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감콘텐츠 창작을 위한 언리얼 엔진 워크숍

ACC 전문인 <역량강화 과정>

도심에서 만난 낯선 파도

작년 여름 서울 도심 번화가에서 일렁이는 거대한 파도를 만나게 되었다. 버스를 타고 지나다 우연히 마주한 파도의 생생함은 이제껏 경험했던 것과는 다른 새로운 충격이었다. 버스를 덮칠 듯한 파도의 위엄에 일렁이는 파도를 한참이나 바라봤다. 그리고 그 자리에는 필자 외에도 많은 사람이 발걸음을 멈춰 가둬져 있지만 금방이라도 쏟아질 것 같은 파도에 눈을 떼지 못했다. 분명 ‘진짜’ 파도가 아닌 걸 알지만 쉬지 않는 파도의 일렁거림에서 마음에서는 ‘진짜’ 해방감을 느꼈다.

예기치 못한 그 날의 경험은 여전히 강렬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대도시 한복판에서 출렁이는 파도라니, 이 거대한 파도는 서울 코엑스 건물 외부 디지털 사이니지(Digital Signage)에 파도가 출렁이는 모습을 담은 '실감형 미디어 아트'였다는 것을 검색으로 알게 되었다.

인류는 예술을 통해 인간의 확장과 새로운 세계를 꿈꿔 왔다. 철학자 빌렘 플루서는 예술의 기능에 대한 정의에서 예술은 다른 세계를 만들고 다른 실제들에 접근하는 것을 가능하게 한다고 주장한다. 그의 말처럼 인간은 예술을 통해 현재를 다른 눈으로 보기도 하며 새로운 경험을 하기도 한다. 필자가 도시 한복판에서 갑자기 마주한 파도에 현실을 잠깐 벗어난 경험을 한 것처럼 말이다. 특히 새로운 매체들이 계속해서 등장하면서 예술은 우리에게 더욱 새로운 경험을 공유하게 한다.

인공지능, 메타버스, 실감콘텐츠와 같은 단어들이 이제는 더 이상 낯설게 느껴지지 않는 시대이다. 특히 이러한 기술은 예술과의 결합을 통해 더욱 창조적인 콘텐츠를 만들어 내고 있다. 그리고 창작의 영역에서 기술은 마치 화가의 붓과 같은 역할이 되었다.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이하 ACC)에서는 이러한 환경 변화에 발맞춰 매년 다양한 방식으로 기술 기반 창작을 위한 역량강화 과정을 진행하고 있다. 올해 <ACC 전문인 역량강화 과정>에서는 실감콘텐츠 창작을 위한 언리얼 엔진 워크숍, 모션캡쳐 데이터를 활용한 디지털 콘텐츠 제작, 터치 디자이너 활용 워크숍, 인공지능으로 창작하기의 총 네 개 영역 문화기술 워크숍이 진행된다.

그중 서울 한가운데 일렁이는 파도를 가능하게 했던 기술이 바로 첫 번째 워크숍에서 진행된 ‘언리얼 엔진(Unreal Engine)’과 관련되어 있다. 지난 4월부터 5월, 3주간 진행된 언리얼 엔진 워크숍은 실감콘텐츠에 관심 있는 창작자를 대상으로 언리얼 엔진의 기본 기능과 다양한 연계 응용 기술을 이해하고, 이를 기반으로 디지털 콘텐츠를 제작하는 형태로 진행되었다.

언리얼 엔진은 게임과 같은 상호작용형 콘텐츠 제작뿐 아니라 가상현실과 증강현실 구현 등에 사용되며 평면 및 입체 콘텐츠를 짧은 시간에 제작할 수 있도록 하는 소프트웨어다. 언리얼 엔진을 통해 창작되는 실감콘텐츠는 인간의 오감을 극대화하여 실제와 유사한 경험을 제공하는 미디어 기반의 콘텐츠라고 말할 수 있다. 기존 미디어의 한계에서 벗어나 시야, 각도, 형태 등을 극대화하여 3차원처럼 구현되고 이를 통해 새로운 감각을 자극하는데 이것을 바로 실감콘텐츠, 몰입형(immersive) 콘텐츠라 일컫는다.

워크숍 과정은 실감콘텐츠 제작 및 활용 방식을 소개하고, 개념들을 이해하는 것을 시작으로 언리얼 엔진 제작 기술을 활용해 참여자가 구상한 작품을 교육 기간 내에 제작해 보는 것을 목표로 진행되었다. 또한, 교육 과정 이후 독립적으로 작품을 제작할 수 있도록 방법을 제시하여 실제 각자의 창제작 현장에서 도움이 될 수 있도록 구성되었다.

