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자와 소리를 통한 디지털 공감의 창(窓), ‘사운드 월’

ACC 미디어아트 랩 미디어파사드

# 쉽고 매일 쓰는 한글

코로나19로 인해 오랫동안 해외여행을 잊어버리고 살아왔다. 마지막 해외여행은 만 3년 전. 이제는 점점 여행객에게 나라의 문을 열기 시작한 나라들이 있어 많은 한국 사람들이 해외로 다시 나가기 시작한다. 그 여행의 시작은 해외에서 나의 신분을 증명해주는 여권을 발급받는 것부터다.

해외여행을 준비하며 여권을 신청하고 발급받기까지 약 5일 정도가 소요됐고, 기왕이면 새롭게 만들어진 신여권, 전자여권을 신청했다. 여권 색도 바뀌었고 여러 가지가 달라졌는데, 특히 사증을 찍는 면에 새겨진 시대순으로 나열된 우리나라의 유물들과 예술작품들을 보니 더욱더 신여권이 예쁘고 특별하게 느껴졌다. 특히 조선시대의 유물들을 보면 우리나라 과학 발전의 역사가 더욱 다가오는 느낌이었다.

여권을 이리저리 살펴보다 사진이 들어가는 페이지의 홀로그램을 보며 신기해하는 와중에 또 다른 것이 눈에 들어왔다. 코팅된 면이 반짝이며 돌출된 어떤 글자가 보였다.

“사〯ᄅᆞᆷ마〯다〮ᄒᆡ〯ᅇᅧ〮수〯ᄫᅵ〮니겨〮날〮로〮ᄡᅮ〮메〮便뼌安ᅙᅡᆫ킈〮ᄒᆞ고〮져〮ᄒᆞᇙᄯᆞᄅᆞ미〮니라〮”

대한민국 국민에게 가장 좋아하는 조선시대의 왕을 꼽으라고 한다면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세종대왕을 꼽을 것이다. 세종대왕의 업적은 다양하지만, 우리가 가장 가까이에 존재하고 일상에서 늘 사용하는 ‘한글’ 덕분에 우리는 더욱 세종대왕을 가장 훌륭하고 좋아하는 왕으로 인식한다는 것을 부정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새롭게 발급되는 전자여권에 새겨진 훈민정음언해 일부의 해석은 ‘사람들로 하여금 쉽게 익혀 날마다 씀에 편하게 하고자 할 따름이니라’이다. 우리가 쉽게 익히고 매일 편하게 사용하고 있는 한글의 창제 이유이자, 한글이 창제된 지 600년 가까이 흐른 지금도 여전히 의미가 살아있는 글귀이다.

# 한글로 놀아보자, 훈민정악

2022년 작곡가 장재호와 일렉트로닉 뮤지션 가재발(이진원)로 이루어진 태싯그룹은 우리에게 사랑받는 ‘한글’을 이용한 작업으로 광주를 찾았다. 그들은 한글이 가진 기하학적 특성(네모, 세모, 동그라미)과 초성 중성 종성의 결합이라는 건축적 구조, 소리와 글자가 서로 다르지 않은 이기불이의 특질을 작품에 담고 음악과 알고리즘을 이용해 독특한 관객참여형 작품을 우리에게 소개한다.

태싯그룹이 참여한 ‘사운드 월(Sound Wall)’과 ‘사운드 슬로프(Sound Slope)’는 ‘문자와 소리를 통한 디지털 공감의 창(窓)’을 주제로 관객이 직접 휴대전화로 문자를 전송하면 그에 작품이 반응하며 생성된 소리와 영상을 보여주는 오디오비주얼 작업이다.

태싯.퍼폼(tacit.perform)[ㄱㅈㄴㅁㅇ]

이미 11월에 진행된 ACT 페스티벌 2022에서 오디오비주얼 퍼포먼스인 ‘태싯.퍼폼(tacit.perform)[ㄱㅈㄴㅁㅇ]’을 선보인바 있는 그들의 작품은 관객이 직접 보낸 문자들이 화면에 나타난다는 점에서 매우 친근하다. 예술이라는 것은 때로 매우 어렵게 느껴지지만, 그들이 한글을 사용한다는 점에서 우리는 쉽게 친근함을 느끼게 된다.

