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동주 작가와 함께하는 내 마음속 지도 그리기

<시간과 공간을 담은 드로잉 워크숍>

우리는 간혹 난해하고 모호해 보이는 예술작품 앞에서 작가의 작품세계를 짐작해 보려 고개를 갸웃거리기도, 한참을 뚫어지게 바라보기도 한다. 아무리 들여다봐도 알 듯 말 듯 알쏭달쏭할 때도 많다. 그럴 때면 ‘아 예술은 원래 이렇게 어려운 거지’ 하며 개운치 못한 발걸음을 돌리기도 한다. 작가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어떤 방법으로 어떻게 작업을 한 작품인지 자상하고 다정한 설명을 들으며 작품을 만날 수 있다면, 아마도 작품을 이해하는 폭이 훨씬 넓어질 것이다. 더군다나 그 작업 방식을 직접 경험할 수 있다면 아마도 작가와 나의 거리는 한 뼘 더 가까워질 게 분명하다. 이렇게 예술가의 이야기를 직접 듣고 경험할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가 ACC에서 마련됐다.

ACC 기획전시 <걷기, 헤매기> 전과 연계된 프로그램<시간과 공간을 담은 드로잉 워크숍>에서다. <걷기, 헤매기> 전을 통해 ACC와 첫 인연을 맺은 강동주 작가가 안내자를 맡았다. 작가와 참가자들이 함께 호흡하며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고 새로운 창작물을 만들어 내는 시간 동안 묘한 연대감이 솟아나기도 하고, 슬며시 등을 토닥여 주는 따뜻한 위로가 흐르기도 한다. 워크숍은 강동주 작가가 자신만의 작품세계와 시각 언어를 찾아가는 이야기부터 시작된다.

저는 서울이라는 도시에서 태어나고 자라면서
매일 보고 걷는 도시 환경으로부터 영향을 많이 받았는데요.
특히 제가 성장했던 서울의 청량리는 개발의 결과로써
장단점이 분명하게 대비를 이루는 곳이기도 했어요.
그곳에서 오랜 시간 동안 개발의 뒤편으로 사라지고 지워지는 것들을 지켜보면서
무엇을 기억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그리고 또 기억은 어떤 형태로 남았을 때
현재에도 그리고 미래에도 위로할 수 있는지
그 방식에 관해서 관심을 두고 작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 강동주 작가 -

도시의 개발로 인한 변화와 불균형에서
‘시간’과 ‘공간’의 사유 싹터...

서울에서 태어나 줄곧 서울에서 살아온 서울 토박이 강동주 작가는 도시의 개발로 인한 변화와 그로 인한 불균형을 일상처럼 접하며 자라왔다. 빠른 속도로 새롭게 생겨나는 건물들과 그 뒤안길로 사라져가는 익숙했던 장소들, 화려함 속에 가려져 있는 낡고 녹슨 현실…. 하루하루 달라져 가는 도시 풍경들을 관찰하는 사이 ‘시간’과 ‘공간’에 대한 사유가 자연스럽게 싹터났다. 작가는 도시의 시간과 공간에 대한 자신의 사유를 표현하기 위해 처음에는 회화라는 방식을 선택한다. 유화 작품으로 도시 풍경을 그리는 작업을 몇 년 동안 이어갔지만, 생각만큼 도시라는 주제를 담아내기가 쉽지 않았다. 그렇게 회화 작업을 내려놓고 발견한 또 다른 길이 ‘드로잉’이다.

“회화의 역사 안에서 드로잉은 어떤 작품을 완성하기 전에 그리는 밑그림처럼 여겨지기도 하는데
저에게는 드로잉이 가지고 있는 연결성이 제가 시간과 공간의 측면에서 표현 영역을
확장해 나갈 수 있는 그런 기반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드로잉은 종이와 연필만 있어도 얼마든지 그리기가 가능하고,
내가 원하는 위치에서 원하는 만큼 보고 그릴 수 있다는 점에서
드로잉이 저한테 주는 해방감이 매우 컸던 것 같아요.”

- 강동주 작가 -

드로잉을 통해 회화가 주지 못한 해방감 만끽

드로잉을 시작한 뒤 1년 정도는 버스 앞자리에 앉은 승객의 머리 가마 모양을 관찰하고 그 형태를 그려왔다. 이른바 ‘가마 드로잉’을 하며 드로잉이라는 매체를 실험하고 탐구하는 시간이었다. 드로잉은 회화 작업에서는 느끼지 못했던 가벼움과 자유로움을 선물했다. 매일 걷고 움직이고 드로잉을 하는 동안 사회로부터 느끼는 고립감과 무력감을 떨쳐낼 힘을 얻기도 했다. 대상에 대해서도 ‘어떻게 그리냐’의 문제에서 ‘무엇을 보느냐’의 문제로 연결이 됐고 자연스럽게 ‘시간’을 인지하는 계기가 됐다. 드로잉을 통해 풍경을 좀 더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게 되면서 낮과는 또 다른 밤 풍경의 매력도 알아갔다. 첫 개인전도 ‘정전’이라는 제목의 드로잉 전시회로 열었다. ‘정전’ 전시회에서는 강동주 작가가 꾸준히 탐구해 온 도시의 시간과 공간을 ‘먹지’라는 도구를 이용해 한층 효과적으로 표현해냈다. 먹지는 작가가 도시의 밤 풍경을 다루는 데 큰 도움이 됐다.

