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 Music> 하루키와 클래식

2022 Enjoy 라이브러리파크!

# 그대로 바라보되, 환상적이길!

“자랑할 정도는 아니지만, 이런 걸 모았답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신작 에세이 ‘오래되고 멋진 클래식 레코드에 나온 구절로 자신의 LP판에 대한 이야기다. 약 60년간 클래식을 덕질한 일본 문학 거장 무라카미 하루키의 레코드 장에는 486장의 레코드가 보관되어 있다. 그는 고등학교 시절부터 클래식 음악을 수집하며 창작의 원천이자 오랜 취미생활로 삼아왔다. 하루키가 엄청난 음악 애호가라는 사실은 그의 소설을 읽어본 독자라면 아마 쉽게 예상했을지도 모른다. 실제로 그의 많은 작품에서 클래식을 제외하기란 무척 어려운 일이다.

이러한 이유로 무라카미 하루키의 신작이 나올 때마다 책 속에 등장하는 음악도 화제에 오른다. 어떤 음악에서 영감을 받아 시작되었는지, 또 어떻게 인용되어 소설 속에 등장하는지와 같은 궁금증에 많은 사람의 관심이 쏠린다. 소설 주제를 음악에 의탁하는 문학 작법은 오랫동안 금기시되어 왔지만, 하루키는 이런 금기를 깨고 가장 세련된 형식으로 음악을 소설에 사용한 작가이다. 게다가 장르에 따라서 음악이 등장하는 방법에 명확한 차이가 있고, 장르마다 작가가 설정한 상징이 있으며, 암시하고자 하는 의미도 제각각이다. 그렇기에 많은 평론가가 하루키의 작품을 조금 더 깊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글과 함께 그가 사랑한 음악도 함께 감상하기를 추천한다.

# 책과 음악이 있는 공간

지난 10월과 11월 ACC 문화정보원에서 진행된 공간 맞춤 프로그램 <Book&Music> 하루키와 클래식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속 이야기를 클래식 음악과 함께 감상할 수 있도록 마련한 자리였다. 하루키의 소설 속 클래식을 송현민 음악평론가의 해설과 지역 공연팀의 라이브 연주를 통해 감상하며 문학 작품을 음악으로 옮겨 하루키 작품 세계를 다른 방식으로 이해하고 즐길 수 있도록 하였다.

프로그램은 총 2회로 나누어 북라운지 선큰 계단에서 진행되었다. <하루키와 클래식Ⅰ>에서는 그의 작품 『1Q84』와 『노르웨이의 숲(상실의 시대)』을 중심으로 스윗뮤직앙상블의 라이브 공연과 소설 이야기, 공연 해설이 펼쳐졌다. <하루키와 클래식Ⅱ>에서는 하루키의 소설 『태엽 감는 새』와 『양을 쫓는 모험』, 수필 『샐러드를 좋아하는 사자』 세 작품에 등장하는 곡들을 중심으로 송현민 음악평론가의 해설과 클래식 앙상블팀 '이끈음'의 연주를 감상할 수 있었다.

# 글과 음악이 한 줄이 되는 시간

소설 『태엽 감는 새』는 주인공 도오루가 불가사의한 인물들과 얽히면서 시작되는 실제 역사에 천착한 작품으로 잃어버린 것을 되찾기 위해 폭력의 역사와 맞서는 존재의 기록을 담고 있다. 1천 페이지가 넘는 대작 『태엽 감는 새』는 요미우리 문학상을 수상하고 전 세계 35개 이상의 언어로 번역되는 등 하루키를 세계적인 작가 반열에 올려놓은 작품이다. 로시니의 ‘도둑까치’를 비롯해 슈만의 ‘숲의 정경’ 중 ‘예언하는 새’, 모차르트 ‘마술피리’의 ‘새잡이 사내’ 등이 주요 테마로 흐른다. 각각의 곡들은 태엽 감는 새 연대기 1~3권의 부제이긴 하다. 특히 『태엽 감는 새』는 작품 제목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새소리나 움직임이 묘사된 음악들이 특히 많이 언급되었다고 한다.

『태엽 감는 새』의 첫 번째 곡으로는 슈만이 숲으로 들어가면서 느꼈던 환상적인 시간과 공간에 대한 느낌을 담은 곡으로 숲의 정경 중 ‘예언하는 새’가 연주됐다. 이 곡은 숲의 정경 중 가장 몽환적인 분위기로 언뜻 판타지 영화의 배경 음악처럼 느껴졌다. 특히 곡의 클라이맥스 부분에서는 마치 새가 바로 옆에서 지저귀는 것처럼 들려 잠시 다른 세상에 다녀온 것과 같은 느낌이었다. 두 번째 곡은 오페라 <마술피리> 중 파파게노의 아리아 ‘나는야 새잡이’로 파파게노가 새를 유인할 때 쓰는 피리 소리를 담은 피아노 독주를 시작으로 ‘이끈음’의 경쾌한 연주가 이어졌다. 이 곡은 <마술피리> 1막에 등장하는 곡으로 커다란 바구니에 새를 가득 잡고서 즐겁게 부르는 곡으로 모차르트 오페라 마술피리의 장면이 무대 중앙 영상으로 비춰지며 클래식과 오페라, 하루키의 작품이 환상적으로 어우러졌다.

