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산책자 : 도시를 걷는 사람들

ACC웹진 도시문화 주제칼럼

‘걷기’는 인류의 가장 오래된 행위 중 하나일 것이다. 인류가 직립보행하면서부터 동시대까지 계속 되어왔고, AI가 인류의 많은 일들을 대체해 줄 가까운 미래를 생각해 보아도 ‘걷기’는 없어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사실 인류가 두 발을 땅에 딛게 되는 순간부터 두 손은 자유로워지며 도구를 사용하는 것이 가능했고, 뇌의 용량이 커지면서 사고하는 능력이 생겨났다. 과거의 ‘걷기’가 무언가를 하기 위한 이동이고 필요에 의한 움직임이었다면, 근대 이후 ‘걷기’는 산책이고, 더 나아가 사유하는 방식이 되고 있다.

도시에서 걷기, 미술사 속 걷기

‘도시’라는 곳을 ‘산책’한다는 생각은 19세기 전반부터 시작된 것이다. 산업혁명 이후 도시가 급속히 성장하면서 도시 경관이 변화하고 도시의 외형 변화는 그 안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의 삶을 변화시켰다. 특히 1853년부터 1870년까지 파리에서 진행된 오스만의 도시 재개발로 그 이전과 풍경이 달라지면서 도시를 거닐며 변화를 발견하고 관찰하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프랑스 문인 샤를 보들레르(Charles Baudelaire)는 1963년, <르 피가로>에 기고한 글에서 한가로이 도시를 걷는 사람들을 가리켜 ‘Flâneur(플라뇌르)’, 즉 ‘산책자’라고 언급했다. ‘플라뇌르’는 정해진 방향이나 목적 없이 천천히 거닌다‘라는 뜻을 가진 프랑스어 ‘flana(플라네)’에서 파생한 말이다. 이 시기 여러 철학자, 문학가, 예술가들이 스스로 산책자가 되어 도시를 걷는 것과 사유하는 것 사이에서 실험했다. 근대적 도시에서의 삶을 대변하는 인물로서의 ‘플라뇌르’라는 개념은 ‘걷기’가 단순한 행위가 아니라 예술적 행위의 가능성을 실험해 보는 계기가 되었다.

19세기 예술가들은 급속도로 발전한 파리의 모습, 경제적으로도 문화적으로도 호황을 누렸던 시기에 볼거리가 넘쳐나는 도시를 산책하는 풍경을 재현했다. 검은색 중절모에 잘 차려입은 정장을 입은 사람들이 파리의 거리를 걷는 풍경은 당시 인상주의 화가들의 작품에서 많이 등장하는 모습이었다.

구스타브 카유보트, <파리의 거리: 비 오는 날>, 1877

‘도시를 산책하는 것’은 점차 풍경을 바라보는 관조적 태도에서 점점 도시의 이면을 꿰뚫어 보는 행위로 변화했다. 특히 ‘플라뇌르’의 개념은 독일의 철학자이자 문예 평론가인 발터 벤야민(Walter Benjamin)의 『파리를 생각하다』에서 도시를 저항적으로 바라보며 자본주의를 성찰하는 것으로 의미화되었다. 이러한 시각은 많은 예술가에게 영감을 불어넣었다.

20세기에 들어서는 신체를 이용한 행위가 예술의 새로운 표현 수단으로 시도되면서, 퍼포먼스 예술가들은 ‘걷는 행위’를 예술의 형식으로서 실험하고자 했다. 퍼포먼스 아티스트의 선구자 중 한 명인 마리나 아브라모비치(Marina Abramović)의 <연인, 만리장성 걷기(The Lovers, The Great Wall Walk)>는 12년 동안 연인이자 동료였던 울라이(Ulay)와 함께 실제 ‘헤어짐’을 만리장성을 걷는 퍼포먼스로 보여준 작품이다.

마리나 아브라모비치, 〈연인, 만리장성 걷기〉, 1988/2010, 2채널 영상, 컬러, 무음, 15분 45초,
1988년 퍼포먼스 기록(90일, 중국 만리장성), 마리나 아브라모비치 아카이브 및 LIMA 제공

이들은 만리장성의 양 끝에서 각각 출발하여 90일 동안 걸어 중앙의 한 지점에서 만난다. 그곳에서 서로 포옹하고 작별 인사를 나눈 후 다시 원래 방향으로 돌아간다. 마치 인생에서 누군가를 새롭게 만나면 헤어짐이 있는 것처럼, 혼자였던 사람이 누군가를 만났다가 다시 혼자가 되는 그 여정을 중국 만리장성을 걷는 행위를 통해 이야기한다. ‘걷기’는 인생의 시작과 끝 사이에서 끊임없이 나아가는 한 인간의 여정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 작업을 허가받는데 8년에 걸친 중국 정부와의 협상이 필요했다. 그 사이 원래는 결혼식을 위해 준비했던 퍼포먼스가 이별 퍼포먼스가 되었다. 이들이 중국 만리장성에서 걷는 행위는 개인적 아픔과 정치적 통제 사이에서 극복한 저항의 발걸음이었다.

이 작품 외에도 ‘걷기’는 수많은 예술가에 의해 시도되었고, ‘걷는 행위’에 대한 의미는 계속 변화해왔다. 또한, 하나의 실천적 방법으로서 그 도시의 맥락과 예술가의 태도에 의해 다양한 방식으로 변주되고 있다.

