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로 인류세 너머를 상상하다>
2022 ACC 미디어파사드 <반디산책> 전시 연계 국제포럼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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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류세 : 예술은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인류세는 우리의 미래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이며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 전 지구적 위기 상황에서 우리는 예술로 미래를 상상해보고, 성찰해볼 수 있지 않을까?
이러한 취지로 2022년 8월 31일, 반디산책 전시 개막식과 함께 ACC국제포럼 ‘예술로 인류세 너머를 상상하다’가 개최되었다. ACC 라이브러리파크 북라운지에서 한국, 일본, 중국의 예술분야와 과학분야 전문가들이 모여서 인류세, 미래의 예술에 대한 생각을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이날 외국 연사들은 화상채팅을 통해 비대면으로 포럼에 참석했다.
기조발제는 카이스트 인류세연구센터 박범순 센터장이 맡았고, 주제발표는 중앙미술학원 예술관리·교육학원·과학예술연구원 짜오리 부원장, 루쉰미술학원 장하이타오 석좌교수, 일본 NTT ICC 하타나카 미노루 수석 학예연구사, 포항공과대학교 IT 융합공학과 김진택 교수가 각각의 주제별로 발제를 맡았다.
이 글에서는 포럼에서 논의된 내용 중에서, 카이스트 인류세연구센터 박범순 센터장의 ‘인류세의 세 가지 이미지’와 일본 NTT ICC 하타나카 미노루 수석 학예연구사의 ‘인류세의 새로운 생태계를 위한 미디어아트 : 비인간 중심주의로’ 그리고 포항공과대학교 김진택 교수의 ‘지속 가능 미래 디자인 : 네트워크 쉬프트’를 중심으로 요약하여 살펴본다.
# 인류세의 세 가지 이미지
기조발제 : 박범순(카이스트 인류세연구센터 센터장)
카이스트 인류세연구센터 박범순 센터장은 인류세가 무엇이고, 지구 시스템 변화의 증거는 무엇인지, 인류세의 세 가지 예술적 이미지에 관해 이야기하며, 예술과 미술관이 무엇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해 질문한다.
새로운 지질학적 시대 구분이 필요할 정도가 되었음을 가리키는 용어이다.”
인류세(人類世: Anthropocene)란 무엇인가? 인류세는 인간이 지구의 모습을 바꾸는 주요 행위자로 등장해 새로운 지질학적 시대 구분이 필요할 정도가 되었음을 가리키는 용어이다. 이는 과학계에서 처음 제안되어 논의되기 시작했지만, 바로 인문학, 사회과학, 예술 분야까지 퍼지게 되었다. 그는 인류세라는 개념이 인간이 만든 새로운 지질시대를 의미하는 과학적 개념이면서 인간중심주의의 사고에 변혁을 요구하는 실천적 개념이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인류세 시대에 예술가는 어떤 일을 할 수 있으며 미술관은 무슨 일을 해야 할 것인가? 그는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인류세를 표현한 세 가지 이미지를 소개한다.
첫 번째 이미지는 캐나다의 사진작가 에드워드 버틴스키(Edward Burtynsky)가 다른 작가들과 공동작업해서 만든 인류세 경관이다. 이는 “인류세: 인간의 시대”(Anthropocene: The Human Epoch) 다큐멘터리 포스터 사진으로 쓰이기도 했다. 버틴스키의 작업은 인간의 활동으로 인해 변해가고 있는 자연의 모습을 직시하게 하는 작품으로, 자연에 대한 경외심의 복원을 촉구한다.
두 번째 이미지는 과학 학술지 『네이처』는 인류세 특집호(2015년 3월) 표지로 사용된 이미지로 이탈리아의 일러스트레이터 알베르토 세베소(Alberto Seveso)가 인류세의 핵심 주제인 ‘인간의 활동으로 변한 지구’, 또는 ‘인류의 역사와 지구의 역사의 합류’를 예술적인 상상력을 동원해 표현한 것이다. 인간의 몸을 배경으로 하여, 태평양과 대륙이 있고 그 위에 비행기와 선박, 핵전쟁과 빌딩, 공장과 수풀이 어우러져 있는 모습이다. 그런데 이 인류의 몸이 백인 남성으로 표현되어, ‘인류는 누구를 뜻하는가?’, ‘인류세라는 위기를 만든 주체가 누구인가?’에 대한 질문을 낳게 했다.
