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으로 보는 국내외 우수공연 <ACC수요극장>

문화가 있는 저녁

문화가 있는 저녁, 영상으로 보는 국내외 우수공연 <ACC 수요극장>

한 주를 시작하고, 수요일쯤 되면 반복되는 일상의 무료함과 피곤함이 스며든다. 삶의 활력을 불어넣는 방법은 저마다 다르겠지만, 가장 좋은 방법 중의 하나는 나만의 루틴을 만드는 것일 것이다. 특정한 시간에 만날 사람과 가볼 만한 장소가 있다는 건 내심 든든하기 마련이다.

<ACC 수요극장>은 문화가 있는 수요일 저녁이자, 매월 첫째 주, 셋째 주 수요일 저녁 7시의 루틴이다. 공연장 VIP석에서도 보기 어려운 아티스트들의 생생한 표정과 몸짓을 극장의 대형 스크린을 통해 국내·외 우수공연작품을 생동감 있게 감상할 수 있다. 또한 연극, 클래식, 오페라, 발레, 무용, 전통음악, 창극 등 다양한 장르 경험 기회를 준다.

지난 5월 17일에는 80년 5월의 광주를 기억하는 ACC 창·제작 작품 <나는 광주에 없었다>가 상영된 바 있다. <2022 윤보선 고택 살롱 콘서트>에 이어, 이번에는 연극 역사상 최초로 여성 해방의 상징을 그려냈다는 헨릭 입센의 대표작 <인형의 집>이 상영되었다. 장르별로 관객 선호가 다소 나타나기도 했지만, ‘노라’라는 여성으로 대변되는 <인형의 집>의 사회적 이슈 때문인지, 자리를 잡지 못한 관객들이 눈에 띌 정도로 많은 이들이 극장을 찾아왔다. 나 역시도 135분여에 달하는 <인형의 집> 연극을 이렇게 집중해서 본 건 처음이었음을 고백한다. 현장성 있는 무대 공연이 아니라, 그 공연을 영상으로 찍은 것을 본다는 것이 나의 예술 경험에 어떤 영향을 줄까 의문이 있었지만, 그 질문은 금세 기우였음을 알 수 있었다.

헨리 입센 원작, 유리 부투소프 연출의 <인형의 집>

노르웨이 작가 헨릭 입센의 <인형의 집>은 1879년 초연 이래 여성 해방의 단초를 제공했다는 평을 받았다. 결혼 전에는 아버지의 인형으로, 결혼 후에는 남편의 인형으로 살던 노라가 자아를 찾아 가정을 떠난다는 이야기이다. 이 작품은 새로운 여성성과 여성 해방의 상징으로 언급되며, 최초의 페미니즘 희곡이라고도 알려져 있다.

이번에 소개된 작품은 2018년 예술의 전당에서 공연되었던 유리 부투소프의 연출작이다. 유리 부투소프는 황금 마스크상을 비롯한 주요 연극상을 휩쓸며 명실공히 러시아 최고의 연출가이다. 사실주의 작품인 <인형의 집>은 페미니즘 전개와 함께, 연출가들의 새로운 해석과 결말들로도 많은 화제가 되어왔다. 예를 들어, 토마스 오스터 마이어 연출의 샤우뷔네 극장 버전은 노라가 집을 나가면서 남편을 죽이거나, 리 부르어 연출의 극단 마부 마인 버전은 남자 배우에 왜소증 장애인을 캐스팅하기도 했다. 또 어떤 편에서는 노라가 결국은 아이들 때문에, 혹은 부부의 화해로 집을 나가지 못하는 버전들도 등장한다. 약 140여 년 동안 이 한 작품의 다양한 변주는 가부장제 사회에서 여성에 대한 사회적 인식과 정체성들의 토론장이라 보아도 과언이 아니었겠다는 생각이 든다.

부투소프가 연출한 2018년 공연 <인형의 집>은 여성에게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라 인간으로서의 삶을 성찰하게 하는 작품으로 널리 알려졌다. 극 중에서 주인공들이 서로의 역할을 바꾸어 연기하기도 하며, 언어가 아니라 무용으로 전달하는 등 다양한 관점과 시각들, 입체적으로 상황을 보게 함으로써 우리의 고정관념들에 문제를 제기한다. 개인적으론 알렉산드르 쉬시킨의 무대디자인이 연출의 의도에 기여하며, 독특한 미감을 주고 있어 놀라웠다. 공연예술을 공부하는 사람이라면, 꼭 한 번쯤 보아야 할 부분들이 있다.