“어떤 하나의 이미지가 하얀 종이 위에서는 검게 나타나고 또 검은 먹지 위에서는
하얗게 비워지는 과정을 보면서 먹지의 이미지가 만들어 내는 과정이
굉장히 공간적이라는 생각을 많이 했었던 것 같아요.
먹지 드로잉이 가지는 공간성이 빛과 어둠이 공존하는 도시의 단편적인 구조를 드러내는데
저에게는 충분한 화폭으로 기능하는 재료가 됐어요.”

- 강동주 작가 -

‘먹지 드로잉’으로 빛과 어둠이 공존하는 도시의 구조 표현

어릴 적 자신이 성장했던 환경에서부터 도시의 풍경과 시간, 공간에 관해 관심을 두게 되는 과정, 그 세계를 작품으로 구현하기 위해 시행착오를 거쳐 왔던 일들, 그리고 드로잉과 먹지를 만나 강동주만의 독특한 예술세계를 시도하기까지… 워크숍 초반은 강동주 작가의 세세하고 친절한 이야기들로 채워졌다. 작가가 어떤 생각에서 출발해 어떤 과정을 거쳐 지금의 작품세계에 이르렀는지 한눈에 그려질 만큼 작가와 참가자가 한층 가까워지는 시간이 됐다. 이어지는 순서에서는 앞서 설명으로 들었던 강동주 작가의 작업 방식을 참가자들이 직접 경험해 보는 활동이 마련됐다. 먹지 드로잉과 모래 드로잉 두 가지 방식으로 지도를 그리는 작업이다.

“어떤 지도를 그리는 활동은 장소를 정확하게 구현해 내는 재현성(represent)보다는
그 장소와 개인이 맺는 관계성에 초점을 두기 때문에,
그 공간을 경험하는 사람에 따라서 최종적인 결과물이 얼마든지 변화할 수 있다는 점에서
굉장히 흥미로운 형식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해요.
오늘은 여러분들 기억 속에 있는 어떤 장소를 먹지와 그리고 또 다른 재료들의 물성을 이용해서
한번 구현한다고 생각을 해보시고, 참여해 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 강동주 작가 -

먹지 드로잉에서는 강동주 작가의 안내를 따라 내 마음속의 지도를 그려보는 활동이 이뤄졌다. 다시 찾고 싶은 기억의 장소부터 지금 내가 살고 있는 동네, 가족들과 즐거운 한때를 보내는 우리 집 거실, 재개발로 사라진 어릴 적 마을, 그 길을 걸으며 우울증을 극복할 수 있었던 산책길. 저마다의 삶이 다르고 사연이 다르듯이 참가자들이 그린 드로잉 작품도 가지각색이다. 모래 드로잉은 먹지 위에 모래를 뿌려 원하는 이미지를 표현하는 방식이다. 우리가 날마다 걷고 밟는 땅의 촉감을 종이와 먹지 위에 상상해 보는 작업이다.

서툰 솜씨지만 자신만이 기억하는 마음속 지도가 담겨 있어 그 어떤 것보다 특별한 작품들이 탄생한다. 작업은 강동주 작가를 따라 하는 방식이지만, 그 작업 속에서 참가자들은 미처 발견하지 못한 자기 내면을 만나기도 하고, 새로운 미술의 매력에 빠져들기도 한다. 마음속 지도를 따라 걷다 예상치 못하게 눈물을 보이는 참가자들도 있었다. ‘시간과 공간을 담은 드로잉’이라는 워크숍 제목처럼 참가자들 개인의 시간과 공간에 대한 기억이 드로잉 작품으로 소환되는 순간일 것이다.

자신만이 기억하는 마음속 지도를 드로잉을 통해 다시 걸어보다

2시간 동안 진행된 워크숍은 호기심과 기대감으로 출발해서 감동과 충만함으로 마무리됐다. 전시에서는 느낄 수 없는 작가와 관객이 깊이 연결되는 즐거움이 묻어난다. 작가에게도, 참여자에게도 이날의 시간과 공간은 또 다른 기억으로 재구성되고 새로운 마음속 지도로 살아나지 않을지 기대가 된다. 강동주 작가의 작품은 2023 ACC 콘텍스트 <걷기, 헤매기> 전에서 9월 3일까지 만나볼 수 있다.

  • 워크숍을 마친 소감?

    강동주 작가
    오늘 워크숍 자리에 오면서 제 작업 방법론을 여러분들과 공유했을 때, 여러분들은 어떤 관점으로 자기의 기억 속에 있는 공간들을 바라보고 구현해 내실지 굉장히 기대하는 마음을 가지고 오게 됐거든요. 사실 개인적으로 제가 주로 사용하는 재료나 방법들을 다른 사람들이 사용하는 모습을 볼 기회가 없는데, 오늘 워크숍을 통해서 공간을 지각하는 방법이라든지, 재료를 사용하는 방식이라든지 그런 것들을, 여러분들을 통해서 옆에서 지켜볼 수 있어서 굉장히 뜻깊은 시간으로 기억될 것 같습니다.

    채리나 | 광주 계림동
    마음속 지도를 드로잉 할 때 예전에 7년 전 살았던 곳을 다시 떠올릴 수 있어서 참 새로웠고요. 또 다른 분들이 그리신 작품을 보고 그 길을 보니까 진짜 사람마다 다 다른 추억이 있다는 것,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게 내 정서에 다른 추억이 되어 들어오는 게 너무 좋았습니다.

    정인순 | 광주 산수동
    항상 그냥 전시만 보고는 하는데 오늘 워크숍에서는 작가님이 직접 설명을 해주시니까 이런 생각을 가지고 창작하셨구나 알게 돼서 훨씬 더 즐거운 시간이었어요.

 

by
유연희 (heyjeje@naver.com)
Photo
디자인아이엠 포토그래퍼 송기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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