듯 그의 이야기가 들린다. 전쟁 속 한겨울 언 땅을 파는 손의 움직임에 맞추었다. 또 다른 그의 경험 안에 들어왔다. 그가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동안, 나도 초소에 앉았다. 전쟁 중에 나만 서 있는 것이 두려워졌다.

누군가의 기억 속에선 이 전쟁이 언제 끝날까 하는 아득함을, 두고 온 이들에 대한 걱정과 근심을, 또한 전쟁 후 돌아갈 나의 꿈에선 잠시의 설렘이 느껴졌다. 전쟁 초소를 따라 걸어보기도 했다. 애니메이션 <나무 심는 사람들>의 전쟁 장면이 연상되는 연필 드로잉의 가상 공간 안에서 나는 구체적으로 움직이며 만져보고 탐색해 볼 수 있었다. 다만 입체감, 촉감, 냄새는 없다.

개인의 아카이브와 인터뷰 기반 가상현실 속 상호작용예술 경험 창조

이번 레버러토리 B(대표 권하윤)의 작품 <잊어버린 전쟁>은 경기도 양평 지평리 전쟁에 다수 참전했던 프랑스 군인들이 기증했던 사진, 영상 등 개인 아카이브와 인터뷰를 기반으로 출발하여, 예술적 상상력으로 재구성되고 3D 애니메이션으로 재해석했다.

이 작품은 기록에서 출발하지만, 개개인의 기억, 추억 등을 재구성하여, 기억과 기록의 경계, 가상과 현실의 경계를 넘어 내 몸을 이용하여 가상 인물에 접촉하여 그의 감정에 접촉하게 된다. 특히 지평리 전투는 막대한 유엔군과 중공군이 싸우면서 양측 모두 유엔과 엄청난 희생이 있었던 전쟁으로, 이기고 지는 것보다는 미군, 중공군, 한국군, 프랑스군이 국적 지위 떠나서 그곳에서 경험하고 생각한 것들을 그들의 인터뷰 속에서 가져왔다고 한다.

프랑스군들의 자료는 상대적으로 많고 잘 보존된 편이나, 한국군으로 참전하신 분의 자료는 거의 없었다. 다행히도 북한에서 내려와 마지막으로 돌아가신 한국 분의 인터뷰 자료를 넣을 수 있었다는 후문이다. 가상현실 속 그림체가 연필 드로잉 방식으로 참 아름다워 더 감정을 일으키는 면이 있었다. 지평리 전쟁에 참여했던 미군 중에서 미국 캘리포니아 미술대학 학생이 있었다고 한다. 그 전쟁터에 앉아서 전쟁 장면을 사실적으로 그린 연필 드로잉이 남아 있어서 그 작품을 애니메이션 장면으로 넣었다는 제작 후문이다.

전쟁의 이야기에 정서가 담길 수 있었던 건 이 연필 드로잉의 힘이 컸다는 개인적인 생각이다. 또한, 위치 기반 가상현실에서는 정해진 시점이 없어서 내가 내 몸을 움직이면서 볼 수 있다. 내가 걸어 다니면서, 시점에 따라 다르게 볼 수 있다. 세 명이 동시에 있으면서도 각자의 시점에서 보게 되는 것이다. 작품 경험은 20분여이지만, 이 작품을 만들기 위해 도서, 박물관, 영화관 등 엄청난 자료조사 목록이 있으며, 또 그것을 참여형 위치 기반 가상현실과 멀티 플레이어, 3D 애니메이션, 입체 사운드 등 기술력을 통해 예술 경험을 만들어 내기까지 팀의 뛰어난 기술력과 치열하고 정교한 연구 작업이 느껴졌다.

‘장소와 공동체’를 주제 작가와 시민의 워크숍을 통한 창 제작
<인터랙티브 아트랩>

대형 미디어 캔버스와 기존 명화 이미지에 기반한 강렬한 시청각 효과를 일으키는 대중적인 미디어 전시가 각광받는 가운데, 이번 상호작용에술연구개발 쇼케이스 <기억하기/감각하기-경험의 공동체>는 어떤 방식의 예술 경험을 주는 것일까. VR(가상현실)이라는 기술로 당시 전쟁의 경험도 공감을 일으킬까. ‘지금의 나’와 어떤 방식으로 연결할까, 몰입할 수 있을까. 그리고 예술과 기술의 결합이 어떤 정서를 불러일으킬 수 있을까. 우리는 과연 이 전시를 통해 어떤 공동체를 만날 수 있을까 궁금증이 있었다.

ACC상호작용 예술 연구 개발[인터랙티브 아트랩]은 예술과 첨단 기술의 융합을 연구하고, 독창적인 예술적 실험이 담긴 융복합 콘텐츠를 개발하여, 미래형 예술을 창제작하는 랩 기반 프로젝트이다. 2023년은 다양한 전문가, 작가, 크리에이터들의 협업과 융합에 기반하여 ‘관객의 참여와 교감’을 만들어 내는 융복합예술 콘텐츠를 ‘장소와 공동체’를 주제로 기획하고 연구하여, 창제작 결과물의 쇼케이스를 관객들에게 선보였다. 단지 상호작용 기술 연구에서 나아가 서로 ‘다른 것들 사이의 상호작용’을 화두로 삼아 그 연결과 차이 속에서 서로 반응하고 얽혀있는 경계의 혼종 공간을 ‘예술적 가능성’으로 바라보고 탐구하고자 하였다. 작가들은 두 달여 간 시민연구자들과 함께 워크숍을 진행했다. 시민연구자는 공동 창작자이자, 예술가가 되어, 한 주제로 고민하고 논의하여 작품을 발표하였다.

