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의 미술관, <아시아 파노라마>

아시아문화주간 수교기념 전시

몇 년 전 칼럼 계의 아이돌이라 불렸던 서울대 정치외교학과 김영민 교수는 “추석이란 무엇인가”라는 칼럼으로 많은 사람에게 회자된 적이 있었다. 누군가가 나에게 나의 정체성이나 본질에 대한 관심보다는 근황이나 행위에 대해 일종의 꼰대질을 하는 사람에게 ‘OO란 무엇인가‘라는 뜬금없지만 짐짓 냉소적인 대답으로 반응하라는 칼럼 내용이다.

예술이란 무엇인가!

광주에도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이하 ACC)이라는 멋지고 아름답고 거대한 문화예술공간이 있다. ACC와 바로 맞닿아 있는 동명동은 MZ세대들의 화려한 놀이터가 되었고, ACC의 하늘마당 정원은 자연스럽게 그들이 즐기는 동명동 문화의 한 장이 되어 날씨가 좋은 밤이면 젊은이들의 즐겁고 에너지 넘치는 축제의 장소가 된다. 근데 드라마틱하게 하늘마당 정원 아래 ACC 내부 공간으로 들어서면 그런 다이내믹이 사라지고, 침묵과 정적인 고요함으로 가득찬 공간으로 변모한다. 가끔 그런 의문이 든다. 왜 예술의 공간은 이렇게 단절되어 있고, 경계 지워져 있고, 정적인 공간이 되었을까. 김영민 교수의 칼럼 제목처럼, “예술이란 무엇인가”라고 근본적 질문을 던져본다.

이 글을 쓰는 8월의 크리스마스 8월 25일에도 ACC에서는 다양한 전시와 행사가 진행하고 있거나 예정되어 있다. <사유정원>, <몰입미감>, <빛의 숲>, <가슴에 묻은 오월이야기>, <미나스의 길>, <월드뮤직 페스티벌>, <함께 만나는 아시아 문학>, <지젤> ... 그리고 지금 소개할 <아시아 파노라마> 전시까지.

<아시아 파노라마> 전시는 올해 한국과의 수교 50주년인 인도와 인도네시아 작가를 초청하여 한국 작가와 함께 ACC 전당 안 대나무 정원에서 전체 길이 60m에 달하는 벽화를 협력하여 구성 전시된다. (인도네시아 인디게릴라(팀명), 인도 아제이, 한국 황인숙 작가)

행진하라!

인도네시아 인디게릴라는 축제의 퍼레이드를 애니메이션 스타일의 장난감스러운 단순한 상징과 패턴으로 디자인하여 전통적인 것들을 현대적으로 변형시켜 구성한다. 상징과 패턴은 전통적인 그림자 인형극(wayang kulit, shadow puppets)과 신체의 형상에 기원을 둔다. 자바 그림자 인형극에서 나오는 세가지 아이콘, 가렝(Gareng), 페트룩(Petruk), 바공(Bagong)과 퍼레이드 처음과 중간, 마지막을 담당하는 여성 캐릭터, 그리고 함께하는 동물의 캐릭터와 식물의 패턴들 등등, 이 모두는 어떤 존재의 배제 없이 평화롭고 조화로운 삶을 향한 지구적, 전 우주적 행진을 상징한다.

콘택트 하라!

황인숙 작가의 퓨쳐스케이프(Future Scape: 위대한 마음들의 초연결)는 언뜻 보면 증식하는 세포(Cell)가 연상되는 미니멀하고 기하학적 도형들의 군집들이다. 작가의 상상 산물이지만, 각각 자신의 이름과 역할을 가지고 있는 존재들이다. 일반적으로 작품은 한정된 캔버스라는 틀 안에 구획되어 존재하지만, 이 작품은 벽화가 그려지는 벽을 넘어 바닥까지 공간 전체로 확장된다. 작가의 의도는 작품이 단순한 패턴의 나열과 제시가 아닌, 전시 공간에서 함께 하는 관람객과 시공간을 초월하는 콘택트(contact, 접촉/연결)에 대한 열정과 의지가 담겨있다.

공명(Co-Echo)하라!

인도 아제이 작가의 벽화 모티브는 고대 인도의 전설적 시인 발미키(Valmiki)의 시와 윤동주의 시에서 나온다. 발미키 시인은 수컷 학이 사냥꾼에 의해 살해되는 것을 목격한 슬픔을 이야기하는데, 시간과 장소를 거슬러 한국의 윤동주도 <산울림>에서

“까치가 울어서
산울림, 아무도 못들은
산울림, 까치가 들었다
산울림, 저혼자 들었다
산울림”

이라고 발미키와 같은 상실의 고통과 슬픔을 노래한 것을 통해 인도와 한국의 인류사적 연결고리를 공통-울림(Co-Echo)에서 찾는다.

모든 경계에는 꽃이 핀다.

- 함민복 -

ACC 내부이면서 외부 같은 공간, 대나무정원에서의 세 나라의 작가의 60미터 벽화는 일종의 경계 예술, 일상의 예술이라 말할 수 있겠다. 예술작품이, 특히 미술작품이, 캔버스라는 물질에 갇히고, 그 캔버스는 갤러리 공간에 갇히면, 상징적이면서도 역설적으로 예술은 게토화1) 된다고 감히 말하고 싶다.

<아시아 파노라마> 전시는 어쩌면 이런 예술의 게토화를 허무는 예술적 시도이고, 관람객으로 하여금 이 실내 정원을 산책하면서 함께 행진하고, 함께 콘텍트하고, 함께 공명하자고 가볍지만 부드럽게 넛지(nudge 팔꿈치로 슬쩍 찌르다) 하는 경계의 미술관을 지향하는 듯싶다. 미술관이 꼭 이래야 된다는 암묵적 묵계를 허물면서, 우리 일상이 예술이 되고 문화가 되는 자유로운 공간을 슬그머니 제시하고 있다.

이제 우리는 함께 그 공간을 소요유(逍遙遊 슬쩍슬쩍 어슬렁거리며 즐기자) 하면 된다.

1) 특정 민족이 사회의 주류 민족과 고립되어 살아가는 것




 

by
구태오 (rnxodh@naver.com)
Photo
디자인아이엠 포토그래퍼 송기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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