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디와 매듭

ACC 아시아스토리 창제작 공연

# 우리네 어머니들의 이야기, 공연 '마디와 매듭'에 담다

ACC 창제작 공연 마디와 매듭
절기별 풍경과 세시풍속에 어머니들의 이야기 담아
아름다움 속 숭고함 전달되길 바라

한 달에 두 번 일 년에 스물네 번 태양이 지나는 시간 간격에 따라 구분된 절기(節氣). 농경사회 동아시아인에게 꼭 필요했던 농사력(農事曆)으로 불리는 24절기는 자연의 순리에 따른 인간의 삶과 지혜가 공존하는 시간의 매듭이다.

입춘 때 농가에서는 농사 준비를 시작하는 날로, 입춘을 기점으로 88일째 되는 망종에 농부들은 밭에 씨를 뿌려 1년 농사를 출발했다. 210일째 되는 늦가을 상강에는 그동안의 노고를 보답이라도 받듯 추수의 결실을 맺었다. 겨우내 먹을 김치는 입동을 전후로 담아야 제맛을 낼 수 있어 집집마다 김장 풍경은 든든한 겨울나기 모습이었다.

우리나라를 비롯한 동양에서 대한은 겨울을 매듭짓는 절후로 보았으며 대한의 마지막 날을 절분이라 하여 계절적으로 연말 일(日)로 여겼다. 풍속에서는 이날 밤을 해넘이라 하여 콩을 마루나 방에 뿌려 악귀를 쫓고 새해를 맞기도 했다.

ACC 아시아스토리 창·제작 공연 ‘마디와 매듭’은 일 년의 시간 24절기를 배경삼아 만든 종합예술이다. 24절기 속 세월의 매듭을 짓고 살아온 우리 어머니 할머니들의 이야기다. 절기에 따른 여인들의 이야기는 창·제작을 통해 시가 됐고 그 시는 리듬을 만나 노래가 되었다.

2021 <마디와 매듭> 쇼케이스

마디와 매듭

마디마디
멈추어서
숨 고른 자리

마디마디
맺히었다
흘러 간 자리

벗님네야
벗님네야
세월은 마디도 없더라마는
세월은 마디도 없더라마는

소한

땡땡 오그라진 손으로
꽝꽝 얼음장을 부수니
깍깍 가치가 인사를 한다 아랫목에 나란히 누운 새끼들
갈라터진 얼굴에
버짐꽃만 허옇게
피었구나, 피었구나

‘꽝꽝한’ 소한에 ‘갈라터진 얼굴’로 잠든 어린 자식들을 들여다보는 어머니도 한때는 ‘마음엔 가만히 봄’이 들어섰던 입춘의 여인이었고, 한식날 ‘불 꺼진 아궁이에서 찬밥’을 먹으며 할머니의 옛이야기를 듣던 꼬마이기도 했다.

2021 <마디와 매듭> 쇼케이스

24절기 안에서 다양한 모습의 일상을 살았던 우리 어머니와 할머니 세대. 그녀들이 자연과 함께 공존한 이야기를 시와 노래와 춤으로 엮은 마디와 매듭은 절제된 단순미가 단연 으뜸이다. 무대는 흑과 백의 조합만으로도 관객의 시선을 충분히 집중시킨다. 불필요한 치장이나 필요 이상의 장식은 배제됐으며 춤의 움직임과 동선의 간격은 최대한 심플하다. 단순함이 주는 안정감을 통해 관객은 오히려 단순미에서 오는 심오함을 느낄 수 있다.

2021 <마디와 매듭> 쇼케이스

공연의 음악을 맡은 최우정 작곡가는 마디와 매듭의 음악을 가리켜 “비빔밥 같은 거”라고 한다. 정가, 판소리, 민요에 클래식과 대중음악을 섞어 만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밥과 어우러지는 나물의 원재료 맛을 잘 느끼게 하는 비빔밥이다. 대금은 대금대로 클라리넷은 클라리넷대로, 피아노는 피아노대로 어느 마디에서 어떤 소리로 노래와 조화를 이룰지 잘 안다. 판소리와 피아노의 선율이 잘 어울릴 수 있다는 것을, 정가와 클라리넷의 음색이 잘 맞을 수 있다는 것을 관람석에 앉아 자유롭게 느낄 수 있다.

노래와 무용도 마찬가지다. 서로가 서로에게 말을 건네 듯 대화를 나눈다. 그래서 편안하다. 머리로 분석하지 않아도 된다. 그저 무대에서 펼쳐지고 있는 것들에 대해 약간의 흥만 느끼면 된다. 공연의 연출을 맡은 정영두 연출가는 “의미나 교훈 이런 생각들은 접어두고 그냥 편하게 보고 즐기라”고 말한다. 그리고 바람이 있다면 “노래의 아름다움 속 숭고함이 관객들에게 전달”되는 것이다.

「 마디와 매듭 」 포스터

극 ‘마디와 매듭’은 오는 10월7일(19:30)부터 8일(15:00, 19:00)까지 광주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예술극장2에서 90분간 펼쳐진다. 찬이슬이 맺힌다는 ‘한로’와 쾌청한 날씨가 지속되는 상강 사이에 있어 나들이하기 알맞다. ‘새로운 미’로 창조된 우리말의 아름다운 가락을 이 가을에 느껴보는 것은 어떨지.





by 윤미혜
mi4430@eroun.net
사진
ACC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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