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기, 헤매기》

2023 ACC 기획전시 CONTEXT

발견하는 걸음, 확장하는 시선

여러분은 오늘 걸으셨나요? 아니면 헤매셨나요?

목적지를 향해 걷다가 어느 순간 헤매기도 하고 때론 헤매다가 목적지를 발견하기도 하고, 생이 이어지는 동안 우리는 수없이 걷고 또 헤매기를 반복합니다. 2023 ACC 기획전시 CONTEXT 《걷기, 헤매기》는 제목부터 잠시 생각에 잠기게 합니다. ‘나는 걸었나? 헤맸나? 아니면 그 둘 다였나?’ ‘헤매는 듯하지만, 그 또한 어디론가 향하는 걸음이 아니었을까?’ 두서없는 생각과 호기심을 가지고 전시장을 향해 걷습니다. 이날의 걷기는 국립아시아문화전당 복합전시 3·4관에서 진행 중인 기획전시 《걷기, 헤매기》로 이어집니다.

《걷기, 헤매기》는 2023~24년 아시아문화전당의 핵심 테마인 ‘도시문화’를 〈발견하는 걸음, 확장하는 시선〉이라는 주제로 풀어낸 기획전시입니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반복하는 ‘걷기’라는 행위를 새롭게 들여다보고 한 걸음 한걸음에 담긴 또 다른 의미를 발견하고자 하는 시도입니다. 전시는 총 13팀의 작가들이 회화와 사진, 영상, 설치, 퍼포먼스 등 다양한 장르의 작품으로 자신들의 걷기와 헤매기의 경험을 나눕니다. 국내 작가 7명을 비롯해 과테말라, 멕시코, 인도네시아, 중국 등 총 6개국의 작가들이 참여했습니다. 세계 각국의 작가들이 거리를 누비며 발견한 서로 다른 이야기들이 관람객의 발걸음을 기다립니다.

작품과 작품 사이를 걷고 헤매다 보면 마음에 더 다가오는, 나도 모르게 끌리는 이야기에 걸음이 멈추게 됩니다. 그 순간 우리는 적극적으로 사유하게 되고 그 사유를 통해 새로운 자신의 이야기를 만납니다. 〈발견하는 걸음, 확장하는 시선〉이라는 주제를 관람객 스스로 자연스럽게 구현하게 되는 거지요. 전시에서 뭔가를 배워야 할 것 같고 작품이 주는 메시지를 찾아야 할 것 같은 부담감을 버린다면, 그저 발길 닿는 대로 걷는다는 기분으로 작품을 만난다면 더 신나고 즐거운 경험이 될 것입니다. 자, 그럼 마음을 활짝 열고 전시장 안으로 걸음을 옮겨볼까요?

걷기 = 발견과 만남

김방주, 〈그 누구의 것도 아니다 : 그날 까마귀가 떨어트린〉

김방주, 그 누구의 것도 아니다 그날 까마귀가 떨어트린, 2023, 퍼포먼스, 설치, OSB합판, 캐스터, 텍스트, 가변크기.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제작지원. 작가 제공.

‘이런 물건이 왜 전시장에?’라는 의문과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풍경이 눈에 들어옵니다. 바닷물에 닳고 닳아 부드럽고 매끄러워진 나무토막, 하얗게 바래고 가닥가닥 풀린 노끈 조각, 어느 길가에서든 흔하게 볼 수 있는 돌멩이, 흙과 먼지를 뒤집어써 형태를 알아보기가 어렵지만, 한때 누군가의 놀잇감이었을 쪼그라든 공... 산책을 즐기는 작가는 산책길에서 눈에 밟힌 낡은 사물들을 작업실로 옮겨왔습니다.

한참을 바라보고 만지고 두드리고 3D 스캔을 하고 그렇게 작가와의 교감을 거친 총 64가지 사물이 다시 전시장에 나왔습니다. 관람객들도 자유롭게 만지고 들고 움직이고 냄새 맡고 원하는 대로 탐색할 수 있습니다. 사물이 쌓아온 시간과 작가의 시간과 관람객의 시간이 중첩되고 연결되면서 그 안에서 새로운 이야기가 탄생합니다.

그래서 작품의 제목도 『그 누구의 것도 아니다』인지 모릅니다. 작가는 전시회 동안 관람객에게 자신이 발견한 이야기를 담은 짧은 편지를 띄운다고 합니다. 어떤 이야기가 쓰여있을지 무척 궁금해집니다.

