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을 사랑하는 관객과 미래 축제 기획자들을 위한
선물 같은 축제가 되길

제14회 2023 ACC 월드뮤직페스티벌

코로나가 지난, 월드뮤직과 함께하는 해방의 여름밤

낮에는 여전한 태양의 열기가 뜨겁지만, 밤에는 기분 좋은 선선함이 느껴지기 시작한 즈음 여름밤의 뮤직페스티벌은 신나는 음악과 춤으로 일상의 스트레스를 날려 보내고, 나 자신에게 자유를 줄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매년 열리는 축제를 기다리는 마음은 자연스레 팬덤 층을 형성한다. 지난 2~3년여간 코로나 방역 지침 속에 현장 행사가 조심스러웠던 기간이 지나고, 올해 8월 25일부터 27일까지 열린 ACC월드뮤직페스티벌 공연장에는 마스크 쓰지 않은 관객들로 가득 채워졌다. 다양한 아티스트들의 공연마다 환호하는 관객들을 보면서, 그 긴 코로나 기간을 통과해냈었구나 하는 안도감과 함께 이런 날들이 다시 오다니 하는 맘 깊은 해방감이 기분 좋게 스며든다. 본격 대면 축제가 시작되었다.

시대와 문화, 고유 악기의 소리 장르를 넘어선 협연 프로젝트 tHinG

올해 축제에는 국내·외 최정상급 및 신진 아티스트 30여 개 팀이 참가했다. 개인적으로 기존에 접하기 힘든 월드뮤직도 인상적이었지만, 우리나라 전통음악에 기반한 새로운 시도를 펼치는 아티스트들과 대중음악과의 접목도 인상적이었다. 예술극장 2는 유일한 실내 공연장으로 활용되었는데, <ACC판>은 이번 박애리 씨 공연의 대표 작품명으로 이 시대 젊은 판소리꾼들이 기존 판소리의 여러 대목을 새롭게 재구성하여 선보일 수 있도록 2021년부터 월드뮤직페스티벌에서 기획한 무대이다. 단순한 초청 공연이 아니라 올해 월드뮤직페스티벌을 위해 특별히 제작된 공연이 올려졌다. 국경과 장르를 넘어 다양한 배경의 예술가들이 함께하는 ‘프로젝트 띵’, 남도 국악의 진수를 관람할 수 있었던 ‘남도레거시’, 소리꾼 박애리와 팝핀 현준이 출연한 기획공연 <ACC판> ‘춘향이로소이다’가 그렇다.

특히 개인적으로 프로젝트 tHinG은 40년 이상 피아니스트로 활동한 박종화, 거문고로 정통과 현대를 넘나드는 산조 이수자인 허윤정, 작곡가이자 전주 음악 연주자인 가브리엘 프로코피에프의 공연이 인상적이다. 가브리엘 프로코피에프는 클래식과 작곡을 전공하고, 왜 젊은 사람들이 클래식을 전공하지 않는가 고민하다가 그들이 있는 클럽으로 들어가 클래식과 전자음악을 접목한 기획을 해왔다고 한다. 16세기의 거문고, 18세기의 피아노, 현대의 전자음악 등 시대와 문화와 소리를 넘어선 이날 공연에서는 건반이 아니라 피아노 줄을 때리고 튕기는 박종화의 연주, 펑키한 사운드의 거문고, 그와 함께한 전자음악이 어우러진 특별한 협연을 경험할 수 있었다. 가히 월드스테이지라 할만하다.

광주를 위해 만든 곡 <봄의 춤>을 처음 발표한 뮤지션 이나래

ACC스테이지는 상대적으로 깊이 있게 사유할 수 있는 음악, 작가주의적이고 새로운 실험들이 있는 아티스트들이 배치되어 있다. ‘이날치’의 보컬로 활동하기도 했던 이나래는 오랜 기간 수련한 전통판소리를 바탕으로 전통음악뿐만 아니라, 현대음악, 해외음악가들과의 협업, 창작 음악극, 현대 무용극 등 다양한 장르와 무대에 도전하고 있는 소리꾼이다. 그는 판소리의 이야기와 음악의 요소를 해체하고 지극히 개인적인 시각과 방식으로 재조립하는 과정을 통해 전통을 학습하면서 느꼈던 위로와 공감을 듣는 이에게도 재현해 내고자 하는 목표로 음악을 만든다고 했다.

올해 무대는 새로운 곡 작업을 선보이는 무대라, 이나래 본인에게 의미가 크다고 했다. 특히 광주를 위해 만든 곡 <봄의 춤>을 광주에서 처음으로 소개했다. 현대전자 음악 사운드, 판소리 창법에 얹은 현대적 가사, 흐느적거리듯 춤을 추며 부르는데 그 가사는 광주민주화항쟁에 대한 오늘을 사는 이의 목소리다. “죽음의 춤 위에 우리는 삶의 춤을 춘다.” 반복되는 가사가 오래 남는다.

