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전통 오케스트라 공연,
한국-인도네시아 수교 50주년 기념 특별 인도네시아 프로그램

Review

프랑스 소설가 파스칼 키냐르는 말합니다.

두 가지 방식의 말하기가 있다. 1) “우리는 음악을 듣는다”, 2) “우리는 성 베드로의 눈물과 같은 것을 닦는다.” 나는 후자의 것이 더 정확하다고 생각한다. 멀리 떨어진 농가 안뜰에서 들려오는 수탉의 울음소리에 현관 모퉁이에 서 있던 남자 하나가 갑자기 오열하기 시작한다. 4월 초순, 새벽빛이 희미하게 밝아 오며 어둠을 몰아내기 직전의 일이다.

요한 세바스티안 바흐의 오라토리오 <마태수난곡 Matthew Passion>의 유명한 아리아 <Erbarme dich,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는 바로 이 장면을 노래한다. 예수를 세 번 부인한 바로 그때 울리는 수탉의 울음소리에 “네가 나를 세 번 부인하리라” 예언하신 예수의 말씀이 떠오르자 베드로는 심히 통곡하게 된다. 그 베드로의 깊은 슬픔과 절망을 노래한 알토 가수의 저음은, 애절하고 간절한 구원의 외침 같은 바이올린 고음에 실려, 천상을 향해 날아간다.

추천 영상 알토 쥴리아 하마리의 마태수난곡 중 Erbarme dich 바로가기

우리는 이렇게 알토 가수의 울림과 독주 바이올린의 떨림을 통해 서양 음악사의 한줄기를 이루는 기독교적 파토스(pathos)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며 그 역사와 문화에 젖어 들게 된다. 이렇듯 우리는 서양의 창법과 서양의 악기와 서양식 음계에 익숙해져 버렸다.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이하 ACC)은 글자 그대로 아시아에 방점이 있다. ACC는 지속해서 아시아를 경험하며 배우고 느낄 수 있는 여러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고, 지금 소개하는 <아시아전통오케스트라>도 마찬가지다. 이 오케스트라의 역사는 2009년 5월 제주도에서 개최된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에서부터 시작한다.

아시아전통오케스트라가 창단된 것은 근대화 과정에서 버려지고 훼손된
아시아 전통음악의 무한한 상상력과 가능성을 발견하고,
아시아 예술인 간 네트워크 구축을 통한 우정을 증진하는 교두보를 만들었다는 데 의의가 있습니다.

아시아전통오케스트라는 한국과 아세안 10개국 브루나이, 캄보디아, 라오스,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미얀마, 필리핀, 싱가포르, 태국, 베트남의 전통악기로 구성되어 있다.

단 보우 (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

단 트란 (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

일례로 베트남의 현악기 단 보우(Dan bau)는 한 개의 현을 가과 폭이 좁고 기다란 울림통을 가진 상자형 치터(zither)이고, 또 다른 현악기 단 트란(Dan tranh)은 한국의 가야금과 비슷하게 만들어진 울림통에 16개 혹 17개의 현이 걸려 있는 발현악기다. 단 보우는 하이톤의 여성 목소리가 구슬프게 울리는 듯하고, 반대로 단 트란은 기교적이면서 장식적 반복음이 인상적이다.

우리나라의 국악기 거문고, 가야금, 대금, 해금, 아쟁 등이 국악기 고유의 음색을 가지고 우리나라만의 한과 정조를 표현하는 것처럼, 태국의 라낫 윽(Ranat Ek)이란 악기는 실로폰과 사우 오우(Saw Ou)는 해금과 비슷하게 생겼다. 그렇지만 악기의 음색과 표현하는 감정은 사뭇 다르다. 각 나라의 음악과 악기는 악보로 기보할 수 없는 독특한 정조가 문화적 유전자라고 일컬어지는 밈(meme)을 통해 세대간의 소통을 돕는다는 느낌이 든다.

이날의 연주는 우리나라의 국악 아카펠라 그룹 토리스의 무대로 오프닝을 열고, 캄보디아 작곡가 삼앙삼의 <하나 되는 아시아>, 필리핀 작곡가 마리아 크리스틴 무이코의 <아시아를 향하여>, 베트남 작곡가 응우옌 홍 타이의 <고향의 자장가>, 인도네시아 작곡가 이소 에디 히마와르소의 <인도네시아의 섬들>, 태국 작곡가 차이북 부트라친다의 <실파반렁 랩소디>, 싱가포르 작곡가 에릭 왓슨의 <마음의 목소리>, 말레이시아 작곡가 모드 야지드 빈 자카리아의 <펜짝 베르술람>, 마지막으로 대한민국의 작곡자 박범훈의 <러브 아시아>로 연주의 피날레를 장식했다.

세계화의 시대이고, 이제는 동남아 여행이 제주도 여행만큼이나 일상화되었지만, 대한민국 주변 아시아의 목소리를 들을 기회는 여전히 적은 것 같다. 그렇지만 광주시민에게는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이 가까이 있다. 새로운 풍경을 경험하는 것도 하나의 여행이지만, 새로운 소리를 듣는 것도 또 하나의 여행이 아닐까 한다. 시각적 신호가 청각적 신호보다 인간에게 빠르게 감각되긴 하지만, 소리는 빛보다 더 오랫동안 우리의 몸과 가슴에 남아있다고 생각한다. 이날의 연주로 그들의 역사와 문화를 조금 더 알아간 듯하고 조금 더 친근해진 느낌이다.





by
구태오 (rnxodh@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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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아이엠 포토그래퍼 송기호, 네이버 지식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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