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사인의 눈으로 새긴 그들의 삶과 정신세계

아시아의 암각화

인류의 첫 그림 혹은 조각은 무엇일까? 미술사 책에서 가장 첫 페이지는 빌렌도르프 비너스나 동굴벽화가 차지한다. 빌렌도르프의 비너스 상은 오스트리아에서 빌렌도르프에 의해 발견된 손바닥에 쏙 들어오는 작은 크기의 조각으로, 다소 살집이 있는 여성의 풍만한 몸이 강조되어 풍요와 다산을 기원하는 의미로 알려져 있다.

또 하나 선사시대의 가장 유명한 유적인 라스코와 알타미라, 쇼메 동굴벽화를 보면 원시인들이 그렸다고 믿기지 않을 만큼 사실적인 묘사와 표현이 놀랍다. 실제로 알타미라 동굴벽화가 발견되었을 때, 사람들은 벽화가 선사시대에 그려진 것이 아니라 조작된 것으로 생각할 정도였다. 하나의 획으로 그어나간 힘찬 선과 동물들을 중첩해 그린 연속장면을 표현한 효과들, 도구도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서 그려졌음에도 불구하고, 정확하고 사실적인 묘사를 보면 그럴 만도 하다.

구석기인들은 이 동굴벽화를 그릴 때 입에 물감을 머금었다가 뿜어서 표현하는 기법을 사용하여 오돌토돌한 돌의 면을 채색하고, 돌의 튀어나온 부분을 이용하여 대상의 양감을 부여하는 등 사실적인 묘사에 힘썼지만, 그들에게 그림은 단순한 기록 이상이었다.

선사시대에 그려진 아시아 지역의 바위 그림

서양의 동굴벽화만큼 잘 알려지진 않았지만, 아시아에도 ‘암각화’라 불리는 선사시대의 바위 그림이 있다. 주로 몽골, 러시아, 카자흐스탄, 중국, 네 나라에 걸친 알타이 지역에 많이 분포되어 있다. 이곳의 암각화는 다른 지역과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많은 양이 발견되고 있을뿐더러, 다양한 양식과 독자적인 조형성을 발견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몽골과 러시아의 알타이 암각화는 주로 동물 형상, 사람, 기호 등이 그려졌다. 몽골과 중앙아시아의 토착 동물로 귀하게 여겨 온 야생 염소를 비롯하여, 산양, 사슴, 소, 말, 낙타, 개가 많이 발견된다. 특히 육식동물이 초식동물을 추격하는 장면, 이동하는 동물의 무리, 사냥하는 장면들은 특히 유목민의 암각화에서 공통으로 드러나는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서로 다른 대상을 조합하여 표현하거나, 하나의 몸통에 두 개의 머리를 붙인 형상도 자주 발견된다. 여기에서 선사인들의 가지고 있었던 동물과 인간에 대한 사유와 세계관을 엿볼 수 있다. 동물의 형태를 조형적으로 단순화하여 기호처럼 표현하기도 하고, 동물의 발자국 모양을 상징화하여 바위에 새기기도 했다. 사람의 모습도 다양하게 그려졌는데, 사냥하는 사람, 말 탄 사람, 출산하는 사람, 샤먼의 모습도 많이 보인다.

인류는 왜 바위에 그림을 그렸을까?

선사시대에 인류가 왜 바위 그림을 그렸는지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파악하기는 힘들다. 당시엔 문자가 존재하지 않아 기록이 없고, 몽골 알타이 지역에 현재 사는 사람에게서 선사시대의 정보를 얻기도 어려운 일이다. 오직 바위에 새겨진 수많은 그림을 해석하여 추측할 수 있을 뿐이다.

암각화는 주로 물과 가까운 곳 혹은 산기슭의 암 면에 그려져 있는데, 그림을 그리기에 좋지 않은 환경임에도 이곳에 꼭 그림을 새김으로써 이들은 무엇을 얻고자 했을까? 마치 무대와 같은 곳, 소리 울림이 생기는 곳, 신성한 장소가 의도적으로 선택되었다는 사실이 여러 암각화를 통해 알려졌다. 또한 많은 암각화 유적지에서는 제물로 사용된 것으로 추정되는 동물의 뼈 무더기가 발견되기도 했다. 이러한 사실들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ACC 아카이브 ‘아시아의 암각화 : 몽골과 러시아의 알타이 유적군’

ACC에서는 <아시아 지역 암각화의 문화적 가치 발굴과 콘텐츠 자원화 사업>으로 1차 프로젝트는 몽골과 러시아의 경계인 알타이 부근 주봉 지역인 차강골, 차강 살라, 바가 오이고르와 고비 알타이 지역인 텝쉬, 자브흐란트를 조사하였고, 2차 프로젝트는 러시아의 칼박타쉬 지역과 톰스크 지역의 암각화를 조사하고 원형자원을 수집한 바 있다. 그 결과물은 현재 ACC 아카이브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 중 눈에 띄는 암각화를 몇 점 소개한다.

