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C를 《내려다 봄》 속에서

포토 에세이

나는 보폭이 큰 데다 걷는 속도가 빠른 편이다. 나와 처음 걷는 이라면 말하곤 한다.

“걸음이 왜 그렇게 빨라요?”

“맞아요. 그런다고들 해요”

숨을 고르고 함께 걷는 사람들을 바라보면서 멈춤과 걷기를 반복한다. 여유로운 표정, 환하게 웃으며 기다린다.

점심시간을 이용해 틈틈이 국립아시아문화전당(ACC) 라이프를 즐긴다. 점심을 빨리 먹고 남은 시간 동안 일터 가까이에 있는 ACC에 들러 전시를 보거나 주변을 산책한다.

어떤 날엔 <뷰폴리>

미셀 드 세르토(Michel de Certeau)는 말한다,

‘세계무역센터의 꼭대기에 올라가 있는 것은 도시의 지배력에서 풀려나는 것이다.
익명의 법칙에 따라 거리들은 신체를 계속해서 포위하지만,
신체는 더 이상 이 거리들에 얽매이지 않는다.
저 위에 올라간 사람은
우리를 매혹하는 세계, 우리가 ‘사로잡혀’ 있던 이 세계를
우리의 눈 밑에 있는 텍스트로 만든다.’

- <일상의 발견>, 2023. 문학동네. 신지은 옮김 -

광주 <뷰폴리(View Folly)>가 그랬다. 점심에 광주영상복합문화관 1층에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광주폴리 인포센터(6층)에 도착해 루프탑(Roof Top)에 다다르면 탁 트인 공간에서 ACC가 압도적인 느낌으로 다가온다. 저 멀리 무등산,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전경과 광주 구도심, 광주의 근경과 원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광주폴리는 광주디자인비엔날레를 계기로 2011년 11개의 어반폴리로 시작 됐다. 뷰폴리 & 설치작품 <자율건축>은 ‘도시의 일상성’을 핵심 개념으로 진행된 광주폴리 3차 프로젝트로 문훈과 리얼리티즈:유나이티드(realities:united)의 얀 에들러(Jan Edler)와 팀 에들러(Tim Edler)에 의해 설치됐다. 핫핑크와 레몬의 선명한 색 스트라이프로 뒤덮인 계단과 전망 데크 사이사이로 도시 풍경들이 시원하게 펼쳐진다.

전일마루 뷰

오랜만에 만난 L과 함께 김희정 감독의 영화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를 봤다. 광주와 폴란드 바르샤바에서의 상실과 애도의 여정. 영화 속엔 익숙한 지명 그리고 장소가 많았다. 영화 속 해수가 스케이드보드를 타고 질주하는 전일마루에서 보던 뷰(View)가 눈에 들어왔다. 내친김에 L과 함께 전일마루가 있는 전일빌딩245로 향했다.

ACC 건너편에 자리한 전일빌딩245는 광주의 과거와 현재의 시간이 교차하는 곳이다. 전일빌딩이 들어선 금남로 1가 1번지는 일제강점기에 인쇄소가 있던 곳이다. 이후 호남신문과 광주일보 등 호남 언론사 5개가 태동한 공간이다. 1968년 건립된 전일빌딩은 신문사 외에도 방송국, 미술관, 도서관, 다방들이 들어서며 광주시민과 추억을 공유했다.

전일빌딩은 철거 위기를 겪기도 했다. 그렇지만 5·18민주화운동 당시 헬기 사격 흔적이 발견되며 4년 남짓 리모델링을 거쳐 2020년 5월, 전일빌딩245로 다시 태어났다. ‘245’는 빌딩에서 발견된 탄흔 개수이기도 하다. 전일빌딩245 로고 정중앙에 있는 원도 탄흔을 형상화한 것이다.

“저기, 시계탑 있잖아 ‘시계탑은 5월의 진실을 알고 있다’는
독일 공영 방송(ARD)의 위르겐 힌츠페터(Jürgen Hinzpeter)의 보도에 놀란 신군부가
1980년 중반 어느 날 한밤중에 시계탑을 몰래 서구 농성광장으로 옮겼었다가
35년 만에 지금 저 자리로 온 거야”

“그랬구나”

시계탑에서는 매일 5시 18분에 ‘임을 위한 행진곡’이 울려 퍼지면서 대한민국의 민주화를 위해 희생한 분들을 추모한다. 전일마루에서 내려다본 빛바랜 사진 속 5·18민주광장에 있는 시계탑은 이제 역사적 기념물이기 이전에 일상적 풍경을 이루고 있다.

어두워지면

1박 2일 일정으로 광주에 온 R과 함께 저녁 식사 이후 숙소 루프탑에 올랐다.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어느 늦가을의 오후를 떠올렸다.

“저기 하늘마당”

“그렇지”

“돗자리 깔고 캔맥주를 마셨던가?
옆 사람에게 방해되지 않을 만큼 소리를 내며 노래도 불렀던 거 같아”

까슬까슬한 풀들이 맨발을 간지럽혔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랬다. 하늘마당에 누워 미디어 큐브 이미지를 야외극장 삼아 바라보는 것 좋았다.

저 멀리 문화정보원 옥상정원의 채광정 불이 반짝였다. 빛의 도시 광주를 의미화 한 우규승 건축가의 ‘빛의 숲’ 설계 개념이 담겨 있다. 채광정은 낮에는 자연광을 끌어들여 지하 실내공간을 환하게 비춰주는 창문 역할을, 저녁에는 실내의 빛이 밖으로 뿜어져 나가 옥상정원을 밝혀주는 가로등 역할을 한다.

해가 지고 어두운 밤 내려오면 더 아름답게 빛나는 광주의 야경, 그 속에서 마주한다.

“아 가을이 저만치 왔네”





by
이유진 (npan211@korea.kr)
Photo
이유진, 디자인아이엠 포토그래퍼 송기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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