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 없는 부두> 한국 베트남 국제 공동 창·제작 공연 제작기

엄동열 총괄 프로듀서 인터뷰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예술극장 큰 무대의 중심에 딘 강을 형상화한 물이 출렁이고 있었다. 그 물 뒤로 베트남 강가의 자연풍경들이 몽환적인 산수화처럼 펼쳐졌다. 배우들은 물을 참방대며 오고 갔다. 물 앞에서 노래하고 사랑하고 슬퍼하고, 헤어지고, 질투하고, 배신하고, 새로이 다짐하며 전후 시대 30여 년의 역사를 연기했다. 피아노, 바이올린, 첼로와 함께 가야금이 무대 한쪽에서 라이브로 연주되었다. 생경한 베트남어 음성 대사들의 중첩이 마치 어떤 화음처럼 들리며, 참 아름답다 생각 들었다. 극 중간 무대에 등장하는 한국의 정가 소리꾼이 베트남 주인공들의 비극적 감정과 서사를 고양 시켰다.

이번 연극 <남편 없는 부두>는 2022년 한국 베트남 수교 30주년이던 해에,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의 국제 공동 창·제작 공연 사업으로 선정되었다. 작년 시범 공연 이후 올해 본 공연으로, 베트남 국립극장(VNDT)과 (사)한국공연프로듀서협회가 함께 창·제작한 작품이다. <남편 없는 부두>는 베트남 국민 소설가 쯔엉 흐엉의 원작 소설을 극화하여, 전후 시대의 비극과 삶의 고통을 딘 강 주변 여성들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풀어간다. 인간의 삶은 국가적 경계 넘어 보편성이 있는 것일까. 어렸을 때 보았던 박경리 원작의 <토지>를 TV 드라마로 보면서 주인공 서희의 갈등과 선택들에 내내 마음 졸이며 응원해 가던 감정이 떠올랐다.

베트남 전쟁의 비극과 아들 중심, 가문 중심의 봉건적 사회관습으로 인한 연속된 불행이 여성들의 삶에 고통이 되었다. 깊은 고통 속에서 새로운 운명을 찾아 딘 강을 건너, 떠나는 젊은 여성 ‘하이잉’의 선택까지 30년의 이야기를 압축한 1시간 30여 분의 공연 시간은 훌쩍 지나갔다. 멈추지 않고 흐르는 강은 그 주변에 살아가는 인간의 희로애락의 감정을 삼키고, 연꽃을 피워낼까. 강 위에 불 밝힌 연꽃들이 남겨진 마지막 무대가 처연히 아름답고 오래 기억이 남는다.

<남편 없는 부두>의 엄동열 총괄 프로듀서와의 인터뷰를 통해, 이번 ACC 국제 공동 창·제작 공연 사업의 생생한 제작기를 들어보았다

  • 어떻게 베트남과 공동 창·제작 작품을 하게 되었나요?

    국제교류 및 공연예술의 해외 유통에 관심을 가지면서, 한국의 창작공연과 아시아의 공연들을 하나의 마켓 안에서 유통될 수 있기를, 한국이 원아시아마켓1)의 중심이 되는 국가로 활동하면 좋겠다는 비전이 있었다. 2022년은 특히 한국과 베트남과 수교 30주년으로 베트남에 대해 자료 조사를 하는 중에, 베트남과 한국이 전쟁과 분단, 강대국 침략사 등 비슷한 역사를 보았다.

    UN의 국가문화 유사성 지수가 신남방 국가 중에서는 베트남이 가장 높았고, 경제 교류 규모도 중국 다음으로 큰 시장이었다. 반면 문화 교류적 측면에서 볼 때는 단순한 양국 문화소개 차원의 전통 공연, 한류 행사 등이어서, 양국이 새로운 가치를 담아 하나의 목소리를 담을 수 있는 작품을 해보면 좋겠다는 생각에, 베트남국립극장에 제안하게 되었다.

  • 프로듀서로서 이번 작업에서 중요한 가치와 도전은 무엇이었나요?

    앞으로 아시아 문화가 서양사상을 대체하는 중요한 가치와 철학으로 이끌어 나갈 것이라 믿기 때문에 베트남과 한국이 공동 제작한다면, 우리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담고 있어야 한다고 보았다. 프로듀서로서 이번 공동제작 작품이 양국의 문화를 잘 결합해서 새로운 하나의 작품을 만드는 변증법적인 프로덕션 개발 시스템을 가져야겠다고 보았다. 이런 의도와 내용을 담으려면 순수한 창작보다는 좋은 원작을 기초로 하자 판단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베트남과의 교류 협력에 있어 가장 중요한 자세는 상호존중이다. 각자가 가진 문화와 전통을 존중하며, 내가 알고 있는 지식과 정보로 판단하지 않는 것이 중요했다.

