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C ‘아시아스크린댄스’ 상영회

아시아의 춤추는 도시를 만나다

얼굴을 가린 독특한 모양의 가면과 화려한 의상, 장구와 비슷해 보이는 악기를 두드리는 동작과 익살스러운 몸짓... 마치 한국 전통 탈춤을 보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의상도, 가면도 우리나라 전통색과는 다르다. 그런데도 전혀 낯설거나 생경하지 않다. 우리네 전통 탈춤과 닮아있는, 그러나 또 다른 빛깔을 지닌 방글라데시의 탈춤 공연이다. 공연을 감상하는 동안 왠지 모를 동질감에 저절로 마음이 끌리기도 하고, 한편 그들만의 독특한 모습에서 서로 다름의 아름다움이 느껴지기도 한다. 아시아 문화의 보편성과 독자성이 처음 보는 방글라데시의 민속춤을 통해 고스란히 전해진다.

이렇게 서로 다른 듯 닮아있는 아시아 여러 나라의 ‘춤’을 한자리에서 만날 기회가 ACC에서 마련됐다. ACC 아시아무용커뮤니티가 2023 국제교류 프로그램으로 준비한 ‘아시아 스크린댄스 상영회’와 ‘심포지엄’이다. ACC 아시아무용커뮤니티는 2011년부터 14개 회원국과 함께 워크숍, 국제콘퍼런스, 공연 등 아시아 무용의 교류와 접근을 시도해 왔다. 올해는 스크린댄스 상영과 심포지엄 두 가지 행사로 아시아 무용을 통한 연대와 공감의 장을 선보였다.

“마스크-춤, 변신 그리고 대화” 아시아 탈춤의 가치와 의미 공유

개막식 날 진행된 심포지엄은 <마스크-춤, 변신 그리고 대화>를 주제로 아시아 각국의 탈춤 문화에 대해 깊이 있게 대화하는 자리였다. 2022년 유네스코 무형유산으로 등재된 탈춤을 소재로 한 국제 학술토론회다. 한국의 탈춤을 비롯해 부탄의 팍참, 멧돼지 탈춤, 태국의 무용극 콘, 캄보디아의 커뮤니티 댄스 르콘 콜 등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아시아 탈춤의 가치와 의미를 함께 공유하는 시간이 되었다.

특히 개막공연인 방글라데시의 탈춤 <칼리카치: 검은 여신, 칼리의 유희>는 방글라데시 민속 탈춤의 신비로움을 전하기에 충분했다. 칼리카치는 칼리 여신 가면을 쓴 채 추는 춤으로, 벵골 지역의 힌두교도들 사이에 전해지는 탈춤이다. 춤의 시작과 함께 *후두나 향이 피어오르며, 악령을 소멸시키는 샤트루바다춤이 시작되면 공연은 절정에 이른다. 복잡한 동작과 정교한 의상, 독특한 가면을 통해 두려움과 숭배를 동시에 불러일으키는 칼리 여신의 본질을 눈앞에 펼쳐 보인다. 국경을 초월한 아시아 탈춤의 보편성과 그 나라만의 독자성을 함께 느낄 수 있는 진귀한 공연이다.

*사라수 나무 진액으로 만든 향으로 방글라데시에서는 주로 종교적 의례에 사용된다.

ACC의 가을을 아름답게 물들인 스크린댄스 아시아의 무용을 영상과 공연으로 즐기다

<아시아스크린댄스 상영회>도 아시아문화전당의 가을을 아름답게 물들였다. ‘아시아의 춤추는 도시’라는 주제로 평소 접하기 어려운 아시아 각국의 무용을 영상과 공연으로 만날 수 있었다. 상영회에서는 아시아 무용 커뮤니티 14개 회원국과 인도, 일본 등 아시아 무용 영상 20여 편이 상영됐다.

베트남 민속무용과 현대무용을 접목한 작품 ‘진주의 눈물’부터 스리랑카의 건국 설화를 엿볼 수 있는 ‘비자야 왕자의 도착’, 부엌을 배경으로 인도 가부장 사회에서 여성의 역할을 탐구하는 ‘더 키친’ 등 아시아의 춤사위를 엿볼 수 있는 다양한 작품이 관객들과 만났다.

