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박스는 어떤 공연을 기다리고 있을까?

아시아문화칼럼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예술극장 극장 1 외부와 내부 모습. ⓒ국립아시아문화전당(외부 사진 Timothy Hursley)
빅도어를 열면 야외공간과 연결된다.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예술극장에는 국내에서 가장 큰 규모의 블랙박스 공연장이 있다. 블랙박스 공연장은 그 이름처럼 텅 빈 상자의 모습이다. 무대와 객석이 마주 본채로 자리를 고정하고 있는 프로시니엄 형태(또는 이탈리아식 극장)와는 형태와 기능면에서 전혀 다르다. 외부에서 온 손님에게나 우리와 새 공연을 제작하는 연출가들에게 극장을 소개하는 자리가 자주 있는데, 극장만큼이나 묵직한 문을 힘겹게 열고 블랙박스 안으로 들어가면 십중팔구 ‘우와!’ 하는 탄성이 쏟아진다. 거대한 이 공간은 예술가들에게 도전을 불러일으키기도, 그들을 압도하기도 한다. 손님들에게 극장을 소개하던 어느 하루는 그들을 다시 문 밖으로 안내하고, 마지막으로 문을 닫고 나 오면서 다시 홀로 텅 빈 블랙박스를 바라보다 생각했다. 이 블랙박스는 어떤 공연, 어떤 예술가, 어떤 관객을 기다리고 있는걸까?

프랑스의 연출가이자 시노그라퍼 Scenographer*였던 주이 루베는 “극장은 무대와 객석이라는 두 영역으로 구성된 악기다. 객석과 무대의 연결 방식에 따라 무대와 객석은 매번 다른 결정체, 다양한 ‘연극 공간 다이어그램’을 만든다.”고 했다. 블랙박스에서 공연을 한다는 것은 텅 빈 공간을 어떤 새로운 상상력, 어떤 서사와 예술적 형식으로 채울 것인가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무대와 객석, 즉 공연과 관객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할 것인가의 문제이기도 하다. 블랙박스에서 관객은 프로시니엄에서와는 전혀 다른 경험을 하게 되고, 좀 더 능동적인 다른 태도를 요구받기도, 공연연행의 참여자로서 다른 위치에 놓이게 된다.

* 시노그라퍼 공연을 위한 공간을 구상하는 역할, 다양한 시각적 효과와 건축적 공간감을 활용해 공연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여 독자적인 의미를 구성함

먼저, 프로시니엄에서의 관극 경험을 떠올려 보자. 관객은 자신에게 배정된 객석에 ‘갇혀’ 주로 정면에 위치한 무대를 꼼짝없이 응시한다. 공연이 진행되는 한 두 시간 동안 눈앞에 펼쳐지는 광경을 선망과 존경의 시선으로 보게 되지는 않는지. 연극에서든 음악회에서든 프로시니엄 무대에 오른 예술가들은 주로 비루투오소Virtuoso*로 여겨진다. 개인적 경험이지만 나는 그들을 보면서 인간 존재에 감탄하곤 한다. 나는 그들의 능력과 노력에 감탄하고, 나 스스로를 더 단련해야겠다는 감정을 느끼며 극장을 나온 적이 많다.

* 비루오토소 뛰어난 기교를 보여주는 거장 음악가, 예술가에게 붙여주는 칭호

음악회 연행을 비판적으로 검토하는 음악학자 크리스토퍼 스몰은 “현대의 음악회는 생산자(연주자)와 소비자(청중)의 엄격한 분리를 통해 효율성을 강조하는 분업화된 근대적 생산 체제를 반영한다.”고 했다. 음악회에 대한 그의 기호학적 분석이 다소 지나치게 느껴질 수 있지만, 실제로 나는 무대 위의 비루투오소를 바라보며 더 멋진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다짐하곤 한다. 나는 스스로 생산력을 촉진시키는 근대적 인간이 되어가는 것은 아닌지. ‘근현대’ 음악회의 기획이 성공한 것일 수도.

