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크로 유토피아>

ACT 페스티벌 2022

# 기술의 토대 위에 만들어지는 새로운 세계

우리나라의 바둑기사 이세돌과 알파고(AI, Artificial Intelligence)의 바둑 대결이 이뤄지며 우리는 순식간에 AI라는 단어에 익숙해졌고 인공지능의 학습 능력에 관심을 가졌다. 거기에 기술의 발전에 맞춰 요즘 아이들 교육에서 코딩은 빠져서는 안 되는 필수요소로 급부상했다. AI의 학습 능력을 넘어 창의성에 대한 고민도 함께 진행되며, 창의성, 창조의 문제는 그동안 인간 고유의 기술이며 인간만이 가능한 영역일 것이라 막연히 생각되었던 것이, 인공지능과 관련하여 창의성이란 과연 무엇인가, 정말 인간만이 창의성을 갖는가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이러한 흐름 안에서 아티스트, 디자이너, 엔지니어, 연구자들이 함께 한자리에 모여 첨단 기술과 아시아 문화의 다양성을 창조적인 방식으로 표현한 작품의 결과물을 선보이고 미래 지향적인 아이디어를 공유하는 ACT(Arts & Creative Technology) 페스티벌 2022가 11월 3일부터 6일까지 국립아시아문화전당 문화창조원 복합전시관을 중심으로 펼쳐졌다.

ACT 페스티벌 2022 개회, ACC

예술과 창의적 기술의 융합을 지향하며 ‘마이크로 유토피아’를 상정하고 다양한 전문 분야의 참여자들이 모여 사회적, 문화적, 기술적 상호작용을 테스트하고 그 과정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시연하는 자리인 ACT 페스티벌은, 참여자들의 실험적 과정을 보여주기 위해 ‘보물선 3.0 - 비밀을 여는 시간’, ‘지구의 시간’, ‘벽 너머의 공간’, ‘사운드 월’ 전시를 7월부터 순차적으로 진행하였고, 페스티벌 기간 렉처 & 토크, 오디오비주얼 퍼포먼스, 워크숍 등을 통해 경험과 참여를 창조하고 상상을 자극하는 창조 구현의 플랫폼인 마이크로 유토피아를 선보였다.

작품활동과 알고리즘적 사고에 관하여, 윤나라, 렉처&토크, ACT 페스티벌 2022, ACC

거대한 유토피아, 모두가 꿈꾸는 하나의 이상향이 아닌 개개인의 창의적 사고로 또 다른 미래를 상상하고 새로운 가능성의 모델을 만들어 나가는 마이크로 유토피아를 들여다보는 ACT 페스티벌의 둘째 날, 문화창조원 복합전시2관에서 진행된 렉처&토크를 찾았다. ACC 창제작 프로그램에 참여한 작가들의 토크로 이어진 이날의 대주제는 ‘예술과 알고리즘의 창의’였다. ‘작품활동과 알고리즘적 사고에 관하여’를 주제로 강연을 시작한 윤나라 교수(인하대학교 문화콘텐츠 문화경영학과 초빙교수)는 알고리즘에 대해 아래와 같이 정의했다.

“알고리즘은 단계별 절차이며 체계적으로 정리된 일련의 과정이다.”

윤나라 교수는 알고리즘을 단계별 절차이자 “충분히” 체계적으로 정리된 일련의 과정으로 정의하고, ‘충분히’를 재차 강조하며 땅콩버터 젤리 샌드위치 만들기 챌린지 영상을 예시로 소개했다. 영상 속에서 남자는 자신의 아이들에게 땅콩버터 젤리 샌드위치를 만드는 법을 적게 하고 오로지 그 명령에 따라 샌드위치를 만들어 나간다. 첫 번째 시도에서 샌드위치는 실패했고, 실패를 거듭하며 샌드위치를 제대로 완성하기 위한 아이들의 ‘명령’은 모든 상황을 ‘충분히’ 세분화하고 ‘충분히’ 구체화 된 과정으로 변화했다.

# 우리의 언어를 그들의 언어로

인간의 언어는 가끔 굉장히 부정확하고 함의와 함축, 그리고 비언어적 표현 등을 포함한다. 몸짓이나 표정, 눈빛, 흐르는 땀, 그리고 침묵 또한 우리의 언어에 포함된다. 그러나 이런 인간의 언어를 컴퓨터는 절대 알아들을 수 없다. 컴퓨터에 어떠한 일을 시키기 위해 우리는 그들의 언어로 우리의 말을 번역할 수 있어야 한다. 즉 컴퓨터에 정확한 ‘명령’을 입력하는 과정이 알고리즘적 사고의 핵심이다.