#작품 속으로 한 걸음 더 다가가기 위한

김방주 작가와의 대화

  • 원래 산책을 좋아하셨나요?

    고등학교 때 은사님께서 ‘젊었을 때 작업은 몸으로 하는 거다. 많이 걸어라’ 이런 얘기를 하셨어요. 아마 그때부터 산책하는 시간을 많이 갖고 산책을 하면서 작업 생각도 하고 무작정 많이 걸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이번 전시《걷기, 헤매기》제안을 받았을 때도 많이 반가웠고 작업 준비하면서 4개월 정도 정말 많이 걸었어요.

  • 산책하고 작업하는 동안 재미있었던 경험이 있었다면요?

    제가 굉장한 길치라서 보통은 길을 헤매다가 산책이 끝나는데 그 과정을 통해서 제가 자아라고 믿어 왔던 것들이 새롭게 바라보이고 굳어지고 풀어지고 느슨해지고 이런 과정들이 반복되는 느낌을 받았어요. 그리고 그 길에서 만난 사물들을 작업실로 옮겨와서 마치 타인의 작업을 대했던 것처럼 좀 생경하게 바라보고 이야기들이 확장되는 경험이 참 새로웠어요.

  • 관객들에게 전하고 싶은 한마디?

    전시된 사물들과 오랜 시간을 보내고 같이 산책하는 시간을 가지면 어떨까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누구든 만져보고 움직여볼 수 있게 퍼포먼스 전시를 준비했거든요. 사실 길에서 굉장히 많이 발견할 수 있는 것들이지만 이런 물건들을 전시장에서 접해보고 직접 들고 산책을 해보면서 동반자가 된다면 새로운 이야기를 만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걷기 = 이름 그리고 오래된 이야기

박고은, 〈글자를 입은 소리들이 모인 지도〉

그래픽 디자인을 전공한 작가는 《걷기, 헤매기》전시를 준비하며 광주의 옛 이름들에 주목했습니다. ‘우리를 둘러싼 공간을 다른 공간과 구분 짓기 위해 붙인 이름들은 어디서 왔을까?’라는 물음에서 출발한 작업이었습니다. 〈글자를 입은 소리들이 모인 지도〉에서 작가는 사라지거나 잊힌, 광주의 오래된 땅과 길의 이름을 복원합니다. 말바우, 용진산, 물넘이마을 등 광주 곳곳의 옛 이름들이 디지털 스크린 안의 지도에서 새롭게 살아납니다. 관람객은 버튼을 눌러가며 산책하듯이 광주의 사라져간 옛이야기를 둘러볼 수 있습니다.

박고은, 글자를 입은 소리들이 모인 지도, 2023, 인터랙티브, 프로젝션 매핑, 컬러, 무음, 가변크기.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제작지원. 작가 제공.

#작품 속으로 한 걸음 더 다가가기 위한

박고은 작가와의 대화

  • 예전부터 사라진 것들에 관심이 많았나요?

    최근에 했던 작업도 서울에서 사라진 근대 건축물들을 지도 위에 아카이브 하는 작업이었거든요. 시각디자인을 하다 보니까 사라져가는 것들을 시각적으로 되살려내고 싶은 마음이 있었어요. 그래서 이번 전시에 초대해 주셨을 때 광주에서도 뭔가 사라진 것을 수집해 보고 싶다는 게 출발점이 됐던 것 같아요. 그 소재로 도로명 길 이름을 정하고 리서치를 시작했어요. 우연히 1980년대에 한글학회에서 발행을 한국지명총람이라는 책을 발견하고 거기에서 재밌어 보이는 지명들을 추려서 이번 작업에 넣었습니다.

  • 관람객이 이번 작품을 어떻게 즐기면 좋겠는지?

    광주에서 오래 사셨던 1950년대, 60년대 어릴 때 기억을 가지고 계신 분들이라면 익숙한 지명일 수도 있고요. 광주에서 태어난 젊은 분들은 아마 들은 적이 없는 옛날 이름일 수도 있거든요. 그런 지명들이 결국은 우리 지역의 오랜 역사와 연결되는 거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지명들을 관심 있게 보시면서 우리가 사는 지역에 이런 이야기도 있구나, 새롭게 보는 계기가 되면 좋을 것 같아요.

걷기 = 질문: 모두에게 공평한가?

