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우폴 : 잃어버리지 않은 희망(Mariupol, Unlost Hope)

제14회 광주비엔날레 우크라이나 파빌리온 ‘우크라이나 : 자유의 영토’

제14회 광주비엔날레 우크라이나 파빌리온 ‘우크라이나 : 자유의 영토’가 ACC 극장3에서 개최된다. 광주비엔날레와 우크라이나 주한 대사관이 협력하여 진행한 이번 파빌리온은 2023년 4월 7일부터 7월 9일까지(매주 토요일/5.20(토) 미운영) 다음의 세 편의 현대 영화를 상영한다.

캐롤 오브 더 벨스 (Carol of The Bells)
마리우폴. 잃지 않은 희망
(Mariupol. Unlost Hope)
톨로카 (Toloka)

우크라이나의 저명한 시인인 타라스 셰우첸코 원작을 각색한 것으로, 구혼자들을 속여 사랑하는 사람을 구하기 위해 운명의 벌을 받는 한 소녀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톨로카(2019)」, 러시아 침공 이후 한 달간 봉쇄된 마리우폴에서 일어난 실제 사건을 우크라이나 전쟁 피해자의 시선으로 보여주는 「마리우폴 : 잃어버리지 않은 희망(2022)」, 폴란드인, 우크라이나인, 유대인 이렇게 세 가족의 평화로운 삶은 전쟁으로 인해 산산조각 나지만, 우크라이나 민속 멜로디를 각색한 ‘캐롤 오브 더 벨스’를 부르며 희망을 잃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담은 「캐롤 오브 더 벨스(2021)」 가 그것이다.

마리우폴. 잃지 않은 희망 (Mariupol. Unlost Hope)

‘우크라이나 : 자유의 영토’라는 타이틀로 상영되는 이 영화들은 우크라이나의 민족성과 역사성, 그들이 이룩한 유산, 그리고 그들이 사랑하는 ‘자유’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 중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마리우폴 : 잃어버리지 않은 희망(2022)」를 소개한다.

러닝타임 62분. 한순간도 제대로 숨 쉴 수 없었다. 먹먹하고 묵직한 울림은 글을 쓴다는 행위를 한없이 가볍게 만들었다. 영화는 “우리는 무엇을 위해 싸우는가?”를 질문하며, 막스 리뜨비노브 감독의 말로 시작한다.

“이 영화는 범죄 피해자들에 대한 범죄 영화이다.”
마리우폴. 잃지 않은 희망 (Mariupol. Unlost Hope)

감독이 이 영화를 ‘전쟁영화’가 아니라 ‘범죄영화’라고 말하는 것에 주목해보자. 러시아군에 의해 자행되고 있는 민간인에 대한 포격과 학살은 국제법에 위반되는 엄연한 범죄이다. 감독은 영화를 통해 전쟁 범죄 피해자들의 실상을 알리고, 전 세계인의 공감과 유대를 촉구하고 있다.

이 영화는 2022년 2월 24일 러시아의 공격으로부터 시작되어 지금까지도 진행 중인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정확하게는 전쟁 범죄를, 소중했던 일상이 한순간 무너져버린 우크라이나의 무고한 시민들의 시선으로 그려낸다. 전쟁의 참상을 뉴스로 듣는 것이 아니라 다큐멘터리 영화로 접하는 것은 그들을 깊숙이 들여다보게 하는 동시에, 이것이 다른 나라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이야기이고 인류에 대한 이야기임을 체감하게 만들었다.

평화롭고 풍요로웠던 도시 마리우폴은 어느 날 잠자고 일어나니 지금껏 경험해 보지 못한 공포의 순간들로 변해있었다. 병원, 극장, 콘서트홀, 가정집 등 도시 곳곳을 폭격당해 건물은 무너져내리고 외관은 검게 그을렸고, 사람들은 언제 어느 때 폭격당할지 모른 채 죽음을 준비하고 있었다.

영화를 끌고 가는 화자는 나디야 수코르코바의 목소리이다. 그는 마리우폴의 한 달간 봉쇄 일지를 저술한 작가이며 저널리스트이다. 그는 하루하루 그날의 참상을 기록했고 마리우폴을 가까스로 탈출하여 그곳의 상황을 SNS에 올려 큰 이슈가 되기도 했다.

마리우폴. 잃지 않은 희망 (Mariupol. Unlost Hope)

다큐멘터리 형식의 이 영화는 크게는 세 명의 여성 생존자들의 인터뷰를 담는다. 한 명은 폭격당한 산부인과에서 출산하고 아기와 겨우 살아남은 여성, 다른 한 명은 집과 직장을 하루아침에 잃은 여성, 그리고 마지막은 집을 폭격당해 눈앞에서 아들과 가족들을 잃어버린 여성이 지하벙커를 전전하며 남은 생존 가족들을 지키기 위해 노력했던 이들의 생생한 증언이다.

“그들은 우리를 그냥 죽인 것이 아니라, 역사와 과거를 죽였다.”
마리우폴. 잃지 않은 희망 (Mariupol. Unlost Hope)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캔버스에 마리우폴의 풍경을 그리는 장면이 생존자의 증언 사이사이에 등장한다. 감독은 마리우폴의 무수한 사상자들의 너무나 참혹한 모습을 있는 그대로 담기 힘들어 그림으로 표현하는 것으로 대체했다고 한다.

캔버스에 아름다웠고 찬란했던 유산을 간직한 도시의 모습을 먼저 담고, 그 위에 전쟁 후 폭격당한 검은 폐허가 덧입혀진다. 깨진 창, 불탄 건물, 묻지 못한 시신들이 검은 붓질로 묘사된다.

생존자들의 증언이 끝난 후, 그 그림 위에 덧입혀진 검은 폐허를 지워내는 행위를 시작한다. 전쟁의 흔적들을 모두 지워내고, 전쟁이 일어나기 전의 아름다운  마리우폴 풍경을 다시 보여준다. 이를 통해 모든 것을 빼앗아 가버린 전쟁과 범죄, 파괴와 폐허 안에서도 다시 피어나는 자유와 희망을 암시하는 듯하다.

실제로 생존자 중 한 명은 전쟁이 끝나면 마리우폴로 다시 돌아와 전쟁 이전으로 도시를 복구시키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 말한다. 이미 모든 것을 잃어버렸지만, 다시 도시를 재건하고 과거의 유산을 복구하고자 하는 희망, 그들의 민족성, 정신은 잃어버리지 않았다.

영화를 보는 내내 불안감이 엄습한다. 어느 날 갑자기 눈을 떴는데 어제와 다른 지옥 같은 세상이 펼쳐진다면 어떻게 될까? 상상조차 괴로운 일이다. 피해자들은 다시 제대로 잠을 잘 수도 없다고 한다. 잠들면 못 깨어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행복한 꿈을 꾸고 잠에서 깼는데 절망적인 현실을 맞닥뜨릴 경우의 공포를 경험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의 상황도 다르지 않다. 그것은 언제 어느 때 누구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며, 우리는 안전하다고 장담할 수 없는 일이다.

우리는 무엇을 위해 싸우는가? 영화 시작할 때 처음 나왔던 질문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잘못된 역사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 어느 때보다 그들의 ‘자유’를 기원한다.





by
소나영 (nayeongso@daum.net)
Photo
송기호 촬영
공감 링크복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