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삶, 그리고 자유를 위한 멈추지 않는 이란의 시민운동

아시아문화 칼럼

# 멈추지 않은 2022년 이란의 시위

거리에서 춤을 추기 위해/키스하기 두려워서/내 여동생을 위해, 당신의 여동생을 위해, 우리의 누이를 위해/빈곤을 위해/평범한 삶에 대한 갈망을 위해/쓰레기 줍는 아이와 그의 꿈을 위해/부패한 경제를 위해/오염된 공기를 위해/ValiAsr거리의 시든 나무를 위해/웃는 얼굴을 위해/학생들을 위해/미래를 위해/이 강요된 천국을 위해/수감된 지식인들을 위해/이민 온 아프간 아이들을 위해/공허한 슬로건을 위해 /평화를 위해/긴 밤 뒤에 떠오르는 태양을 위해/ 신경안정제와 불면증 약을 위해/남성, 조국, 번영을 위해/소년이 되고 싶었던 소녀를 위해/여성, 생명, 자유

자유를 위해/자유를 위해/자유를 위해

이란 시위가 한참 뜨거웠던 지난 9월 28일 이란 국내 가수인 쉐르빈 하지푸르(Shervin Hajipour)는 “위해(Baraye/For...)”라는 노래를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올렸다. 쉐르빈은 트위터에서 이란의 젊은이들, 여성들, 남 성들, 모든 계층과 소수민족들이 무엇을 ‘위해’ 이 시위에 동참하고 있는지에 대한 트윗을 하나씩 가져와 가사를 썼고, 곡을 붙였다. 그의 노래가 업로드되자마자, 이란인들 사이에서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자신의 트위터에, 인스타그램 스토리에, 그리고 친구들 가족들과 공유하는 채팅창에 가수 쉐르빈의 노래를 무수히 전송하고 공유했다.

반정부 시위에 참여한 이란 시민들의 마음을 울린 이 노래의 영상은 쉐르빈의 인스타그램에서 지워졌다. 가수 쉐르빈은 이후 한차례 경찰 조사를 받고 나서 이후의 활동을 하지 못한다. 하지만 이 노래 가사에 공감하는 많은 이들은 직후부터 온라인과 오프라인에서 그의 노래를 멈추지 않고 있다. 2022년 10월 1일 글로벌 연대 시위부터 최근 영국 밴드 콜드플레이(ColdPlay)의 콘서트에 이르기까지 ‘Baraye(위해)’라는 노래는 서울, 토론토, 런던, 로스앤젤레스, 도쿄 등지에서 울려 퍼졌다.

유튜브에서 재생산되고 있는 쉐르빈 하지푸르의 노래

2022년 이란의 거리를 왜 뜨거운가? 왜 지금도 이란의 대학 캠퍼스 안에서 분노의 함성이 끝나지 않는가? 두 달 넘게 지속되고 있는 이란 안팎을 들끓는 시위는 마흐사 아미니라 불리는 22세 한 쿠르드 여성의 죽음으로 시작되었다. 쿠르드 소수민족인 마흐사 아미니는 가족들과 테헤란으로 여행을 왔다가, 지하철역 앞에서 지도 순찰대의 복장 단속에 걸리게 된다. 그녀는 여느 히잡 단속에 걸린 여성들처럼 재교육 센터에 끌려갔다가 혼수상태에 빠지고 갑작스러운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그 이후 한 달 가까이 이란 전역과 전 세대, 다양한 종족들, 그리고 세계 각지의 이란인 디아스포라들은 “여성, 삶, 자유”, “우리는 이슬람 공화국을 원하지 않는다!”라고 외치며 1979년 이슬람 혁명 이후 최대 규모의 연대 시위에 동참하고 있다.

