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음악, 나의 조국>

음악 인류학자 정추, 탄생 100주년

음악은 그 지역의 문화, 풍속 등 대대로 이어져 온 정신적 산물이라 할 수 있지만, 세계가 하나의 문화권이 되어 가면서 지역마다 존재하는 다양한 음악들이 점점 비슷해지거나 그 고유성을 상실해 가고 있다.

그럼에도 어딘가에 각 문화권이 건재하듯이 고유한 음악들이 존재하는 것은 어쩌면 음악 인류학자(musical anthropologist)들의 부단한 노력 때문일 것이다.

음악 인류학자 정추(1923~2013) 탄생 100주년을 기념한 〈나의 음악, 나의 조국〉 전시가 열리고 있다. 이번 전시는 정추의 음악적 삶, 육필 악보 등 창작활동에 관한 기록과 음악 인류학자로서의 현장 연구와 기록 이외에도 그의 음악을 조명하는 전시로 1부, 2부, 3부로 이어진다.

숨 쉬듯 자연스럽게, 음악가의 길

1923년 정추는 광주군 광주면 양림리 192번지에서 태어났다. 정추의 외할아버지 정낙교는 광주의 부호였다. 지금의 양림동 이장우 가옥은 그의 조부 정낙교가 1899년에 건축하여 큰아들 정병호에게 준 집으로 이후 이장우(1919~2002)가 구입했고 1989년 광주광역시 민속문화재 1호로 지정되었다. 정추는 예술적 조예가 깊은 집안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독일에서 베를린 음악대학에 다니던 외삼촌 정석호의 영향으로 피아노를 시작했다. 형인 정준채는 영화감독으로 활약했고 동생 정근은 동요 작곡가 겸 아동문학가로 〈텔레비전〉, 〈둥글게 둥글게〉를 작곡했고 KBS 어린이합창단 지휘자로도 활동했다. 그러다 보니 정추는 숨 쉬듯 자연스럽게 음악가의 길을 간다.

1930년대 외할아버지댁에 그랜드 피아노가 있었어요
예술가 집안이었죠

1938년 정추는 광주고보(현 광주서중) 재학 중 조선어 사용 문제로 퇴학당한 후 서울 양정고보에 편입해 졸업했다. 1946년 영화감독이었던 형을 따라 “네가 오면 영화촬영소에서 음악을 할 수 있을 것이다”라는 말에 월북했지만 김일성 우상화에 대해 항의하며 북한으로 돌아가지 않고 소련에 정치적 망명을 요청했다. 모스크바 음악원에서 작곡 이론을 공부하며 본격적인 음악가의 길을 걸었다.

정추의 형 정준채는 평양에서 모스크바 유학 중인 동생 정추에게 작사할 때 도움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조선 후기 시조 작가 김천택이 시조 580수를 엮어 편찬한 〈청구영언〉을 보냈다. 〈청구영언〉은 김천택이 개인 문집에 실려 있거나 구전되던 가곡 노랫말을 한글로 쓴 책으로 우리의 노래가 구전으로만 읊어지다가 없어짐을 한탄하여 기록으로써 후세에 전하고자 편찬한 것으로 이는 정추가 고려인 가요를 채록하기로 하는 데 영향을 주었던 것 같다.

고려인 가요 1,000여 곡을 채록

실제로 정추는 고려인 가요에 관심을 가지면서 카자흐스탄에서 고려인 가요 채록을 통해 한민족의 음악을 지키고자 고려인이 일하는 농장에 찾아가 전래민요, 노동가요 등 그들이 부르는 음악을 직접 릴 테이프로 녹음했다. 고려인 가요 1,068곡의 가사와 500곡가량의 악보를 채보했다. 이를 통해 잊혀지고 사라질 수 있었을 우리 한민족의 음악 문화가 다른 문화권에서 원래의 모습을 유지하거나 다양하게 변화되어 가는 과정을 살펴볼 수 있다.

정추는 알렉산드로프 교수에게 지도받으며, 한국적 선율을 연구하고 한민족의 정서를 담은 작품 〈조국〉을 발표했다. 또한 〈내 조국〉은 “통일 조국의 애국가가 되길 염원하면서 만든, 음악가로 살아온 인생의 마지막 노래로 작곡한 작품”이라고 말한다.

정추는 카자흐스탄 알마티 국립대학 음악학부에서 교수로 재직하면서 직접 작곡한 곡을 교과서로 만드는 등 후학을 양성했다. 월북작곡가로 한국에서는 한때 잊힌 음악가였지만 카자흐스탄 음악 교과서에 실린 작품이 60여 곡에 달할 만큼 존경받는 작곡가이다.

정추의 〈가는 길〉

전시장 밖으로 나오기 전에 광주 곳곳의 풍경, 사람, 예술을 음악에 담아 연주하는 작곡가 이승규의 연주를 영상을 통해 듣는다. 〈바이올린 소나타 1번 정추 1923-2013〉 이 곡은 정추의 조국에 대한 그리운 마음을 담은 가곡 〈가는 길〉의 주선율을 작곡가이자 피아니스트인 이승규가 바이올린 곡으로 재탄생 시킨 곡이다.

정추를 ‘천재 음악가’나 ‘검은 머리의 차이코프스키’로 부르곤 한다. 하지만 무엇보다‘음악 인류학자’ 정추로 더욱 기억되고 사랑받았으면 좋겠다. 그가 채보하지 않았으면 사라져 버릴 수도 있었을 고려인 음악문화를 지키고 발견되도록 했으니 말이다.

전시는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아시아문화박물관 기획 전시실 1에서 5월 28일까지 열린다. 전시 연계 전문가 초청 강연 참여를 통해 음악가 정추를 좀 더 깊게 만나 봐도 좋겠다. 음악학자 이경분(서울대 객원 연구원)은 ‘정추의 음악 언어와 망명’을 주제로(5월 16일), 음악 인류학자 김보희(연세대 객원교수)는 ‘정추와 고려인 창작가요’를 (5월 18일) 들려주며, 고려인 음악의 디아스포라(diaspora) 적인 특성을 공유한다. ACC 누리집(www.acc.go.kr)을 통해 신청할 수 있으니 참고 바란다.





by
이유진 (npan211@naver.com)
Photo
송기호 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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