월드뮤직 스타들의 특별한 무대와 함께 환호하며 뛰며 춤추며 하나 되는 축제

예술극장 극장 1에서 공연되는 빅도어 스테이지는 가장 큰 무대이다. 그만큼 사운드와 음악적인 컬러, 관객과의 소통 등 주로 해외 월드뮤직 빅 네임 스타들이 서는 무대이다. 태평양&인도양에 자리 잡고 있는 16개의 섬의 100명 이상의 뮤지션들과 함께 음악을 통해 대양을 공유하고, 앞으로 다가올 세대를 위하여 음악을 하는 대만의 팀 Small island Big Song은 독특한 섬 음악과 댄스가 흥겨우면서도 또한 섬의 생태 환경 문제들을 언급한 영상 등이 관객들의 인식을 새롭게 하는 공연이었다.

Arat Kilo*Mamani Keita*Mkie Ladd 는 에티오피아 재즈에 특별한 애정이 있는 프랑스 뮤지션들로, 드럼, 베이스, 타악기, 트럼펫과 키보드, 색소폰, 플루트, 보컬 등 다양한 악기를 활용해 폭발적인 연주와 무대를 선보였다. 특히 무대에서 내려와 작은 여자 어린아이의 눈을 마주치며 노래하고 춤추는 특별한 순간들에는 관객들이 환호했다.

가수이자, 퍼커셔니스트(Percussionist, 타악기 연주자), 작곡가, 기획자로 활동하는 쿠바의 유명한 연주자 Brenda Navarrete와 9인의 밴드는 쿠바만의 흥겨움을 느낄 수 있는 공연을 선보였다. 도시 축제의 특징상 관객들이 주로 토요일에 집중되는데, 토요일의 마지막 무대는 ‘장기하’였다. 동시대 음악적 감수성에 국어의 말맛을 더한 독창적 장르를 형성한 무경계 아티스트 장기하의 무대에 대한 관객의 열광은 여름밤의 정점을 달렸다. 주말에는 특히 가족 단위 관객들이 많이 참여하였다. 뮤지션의 노래와 몸짓, 지시와 함께 어우러져 다리 굴려 뛰며 손 흔들며 하나가 되는 관객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월드 뮤직의 다양성에 광주의 지역성을 살리고 녹이는 기획

축제 기간 워크숍을 마치고 이동 중인 허윤정 예술감독 (서울대 국악과 교수) 인터뷰했다. 2020년부터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월드뮤직페스티벌 예술감독을 맡아온 허윤정 감독은 비대면, 위드 코로나를 지나, 올해야말로 완전체 월드뮤직페스티벌의 시작을 알린다고 말했다. 허 감독은 세상의 모든 음악을 들려주는 월드뮤직페스티벌이라 할지라도 우리가 지향하는 바를 보여주기 위해 남도 광주 지역의 좋은 음악, 광주만의 차별화된 지역성을 살리고 녹여낸 한국만의 월드뮤직페스티벌을 지향한다.

월드뮤직 시장에서 한국 전통문화가 차지하는 부분이 크기에 단지 초청만 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가 우리의 우수한 음악을 보여주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그래서 올해 월드뮤직페스티벌에서는 판소리 현대음악 재창조, 남도 레거시, 살아있는 전통인 명인들의 소리를 제대로 듣는 무대를 마련했다. 지난 축제들을 돌아볼 때 10년 동안 전통음악을 제대로 선보이지 않음을 발견했다. 해외 좋은 월드뮤직페스티벌에서는 각 나라 명인 전통음악 연주한다는 점에서 착안, 이에 더해 재즈·클래식·민속음악 등 다양성을 보여주기 위해 노력했다 한다.

아티스트와 관객이 기다리고 신뢰하는 축제로 질적 도약을 위한 과정

올해 행사 기획의 주안점은 작년 3개의 무대를 5개의 무대로 늘이면서 규모를 더 크게 한 것. 특히 일부를 제외하고 주로 무료로 진행되었던 행사에 본격 유료화로 진행한 것이다. 주요한 무대와 공연은 다 유료였다. 허 감독은 유료화의 진정한 의미에 대해 언급했다.

