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와 가상현실 : 미래도시를 상상하다

ACC웹진 ‘도시문화’ 주제칼럼

이 글은 2023~2024년 ACC 핵심 테마인 ‘도시문화’와 몇 가지 키워드로 동시대 예술 현상을 읽어보려는 시도이다.
그 두 번째로 이번 호에서는 ‘도시’와 ‘가상현실’을 주제로 현재 도시계획 분야에서 이슈가 되고 있는 미래도시 담론을 다룬다.
또한, 미래도시를 가상현실로 탐험하는 김아영의 작품을 통해, 동시대 예술에서 기술의 발전과 도시의 다양한 문제들 그리고 인류의 미래 등 여러 가지 함의가 수렴되는 그 지점을 발견한다.

#보이지 않는 도시

일찍이 이탈로 칼비노(Italo Calvino)는 『보이지 않는 도시(Le città invisibili)』(1972)에서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가상의 도시들에 관해이야기한 바 있다. 옴니버스 형식으로 구성된 이 소설은 마르코 폴로가 몽골 제국의 쿠빌라이 칸 제왕에게 자신이 본(보았다고 주장하는) 55개의 가상도시를 소개한다. 실제 존재했던 각각의 인물들이 나누는 허구적 이야기에서 우리는 도시의 다양한 모습을 본다.

두 산의 허공에 걸려있는 거미집 같은 도시, 쓰레기로 담을 쌓아 올린 도시, 상수도 파이프로만 이루어진 도시, 산 자와 죽은 자, 아직 태어나지 않은 자들의 3중의 도시 등 상상 속의 도시들이 펼쳐진다. 특히 호수에 똑바로 서 있는 도시와 호수에 거꾸로 비친 도시 두 개의 ‘발드라다’라는 가상의 도시에서는 모든 것이 똑같이 존재하고 모든 일이 똑같이 되풀이된다. 도시의 각 지점이 모두 호수에 반사되도록 건설되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묘사는 오늘날 ‘디지털 트윈’ 기술을 바탕으로 한 ‘스마트 시티’를 연상시킨다.

#현실에 존재하는 도시와 쌍둥이 같은 가상도시 '스마트 시티'

오늘날 ‘도시계획’ 분야에서 이슈가 되고 있는 ‘스마트 시티’는 도시에서 발생하는 여러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한 미래도시의 대안이다. 싱가포르는 ‘디지털 트윈’ 기술로 도시 전체를 복제하여 가상현실로 구현한 ‘버추얼 싱가포르’를 만들어냈다.

‘버추얼 싱가포르’ 프로젝트는 큰 빌딩과 도로, 공원, 정부 기관 등 싱가포르의 모든 데이터를 3D 모델링하고, 빅데이터, 인공지능, 사물인터넷 등의 기술을 통해 다양한 분야의 도시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말한다. 건물을 설계할 때 채광 및 바람의 위치 등 문제가 없는지 확인하는 등 여러 변수를 예측하여 도시계획의 완성도를 높이고, 교통과 에너지의 흐름, 국가 재난 상황에 대한 예측을 통해 문제점 및 해결책을 찾아낼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다. 실제의 데이터를 가상 세계에서 확인하고 시뮬레이션을 통해 현실 세계에 적용함으로써 다양한 기능을 수행할 수 있다.

#김아영 : 미래도시를 탐험하는 법

동시대 예술에서 가상현실을 통해 상상해보는 미래도시는 어떤 모습일까? 우리가 직면한 도시의 여러 문제들을 날카롭게 직시하면서도, 흥미롭게 풀어내고 있는 김아영 작가의 <수리솔 수중 연구소(Surisol Underwater Lab)> 연작을 소개한다.
다음은 작가가 만들어 낸 ‘수리솔 수중 연구소’의 세계관이다.

“본 프로젝트는 팬데믹 이후 가까운 미래의 상황을 시뮬레이션해 보는 사변서사1)이다.
작업은 동시대의 조건들을 반영하거나 왜곡하면서 가능 세계의 구축을 시도한다.
화석연료 사용으로 인한 기후변화와 자원고갈의 가속화 후, 지속 가능한 바이오 연료가 주요 에너지원이 된 사회, 거대 해조류(macro-algae) 다시마를 발효해 생산하는 바이오연료-해조류 연료가 세계의 주 에너지원으로 쓰이게 된 어느 사회를 상상한다.
한국 부산 기장으로부터 오륙도 근해에 이르는 긴 벨트를 따라 바이오매스 타운이 형성되었고, 다시마 양식과 수질, 해류, 바이오매스 공정을 통합 관리하는 연구소인 수리솔 수중 연구소(Surisol Underwater Lab)가 오륙도 부근 해저에 자리 잡고 있다는 설정이다.”