인류세를 주제로 만든 작품은 아니지만, 뉴욕에 있는 바리오 미술관(El Museo del Barrio)의 라파엘 몬타네츠 오티츠 기획전 ‘Raphael Montañez Ortiz: A Contextual Retrospective’에서 인류세의 이미지를 발견할 수 있다. 이 작품은 중세 성당의 제단화(altarpiece)를 패러디해서 만든 것으로, 1492년 콜럼버스의 미대륙 ‘발견’ 이후 자행된 스페인 정복자들의 살육과 착취의 모습을 담고 있다. 가운데에는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가 아니라, 해골과 잘린 손뼈, 칼이 피로 범벅이 되어 있고, 그 위에는 천사가 아니라 표범이 노려보고 있다. 그리고 양쪽 날개 부분에는 17세기 책에 기록된 정복자들의 모습이 담겨있다. 이는 산업혁명 이전에 이미, 제국주의가 지구 곳곳에 뻗어나가 식민지를 건설하고 노예를 부리며, 자연과 인간을 착취하고 파괴하기 시작했음을 의미한다.
세 번째 이미지는 박범순 센터장은 “예술은 폭력을 들춰내는 힘이 있고, 시대와 역사와 미래를 동시에 보이게 하는 힘이 있다. 그러기에 예술은 인간과 지구의 역사를 함께 기록하고 해석하며 대안적 상상을 가능하게 한다. 인류세의 곤경을 헤쳐 나가기 위해 미술관이 더 창의적인 일을 해야 한다.”고 말한다.
# 인류세의 새로운 생태계를 위한 미디어아트 : 비인간중심주의로
하타나카 미노루(일본 NTT ICC 수석 학예연구사)
‘인류세의 새로운 생태계를 위한 미디어아트’를 주제로 발표한 일본 NTT ICC 수석 학예 연구사 하타나카 미노루는 2007년 NTT ICC에서 자신이 기획했던 《Silent Dialogue》 전시를 소개하며, 이것이 최근 주목받고 있는 탈인간 중심적인 관점의 선구적인 행사였다고 말한다.
탈인간 중심적 사고의 특징 중 하나는 작가나 인간의 관점이 아닌 타자의 시선에서 세계를 표현하는 것이다. 인간을 특별한 존재로 보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사고하기 훨씬 전부터 존재해온 세계의 일부일 뿐이라는 시각이다.
미노루는 이러한 시각을 보여줄 수 있는 사례들을 소개하는데, 그중 인상 깊었던 작품은 《Silent Dialogue》 전시 출품작이었던 식물학자 ‘도가네 유지’와 작곡가 ‘후지에다 마모루’가 협력 작업한 <Paphio in My Life>라는 작품이다. 이 작품은 도가네가 개발한 식물의 생체 전위신호를 해석하여 디지털 음악 데이터(MIDI)로 변환하는 시스템인 플랜트론(Plantron)을 통해, 식물의 생체활동을 식물의 목소리로 변환하여 보여줌으로써 인간이 자연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나타냈다.
그는 이 작품이 인간이 자연과 대치되거나 구분되는 관계가 아니라, 식물과 관객이 전시 공간에서 공존하면서 상호작용을 주고받는 존재라는 점을 일깨워준다고 말한다. 또한 이 작품은 인간의 관점이 아니라 식물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시도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 지속가능 미래 디자인 : 네트워크 시프트
김진택(포항공과대학교 IT 융합공학과 교수)
김진택 교수는 지속 가능 미래를 ESG(Environment Social Governance) 전환의 관점으로 바라보며, 이것이 바로 ‘가치 디자인’이라고 말한다. 즉, 우리가 우리의 삶을 가치 있게 만들어가는 구체적인 실천을 일컫는 말이다.
그는 자본주의 사회에 대한 근본적인 철학적 성찰과 지속 가능한 인류의 미래를 위한 엄중한 수행의 선택으로 ESG(Environment Social Governance)를 이야기한다. 이것을 번역하자면 ‘지속 가능 사회시스템’ 정도로 이해할 수 있다. ESG는 최근 몇 년 전부터 대중적으로 큰 관심을 가지게 된 용어이다.
그런데 이미 70년대부터 전 지구적 시민사회는 자본주의 시스템과 환경 파괴적인 산업 개발에 대한 진지한 반성을 해왔다. 또한 환경 파괴를 초래하는 자본주의 경제 시스템과 붕괴하는 지구 삶 공동체에 대한 고민이 이어졌다. 1984년 인도 보팔 유독가스 유출 사고, 1989년 알래스카 해역 엑손발데스 선박 기름 유출사고로 인해, 다양한 국제 협약과 조약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이때 1997년 UN에서 환경책임경제연합이 출범하게 되면서, 인류의 경제 활동이 일정한 책임 의식 없이 진행되는 것에 대한 명확한 인식들이 가시화되었다. 이때 지금의 ESG 내용들에 기초가 되는 GRI(Global Reporting Initiative)가 만들어지면서 각국의 정상들과 다국적 기업들이 환경과 미래를 위한 책임 있는 행동에 관심을 두게 된다.
