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지는 장소, 지워지는 삶 : 기록하기

ACC웹진 도시문화 주제칼럼

도시 풍경은 늘 변화한다. 조금씩 그러나 빠르게 변화하는 풍경을 보면서 우리가 뿌리내리고 있는 도시의 기억들이 지워지고 있음을 경험하고 있다. 그 도시에서 우리가 가지고 있었던 기억은 새 아파트와 새 건물들로 대체된다. 사라지는 장소를 보면서 왠지 모를 씁쓸한 기분이 드는 건, 과거 그곳에 살았던 나도 함께 사라지는 것 같아서일까? 그렇다고 도시가 영원토록 변화하지 않기를 바라는가? 그것도 아닐 것이다. 우리는 과거의 풍경이 사라지는 것에 대한 아쉬움, 그리고 더 쾌적하고 더 좋은 곳에 살고 싶은 욕망 그사이 어딘가에서 딜레마에 빠져있다.

도시에서 내몰리는 삶

그 도시의 기억이 사라진다는 것은 그것이 과거의 일일지 모르나 그것이 현재가 되는 사람들도 있다. 재개발로 인해 현재 자기 삶이 송두리째 사라지는 사람들이다. 우리는 자본주의라는 힘으로 개인의 기억, 공동체의 기억, 그리고 삶 자체가 지워지는 것을 경험하고 목도한다.

다큐멘터리 영화<고양이들의 아파트>(정재은 감독)는 자본주의의 힘의 논리로 내몰리게 된 다양한 존재들의 삶에 대해 고찰해 볼 수 있게 해준다. 서울 둔촌주공아파트 재개발을 앞두고 그 아파트에 오랫동안 살고 있던 고양이들이 강제로 내몰리는 상황과 이들의 이주 프로젝트를 담고 있다. 이를 통해 도시에서 오랫동안 형성되어 온 하나의 장소가 사라지면 도시생태계와 공동체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질문한다. 고양이들의 이야기는 마치 재개발로 인해 원치 않게 강제로 내몰리는 사람들의 이야기와 겹친다.

사라지는 도시 - 몸짓으로 기록하기

안무가이자 댄스필름1) 감독 송주원은 그 자신의 ‘몸’으로서 도시 풍경 속 사라지는 장소들을 기록한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그는 춤이 이루어지는 ‘무대’라는 공간을 실제 삶이 이루어지는 장소인 ‘도시’로 옮겨낸다. 그가 주목한 장소들은 북촌문화센터, 세운상가, 낙원상가, 옥인동, 보광동, 청파동, 장한평 등 재개발 지역이나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으로 용도가 바뀐 곳이다.

2014년부터 꾸준히 진행하고 있는 <풍정.각(風情.刻)> 시리즈는 처음에는 장소 특정형 공연으로 시작하여 현재는 댄스 필름으로 제작되고 있다. 바람의 뜻을 새긴다는 의미를 담은 ‘풍정.각(風情.刻)’이라는 제목처럼, 변화하는 도시 풍경에서 그 장소에 스며든 시간과 그 안에 담긴 이야기를 소환한다.

재미있는 지점은 도시 풍경이 가지고 있는 축적된 시간과 장소성을 춤(안무)으로 기록하는 것이 시작이었는데, 그것이 장소 특정적 공연으로, 다큐멘터리 영화로, 그리고 시각예술(퍼포먼스와 영상작업)로 다양하게 읽힌다는 것이다. 그는 공연예술과 시각예술 그리고 영화라는 장르를 넘나들며 그 경계에서 한계를 실험하는 중이다.

<풍정.각(風情.刻)-골목낭독회>는 서울 옥인동 골목 일대를 전문 무용수와 비전문 무용수가 함께 춤을 추며 곳곳을 누빈다. 사전 리서치 동안 그 장소에 대한 충분한 이야기를 듣고 걸으며 감각으로 체화하는 시간을 갖고 그것을 몸짓으로 표현한 것이다. 그곳에서 직접 숨 쉬고 느끼면서 그 장소에서 만난 질문들에 응답하며 과거의 응축된 시간을 만난다.

풍정.각(風精.刻) 골목낭독회, 댄스 필름, 17분 52초, 서울 옥인동 골목 일대, 2017

<풍정.각(風情.刻) - 푸른고개가 있는 동네> 역시 도시의 변화와 쇠락과 함께 독특한 장소성과 역사성을 담고 있는 곳이다. 일제 강점기 때는 일본식 가옥이 많이 세워졌고, 한국전쟁 이후에는 도시형 한옥, 그리고 70년대에는 양옥, 이후에는 다세대 주택과 연립주택까지 시간의 흐름에 따라 다양한 삶들이 중첩된 곳이다. 이제는 재개발 지역이 된 이곳에서 이들은 삶의 흔적들을 발견하고 몸짓으로 기록한다.