출처 : 김아영 작가 웹사이트 http://ayoungkim.com/wp/

김아영, <Surisol: POVCR>, 2021, VR 경험, 약 17분

코로나19 이후 10여 년이 지난 가까운 미래도시를 배경으로 한 그의 작업은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세계를 허구로 만들어낸 픽션이지만, 그 이야기를 들여다보면 상당히 촘촘하게 구성되어 있다. 마치 실제로 일어날법한 일들이기에 기이한 감각을 불러일으키며 관람객을 그 안으로 개입시킨다.

VR(가상현실)이라는 매체적인 특성이 강조되고 있는 그의 작품 <Surisol: POVCR>에서는 연구소를 관리하는 '수리솔'이라는 AI와, 선임연구원인 '소하일라'라는 예멘 이주여성이라는 두 개체가 등장한다. 관객은 VR 헤드셋을 착용하면 가장 먼저 'Awake(일어나!)'라는 명령어를 듣게 되는데, 이는 그가 만들어 낸 세계로 들어갈 수 있도록 '깨어난 상태'로 만들어주는 일종의 장치라고 할 수 있다. 이 세계에 접속하게 되면 관객은 '소하일라'라는 시점으로 이 세계를 체험하기도 하고 다른 존재의 시점을 경험하기도 하면서 '누구의 시각으로 세상을 보는가'를 인식하게 된다.

작품 제목 'POVCR'는 '관점 부식성 현실'이라는 뜻으로, 작가가 붙인 용어이다. 관객의 몸이 현실에 존재하지만, 시각과 정신은 VR 세계 속의 환영에 몰입한 상황에서, 15분이 지나면 다시 꿈 같은 세계로부터 다시 한번 깨어나며 각성하게 된다. 그의 작품에서 관객은 현실에 존재하면서도 작품 안에도 존재하는, 마치 투명한 존재가 된 것 같은 경험을 하게 된다.

<수리솔 수중 연구소 가이드 투어>는 여기에서 좀 더 나아가, 소셜 VR플랫폼 VRCHAT에 구현된 세계에 일정 시간 동안 참가자들을 실제로 초대한다. 작가는 이 수리솔 수중 연구소의 내부와 외부를 안내하는 가이드가 되어, 관람객으로 하여금 그가 만들어낸 이 세계를 실제로 존재하고 체험할 수 있는 장소로 인식하게 만든다.

김아영, <수리솔 수중 연구소 가이드 투어(Surisol Underwater Lab Guided Tour)>, 2022

매체의 경계를 넘나드는 그의 시도는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와 가상 세계 사이를 자유롭게 유영하면서, 지금 우리가 직면한 문제들을 바로 보고 미래를 위해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사유하게 한다.

우리가 살고 있는 도시의 위기를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 예술 작품들이 하나의 어떤 통찰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며, 이 글의 처음에 언급했던 소설 『보이지 않는 도시』의 마지막 부분으로 그 답을 대신한다.

“살아 있는 사람들의 지옥은 미래의 어떤 것이 아니라 이미 이곳에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날마다 지옥에서 살고 있고 함께 지옥을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지옥을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두 가지입니다.

첫 번째 방법은 많은 사람들이 쉽게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지옥을 받아들이고 그 지옥이 더 이상 보이지 않을 정도로 그것의 일부분이 되는 것입니다.

두 번째 방법은 위험하고 주의를 기울이며 계속 배워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즉 지옥의 한가운데서 지옥 속에 살지 않는 사람과 지옥이 아닌 것을 찾아내려 하고
그것을 구별해 내어 지속시키고 그들에게 공간을 부여하는 것입니다.”

- 이탈로 칼비노 『보이지 않는 도시』 中 -

  • 1) 사변서사 또는 사변적 픽션(speculative fiction)의 성격은 때로 우리가 SF라고 부르는 과학소설(sci-fi)의 성격과 겹치기도 하지만 다음과 같은 차이를 지니기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차이가 늘 절대적으로 명징하게 드러나는 것은 아니다). 많은 경우 SF가 실현 불가능한 범주의 과학적 상상을 주요 설정으로 이야기를 전개하는 데 비해, 사변서사/사변적 픽션은 과학적 엄밀성 대신 실현 가능할 수도 있지만 벌어지지 않은 현상 또는 사건을 다룬다거나, 현실에 존재하는 소재에 가상의 설정을 삽입하여 제시하는 경우가 더욱 빈번하다. SF가 현실과의 끈을 지니지 않아도 좋을 만큼 멀리 가는 상상을 허용한다면, 통상 사변서사라고 하는 것들은 현실의 소재에서 출발한 현실 속의 상관물을 공고히 지니고 있고, 현실의 문제의식을 꽉 붙잡고 그로부터 많은 것이 시작된다. 사변적 허구는 독자/관객을 현실로부터 이탈시키되 도리어 현실을 명징하게 인식할 수 있게 하는 인식론적 기술이자 수단, 미학적이며 정치적인 방법론이 될 수 있다.




by
소나영 (nayeongso@daum.net)
Photo
김아영 작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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