2023 예술극장 창·제작 공연 <시간을 칠하는 사람>. ⓒ국립아시아문화전당
[바로가기] <시간을 칠하는 사람> 공연 정보(2023. 5. 17. 실연)

블랙박스와 잘 화합한 공연은 관객에게 다른 체험을 선사한다. 2019년부터 매년 5월에 우리 블랙박스에서 공연되고 있는 ACC 창·제작 공연 <시간을 칠하는 사람>. 블랙박스의 건축을 작품의 기초로 삼았다고 할 만큼 극장과 유기적으로 연동하는 공연이다. 90석 규모의 이동형 객석(2023년부터 140석으로 확대)이 극장의 사면을 회전하면서 이야기는 전개된다. 이동형 객석을 극장의 가장자리에 위치시키고 객석이 극장 벽을 마주할 땐 일상적인 회상 장면을, 객석의 시선이 극장의 광활한 면으로 이동했을 때는 주로 주인공 머릿속 상상의 세계를 보여준다. 거대한 극장의 매커니즘을 공연의 내용과 형식 안으로 끌어들인 이 공연에서 관객은 사면으로 이동하며 역사의 능동적 경험자로 자신의 위치를 인식하게 된다. 하지만 거의 마지막 순간, 탱크의 굉음과 함께 깔고 지나가는 듯 이동형 객석이 쓰러진 한 여인의 육체 위를 미끄러져 갈 때 관객들은 사실 우리 모두가 무력한 방관자였을 수도 있음을 느낀다. 그 낙차가 주는 충격. <시간을 칠하는 사람들>의 블랙박스에서 관객은 이동식 객석에 앉아 자신은 어떤 시민인지, 또는 어떤 시민이 될 것인지 끊임없이 자신의 위치를 갱신해 간다.

2022 몬트리올 시나르비엔날레 <until we die >. ⓒ국립아시아문화전당

관객들에게 훨씬 적극적인 역할을 요구하는 공연(또는 블랙박스)도 있다. 작년 몬트리올 시나르비엔날레에서 관람한 < until we die >라는 작품. 우리 극장과 비슷한 규모의 창고형 공연장인 Arsenal art contemporain에서 열린 써커스와 극이 접목된 이머시브 공연 Immersive Performance*이었다. 관객을 위한 객석은 따로 없다. 다양한 장면들이 블랙박스 안의 곳곳에서 산발적으로 진행되고, 관객들은 극장 안을 자유롭게 이동하며 본인이 보고 싶은 장면을 취사선택하며 공연에 참여한다. 서사 중심으로 장면들을 엮어가도 되고, 써커스와 음악 중심으로 콘서트를 즐기듯 공연을 가볍게 즐겨도 된다. 그 안에 1,000명의 관객이 있었다면, 각각의 경험이 다를 것이기 때문에 1,000개의 서로 다른 공연이 만들어지는 셈. 자유로운 블랙박스 안에서 관객은 자신만의 공연을 만들어 가는 연출자의 권한까지 부여받았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관객들이 무대세트에 앉거나 올라서거나 자유롭게 접근할 수 있었던 점, 관객의 모이고 흩어지는 흐름들이 또한 장관이었던 점을 생각하면 관객들은 이 공연에서 배우의 역할까지도 부여받았던 것 같다.

* 이머시브 공연 관객의 '경험'을 중심으로 만드는 공연, 관객은 공연의 적극적인 참여자로 때로는 공연의 방향성을 이끌기도 함

일반적인 프로시니엄이 무대와 객석, 예술가와 관객의 경계를 분명히 하는 것과 비교했을 때 관객의 자리가 고정되어 있지 않으며 관객이 연출가와 배우의 역할을 넘나드는 이 공연이 시사 하는 바는 크다.

우리 블랙박스는 어떤 공연을 기다릴까? 우리 블랙박스는 어떤 공연을 통해 어떤 방식으로 관객들과 관계 맺기를 기다릴까? 극장에 ‘우와!’ 하는 탄성과 함께 입장했던 우리는 결국, 블랙박스 안에 프로시니엄을 짓는 방식을 택하곤 한다. 프로시니엄 형식이 우리에게 주는 직접적인 전달력과 감동의 효과는 말할 것도 없다. 하지만 블랙박스는 그 자신의 개성을 살린 새로운 방식으로 관객들과 만나기를 기다리고 있지 않을지. 프랑스 시인이자 극작가였던 발레르 노바리라의 말에서 다시 출발해 보려고 한다.

공간은 시작점이다. 공간은 너와 간격을 만든다 – 공간은 동사다 - 그리고 공간은 우리 앞에, 우리 주위로, 우리 위에, 사물 사이에 간격을 만든다 - 공간은 활동적이다. 결코 죽은 받침대가 아니다 - 공간은 능동사다.

[바로가기] 시간을 칠하는 사람 공연 기록

참고문헌

최유준(2016). 크리스토퍼 스몰, 음악하기. 커뮤니케이션북스.
마르셀 프레드퐁(2017). 시노그라피 소론. 권현정·올리비아잔 코헨 옮김. 연극과 인간(2021).

by
정하나(국립아시아문화전당 공연사업과 학예연구사)
Photo
ACC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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