풍정.각(風精.刻) 푸른고개가 있는 동네, 댄스 필름, 15분 46초, 서울 청파동 골목, 2018
청파동의 봉제공장 태진사집 홍석이과 순홍슈퍼집 영선이는 마을을 돌아다니며 하루를 보낸다. 태진사에서 미용실, 봉제공장을 지나 600년 된 은행나무로, 누군가 살았던 언덕 위 빈집을 뛰어다닌다. 그리고 기차가 보이는 골목, 한옥과 양옥과 아파트가 교차하는 골목, 한국전쟁 때 시체를 쌓아두었다는 계단, 영선이네 집 옥상 빨랫줄까지 동네의 모든 장소가 놀이터이자 삶의 시공간이다. 도시 재개발이라는 사망선고를 받은 청파언덕에서 이 장소들을 넘나드는 그들과 이곳 삶의 흔적들이 반짝인다. 영선과 홍석은 내려다보이는 도시의 불빛에게 최승자 시인의 <청파동을 기억하는가>를 빌어 몸짓으로 노래한다. “그리고 지금, 주인 없는 해진 신발마냥 내가 빈 벌판을 헤맬 때 청파동을 기억하는가
우리가 꽃잎처럼 포개져 눈 덮인 꿈속을 떠돌던 몇 세기 전의 겨울을,”

- <청파동을기억하는가(1981)> 중에서 -
(2018년 제44회 서울독립영화제)

지워지는 삶 - 기억하기

송주원 감독의 또 다른 작품 <나는 사자다>는 성남 태평동을 배경으로 도시의 욕망과 폭력에 희생된 한 개인의 삶을 따라가며 기록한다. 1960년대 서울시의 도시정책으로 성남(당시 광주)으로 강제로 이주당한 사람들이 살았던 곳이다.

이전의 <풍정.각(風情.刻)> 시리즈가 그 장소가 가지고 있는 서사에 주목한다면, <나는 사자다>에서는 과거 태평동에 살았었던 한 개인의 서사에 집중한다. 한빛이라는 인물은 어린 시절 삶의 공간이었던 이 동네를 유령 같은 몸짓으로 배회한다. 마치 없는 존재가 되어버린 것처럼 삶이 지워진 이들의 몸짓을 대변하는 듯하다.

나는 사자다 출처 https://vimeo.com/372791338
국가의 욕망과 폭력이 만들어 놓은 20평의 땅은, 성남이라는 도시가 만들어진 배경과 그 과정에서 희생된 개인의 기록이자 상징이다. 1960년대 후반 시작된 서울시의 ‘선이주 후개발’ 정책으로, 어떠한 인프라 없이 성남(당시 광주)으로 강제 이주당한 사람들에게 주어진 20평에서의 삶은 성남시 태평동에 여전히 남아 있다. 태평동 다세대 주택촌은, 각자의 20평 옥상들은 개인의 삶이 존중되지 않는 마을에서 살아내고 이어간 누군가의 삶의 흔적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지금은 시민로로 불리우는 골목 안, '태평할 수 없는' 태평동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올해 28살이 된 한빛은 성악을 전공하는 학생이다. 그녀의 오늘과 3대에 걸친 할머니, 아버지, 그녀 각자의 이야기를 각 20평의 옥상에서 독백하며, 성남시 태평동 집에서의 시간을 소환하고 재구성해 본다. 평온한 듯 평온치 않은 땅 위에서 그들은 무엇으로부터 무엇을 지키려 했는가? 지키고자 했던 것은 무엇인가? 지킬 것이 있었던 사자와 지킬 것을 찾는 사자가 마주한다. 나는 한 빛이다. 나는 사자다.

- 송주원 -

재맥락화되는 몸의 언어

최근 작품 <휘이잉 hwi-i-ing>은 안무의 층위를 확장하는 또 하나의 형식실험으로 읽힌다. 이 작품의 배경이 되는 곳은 보광/한남동으로 동네의 경계를 두고 이곳에 흐르는 바람(wind)이자 바람(wish)이 ‘휘이잉 hwi-i-ing’이다. 과거에는 두 동네의 부동산 가격이 비슷했으나 현재에는 엄청난 격차가 생긴 만큼, 곳곳에는 보이지 않는 기도의 흔적들이 담겨있다.

독립된 9개의 채널이 자체 제작한 온라인플랫폼에서 순차적이고 병렬적으로 상영된다. 이 중 3개의 채널은 다른 작가와 협업 제작했다. 각각의 참여자(무용수 등)들은 보광동이라는 장소의 흔적과 신호를 찾아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각각의 해석이 안무가 된다.

<휘이잉 hwi-i-ing>은 관람자의 선택으로 영상의 순서와 중첩이 결정된다는 점이 독특하다. 이전에는 안무가의 안무를 수동적인 입장에서 바라봤다면, 관객이 안무에 개입할 수 있는 요소가 부여됨으로써 관람객은 서로 다른 결과물을 보게 된다. 안무가 몸의 언어로 구성된 서사가 재맥락화되는 것이다.

휘이잉 hwi-i-ing 출처 http://hwi-i-ing.com

그의 작업은 우리에게 묻는다. 우리의 삶과 기억이 담긴 장소들이 사라지는 것, 이대로 괜찮은 걸까? 도시가 사라진다는 것은 그 장소와 우리들의 과거, 그리고 그 안에 축적된 시간 사이에 담긴 이야기들도 함께 사라진다는 의미이다.

도시는 늘 변하고 그 안에서 그 변화를 감지하는 예민한 감각으로 시각예술로, 사운드 아트로, 영화로, 공연으로, 문학으로 기록되고 기억된다. 각자의 방식으로 치환된 저마다의 기억은 불완전하기에 오히려 생명력을 가지는 게 아닐까.

1)무용분야 전문용어, 무용을 영상으로 만드는 하나의 예술행위

 

by
소나영 (nayeongso@daum.net)
Photo
송주원 작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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