몽골 슈베트하이르항 지역의 마차 타는 사람 암각화 사진 출처 | ACC아카이브 ‘아시아의 암각화 : 몽골과 러시아의 알타이 유적군’

선사인이 그린 그림 중에서 특히 마차 그림은 중앙아시아 지역에서 바퀴가 있는 운송수단인 마차의 기원을 알 수 있게 해주는 사료가 될 수 있다. 몽골 슈베트하이르항 지역의 암각화는 두 마리의 말이 끄는 바퀴 두 개 달린 마차를 표현한 것으로 마치 전개도처럼 펼쳐져 그려졌다. 이곳 외에도 알타이 지역에서 마차 그림은 다양하게 발견되고 있어 마차가 어떻게 발전되었는지 추측할 수 있게 해준다.

몽골 하르살라 지역의 기마인물 슬라이드 필름 출처 | ACC아카이브 ‘아시아의 암각화 : 몽골과 러시아의 알타이 유적군’

몽골 하르살라 지역에서는 말을 탄 사람 형상을 표현한 암각화가 발견됐다. 말 탄 사람의 형상은 유목민의 삶을 반영하는 그림으로 알타이 지역에서 보편적으로 많이 등장하는 그림이다.

몽골 차강살라 지역의 우유를 채취하는 유목민 출처 | ACC아카이브 ‘아시아의 암각화 : 몽골과 러시아의 알타이 유적군’

이 지역의 독특한 그림이라고 할 수 있는 소 젖을 짜고 있는 인물 그림에서는 두 손이 과장되게 묘사되어 있다. 유목민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는 모습이다. 이에 대해서는 다른 해석도 존재한다. 커다란 짐승을 거느리고 팔은 옆으로 넓게 벌리고, 부동자세를 취하면서 분만 자세를 보여주고 있는 그림이라는 것이다. 황소와 분만 중인 여성 형상의 결합은 이전부터 존재했던 신화적 형상이기도 하다.

참고문헌 | 블라지미르 D. 꾸바레프, 『알타이의 암각예술』, p.80-81

몽골 차강살라 지역의 종 모양의 샤먼 슬라이드 필름 출처 | ACC아카이브 ‘아시아의 암각화 : 몽골과 러시아의 알타이 유적군’

몽골 차강살라 지역의 동물 가면을 쓴 샤먼 암각화 사진 출처 | ACC아카이브 ‘아시아의 암각화 : 몽골과 러시아의 알타이 유적군’

샤먼과 관련된 암각화도 다수 발견되는데 이는 알타이 지역에 거주했던 선사인들의 샤머니즘, 제례 의식을 엿볼 수 있게 해준다. 몽골 차강살라 지역 암각화에서 발견된 샤먼의 모습은 종 모양과 결합하여 있다. 머리에 뿔 장식을 한 여성이 베일과 같은 투명한 망토를 입은 듯 보인다. 또 다른 샤먼 암각화는 동물 모양의 가면을 쓰고 있는 모습으로 표현되었다. 양과 독수리 가면을 쓴 샤먼상은 일종의 제의적 성격을 지닌 그림으로, 이 지역에서 발견되는 독특한 특성이기도 하다.

우리는 알타이 암각화의 수수께끼와 같은 그림들을 보며, 원시 인류가 살았던 당시 삶의 모습들을 상상해 볼 수 있다. 그들에게 바위에 그림을 새기는 일은 동물의 풍요로운 번식과 자손의 번성을 기원하고, 그들의 신을 숭배하는 일이자 제의적 역할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암각화를 통해 인류가 가지고 있었던 아주 오래된 역사를 마주하는 것은 경이로운 일이다. 선사인들은 아주 오랜 시간 변하지 않을 커다란 바위에 자신들이 염원을 새김으로써 동시대인들과 소통하고 있다.





by
소나영 (nayeongso@daum.net)
Photo
ACC아카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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