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T 페스티벌 2023 - 미래전설

아름다운 디스토피아의 딜레마

영국의 뮤지션이자 배우인 데이비드 보위는 조지 오웰의 소설 《1984》를 읽고 이런 장면을 상상했다.

죽어가는 몇 구의 시체가 끈적끈적한 도로 위에 누워 썩어가고 있다. 붉은 돌연변이 눈이 기아 도시를 내려다본다. 동력이 사라진 도시에는 고양이 크기의 쥐를 빨아들이는 쥐 크기의 벼룩들만이 난무하다. 피플로이드(로봇)들은 초고층 빌딩 중에 가장 높은 곳을 탐하며, 동물도 광물도 아닌 존재로 지구를 점거한다.

암울한 미래도시를 그린 이 장면은 보위가 1974년에 발표한 ‘미래전설(Future Legend)’의 가사 내용이다. 빅브라더의 통제와 감시 속에 저항을 포기하고 완전히 세뇌당하고 마는 인간의 내면을 다룬 소설 《1984》가 어떻게 디스토피아가 되어버린 미래도시, ‘미래전설’로 변주된 걸까?

반세기가 지난 지금, 보위가 상상한 미래 장면은 SF 물 어디에선가 본 듯한 기시감이 든다. 로봇이 지배하는 메마른 세계에서 오로지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주인공의 이야기는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영화의 단골 소재가 아니던가. 그러나 스크린을 통하지 않고 육안으로 휴머노이드를 마주하는 경험을 하고 나면 생각이 달라질지 모른다. 3인칭으로 바라보던 미래 세계가 1인칭 시점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ACT 페스티벌 2023 - 미래전설 포스터

올해로 8회를 맞이한 ACT페스티벌의 주제는 ‘미래전설’이다. 데이비드 보위가 만든 동명의 곡에서 차용한 것으로 인공지능의 급속한 발전으로 인간이 느끼는 막연한 불안과 실재적 공포를 반영하며 다양한 프로그램을 선보인다. 정해진 구성으로 연출된 장면이 아닌, 미래에 연출될 장면을 관객이 직접 체험할 수 있는 교류의 장이다. 투명한 시간의 틈 사이로 팔을 뻗어 미래의 온도를 느낄 수 있는 기회를 통해 우리가 만들어갈 미래도시에 대해 새로운 담론을 시도한다.

열흘간 이어지는 이 페스티벌은 전시, 퍼포먼스, 워크숍, 토크 등으로 구성되며,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의 레지던시, 연구개발, 교육 사업을 통해 완성된 결과물을 시민과 함께 공유하고, 국내외 협력 기관 및 전문가들의 아이디어를 나눈다.

전시는 관객이 직접 참여하거나, 가상의 미래도시를 묘사한 작품들이 주를 이룬다. 목소리를 통해 식재료를 자르는 인터랙션 게임, 가상의 공간 안에서 과거와 미래의 도시를 묘사한 VR 영상, 초현실적인 건축 풍경과 엠비언트 사운드로 관객을 압도하는 몰입형 영상들을 만나볼 수 있다. 전문 작가부터 예비 작가, 엔지니어와 연구자까지 국내외 기관들과 협업한 작품들을 통해 예술 속 첨단기술의 현재를 면밀히 들여다볼 수 있다.

퍼포먼스 분야에서는 관객 참여형 로봇 퍼포먼스 《인페르노》를 가장 먼저 선보인다. 디스토피아를 묘사한 체험형 로봇 퍼포먼스에 강한 전자 비트, 플래시 라이트가 터지는 디제잉이 더해져 ‘미래전설’의 이미지를 몰입감 높은 공간으로 확장시킨다. 다음으로 ACC레지던시와 ACC사운드 랩의 참여자들이 《듣기의 미래》를 주제로 연구한 작품을 선보인다. ‘미래도시문화’를 주제로 공모를 통해 선정되어 국외 기관과 협력, 완성한 작품도 만나볼 수 있다.

워크숍에서는 가족과 전문가 그룹으로 나누어 ‘미래도시생활탐구’를 주제로 나만의 프로젝트를 완성해 볼 수 있다. 가족 워크숍에서는 미래 이동 수단을 상상하고 만들어보며 디지털 제작 기술을 이해하는 시간을 가져본다. 전문가 워크숍에서는 전자음악에서 사용되는 전자기기의 구조와 기능을 알아보고 나만의 전자악기를 만들어 연주해 본다.

마지막으로 커리어&토크에서는 창제작자, 연구자, 기획자들의 생생한 현장 이야기를 들어본다. 작품 제작 과정에서부터 프로모션, 해외 기관과 협업을 하며 얻은 경험을 나누고, 아이디어와 철학, 노하우를 공유함으로써 새로운 프로젝트를 위한 영감과 가능성을 발견하는 시간을 가진다.

철학자이자 문명비평가인 루이스 멈퍼드는 예술과 기술의 균형을 통해 기계 문명의 전인성을 견지할 수 있다고 하며, 그러한 이상향을 ‘에우토피아’라고 명명했다. 소설 《1984》에서 빅브라더를 대변하는 오브라이언은 “우리가 물질을 통제하는 건, 정신을 통제하기 때문이다. 현실은 두개골 안에 있어.”라고 말한다. 우리가 마주할 미래도시는 기계에 종속된 디스토피아일까, 기술과 조화를 이루는 에우토피아일까? 2023 ACT 페스티벌과 함께 디스토피아와 에우토피아 양 갈림길에 선 ‘미래전설’의 첫 페이지를 그려보면 어떨까.





by
송지혜 (tarajay@naver.com)
Photo
ACC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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