언리얼 엔진에 대한 기본교육부터 ACC가 보유하고 있는 최첨단 장비들을 활용한 콘텐츠 제작까지 <ACC 전문인 역량강화 과정>은 예술 콘텐츠 현장에서 활동하고 있는 신진 창작자와 예술가의 성장을 촉진하고, 창작의 지평을 넓히는 기회가 되고 있다고 하여 그 열정 넘치는 교육 현장으로 찾아가 창작자들과 짧은 만남을 가졌다. 먼저 언리얼 엔진 워크숍의 강사인 홍민기 작가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 수업하실 때 어떤 점이 기억나시나요?

    홍민기 무엇보다 처음엔 게임툴(게임적 사고)을 쓴다는 점이 쉽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생각보다 더 많은 질문이 나왔지만 3주 안에 진행해야 하는 방대한 프로그램이다 보니 개별적 질문에 대한 답변을 자세히 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어 안타까웠어요. 하지만 다양한 선택지에서 고민하고 의논하고 방법을 찾아 해결하는 과정들을 통해 가치 있는 시간을 만들 수 있었습니다. 참여한 창작자들의 장르는 다르지만, 같은 관심사를 가지고 만났다는 게 참 좋았고, 즐겁게 함께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또 수업을 함께 들은 최민경 작가와 염지희 작가도 만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 워크숍을 함께하시면서 느낀 점과 작업 중이신 콘텐츠 내용에 대한 간단한 소개도 부탁드립니다.

    최민경 사실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기술 워크숍은 다른 곳에서도 많이 진행되고 있지만, 작가를 대상으로 하는 워크숍은 ACC가 유일하여 신청하게 되었습니다. 창작 현장에서 실제로 응용할 수 있는 기술을 배울 수 있었다는 점에서 이번 워크숍이 의미가 깊었어요. 작업은 분열을 주제로 한 심리적인 풍경을 연출하고 있습니다. 나를 본뜬 캐릭터와 소녀의 방을 연상시키는 사물들을 배치함으로써 여성이 느끼는 억압과 환상을 담아내고 싶었고, 계속 활용할 수 있도록 나의 모습을 언리얼 엔진 상의 인간, 즉 "메타 휴먼"으로 구현해 보고 싶었습니다.

    염지희 ACC 홈페이지 강좌 카테고리가 매우 명확해서 정보를 찾기 쉬운 편입니다. 이번 교육도 홈페이지를 보고 알게 되었고, 사진과 회화를 콜라주 하는 작업을 가상현실로 바꿔보고 싶은 생각으로 신청하게 되었습니다. 작품은 꿈을 모티브로 하고 있습니다. 회화작품을 바탕으로 꿈과 현실의 붕괴가 사라진 후에도 여전히 달콤한 꿈을 이어가는 자들의 세계를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두 명의 창작자 외 다른 창작자들도 입을 모아 이번 역량강화 프로그램에 매우 만족한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타지에서 오는 창작자들을 위해 숙소를 제공해 준 세심한 배려로 인해 프로그램에 더욱 집중할 수 있었고, 광주에 대해서도 더 알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또한, 이 프로그램의 심화 단계가 마련된다면 더 다양한 작품의 아웃풋이 나올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도 내비쳤다. 늦은 시간까지 많은 부분을 배려해주고 신경 써준 위상은 학예사에게도 깊은 고마움을 표했다.

이번 워크숍에서 1:1 맞춤형 멘토링을 통해 창작된 예술가·창작자의 작품 13편은 6월 30일까지 한 달간 낮 12시와 오후 7시 하늘마당 미디어큐브에 상영한다. 도심 속에서 만나는 실감콘텐츠를 통해, 이제껏 경험해보지 못했던 특별한 감동을 만나보길 기대한다.

올 하반기에도 ACC의 창작 공간과 장비, 전문가들이 참여해 창작 역량을 키우고 싶은 예술가·창작자를 위한 교육을 준비하고 있다. 인간의 움직임을 추적해 영상화하는 ACC의 모션캡처(Motion Capture) 장비와 스튜디오, 극장을 활용한 ‘미디어 퍼포먼스 워크숍’을 개최할 계획이라고 하니 많은 예술가·창작자들의 뜨거운 관심을 바란다.

 

by
박하나 (play.hada@gmail.com)
Photo
디자인아이엠 포토그래퍼 송기호, ACC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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