    그래서 작품 선택도 한국에서 6개 작품, 베트남 6개 작품을 제안하여 상호 협의를 통해 작품을 선정해 갔다. 최종적으로 남은 베트남 작품은 베트남 문학상을 받은 작품으로 한 민족의 역사적 흐름과 3대를 다루고 있는 베트남에서는 영화와 드라마로 제작되어 널리 알려진 국민소설이었다. 국민적 인지도가 있는 내용이라 베트남에서도 연극으로 만들고자 했으나, 베트남 30년 역사를 1시간 30분으로 압축하긴 어려운 상황이었다. 프로듀서로서 내가 한번 해보자 하는 도전 의식이 생겼다. 최종적으로 이 원작으로 작품 제작을 결정하여 국립아시아문화전당 공모에 선정, 작년 쇼케이스를 선보여 좋은 평가를 받아, 올해 본 작품을 제작하게 되었다.

  • 프로듀서로서 이번 작업에서 중요한 가치와 도전은 무엇이었나요?

    서로 간에 상호존중의 태도는 가장 기본적인 것이다. 이를 기반으로 이 작품을 하면서 핵심 중의 하나는 베트남 원작으로 양국의 문화를 어떻게 적절히 결합할까였다. 각각의 양식으로 결합하면서, 한국적이면서 베트남적이길 바랐다. 베트남 것이면서 한국적인 문화적인 융합을 말한다.

    2년여간 베트남과 한국의 서울, 광주를 오가며 워크숍을 진행하며, 서로를 이해하기 위한 노력을 해왔다. 베트남 원작으로 주제 의식을 담았으나, 각색· 작곡·모든 디자인과 기술적인 것은 한국에서 진행했다. 베트남이 잘하는 것, 한국이 잘하는 것이 서로 다르다는 것을 발견했다. 베트남이 직물 생산을 많이 하고 있어, 훌륭한 디자인, 제작품들이 많았다. 소품과 의상은 베트남에서 진행했다. 창작의 영역과 프로덕션의 영역, 제작의 영역들을 한국과 베트남의 비교 우위들을 검토하면서 우리 제작에 용이하거나 가장 효율적으로 잘할 수 있는 파트너를 찾고 협업하여 결합하고자 했다.

    악기의 구성이나 음악적 요소들의 경우, 베트남 전통악기, 서양악기. 우리 전통악기를 넣어 서너 가지 소리를 하나의 사운드로 표현해 보았다. 출연진의 경우, 여러 고민 끝에 전달의 효율성을 위해 베트남 배우와 언어 중심으로 베트남 분위기와 정서를 전달하기로 했다.

    베트남어는 6성을 쓰고, 우리와 어순이 달라 언어가 가진 멜로디 성이 있다. 연기 대사 보다는 노래하는 것 같다고 생각하게 된다. 한편 베트남의 전통음악 ‘째오’가 가진 소리가 한국의 ‘정가’와 유사함을 발견했다. 이 소리를 베트남의 언어적 소릿값이 가진 것을 헤치지 않으면서 한국적 요소를 결합하고자 ‘정가’를 선택, 무대에 등장시켜 상징적으로 소리를 구현하였다. 이 작품이 베트남과 한국 교류의 마중물이 되길 원했다. 한국문화가 존중받으려면, 우리가 저들의 문화를 존중해 주어야 한다. 문화적 역량의 자신감은 포용력에서 시작한다. 모든 창·제작 과정에서 이러한 가치를 기반으로 한 치열한 고민과 선택이 있었다.

  • 물을 중심에 놓은 무대 디자인이 인상적이었다. 어떻게 구현하였나?

    베트남 하노이는 호수의 도시로, 베트남 하면 물이 연상되는바, 이를 무대 디자인으로 어떻게 구현할지가 큰 고민이었다. 국제 공동 창·제작 사업의 가장 큰 목표는 초연이 아니라 국내와 상대 국가에 현지화하여 뿌리 내리고 다른 국가에도 이 협력사업의 성과를 알리는 데 있다.

    아름다운 미학의 무대도 중요하지만, 지능적으로 유통 가능한 무대로서 검증하면서 제작해 내는 것이 매우 중요한 덕목이다. 그래서 이번 무대 세트 만들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모듈화 시스템이었다. ‘물’을 담은 모듈로 된 무대세트를 기획 단계부터 적용하여, 이를 다른 지역이나, 다른 국가 투어 공연을 할 때도 무대 미학을 살리면서 제작, 유통되는 것을 중요한 목표로 삼았다. 이는 앞서 북유럽 다른 나라들과 교류 협력하면서 공동 창·제작 경험이 세 번 정도 되다 보니, 매번 착오와 실패의 경험을 통해 얻게 된 것이다.

  • 현대 한국 여성에게 있어, 이 작품 속 여성의 삶과 이야기가 어떤 의미를 줄 수 있을까?