“객석에 앉아 관람하신 분들은 티켓 사서 오신 분들인데, 그분들께 뿌듯한 감사함을 느낀다. 명성을 쌓은 좋은 축제들일수록, 그 뒤에는 기다려 찾아가는 관객들이 있다. 유료화는 단지 돈의 문제가 아니라 축제의 건강성과 성숙, 지속가능성을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과정으로서 중요하다. 충성도 있는 관객이야말로, 축제가 지속할 수 있는 요인이며 이 관객들을 연구하면서 축제를 기획해 가야 한다. 관객이 아티스트를 존중하고 기다리듯, 아티스트들도 이러한 관객들에 대한 약속과 책임감으로 더 특별한 공연을 보답하게 된다. 좋은 축제는 그러한 관객과 아티스트가 서로 기다리는 약속과 신뢰가 있다. 자본의 논리보다는 보다 수준 높은 축제로의 한걸음이다.”

축제의 역사와 함께 성장하는 미래 축제음악가들을 위한 선물

올해 월드뮤직페스티벌에서 특별히 예술가 워크숍, 시민 대상 워크숍이 눈에 띄었다. 각 나라의 다른 음악적 언어를 학습하는 것, 우리는 음식·문화·역사 등 잘 알지 못하는 각 나라의 다양한 언어를 이해하고자 배우고 노력한다. 음악도 또 다른 언어이므로, 그 언어를 배우는 기회는 중요하다. 해외에서는 보통 두 번 공연하면 꼭 워크숍 등을 요청한다고 한다. 그런 의미에서 아프로쿠반1) 음악과 춤의 '브렌다 나바레트', 아일랜드 춤과 노래를 배워보는 '스몰 아일랜드 빅 송'의 워크숍, 전통과 현대음악을 결합한 '보이 아키', 발칸 지역 음악과 리듬을 선보이는 '네이키드'의 워크숍 등은 많은 시민과 뮤지션들이 참여하여 배우고 즐기는 시간이 되었다.

허윤정 감독은 작년부터 진행해 온 미래 축제기획자, 축제음악가를 키워내는 <WMF Festa A to Z> 워크숍에 깊은 애정을 표했다. 이 워크숍 프로그램은 ACC월드뮤직페스티벌을 꾸려가는 기획자와 출연 아티스트들의 생생한 이야기를 전해 들으며 페스티벌의 A부터 Z까지 심도 있게 알아봄으로써, 예술가로서의 앞날을 보다 선명하고 폭넓게 바라볼 수 있도록 해주는 시간으로 기획하였다. 행사 기간 동안 광주에 머물면서 축제기획자 특강과 함께 공연도 보고, 워크숍도 듣고, 멘토링도 받는다. 올해는 전국의 다양한 지역에서 12명을 선발하여 교육을 진행하였다.

“AtoZ가 작년 1기, 올해 2기이다.
내년에는 2기들이 선배가 되어 축제에 같이 참여하고
발런티어가 되고, 패밀리가 되고, 월드뮤직페스티벌과 시간을 보내며 성장하게 된다.
이들이 10년 지나면 이 축제의 역사와 함께하며 세대 간 교류하게 될 것이다. 또한, 이들이 미래의 페스티벌을 만들어갈 인재가 된다는 것은 ACC 월드뮤직페스티벌의 또 하나의 선물이자 상징이 되길 바랍니다.”

허윤정 감독

관객에게 감동하고, 그런 관객들을 위한 좋은 축제를 기획한다는 것

“폭염주의보가 내린 행사 날 오후, 내리쬐는 태양에도 불구하고 어린 자녀와 함께 와서 무대도 더운데 Oreka TX의 무대를 응원하는 모습을 보고 너무나 감동받았다.”라고 말하는 허윤정 감독에게 앞으로 ACC월드뮤직페스티벌이 가야 할 길에 대해 마지막으로 물었다.

“축제도 사람을 움직이는 것이다. 코로나 이후 축제의 양상이 많이 달라졌다. 상황에 맞게 유연하게 바뀌어야 사랑받는 축제가 될 것이다. 좋은 축제는 트렌드를 쫒아가기 보다는 한발 앞서 트렌드의 방향성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한 밤의 축제가 말초적인 즐거움을 넘어 재충전되고 힐링 될 수 있어야 하고, 춤추고 놀고 뛰는 것 넘어 음악가들의 주는 메시지의 의미와 가치가 함께 소통되는, 그런 좋은 음악가를 모실 수 있는 축제 기획을 하고, 또한 그런 축제를 기다리는 충성도 높은 관객이 만들어지길 바란다.”

1) 아프로쿠반 재즈(Afro-Cuban jazz)는 라틴 재즈의 초기 형태이다. 그것은 아프리카계 쿠바인들의 고전적 리듬과 재즈의 조화와 즉흥 연주의 기교를 혼합한다.




by
천윤희 (uni94@hanmail.net)
Photo
디자인아이엠 포토그래퍼 송기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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