첫날 상영된 동남아시아 특별전 1에서는 싱가포르와 말레이시아, 필리핀, 베트남, 인도네시아 5개국의 아름다운 무용이 스크린 위에 펼쳐졌다. 싱가포르의 <날기>는 전설 속 신비의 새 ‘후마새’의 비행에 대한 갈망에서 영감을 얻은 작품이다. ‘후마새’의 멈춤 없이 계속되는 비행과 자유에 대한 추구를 예술가의 혼에 은유했다. 필리핀 <풍작>은 필리핀 민다나오섬 북서부에서 전해지는 전통춤으로, 강을 터전으로 살아가는 수바넨 부족이 수확을 축하하는 모습을 표현한 춤이다. 나라와 민족을 넘어 풍요로운 수확을 기뻐하는 즐거움이 전해진다. 베트남의 <진주의 눈물>은 고전 발레의 형태와 전통 베트남 민속무용을 현대무용에 접목한 작품이다. 4부로 구성된 작품은 비극적이고 전설적인 사랑 이야기 사이에서 과거와 현재가 교차한다. 특히 드뷔시의 음악이 발레와 함께 어우러져 동서양의 조화로운 아름다움을 느끼게 한다. 동시대를 살아가는 동남아시아 여러 국가의 현대무용을 감상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남아시아 특별전에서는 방글라데시 대면 무용공연 그리고 인도, 스리랑카 두 나라의 작품이 관객들과 만났다. 방글라데시의 무용 작품 <반딧불이>는 벵골어로 많은 시를 남긴 ‘타고르’의 시에서 영감을 얻은 작품이다. 방글라데시 무용단 ‘샤도나(Shadhona)‘는 타고르의 짧은 시 ‘반딧불이’를 소재로 반딧불이의 삶, 아름다움 그리고 신에 대해 짧지만, 빛나는 생각을 환상적인 몸동작으로 표현했다.

인도 작품 <키친>은 가부장 사회에서 전통적인 여성의 역할을 탐구해 보는 무용 영화다. 감독이 자신의 어머니를 기억하며 만든 스토리가 80년대 스타일의 전통 요리들과 함께 펼쳐진다. 아시아 어느 문화권의 관객이든 공감할 만한 내용의 작품이다. <비자야 왕자의 도착>은 스리랑카 비자야 왕자의 전설적인 여정을 무용으로 풀어낸 작품이다. 비자야 왕자와 쿠바니 여왕이 만나 둘 사이에 사랑이 꽃피고, 여왕의 지원에 힘입어 비자야 왕자는 왕좌에 등극해 스리랑카를 통치하는 스토리다. 한편의 아름다운 영화처럼 펼쳐진 무용 영상에서 섬나라 스리랑카의 풍부한 문화유산을 느낄 수 있다.

동북아시아 특별전에서는 우리나라와 일본의 작품이 함께 상영됐다. 국내 최초 국공립 현대 무용단인 대구시립무용단의 <무엇이 우리를 움직이게 하는가>는 비디오와 무대공연의 교차점을 찾으려는 시도로 제작된 작품이다. 관객과 무대가 함께 호흡하며 살아있는 예술의 활기 넘치는 접근방식을 보여준다. 일본의 작품 <도나리>는 ‘옆집’ ‘바로 다음’이라는 말뜻처럼 8천 마일 거리의 도쿄와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두 이웃을 조명한다. 거리가 멀어도 영화와 춤, 음악으로 연결된다면 바다 건너에 있는 사람도 이웃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그리고 아시아무용커뮤니티 안애순 전 공동위원장(2013-2022) 안무의 국립현대무용단 <몸쓰다>가 상영되었다. 몸에 축적된 개인의 역사와 기억, 심상, 환경 등 보편적인 삶 속에서 채집된 몸짓들이 무용수 개개인의 몸을 거치며 새로운 질감의 움직임으로 구성되는 과정이 흥미롭다.

2023 아시아문화주간에 열린 <아시아스크린댄스 상영회>에는 무용 영상뿐 아니라 영화와 현장 공연도 풍성하게 진행돼 아시아 춤 예술의 묘미를 전했다. 한국과 인도의 수교 50주년을 맞아 인도영화 <나트얌>이 특별상영됐다. 영화 <나트얌>은 인도 전통춤 ‘쿠치푸디’를 주제로 한 영화로 ‘춤은 세상을 바꿀 이야기 그 자체’라는 메시지를 전한다. 아시아문화광장에서는 한국-방글라데시 수교 50주년을 기념해 방글라데시 무용단 ‘샤도나’의 단원 7명이 방글라데시 민속무용 공연을 선보여 관객들의 호응을 얻었다.

몸짓 하나에도 그 땅의 오랜 숨결이 담겨있는 아시아의 춤 민족과 세대를 잇는 아름다운 연결고리가 되다.

무대 위에서 또는 스크린 위에서 우리가 만나는 아시아의 ‘춤’은 단순히 잘 꾸며낸 볼거리에 그치지 않는다. 작은 몸짓 하나에도 오랜 세월 쌓이고 전해온 선조의 지혜와 그 땅의 숨결이 담겨있다. 여러 세대를 거쳐 전승된 아시아의 춤은 아시아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연결하는 소중한 문화자산이다. 또한, 서로의 문화적 다양성을 존중하는 조화로움의 상징이기도 하다. 아시아의 춤이 매개체가 되어 서로 다른 나라와 민족을 연결하고, 서로 다른 세대를 연결하는 아시아 문화의 아름다운 연결고리가 되길 기대해 본다.





by
유연희 (heyjeje@naver.com)
Photo
디자인아이엠 포토그래퍼 송기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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