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명의 사진가 : 근현대 건축을 통한 시대의 해석

아시아문화박물관 기획전시

나는 사진이 좋다. 전시 개막일을 기다려 바로 그다음 날 전시장을 찾았다. 전재홍, 김기찬, 이정록, 조춘만 사진 아카이브 전시가 열리고 있다.

건축은 미학이기 전에 삶을 담는 현실이다. 사진 속 근현대 건축 풍경은 조형이나 공간이라는 건축적 가치보다는 문화적 가치, 여전히 우리 삶 속에 이어져 오고 있는 일상적 공간 속에 담긴 시대의 모습을 보여 준다.

멈춰선 시간 속 일제 강점기 건축들

일본 식민 지배에 관한 현장들을 오랜 시간 기록해온 사진가 전재홍의 이번 사진 컬렉션은 1998년부터 2001년 무렵, 전남 나주, 군산, 충청도 강경 일대에서 꾸준히 촬영한 작품이다. 기록을 통해 식민 지배나 전쟁에 대한 비극이 없어져야 함을 말한다. 다른 용도로 변화되지 않은 채 오래전 시간이 그대로 멈춰 선 풍경들은 황량함 마저 감돈다.

한국의 근현대 건축을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는 말이 있다. 근대 문화유산이라기보다는 ‘일제 잔재’로 바라보는 시선이다. 일제 강점기에 일본에 의해 토지, 곡물 등을 수탈하기 위해 지역 거점에 철도시설, 댐과 저수지, 동양척식주식회사 등이 생겨나며 도시 풍경이 빠르게 변해 갔던 것과 무관하지 않다.

골목 어디쯤에서 수줍게 웃고 있는 나

내 유년의 일상들이 떠올랐다. 나는 어느덧 김기찬의 사진 속 어디쯤에서 수줍게 웃고 있었다. 김기찬의 골목 사진 속 그곳들은 나의 소중한 기억의 장소이기도 하다. 미로처럼 얽힌 골목길을 걷다 보면 가파른 언덕과 만나기도 했다. 숨을 헥헥 거리면서도 왠지 기분이 좋았다.

나의 골목에 대한 기억이 잊힐 무렵, 김기찬의 <골목 안 풍경> 사진들을 보며 추억의 시간을 되찾았다. 어린 동생을 업은 언니, 카메라를 응시하고 있는 단발머리 여자아이, 장난기 어린 대여섯 살 꼬마를 만나는 당시의 골목은 더없이 재밌고 안전한 놀이터였다.

‘처음 그 골목에 들어서던 날 왁자지껄한 골목의 분위기는 내 어린 시절 사직동 골목을 연상시켰고 나는 곧바로 “내 사진 테마는 골목 안 사람들의 애환, 표제는 골목 안 풍경, 이것이 곧 내 평생의 테마이다”라고 결정해 버렸다. ’

‘처음 그 골목에 들어서던 날 왁자지껄한 골목의 분위기는
내 어린 시절 사직동 골목을 연상시켰고
나는 곧바로 “내 사진 테마는 골목 안 사람들의 애환,
표제는 골목 안 풍경, 이것이 곧 내 평생의 테마이다”라고 결정해 버렸다. ’

<골목을 사랑한 사진가> 눈빛, 글. 김기찬

집과 근대화의 만남

이정록은 국가 주도의 근대화 과정에 적응해나가는 농촌 가옥들을 ‘글로컬 사이트(Glocal Site)’‘연작으로 기록했다. 슬라브 지붕 위에 컬러강판 한옥 지붕을 얹고 그러면서 한옥 지붕에는 용마루가 덧대어진 마을회관, 컨테이너 집, 농촌 가옥 등의 건축적 구성요소에는 다양한 시간대, 거주자의 삶의 방식과 필요가 스며 있다.

대한민국 건축사에서 새마을 운동의 의미는 무엇일까? 1970년대 이후 새마을 운동으로 획일화되고 규격화된 국가 주도의 농촌 생활환경 개선 운동이 시작됐다는 것이다. 이 시기에 낙후된 농촌주택들이 ‘이탈리아식 양옥’, 슬래브집 양옥‘이라 불리는 혼합적인 형태의 건축물로 변화해 갔다.

산업 경관이 주인공

조춘만의 사진은 세상에 어둠이 내렸을 때 더욱 빛난다. 도시가 모두 잠든 깊은 밤중에 산업현장의 불빛은 더욱 환하다. 눈앞에 나타난 커다란 산업 시설물을 빗대어 ‘자신의 존재를 알리며 포효하는 기계’라 말하는 그는 산업화 과정에서 건설된 철강, 제철, 석유 화학 시설 등의 건축물을 기록하였다.

대한민국은 1960년대 후반부터 1970년대에 2~3차 경제개발 계획을 통해 산업구조의 고도화를 추진하였다. 이후 80년대부터는 농업에서 중공업으로의 급격한 산업구조 변화가 일어나며 울산, 여수 등에 대규모의 국가 산업단지가 조성되었다.

전시장에 놓인 <조춘만 중공업> 사진집 표지가 눈에 들어왔다. 하얀색 안전모와 작업복 차림의 남자가 서 있다. 사진 속 주인공은 조춘만 작가이다. 작가는 산업미를 기록한 사진가인 동시에 실제로 산업현장의 일원이기도 했다.

사진 속 풍경들 속에서 찬찬히, 오래도록 앉아 시간을 보냈다. 전시장 밖으로 나오면서 생각했다. '이곳에서 두 시간이나 있었다고?' 전시실 규모가 그리 크지 않은데 말이다. 스툴 위에 놓여 있던 <골목을 사랑한 사진가 김기찬 사진, 그 후 10년>(눈빛) 책을 펼치고, 태블릿에 담긴 작품 하나하나의 풍경 속을 오갔다. ‘하긴, 다른 이라도 그러지 않았을까...’ 전시는 아시아문화박물관 기획 전시실 2에서 9월 20일까지다.

<좀 더 알아보기> : 연구조사과 임동중(학예연구사)에게

  • 전시된 사진들은 원본 사진인가요?

    이번 전시 자료는 아시아의 사진 아카이브 구축을 목적으로 지난 2014년부터 2016년까지 3년 동안 수집한 ‘한국의 사진가’라는 주제 컬렉션 중 일부입니다. 작가의 아날로그 필름과 사진들을 디지털 사본으로 소장하고 있는데요. 디지털화된 자료를 출력한 사진들입니다.

  • ACC 아카이브 컬렉션을 만나는 또 다른 방법은요?

    아시아문화박물관 아카이브 누리집(archive.acc.go.kr)에서 만나 보실 수 있어요. 아시아문화박물관으로 오시면 기술 기반 체험형 전시 키오스크 <ACCex>를 통해서도 소장하고 있는 자료를 쉽게 접할 수 있습니다.

by
이유진 (npan211@korea.kr)
Photo
디자인아이엠 포토그래퍼 송기호
공감 링크복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