개개인의 기억 발굴과 병합을 통해 창조된 상상의 공동 공간 <Backyard>

서울 익스프레스(전유진, 홍민기)의 작업 <인 마이 백야드 In My Backyard> 는 창제작 워크숍 <My Backyard: 기억의 발굴>에서 개개인의 기억 조각을 단서처럼 추적하여, 이를 통해 사적인 데이터와 서사가 어떻게 새로운 상상의 공간인 ‘Backyard(뒤뜰)’의 공동의 서사로 확장되는지 탐구하는 창작연구 프로젝트로 진행되었다.

참여 연구자는 개인의 기억을 리서치하고 자신의 과거와 싸워가며, 사적인 공간을 캐냈다. 무의식적으로 가진 소중한 기억들을 각자 찾아내고 연관된 이야기, 텍스트, 이미지, 소리, 데이터와 같이 나만의 데이터셋을 모았다. 이를 게임엔진, 3D 스캐닝 등 여러 기술을 통해 스틸 이미지, 영상, 텍스트, 데이터셋, 사운드 등 다채로운 미디어로 재현, 재해석 되어 공동의 ‘Backyard’로 병합되었다.

인 마이 백야드 영상은 가상현실 엔진 기술을 사용하여, 배경의 공간은 실사 같지만, 물건은 3D 스캐닝 받은 이미지를 혼합하였다. 빨간색 단어는 일종의 가이드가 되어, 개개인의 기억이 공동체 안에 미묘하게 연결되며 영향을 주고받는 듯, 현실 아닌 꿈같은 무의식 세계처럼 보이기도 하다. 전국에서 모인 10여 명의 참여자는 서로 모르지만, 자신의 기억들을 나누면서, 공감대를 형성하고 공공의 작업을 펼쳤다. 10명의 참여자 개개인의 기억을 발굴하는 연구조사 결과물도 전시되었다. 개인적으로 이 시민 참여자의 전시가 인상적이다.

인간과 기계의 상호작용 예술에 대한 탐구

스튜디오 엠버스 703의 작품 <일렉트릭 드림 Electric Dreams>는 필립 K. 딕(영화 ‘블레이드 러너, 1993’의 원작 소설가)의 공상과학 단편 소설 ‘일렉트릭 드림’에서 차용했으며, 그 소설에서 속 인공지능의 말 “인간의 감정은 인간의 가치를 형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에서 시작되었다.

이 내용에서 기인한 질문 “기계도 인간과 같이 꿈을 꾸고 감정을 가지고 예술창작을 할 수 있는지, 인간의 감정과 예술창작을 따라올 수 있는지”에 대한 작가적 해석이 담긴 멀티채널 인터랙티브 작품이다. 8개의 스크린에서 필립 K. 딕의 ‘일렉트릭 드림’에서 상상하는 프롬프트 (명령어, 질문어)를 통해 다양한 이미지들이 생성되고, 그 이미지들은 다시 관람객과 상호작용을 통해 재해석되며 ‘꿈과 인간의 미래’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이 작품은 작가와 시민연구자 10명이 다양한 생성형 AI를 이용한 예술창작을 실험, 코딩, 인터랙티브 프로그래밍 언어를 탐구한 워크숍 결과 작품이다.

나와 타인의 몸으로 느끼는 상호작용과 공동체성

조영주 퍼포먼스 팀(조영주, 김승록, 김지형 외) <살핌운동>은 자녀 양육, 장애인 돌봄, 노년 돌봄 등 일상적인 돌봄 노동 속에 깃든 상호작용, 몸의 소통, 관계 맺기 등에 관한 통찰에 기반한 창제작 퍼포먼스 작품이다.

작가는 안무가, 무용수(신선정, 정재우)와 함께 광주시민 참여자 80명을 모아 ‘서로를 살피는’ 동작연구 워크숍을 총 4회 진행하였다. 부모님, 연인, 발달장애인 보호사, 엄마와 아이 등 커플들이 참여했다. 이들은 서로의 몸을 잡고 지지하며, 돕는 움직임 퍼포먼스를 통해 서로가 위로를 받는 경험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워크숍 이후 전문 심리치료사, 물리치료사, 재활치료사 등이 작가와 함께 동작 연구를 통해 영상을 제작했다.

전시장에 가면, 바닥 매트와 쿠션, 소품 등이 준비되어 있어, 제작된 영상을 보며 관람객은 동작을 직접 참여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관객들은 전당이라는 공동의 공간에서 몸의 움직임을 통해 ‘연결’되는 일시적인 공동체 감각을 경험해 보게 되는 작품이다.

전시를 기획한 장현희 학예연구사는 말했다. “예술을 통해서 같은 것을 느낀다면 이것도 하나의 공동체가 아닐까. 워크샵을 진행하면서 공동체가 무엇일까에 대해 많은 논의가 있었다. 혈연, 지연, 국적을 뛰어넘은 다른 공동체를 생각해 보자. 나와 통할 수 있고 연결될 수 있고, 경험을 함께 소유할 수 있는 유토피아적인 공동체를 상상했다. 그런 맥락에서 전시에 와서 관객들이 몰입하여 교감하는 것이 예술 감상이 가질 수 있는 또 하나의 공동체성이다. 일반적인 지식 전달의 방식과는 다른 융복합예술 창작으로 새로운 공동체와 연결을 고민하고 질문하는 것, 이번 상호작용예술연구의 주된 목적이라고 볼 수 있다.”





by
천윤희 (uni94@hanmail.net)
Photo
디자인아이엠 포토그래퍼 송기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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