    깊이 들여다보면, 이 이야기는 그리 멀지 않은 우리의 과거, 우리 어머니 세대 여성들의 이야기이다. 현재의 발전된 모습, 앞으로 그릴 미래의 모습은 과거가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다. 우리가 고전문학이나 다른 나라의 문화를 볼 때, 상황 그 자체보다는 그 상황에서 어떻게 극복해 가는가를 보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본다. 우리가 어떤 시대에 살고 있건, 그 시대가 가진 저마다의 시선과 삶의 외압에서 자유로운 인간은 없다. 우리 인간으로서의 존재 가치는 어떻게 극복해 내고 어떤 미래를 설계하는가가 중요하다고 본다. 이 작품은 스스로 하나의 주체로서 한 여성이 서는 이야기, 즉 그 서사를 다루고 있다.

  • 프로듀싱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점은 무엇이었나?

    프로듀서로서, 외부의 변수가 많은 경우 내부의 결속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기에, 가장 믿을 수 있는 팀으로 구성했다. 이번 공동 창·제작팀은 스웨덴, 덴마크 작업까지 4년간 같이한 팀이 주축이 되었다.

    원작 이해가 기본이자 가장 중요한데, 원작이 한국에 없었던 것이 고통의 시작이었다. 창·제작자를 위해서 소설을 영문 번역하고, 다시 한글 번역하는 작업이 선행되어야 했다. 이후 기본 극본 작업 이후 디테일 수정은 연출팀과 협의하여 결과를 도출해 갔다. 한아름 작가는 몇 년 전부터 계속 작업하고 싶었던 작가다. 분야마다 훌륭한 예술가들과 함께 작업해서 영광이었다. 그분들의 열정과 지지 없이는 너무 힘들었을 것이다.

    또한 베트남의 프로듀싱 수준에서는 이 작품을 60분짜리 쇼케이스로 만드는 것을 상상하기 어려워했다. 또한 베트남 배우들의 경우, 우리나라 현재 활동 상황과 많은 차이가 있다. 베트남은 여전히 배우들이 극장, 드라마 배우 등 외부 활동들을 겸하면서 인지도를 갖고 있는 분들이 많았다. 연출이 배우를 오디션 없이 결정하는 방식이다. 그래서 배우 오디션을 한다고 하니 놀라워하며, 자신이 평가받는 것에 대해 충격을 받았다. 많은 문화적 차이와 제작 방식의 차이들에서 오는 오해들을 줄이기 위한 노력, 오해를 풀어가는 과정이 있었다. 그 과정을 통해서 베트남 배우들은 한국 프로덕션 시스템에 대한 배움과 이해, 존경하는 마음도 갖게 되었다고 했다.

    이 안에서 이루어진 물리적 결합, 화학적 결합이 발효되어, 이 작품이 가진 독특한 색과 맛. 폭발성을 가져왔다고 본다. 배우들이 잘 준비되었다. 작년 시범공연 때보다 훨씬 수준이 높아지고 깊어졌다. 같은 배우들이 끝까지 함께 했다. 베트남 배우들께 진심 어린 감사를 전한다.

  • 앞으로 어떤 계획이 있나?

    베트남 현지에서의 제작 발표회와 유통을 어떻게 할 것인지 계속 회의 중이다. 이 작품으로 내년부터 국내·외 관객을 많이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한다. 내년에 베트남 내에서 어떻게 현지화하고 초연할지는 남겨진 과제이다. 이 작품이 베트남에 뿌리내려서 사랑받고 베트남 투어도 하고, 국민적인 사랑을 받은 작품이 되길 진심으로 바란다. 이런 계기를 통해서, ACC와 프로듀서라는 직업도 알려지길 바란다. 한국과의 국제교류 협력으로 어떠한 예술적 가치를 만들어 갈 수 있는지도 알리고 싶다. 프로듀서로서 욕심이겠다.

| ACC 국제 공동 창·제작 공연사업 |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은 아시아문화자원을 창작 원천으로 삼아 창의적, 실험적인 콘텐츠를 창·제작하여 아시아의 가치를 세계 속으로 확산시키고자 합니다. ‘국제 공동 창·제작 공연사업’은 국내외 예술가와 제작자, 기획자가 교류·연구·창작하는 콘텐츠 창·제작 선순환 체계를 활성화하고 공감할 수 있는 동시대적 주제와 공연예술의 아시아 성을 탐구하고자 기획되었습니다.

1)원아시아마켓 : 한국 공연 시장 및 사업의 발전을 위해서는 명품 콘텐츠, 명품 지적재산권 등을 확보, 제작하고 내수시장뿐 아니라 글로벌 시장을 대상으로 장기적인 유통을 하여 지속적인 수입을 창출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에 ‘원 아시아 마켓’이라는 개념은 한국, 중국, 일본, 시장 및 주변 싱가포르, 홍콩, 대만, 앞으로 태국, 성장 중인 베트남을 포함한 여러 개의 어떤 국가들로 이어지는 시장을 형성하여 서로 연결, 상호 협력, 발전하는데 기여하고자 하는 하나의 아시아 시장 형성을 의미한다.




 

by
천윤희 (uni94@hanmail.net)
Photo
디자인아이엠 포토그래퍼 송기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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