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 영화관, 드라이브 인 ACC

개관 7주년 기념 자동차극장

# 자동차 극장은 처음이라

목요일 저녁 퇴근길, 차를 운전해 국립아시아문화전당(ACC) 부설주차장으로 향했다. 오랜만에 영화를 볼 생각을 하니 왜인지 모르게 조금 설레는 기분이다. 아마도 자동차 극장은 처음이라 그랬나 싶다. 겨울의 시작을 알리는 절기인 소설도 지나고 이제는 5시만 조금 넘어가도 노을이 지기 시작하는 가을밤, 요즘 들어 아름다운 노을을 즐기며 어서 시간이 다가오길 기다린다.

영화 시간 30분 전, 이미 완전히 어두워진 거리에 ‘드라이브 인 ACC’를 알리는 간판이 불을 밝히며 가야 할 길을 안내하고, 차들은 천천히 줄지어 행사장으로 들어간다. 안내를 받으며 건네받은 꾸러미에 들어있는 치즈 나초가 시원한 맥주를 생각나게 했지만, 운전 중이니 참아야만 했다. 다음에는 꼭 술을 마시지 않고 운전이 가능한 친구와 함께 와야겠다는 다짐을 되 내어 본다. 시원한 맥주와 나만의 공간에서 자유롭게 즐기는 영화관, 상상만으로 노래가 흥얼거려진다.

2022 드라이브 in ACC, ACC 부설주차장

영화 시간이 다가오자 스태프들이 차량 사이를 오가며 라디오 주파수를 맞췄는지 확인한다. FM 87.7MHz. 오랜만에 라디오 주파수를 맞춰본다. 이제는 대부분 디지털화된 차량의 액정 디스플레이는 예전 같은 감성을 불러일으키진 않지만 그래도 어릴 적 라디오를 듣기 위해 버튼을 돌려가며 주파수를 맞추고 안테나를 길게 뽑아 이리저리 신호를 잡던 기억을 아주 잠깐 생각나게 한다.

자동차 극장이 처음이라 정말 생각지도 못한 것들을 챙겨야 했다. 먼저 주간전조등이 꺼지지 않는 차량이라 스태프들이 나눠준 검은 천으로 전조등을 가려야 했고, 다음으로는 시동이 문제였다. 배터리 방전을 막기 위해 30분에 한 번씩 시동을 켜라는 안내에 일단 시동을 꺼도 라디오가 나오나보다 하고 시동을 꺼봤다. 그런데 시동을 끄고 체감상 5분 뒤에 라디오도 함께 꺼져버렸다.

어쩔 수 없이 165분 동안 시동을 켜고 영화를 봐야 했다. 처음 하는 자동차 극장 나들이가 즐겁기도 했지만, 장시간의 공회전이 환경에는 좋지만은 않을 것 같아 조금 걱정이 되었다. 나만 이렇게 시동을 계속 켜두는 건지 주변의 눈치도 보면서,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하는지 궁금하기도 한 첫 자동차 극장 나들이였다.

# 아름다움과 전쟁

2022 드라이브 in ACC, ACC 부설주차장

이번 ‘드라이브 인 ACC’를 통해 보게 된 영화는 인도영화 ‘파드마바트(Padmaavat)’였다. 2018년 기준으로 발리우드 최고 제작비인 350억이 투입되었고, 지 시네 어워드-베스트 감독상 수상, 내셔널 필름 어워즈-최우수 뮤직 디렉션, 미르치 뮤직 어워드-크리틱스 초이스 앨범으로 선정된 작품이라 발리우드 특유의 음악적 요소가 어떻게 나타날 것인지 매우 기대되는 영화였다. 찾아보니 부산외대와 주한인디아센터가 공동으로 주관하는, 올해로 10회를 맞은 ‘인도영화제’의 개막작이기도 했다.

기대 이상으로 눈길을 사로잡는 특수효과와 규모에 놀랐고, 개인적으로 뜬금없이 느껴지기도 했던 춤과 음악이 영화 안에서 아주 조화롭게 어우러져 영화의 진지함을 헤치지 않아 긴 시간이었지만 지루하지 않게 영화를 볼 수 있었다. 거기에 인도 특유의 화려한 장신구와 색감 또한 영화를 즐길 수 있는 요소 중에 하나로 작용했다.

