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컬 스토리의 미래

익숙한 주변의 새로운 이야기

바야흐로 콘텐츠 소비의 시대다. 구독경제가 활발해지며, 사람들은 좋아하는 콘텐츠에 기꺼이 지갑을 열고 시간을 투자한다. 코로나 팬데믹을 거치며 지난 3년간 국내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이용자 수는 평균 5% 이상 증가했다. 현재 20대의 OTT 이용률은 96%에 육박한다. 대중의 인기로 검증된 소설, 만화 등 원천스토리는 장르와 매체의 경계를 넘어 세계적 신드롬을 일으키기도 한다.
K 콘텐츠가 글로벌 무대에서 사랑받으며, 포스트 ‘오징어게임’을 기대하는 사람들 또한 많아졌다. 최근에는 ‘마스크걸’과 ‘무빙’이 화제가 되며 K 콘텐츠의 저력을 보여주고 있다. 특수효과와 뛰어난 연출이 돋보이지만, 그 중심에는 한국적 정서와 문화가 담긴 스토리가 있다.

시간을칠하는사람

잘 만든 스토리는 중독성을 지니고 있다. 하나의 이야기가 끝나고 나면, 그 여운을 간직하는 한편, 또 다른 새로운 이야기를 원한다. 하지만,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라는 말이 있듯, 스토리의 세계에도 한계가 존재한다. 그런데 잘 만든 스토리를 보면, 보편적 주제를 다루면서도 새로운 소재를 등장시켜 이야기 전체를 낯설게 보이도록 한다. 다양한 장치를 통해 오랜 시간 이어져 온 삶의 교훈을 감동적으로 전달한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지만, 다양한 소재를 통한 새로운 조합은 얼마든지 가능한 것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스토리는 작가와 독자가 공유하는 하나의 고유한 세계가 된다. 음식에 비유하면, 그 식당에서만 먹을 수 있는 시그니처, 또는 특정 지역에서만 먹을 수 있는 한정판 메뉴 같은 것이다.

음식 재료의 신선도는 거리와도 관련이 있다. 스토리의 소재도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소비자에게 낯설고, 창작자에게 익숙한 것일수록 신선하고, 특별한 것으로 인식된다. 우리에게는 익숙한 줄다리기 같은 전통 놀이나 설탕으로 만든 달고나가 서방 국가 사람들에게는 신기해 보이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로컬(local)’은 글로벌 시대에 새로운 가능성을 지닌 기회의 공간이라고 할 수 있다. ‘로컬(local)’은 지방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지만, 전국 또는 전역에 대한 지방을 뜻하며, 도시에 대한 대조적 의미로 시골이라는 뜻은 내포하지 않는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라는 나태주 시인의 시구절처럼 개성이 강조되는 공간이며, 살아있는 현장성을 드러내는 곳이다.

동상기

스토리는 소재에서 주제로 나아가는 철로와 같다. 특정한 사건이나 상황에서 시작해 인간의 보편적 욕망을 드러내며 갈등을 겪는 과정을 보여준다. 소셜미디어의 발달로 개인의 일상이 필터 없이 전 세계에 전달되는 시대에, ‘로컬’은 다름이 아니라 특별함으로 인식된다.

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마법사 ‘해리포터’는 전형적인 영웅의 성장기를 다루고 있지만, 영국의 전통 학교문화와 시스템을 바탕으로 호그와트 마법학교를 더욱 매력적으로 묘사한 것이 특징이다. 필드하키와 럭비 경기를 빗자루 이야기에 섞은 것처럼 보이는 퀴디치 게임은 스토리에 몰입도를 높인다. 이와 비슷하게 2021년 넷플릭스 공개되어 최초로 미국 넷플릭스 1위를 차지한 ‘오징어 게임’의 성공 요인은 삶을 서바이벌 게임에 비유하며, 한국의 전통 놀이에서 그 소재를 가지고 왔다는 점이었다. 로컬의 재해석을 통해 언어와 문화를 뛰어넘어 공감을 불러일으킨 선례이다.

어둑시니

결국, 새로운 이야기는 익숙한 주변에 있다. 새로운 이야기를 찾고 있는 창작자라면 세계지도에서부터 시작해 자신의 생활공간에 이르기까지 확대해 들여다보는 작업이 필요하다. 6대륙에서 아시아로, 아시아에서 대한민국으로, 대한민국에서 광주로. 공간뿐 아니라 세대와 연령의 범위를 점차 줄여가다 보면 가장 ‘현재의 나다운’ 모습에 이르게 된다. 그 내면을 조금 더 들여다보면, 인간은 누구나, 언젠가 죽는다는 진리에 이르게 된다. 그제야 새로운 이야기의 본질은 한정된 삶 안에서 현재 가장 나다운 이야기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렇게 만들어진 이야기는 국경을 넘고, 이념을 뛰어넘어 많은 사람에게 감동을 전달한다.

나는광주에없었다

K 콘텐츠의 미래는 글로컬 스토리에 있다고 믿는다. 그 본질은 가장 가까운 곳에서 나다움을 발견하고, 인간의 한계를 통해 삶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익숙한 주변을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면 어떨까. 오늘 당신의 이야기가 지구 반대편에 있는 누군가에게 새로운 세상의 문을 열어줄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품고.





by
송지혜 (tarajay@naver.com)
Photo
국립아시아문화전당 누리집
공감 링크복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