이란 시민운동의 상징이 된 ‘마흐사 아미니’

# 여성, 삶 그리고 자유

시위 초창기에는 히잡 단속에 분노한 여성들과 마흐사 아미니의 고향인 쿠르드 소수민족들을 중심으로 시작되었다. 이번 시위 때마다 울려 퍼지는 “여성, 삶, 자유!”라는 구호는 원래는 20세기 후반 쿠르드 자유 운동 당시 널리 쓰였고, ISIS에 대항하는 투쟁에서도 사용된 바 있다. 1979년 이슬람 혁명이 일어나 이슬람 공화국이 설립된 직후, 히잡의 강제화와 여성들에 대한 샤리아법 적용에 항의하는 대규모 여성들의 시위가 일어난 바 있다. 이후 1981년 법제화된 이후 지난 40년 넘게 히잡 문제는 언제나 개혁적인 여성들과 이슬람 정권 사이의 쫒고 쫒기는 문화 전쟁터였다. 하지만 한 번도 히잡을 불에 태우거나, 이토록 많은 여성들이 연대하여 거리에서 히잡을 벗고 여성의 인권을 외친 적은 없었다.

스웨덴의 연대 시위현장에서 ‘여성, 삶, 자유’ 라는 구호가 적힌 종이를 든 참가자

물론 이번 시위는 단순히 히잡 강제 착용이나, 단속으로 인한 한 여성에 대한 저항은 아니다. 그동안 억눌려온 정치적, 경제적, 문화적인 총체적인 문제가 이번 시위를 계기로 그야말로 폭발할 것이다. 2018년 미국 트럼프 정부가 JCPOA를 일방적으로 파기하면서, 이란 경제는 심각한 침체의 길로 빠지게 되었다.

물가는 40% 이상 올랐고, 청년 실업률은 2020년 최고 28%를 웃도는 수준이었다. 폭력적인 유혈 진압 앞에서도 계속되는 이번 시위를 어떻게 지속할 수 있을지를 묻는 나에게 이란의 40대 지인은 “이제는 더 물러설 수 없다. 우리 세대는 그대로 받아들였지만, 우리의 미래세대에 이런 미래를 물려줄 수 없다”고 울부짖었다.

이란의 젊은 세대들은 늘 이란의 변혁과 개혁에 대한 희망을 잃지 않았다. 특히 젊은 이란 여성들은 일상적이고 실질적인 위험에도 불구하고 저항의 목소리를 잃지 않아 왔다. 2006년 시작된 이란 여성들의 법적 지위 향상을 위한 백만인 서명 운동, 2009년 녹색운동, 2014년부터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시작된 강제 히잡 착용법에 대한 해시태그 운동, 그리고 #LETWOMENGOTOSTADIUM 운동에 이르기까지 이란의 여성들은 언제나 용감한 사자들이었다. 이란의 여성들과 젊은 세대들은 자신들을 향한 사회적 규범과 관습에 대해 저항해 왔고, 또 다른 혁명을 꿈꾸며 그토록 위험한 상황에서도 자신의 목소리를 드높였다.

# 이란의 Z세대가 미래를 바꿀 것인가?

2022년 이란 시위에서 놀라운 장면은 적극적으로 시위에 나선 이란의 Z세대들이다. 여학생들은 허리까지 내려오는 머리카락을 늘어뜨리고 학교와 교실 벽면에 정치 구호를 적는다. 청소년들 역시 용감하게 시위에 나섰다가 죽음을 맞기도 한다.

“우리 젊은 청소년들은 자유를 원하고, 이란 사람들 모두가 평화를 누리길 원해요.
강요된 종교를 원하지 않아요. 특히 히잡을 스스로 결정할 권리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왜 누군가가 종교적 규제를 위해 죽어야 합니까?”

테헤란에 살고 있는 18살 여고생의 목소리처럼 이란의 청소년을 비롯한 모든 세대들이 자유로운 이란을 원하고 있다.

이 젊은 세대는 정권의 인터넷 차단과 엄격한 인터넷 검열에도 불구하고 다른 여느 사회의 청년처럼 소셜 미디어에 익숙한 세대였다. 이미 글로벌 미디어 환경에 익숙한 이란의 Z세대들은 강요되는 엄격한 국가의 통제에 좌절하고, 분노했다. 그리고 온라인에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거나 이번 시위 전에는 상상 할 수 없었던 시민운동을 실천하는 데 두려하지 않는다.

이번 시위로 이란 신정 체제가 쉽게 무너지리라 예측하는 이는 없다. 하지만 무엇보다 확실한 것은 무력으로 시민들을 제압한다고 해서 결코 이슬람 정권이 원하는 ‘정권의 안정’을 얻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들의 바람대로 자유로운 이란을 위해 연대와 응원의 목소리를 보내야 할 때이다.





by 구기연(서울대학교 아시아연구소 HK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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