노마문예신인상을 수상한 두 번째 작품 『양을 쫓는 모험』은 하루키 초기 청춘 3부작의 완결편이라 불린다. 데뷔작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와 두 번째 소설 『1973년의 핀볼』, 그리고 『양을 쫓는 모험』까지 이 소설들에는 주인공 ‘나’의 친구 ‘쥐’가 공통으로 등장해 ‘쥐 3부작’이라 부르기도 한다. 소설은 제목 그대로 등에 별무늬가 있는 양을 찾는 모험으로 하루키다운 엉뚱하고 재미있는 상상들이 이야기 속에 녹아있다.

먼저 『양을 쫓는 모험』 소설 속에 등장하는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 제1번-프렐류드(Prelude)’를 첼리스트의 솔로 연주로 감상할 수 있었다. 첼로를 위한 불후의 명곡으로 알려진 ‘무반주 첼로 모음곡’은 총 6개의 파트로 구성되어있다. 연주가 까다롭기로 유명한 이 곡들 중 1번 프렐류드는 그 멜로디가 우리에게 잘 알려진 곡으로 자유롭고 즉흥성이 강한 곡이다. 이어 소개된 곡은 라흐마니노프의 ‘보칼리제(Vocalise)’로 노래를 부르는 사람이 모음 중 하나를 사용하여 자유롭게 부르도록 만들어진 독특한 곡이다. 그래서인지 다양한 버전의 보칼리제가 많은 사람들로부터 사랑받고 있다.

또 이 곡의 해설 중 흥미로웠던 것은 어린 시절 라흐마니노프가 러시아 정교회 신자였던 외할머니의 정교회 모임에 따라가서 들었던 예배음악과 교회 종소리가 훗날 그의 작곡에 많은 영향을 미치는데 ‘보칼리체’에도 그 정교회에서 울렸던 종소리를 담은 멜로디가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K-POP 걸그룹 블랙핑크의 곡 중에 '셧다운'이라는 곡에서도 그 종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고급정보까지 얻었다. 이렇게 음악에 숨겨진 이야기를 듣고 이 두 곡을 다시 들어보니 곡의 멜로디와 더욱 가까워지는 느낌이다.

<Book&Music>에서 소개된 마지막 작품은 수필 『샐러드를 좋아하는 사자』이다. 편안한 차림으로 동네를 산책하며 가끔은 수다스러워지는 하루키를 만날 수 있는 책으로 잡지 《앙앙anan》에서 일 년 동안 연재해온 52개의 에피소드와 한 편의 다른 글을 모아 엮은 수필집이다. 글은 낯가림이 심한 작가가 털어놓은 소소한 일상의 이야기를 담고 있으며 예쁘고 못나고 싫고 좋고를 넘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평범한 일상을 모두 만나볼 수 있다.

『샐러드를 좋아하는 사자』 속에서 만난 클래식은 슈베르트의 ‘아르페지오네 소나타(Allegro moderato)’이다. 수필 속 에피소드 중 오믈렛을 만드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때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이 바로 이 곡이다. 누구나 한 번쯤은 들어봤을 슈베르트의 명곡으로 슈베르트가 느낀 극도의 슬픔과 절망 그리고 잠시 스쳐 지나간 사랑에 대한 복합된 감정이 반영된 곡으로 기타의 음색을 내는 베이스 비올라, 아르페지오네를 위해 씌워졌다. 그러나 이제 아르페지오네는 사라지고 이 소나타만 남아서 악기를 추억하고 있다. 특히 첼로의 음역과 음색에도 잘 어울려 첼로 독주곡으로 자주 연주된다. 유독 가을에 잘 어울리는 곡으로 명랑하고 천진한 분위기와 우수에 젖는 재현부가 대조를 이루며 연주되면서 관객을 가을의 설렘 속으로 끌어들였다.

<Book&Music> 하루키와 클래식에서 만난 그의 작품 속 음악은 결코 지적인 장식이나 기호가 아니었다. 그의 글에서 음악은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 내기도 하고, 숨겨진 의도를 드러내기도 하는 다양한 역할을 하고 있다. 그렇기에 그의 작품을 음악을 제외하고 이해하기란 무척 어려운 일이다. ACC의 이번 <Book&Music>은 음악을 통해 하루키의 작품 세계를 새롭게 이해할 수 있을 자리로 작품 속 음악이야기뿐만이 아니라 바흐, 모차르트, 슈베르트 등의 명곡을 해설과 함께 라이브로 감상할 수 있는 가슴이 웅장해지는 시간이었다.





by 박하나
play.hada@gmail.com
사진
ACC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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