2020 드라이브 in ACC, ACC 아시아문화광장

‘파드마바트’는 14세기 라지푸트 왕비 파트마바티의 삶을 다룬 영화로, 이슬람 힐지 왕조와 힌두 메와르 왕조 간에 벌어진 전쟁을 배경으로 한다. 메와르 왕비 파드마바티의 미모가 뛰어나다는 소문을 들을 이슬람 술탄 힐지가 라지푸트를 침략하는 내용을 그린 영화이다. 이렇게 아름다움은 가끔 우리에게 거부할 수 없는 끌림을 불러일으킨다. 아름다움을 탐하고 이를 소유하기 위해 전쟁을 불사한 힐지의 술탄을 보며 조금은 다르지만 트로이 전쟁을 일으킨 파리스와 헬레네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트로이의 왕자 파리스는 올림포스의 세 여신, 헤라와 아테네, 아프로디테 중 누가 가장 아름다운 여신인지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을 주겠다는 아프로디테의 제안으로 아프로디테를 가장 아름다운 여신으로 선택해 황금사과를 건넸다. 그렇게 스파르타의 왕비였던 헬레네는 파리스와 함께 트로이로 가게 되고, 우리에게 트로이의 목마로 유명한 트로이 전쟁이 일어났다.

태어날 때 트로이를 멸망시킬 운영이라 산에 버려져 목동으로 자라났던 파리스는 헤라와 아테네가 권했던 권력이나 지혜보다 자신을 사로잡았던 아름다움이라는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아프로디테를 선택함으로써 결국 자신의 형제를 죽게 하고 트로이를 멸망의 길로 들어서게 했다.

영화 ‘파드마바트’에서 아름다움의 유혹을 거부하지 않고 이를 소유하려는 욕심을 버리지 않았던 힐지의 술탄은 트로이와 같이 멸망의 길을 걷지는 않았다. 그는 수많은 역경에도 불구하고 전쟁에서 승리했고 메와르의 왕은 죽음을 맞이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의 끝, 술탄은 승리자보다 패배자로 보였다. 그가 그토록 원했던 아름다움을 영영 얻을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 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

우리는 살아가면서 수많은 아름다움을 맞닥뜨리며 때로는 그저 스쳐 보내고 때로는 손에 넣고 때로는 잃어버리고, 혹은 전혀 마주하지 못한 채로 지나치기도 한다. 내게 아름다운 것이 누군가에게는 아니기도 하고, 대다수 사람들이 추하다고 하는 것에서 누군가는 아름다움을 발견한다.

길에 핀 작은 꽃에서 아름다움을 느끼는가 하면 그 무엇보다 반짝이는 화려한 보석에서 아름다움을 느낄 수도 있다. 예쁘게 다듬어진 매끄러운 손에 이끌리지만, 우리를 키워낸 거칠고 주름진 손에 아름다움을 느낀다. 그 무엇보다 자연스럽게 발하는 자연의 색에서 아름다움을 느끼지만, 미디어아트를 만들어 내는 인공의 빛을 통해서도 우리는 아름다움을 느낀다. 물감의 색들은 자연에서 따왔고 자연의 색을 따라잡을 인공색은 없는 것 같지만 우리는 화가의 붓질로 드러난 색채에서 무엇보다 감동을 받기도 한다.

2022 드라이브 in ACC, ACC 부설주차장

영화 속 파드마바티는 누구나 인정할만한 미인이다. 누구나 인정할 수밖에 없는 아름다움도 존재하지만, 우리는 우리를 둘러싼 수많은 것들에서 각자의 아름다움을 찾아내는 독특한 전문가들이다. 아름다움이라는 것에 대한 기준은 사람마다 다르고 어떤 것이 옳고 그른지 따질 수도 없다. 미켈란젤로의 조각에서 아름다움을 느끼기도 하지만, 무섭게 우리를 노려보고 죄인을 심판한다는 사천왕상에서도 우리는 각자의 아름다움을 찾아낸다.

아름다움을 쟁취하기 위한 싸움에서 누군가는 승리하고, 누군가는 빼앗기고, 누군가는 포기할 것이다. 하지만 시간의 변화에 따라 그 승리는 퇴색하고 아름다움은 변화한다. 예술과 마찬가지로 아름다움도 끊임없이 변화한다. 그 변화의 속에서 우리는 새로운 아름다움들을 찾아내고, 끊임없이 아름다움이 무엇인지 질문하며, 새롭고 독특한 아름다움들을 찾아내 나갈 것이다.

파드마바티의 선택은 지금을 살아가는 내게 아름다움으로 다가오지 않았다. 하지만 우리는 새로운 아름다움을 찾는 독특한 전문가들이고,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현대사회에 맞는 아름다운 선택이 무엇일지 생각해본다면 영화에서 우리는 또 다른 아름다움을 분명히 발견할 수 있을 것이고, 그렇다면 이 시간이 충분히 의미 있을 것이다.





by 임우정
larnian_@naver.com
사진
국립아시아문화전당재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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