영상으로 보는 국내외 우수공연 <ACC 수요극장>

ACC수요극장은 광주에서 볼 수 없었던 공연들을 영상으로나마 접할 수 있도록 기획된 프로그램이다. 현재 국립 극단, 예술의 전당과 같은 국립단체들은 공연 영상화 사업들을 추진하고 있다. 이들의 작품 리스트와 해외 작품 등 두루 조사한 후, 장르 다양성을 고려하여 최종 프로그램을 구성한다. 올해는 밀라노 두오모 콘서트와 로마 오페라 극장에 있었던 라 트라비아타 등 해외 작품도 준비했다. <ACC 수요극장>은 문화정보원 내 극장 3에서 월 2회, 1·3주 수요일에 진행된다. 덕분에 매 공연마다 관람하시는 고정관객도 많이 늘어났다. 지금까지 관객 점유율을 보면, 광주 관객들은 오페라와 클래식 등을 선호한다. 또한, ACC 창・제작 공연도 수요극장에서 선보이고 있다. 지난 5월 17일에 상영했던 <나는 광주에 없었다> 도 올해 예술극장에서는 다시 볼 수 없었던 작품으로, 연극 동호회 및 대학생 단체 등이 많이 관람하였다.

7월에는 해외 우수공연 작품을 선보일 예정으로, 관객의 기대가 크다. 오는 7월 5일에는 <2018 밀라노 두오모 콘서트>가 상영된다. 이탈리아 밀라노 두오모 광장에서 1만 명 관객과 함께한 리카르도 샤이의 지휘로 라스칼라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야외콘서트를 볼 수 있는 기회이다. 7월 19일에는 오페라의 아버지 베르디의 중기 걸작으로 꼽히는 작품으로 삶과 사랑에 대한 통찰과 휴머니즘을 담은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의 로마 오페라 극장 실황 버전을 상영한다.

행복한 관람문화를 위한 에티켓 <노쇼 방지 캠페인>

<인형의 집> 공연도 매진되어 예매하지 못한 분들이 많은 아쉬움을 표했다. <ACC 수요극장>은 문화향유 기회 확대를 위한 무료로 진행하고 있다. 안타까운 점은 무료여서 그런지, 예약을 해두고도 현장에 오시지 않는 <노쇼>가 제법 있다는 점이다. 이렇게 되면, 정작 정말 보고 싶은 분들이 보지 못하는 경우가 발생한다.

박지수 공연사업과 주무관은 당부한다. “공연 예매 후 관람이 어렵다면, 더 많은 분이 기회를 누릴 수 있도록, 공연 전날 오전까지 꼭 공연을 취소해주시면 좋겠습니다.” 또한 “3년 이내에 ACC 공연을 보신 관객에게 티켓 오픈 안내 문자를 발송하고 있습니다만, 다음 영상은 2주 전 오전 10시 예매 오픈합니다. 그때 아시아문화전당 홈페이지를 통해 예약하시면 가장 좋습니다.” 이 예매 꿀팁을 받고, 나도 <인형의 집> 관람 다음 날, 밀라노 두오모 콘서트 예약에 성공했다. 개인적으로 정말 보고 싶은 공연 중의 하나인데, 이탈리아에 직접 가서 볼 수 없다면, 이렇게 먼저 시도하기로 했다. ACC 수요극장의 경험 미학은 이런 것 아닐까.

2023년 ACC 수요극장 향후 상영 작품

연번 일시 공연 장르 기획 상영시간 대상
12 2023.7.5.(수) 2018 밀라노 두오모 콘서트 클래식 라 스칼라 극장 89분 만 7세 이상
13 2023.7.19.(수) 라 트라비아타 오페라 로마 오페라 극장 79분 만 7세 이상
14 2023.8.2.(수) 피노키오 연극 예술의전당 90분 만 4세 이상
15 2023.8.16.(수) 라 바야데르 발레 유니버설발레단 104분 만 7세 이상
16 2023.9.6.(수) 2019 밀라노 두오모 콘서트 클래식 라 스칼라 극장 89분 만 7세 이상
17 2023.9.20.(수)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 오페라 나폴리 산 카를로 극장 81분 만 7세 이상
18 2023.10.4.(수) 돌아온다 연극 예술의전당
(주)더블케이엔터테인먼트
100분 만 11세 이상
19 2023.10.18.(수) 시크릿 뮤지엄&위대한 낙서 전시 예술의전당 75분 만 7세 이상
20 2023.11.1.(수) 춘향탈옥 오페라 예술의전당 90분 만 7세 이상
21 2023.11.15.(수) 호두까기인형 발레 국립발레단 90분 만 7세 이상
22 2023.12.6.(수) 베를린 필하모닉 카메라타 클래식 이건산업 87분 만 7세 이상
23 2023.12.20.(수) 지젤 발레 유니버설발레단 94분 만 7세 이상




by
천윤희 (uni94@hanmail.net)
Photo
디자인아이엠 포토그래퍼 송기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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