작품활동과 알고리즘적 사고에 관하여, 윤나라, 렉처&토크, ACT 페스티벌 2022, ACC

실제로 필자는 문과생이다. 컴퓨터는 한글 문서 작성과 인터넷을 이용하는 데 사용하고 있을 뿐이지만, 생활 속에는 이미 수많은 기술이 파고들었고 ‘AI’는 인간에게 믿음을 주기 위한 광고에 흔하게 언급되어 너무나 익숙하다. 주변에서 흔하게 코딩이 언급되기에 코딩교육이 중요한가 보다 생각하지만, 코딩의 C도 모른다.

하지만 강연을 통해 코딩은 서로 다른 존재인 인간과 컴퓨터가 소통하기 위한 번역과 그 번역된 언어를 컴퓨터에 이식하는 과정임을 알게 됐다. 그렇게 생각하니 컴퓨터와 나의 거리가 말이 안 통하는 외국인과의 거리만큼 가깝게 느껴졌다. 과연 가까운 게 맞나 싶지만 그래도 아주 말이 안 통할 것이라는 느낌에서, 어떻게 손짓·발짓으로 소통해 볼 수 있겠다 싶은 느낌으로의 변화다. 그 손짓·발짓을 배우기 위한 과정이 아마도 쉽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노력해볼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강연자는 언어가 통하지 않는 데에서 오는 어려움은 인류에게 처음이 아니며 우리는 그 상황을 늘 겪어 익숙하지만 소통할 대상이 인간에서 컴퓨터로 변화하면서 발생한, 익숙지 않음이 사람들이 기술을 이용하는 데 어려움을 느끼게 만든다고 했다. 하지만 기술의 발전은 정해진 미래이고 우리가 그 기술을 삶에서든 예술에서든 이용해야 한다면 그 기초는 알고리즘적 사고라고 생각됐다.

# 우리가 꿈꾸는 유토피아

강연자는 우리에게 익숙한 개념미술, 그중에 솔 르윗의 작업을 통해 알고리즘적 사고가 예술에 어떻게 작용하는지 보여줬다. 솔 르윗의 작품 번호 51번은 일종의 ‘명령서’다. 그 명령은 눈에 보이는 모든 꼭짓점을 직선으로 연결하라고 말했고, 작가의 작품은 그 개념 자체로 존재한다. ‘작품’이 그려지는 공간이 변하면 작품 제목은 같지만, 그 결과는 매번 다르게 완성된다.

솔 르윗의 작품 358번은 1995년 사람의 언어로 쓰였고 사람이 직접 그려 완성했다. 그러나 2004년 358번 작품은 케이스 리스에 의해 컴퓨터의 언어로 번역되고 컴퓨터에 이식됐다. 솔 르윗의 명령인 ‘작품’이 코딩된 것이다. 솔 르윗은 2007년 고인이 되었지만, 그의 작품은 기술을 통해서 우리에게 여전히 새로운 작품으로 보일 수 있게 되었다.

이렇게 기술은 우리 모두에게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준다. 우리는 펜데믹을 거치며 메타버스라는 기술에 대해 새롭게 인식하게 되었다. 아이들이 가상의 캐릭터를 만들어 즐기는 게임이라는 가벼운 인식을 넘어 많은 사람은 새로운 방식으로 소통하기 시작했고, 나아가 자신이 이루지 못한 꿈이나 이상향을 투영하기 시작했다. 개인의 머릿속에서만 존재했던 그들만의 유토피아는 메타버스를 통해 눈에 보이는 존재로 구체화 되었고, 이를 가능하게 한 것은 기술의 역할이다.

이러한 기술이 예술 안에서 어떻게 융합되고 사용되는지, 작가들의 상상력을 기술이 어떻게 뒷받침하는지 ACT 페스티벌을 통해 조금이나마 들여다볼 수 있었다. 물론 아직은 익숙지 않고 어색하고 이해가 안 되는 부분도 있었지만, 기술과 함께 예술이 어떤 새로운 시도를 계속해 나갈지, 우리에게 어떤 새로운 ‘마이크로 유토피아’를 보여줄지 기대감이 생겼다. 혹시 이번 ACT 페스티벌을 놓쳐 아쉽다면, 내년 2월까지 이어지는 사운드 월(Sound Wall)과 사운드 슬로프(Sound Slope)를 통해 아쉬움을 달래보길 바란다.

서브어셈블리, 료이치 쿠로카와, 오디오비주얼 퍼포먼스, ACT 페스티벌 2022, ACC




by 임우정
larnian_@naver.com
사진
ACC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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