리슨투더시티, 〈거리의 질감〉

리슨투더시티는 현대사회의 과도한 개발로 인한 문제와 그에 대한 대안을 찾기 위해 2009년 결성된 단체입니다. 미술과 디자인, 건축, 영화 등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이 함께하며 우리가 사는 세상의 이면을 보여주고 질문을 던지는 작업들을 해왔습니다. 리슨투더시티는 이번 《걷기, 헤매기》전시에서도 생각지 못한 질문을 던지고 다시금 돌아보게 합니다. 걷기가 누구에게나 공평한가? 도시의 길은 장애인에게 진정 길이 되는가? 약 15분짜리 영상작품 〈거리의 질감〉에서 도시의 길은 장애인에게 세상과 연결되는 통로가 아닌 또 하나의 장애가 되고 있음을 확인하게 됩니다.

리슨투더시티, 거리의 질감, 2023, 단채널 영상, 컬러, 사운드, 12분. 한국어, 수어, 영어 자막,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제작지원. 작가 제공.

영상 대목 대목에서 가슴이 뜨끈해지고 울컥하는 경험이 동반됩니다. 리슨투더시티는 이야기합니다.

“한국인들이 추구하는 적자생존의 가치를 그대로 반영하는 도시공간에 아프거나, 느린 사람들을 위한 시간은 없습니다”라고. 뉴스에서 피상적으로 접하던 ‘장애인 이동권’의 진실을 약 15분짜리 영상을 통해 제대로 들여다볼 수 있습니다.

#다른 작품들 사진 작품, 작가명

강동주, 〈유동, 아주 밝고 아주 어두운〉

강동주, 밤산책 #9, 2021.
종이에 연필. 30×30cm. 작가 제공.

김재민이, 〈레이온 공장 달리기〉

김재민이, 레이온 공장 달리기, 2023,
아카이브, 단채널 영상, 컬러, 사운드, 가변크기.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제작지원. 작가 제공

량즈워 + 사라 웡, 〈팔을 구부리고 있는 소녀〉

량즈워+사라웡, 고무 대야를 머리에 이고 가는 아주머니들의 모습, 2023,
단채널 영상, 컬러, 사운드, 9분,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제작지원
량즈워+사라웡, 그는 어제 행방불명되었고 오늘 우리는 그를 발견했다, 2014. C-프린트. 150×100cm, 작가 블라인드 스팟 갤러리 제공.

레지나 호세 갈린도, 〈사람들의 강〉 등등

레지나 호세 갈린도, Rivers of People, 2021-2. 퍼포먼스 기록 영상. 작가 제공

2023 ACC 기획전시 CONTEXT 《걷기, 헤매기》는 걷기를 주제로 한 다양한 작품을 통해 새로운 사유의 기회를 던집니다. 작품들이 품은 이야기 사이를 걸으며 지난 시간 나의 한 걸음 한 걸음을 찬찬히 되새겨봅니다. 때로는 숨 가쁘게, 때로는 여유롭게, 때로는 방황하던 그 걸음들이 있어 지금 여기 내가 있습니다. 전시장을 나서는 순간에는 왠지 걷기에 더 집중하고 걷기를 더 의식하게 될지 모르겠습니다.

앞으로 나의 걸음이 더 밝은 방향,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길 바라는 마음으로... 2023 ACC 기획전시 CONTEXT 《걷기, 헤매기》는 2023. 4. 27.(목) ~ 2023. 9. 3.(일)까지 문화창조원 복합전시 3관 및 복합전시 4관에서 진행됩니다.

2023 ACC 콘텍스트 《걷기, 헤매기》

기간
2023. 4. 27.(목) ~ 2023. 9. 3.(일)
시간
(화-일)10:00 ~ 18:00
(수, 토)10:00 ~ 20:00
*매주 월요일 휴관
장소
문화창조원 복합전시 3관 및 복합전시 4관
가격
무료
예매
자유관람

이주연 학예사/ 국립아시아문화전당. 《걷기, 헤매기》기획

“작품들이 주제가 다양하다 보니까 걷기라는 테마에 묶이기는 하지만 정말 다양한 층위로 구성되어 있거든요. 꼭 모든 이야기를 다 가져가시지 않더라도, 전시장에서 본인에게 의미 있는 작품을 만나셔서 평소에 거리를 걸으실 때도 이때 만났던 작품으로 인해서 새로운 경험을 하셨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by
유연희 (heyjeje@naver.com)
Photo
ACC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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