동시대 예술에서 ‘도시에서 달리기’ : 김재민이의 <레이온 공장 달리기>

그렇다면 동시대 예술에서 ‘도시를 걷는다는 것’은 어떤 의미로 탐색 될까? 그중 하나로 김재민이 작가의 <레이온 공장 달리기>를 보자. 그의 여정은 ‘레이온 공장’이 이동해 간 장소를 따라 추적한다. 보다 정확히 말하면 레이온 생산 기계의 위치 변화를 따라간 것으로 일본 시가현(1927-63)에서 한국 남양주(1963-93), 그리고 중국 요녕성 단동(1993-2009)까지, 지금은 사라진 공장 터를 달린다. 그리고 다시 장소의 관점으로 중국 요녕성 단동에서 한국 남양주, 일본 시가현까지 역순으로 다시 달린다.

그는 왜 공장을 달리는 걸까? 걷는 것이 아니라 달린다는 의미는 무엇일까? 달리기는 걷기보다 ‘더 빨리’ 그리고 ‘걷는 행위의 계속’이라는 연속성과 연결성을 담보한다. 이쪽과 저쪽을 잇는 행위로서의 그의 '달리기'는 과거와 현재를 잇고 그 장소와 이 장소를 잇는 것을 통해 도시 속에 가지고 있었던 그 이면의 문제들을 드러나게 한다. 걷는 사람의 태도가 반영된 ‘달리기’라는 행위는 그가 달리는 장소의 특성과도 맞물린다.

김재민이, <레이온 공장 달리기>, 2023,
아카이브, 단채널 영상, 컬러, 사운드, 가변크기.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제작지원. 작가 제공

그렇다면 이제 작가가 달리는 그 장소에 주목해 보자. 일본에서 한국으로 그리고 다시 중국으로 이동해 간 ‘레이온 공장’은 도시팽창과 자본주의의 이면을 드러내는 장소이다. 그것은 한국 근현대사의 아픔과 맞물려 1964년 일본에서 보상금 대신 레이온 생산 기계를 우리나라에 들여왔고, 국내 유일한 레이온 공장이 들어섰다.

인견의 다른 이름인 ‘레이온’은 천연펄프를 이황화탄소로 녹인 뒤 화학작용을 거쳐 실의 형태로 만든 것으로, 이것의 제작 과정에서 신경독성 물질인 이황화탄소 가스가 발생한다. 이 레이온 공장에서 독성물질을 처리하는 제대로 된 안전설비가 없어 수많은 직원이 중독 하는 사태가 일어났다. 그 과정에서 많은 노동자가 사망하거나 장애를 입고, 후유증에 시달렸음에도 적절한 조치는 없었다. 이후 레이온 기계가 중국으로 이동한다. 자본주의 논리에 따라 일본에서 우리나라로, 그리고 중국으로 이동해간 것이다. 그리고 이제 이 기계의 궤적은 인도 혹은 북한으로 넘어가 끝나지 않은 여정을 계속하는 중이다.

<김재민이, 레이온 공장 달리기(2023)> 보기

좌) 김재민이, <레이온 공장 달리기> 당시 착용했던 레이온 옷과 소품들(걷기, 헤매기 전시광경), 2023, ACC 제공

우) 김재민이, <레이온 공장 달리기> 관련 자료들(걷기, 헤매기 전시광경), 2023, ACC 제공

그는 레이온 공장이 있었던 이곳들이 아무것도 없는 텅 빈 공간이 되었거나, 새로운 아파트가 들어섰거나, 다른 공장으로 바뀐 것을 목격하고, 달리면서 마주한 장소에서 ‘그린타운’, ‘그린패션’이라는 텍스트를 발견한다. 도시에서 우리가 입는 레이온은 친환경이라는 이름으로 소비되고, 그 공장이 있었던 장소는 언제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친환경’으로 포장되고 있는 풍경이 목격된다.

현재는 아파트가 들어서 있는, 과거 ‘레이온 공장’이었던 그 장소를 달리면서 환기되는 것은 변화하는 도시 그 자체이다. 작가는 급격한 도시화와 자본주의 사회, 자본가의 돈으로 치환된 노동자의 삶을 ‘레이온 공장 달리기’를 통해 소환하고 있다. 도시 산책자로서 그는 과거의 집단적 기억을 환기시키는 것을 통해 그것을 현재화시킨다. 그 자신이 움직이는 매체가 되어 과거와 현재, 장소와 장소를 이어 달린다. 레이온 옷을 입고 달리는 그의 뒷모습은 조깅을 하는 일상적인 현대인의 모습과 같지만, 그 모습은 어쩌면 별생각 없이 도시의 달콤한 면만을 바라보는 시선일 것이다.

김재민이, <레이온 공장 달리기>, ‘걷기, 헤매기’ 전시광경, 2023, ACC 제공

“오늘 달리기로 환희를 느끼는데,
발전한 도시의 단물을
생각 없이 소비할 때만 가능했습니다.”

-김재민이, <레이온 공장 달리기> 中-





by
소나영 (nayeongso@daum.net)
Photo
김재민이 작가제공, ACC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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