이러한 움직임 속에서 2000년에는 ‘ESG 정보공시의무제’ 제안으로 전통적인 경영시스템에서 중요한 항목으로 보던 매출, 영업이익, 당기순이익 등의 지표들이 아니라, 이제는 새로운 ESG 기준들이 요구하는 무형적 자산의 공시에 의해 기업이 평가받고 투자받는다는 인식을 공유하게 되었다. 기업들이 환경과 지속 가능한 미래에 대해 고민하면서 경제활동을 해야 한다는 인식이 만들어져야 실질적인 ESG 가치가 실현될 것이라는 의미 있는 제안이었다.
그러던 중, ESG라는 용어가 대중화된 것은 바로 2020년 세계 최대 자산 운용 투자회사인 BlackRock 회장 로렌스 D. 핑크가 ESG 가치에 기반한 지속 가능성에 대한 다음과 같은 투자 원칙을 전 세계 지사와 포트폴리오에 포함된 기업에 연내 서한을 보내면서부터이다.
- 1.
석탄 개발업체나 화석 연료 생산 기업에는 투자하지 않겠다.
- 2.
기업의 비즈니스 모델이 NETZERO 경제를 지향하지 않는다면 포트폴리오에서 퇴출하겠다.
- 3.
넷제로를 당장 실현하기 어렵지만 2050년까지 넷제로를 위해 투명하게 일정을 공시하고 그대로 밟아나가지 않으면 투자하지 않겠다.
- 4.
자회사의 범위를 넘어 협력업체와의 노력을 통해 넷제로 네트워크를 구축하지 않으면 투자하지 않겠다.
아이러니한 것은 그동안의 시민사회와 UN이 지속 가능한 미래를 위해 환경과 자본주의 시스템을 극복하기 위한 노력에는 성과가 없었는데, 이 사건 이후 ESG 전환 속도가 급격히 빨라지면서 기업들이 앞다투어 ESG경영을 내세우고 있는 상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방식으로라도 지속 가능한 미래 디자인이 가능하다면 지금의 상황이 너무 시급하여 동의할 수밖에 없다. 인류 공동체의 지속 가능한 삶을 되찾을 기회가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절체절명의 태도로 지속 가능한 미래를 위한 노력을 하지 않으면 지구의 온도는 5년 후 1.5도 이상 오르게 되는데, 이 5년이라는 시간이 인류가 지구 환경을 다시 살아갈 만한 지구로 되돌릴 수 있는 마지막 시간이라고 경고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김진택 교수는 이에 덧붙여, “ESG 가치 전환은 환경문제에 치중하는 지속가능성만을 지향하지 않는다. 공동체 삶 전체 영역에 걸친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삶의 질 디자인을 향한다는 것이 중요하다”라고 말한다. 또한 ESG로 나아가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바로 관계망의 전환, ‘네트워크 시프트’라고 말한다.
카이스트 인류세연구센터 박범순 센터장은 과학 분야에서의 ‘인류세’ 논의와 함께, 인류세를 보여주는 예술적 이미지를 소개함으로써 ‘예술’의 힘을 강조했다.
중앙미술학원 예술관리·교육학원·과학예술연구원 짜오리 부원장은 디지털화로 인한 예술의 변화들에 대해서 논의했고, 일본 NTT ICC 하타나카 미노루 수석 학예연구사는 인류세 시대 우리가 가지고 있는 고민을 표현하는 작품들을 소개했다. 루쉰 미술학원 장하이타오 석좌교수는 미래학과 미래 예술을 중점적으로 다뤘다.
마지막으로 포항공과대학교 IT 융합공학과 김진택 교수는 지속 가능한 미래를 만들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라고 할 수 있는 ESG를 가치 디자인이라고 보고, 우리 삶에서의 구체적인 실천을 촉구했다.
이러한 과학과 예술 분야 전문가들의 논의를 통해, 인류의 현시점에서 미래를 진지하게 성찰해 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인류세’라는 전 지구적 위기 상황에서 예술가들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예술가들은 세상을 바라보는 예민한 감수성과 통찰력으로 우리 시대가 가지고 있는 어떤 문제들을 수면 위로 드러내 보이거나, 자신만의 방식으로 그것을 표현하는 힘이 있다.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기도 하고, 말과 글이 할 수 없는 독특한 표현방식으로 그것을 더욱 의미 있게 전달하기도 한다.
‘예술로 인류세 너머를 상상하다’라는 포럼의 제목처럼, 우리가 직면한 난관을 극복할 수 있는 대안으로서 예술적 상상력을 기대해본다.
- by 소나영
- nayeongso@daum.net
-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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