내가 전송한 ‘배고파’, ‘안녕’과 같은 일상의 단어들이 화면에 등장하고 곧 그 단어들은 다른 사람들의 문자와 섞이고 자음과 모음으로 해체되기도 하면서, 우리에게 한글이 가진 조형적 아름다움을 새롭게 느끼게 하고, 나의 참여로 인해 변화하는 화면과 음악을 통해 우리에게 새로운 예술적 경험을 제공했다.

문자를 통해 관객과 소통하는 ‘사운드 월’은 또 다른 방식으로 광주시민들과 소통한다. 바로 작품 안에서 관객들의 문자 외에 광주와 관련된 문구들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의 광주가 예전에는 어떤 곳이었을지 유추하게 하는 문구들을 신문칼럼과 『삼국사기』, 조선의 시인 황필(黃筆)의 시, 그리고 고려 말기 문신 이집(李集)의 시에 등장하는 광주를 찾아보는 것도 문자를 통한 참여와 함께 작품을 즐기는 방법일 것이다.

〈사운드슬로프(미디어큐브)〉

이렇게 우리에게 자랑스러우면서도 친근한 한글과 광주를 담은 태싯그룹의 ‘사운드 월’ 전시는 75m에 달하는 거대한 미디어 월에서 경험할 수 있는 ‘사운드 월’이 저녁 8시부터 10까지, 미디어큐브 에스컬레이터에 설치된 ‘사운드 슬로프’는 오후 5시에서 7시까지 각각 2시간 동안 2023년 2월 4일까지 진행된다.

# 일상과 예술, 전통과 알고리즘의 만남

2008년 결성된 태싯그룹(Tacit Group)은 주로 디지털 기술에서 예술적 영감을 받은 멀티미디어 공연, 인터랙티브 설치, 컴퓨터 프로그래밍에 의한 알고리즘 아트와 같은 다양한 작업을 이어 나가고 있다.

국내와 더불어 해외에서도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태싯그룹은 2010년 한국 우수 공연예술작품을 소개하는 서울아트마켓의 팸스 초이스(PAMS Choice)에 선정되었고, 2011년 덴마크 오르후스 페스티벌(Aarhus Festuge)에서 오프닝 공연을 담당하며 세계적으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사운드 월(ACC미디어월)〉

태싯그룹의 작업 중 ‘수제천’이라는 작품은, 신라 때에 만들어진 아악(雅樂)의 하나로 궁중의 중요한 연례와 무용의 반주 음악으로 ‘정읍(井邑)’으로 불리기도 하는 수제천을 주제로 한 작업으로 그들이 자신들의 작품에 ‘한글’과 마찬가지로 우리나라의 전통을 녹여내고 있음을 짐작하게 한다.

또한, 거리를 지나며 무심코 지나치는 작은 상가 안에 설치된 ‘수제천’ 작업은, 우리에게 친숙한 한글을 예술로 변화시킨 것과 같이 일상의 모습을 예술을 통해 새롭게 변화시키는, 주변에서 쉽게 발견되는 아날로그와 디지털 재료들로부터 예술의 세계를 발견하고 이를 작품으로 승화하는 그들의 작업 성격을 잘 보여준다고 생각됐다.

〈사운드슬로프(미디어큐브)〉

태싯그룹의 주요 작품인 ‘훈민정악’, ‘Game over’, ‘Morse ㅋung ㅋung’ 등 또한 테트리스 게임이나 실시간 채팅과 같은 친근한 생활 속 요소들을 소재로 하며, 예술과 일상의 경계를 허물고 현대예술은 어렵다는 선입견을 깨 태싯그룹만의 독특한 예술 세계를 관객들에게 인식시키는 데에 큰 역할을 하고 있다.

관객에게 직관적인 즐거움을 주고 독특한 세계관으로 작품성을 인정받고 있는 태싯그룹의 작업은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통해 만들어진 알고리즘을 기반으로 한다. 알고리즘은 현대에 등장한 새로운 기술이고 전통은 오래된 것이다. 오래된 것과 새로운 것을 융합하고, 일상을 예술과 융합시키는 두 예술가가 만들어낸 특별한 오디오비주얼 아트를 만날 수 있는 ‘사운드 월’ 전시를 찾는다면 꼭 망설이지 말고 문자를 보내 보길 바란다.





by 임우정
larnian_@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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