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에 더 뚜렷해지는 여름의 색과 선율 속으로 떠나자!

ACC 문화체험 <ACC 나잇>

언제나처럼 여름은 뜨거운 태양 아래 타오르는 아스팔트, 긴 장마와 거센 태풍, 그리고 무더운 열대야를 주는 사계절 중 가장 다이내믹한 계절이다. 그래서인지 여름은 자세히 들여다볼수록 즐길 거리와 소소한 일상, 멋진 풍경들이 다양하게 존재한다. 그중 달빛 아래 여름밤이 주는 낭만은 오래도록 긴 여운을 남기며 간직된다.

낮 동안 내리쬐는 햇볕에 진땀이 온몸을 감싸고 불쾌지수가 끝을 모르고 고공 행진한다. 하지만 한낮의 열기가 서서히 사그라지고 수채화 같은 노을과 파랗고 투명한 달이 떠오르자 여름밤의 정취가 찾아온다. 그리고 여기 여름밤의 정취와 함께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이하 ACC)의 밤 산책이 시작된다. 푹푹 찌는 듯한 더위, 회색 도심 안에 사는 우리는 탁 트인 바다나 시원한 계곡으로의 일탈을 꿈꾸지만 현실은 그리 쉽게 떠날 수 없어 늘 아쉬움을 남긴다. 하지만 도시 한가운데서도 얼마든지 소소한 일탈과 휴식을 찾을 수 있다. 아시아문화공연과 함께하는 밤 산책, <ACC 나잇>처럼 말이다!

ACC 나잇

<ACC 나잇>은 한여름 무더운 낮 시간을 피해 해가 저문 저녁 시간대 여름밤 달을 마주하고 걷는 낭만을 느낄 수 있는 특별한 투어 프로그램이다. 이번 <ACC 나잇>은 아시아권 노래를 따라 ACC 일대의 꽃과 나무들을 알아가는 미션 수행형 투어와 꽃을 주제로 한 퓨전국악 공연을 엮은 프로그램으로 ACC 밤 풍경과 더불어 공연까지 즐길 수 있는 한 여름밤 작은 축제로 꾸며졌다.

뜨거웠던 낮의 태양이 물러나고 선선한 바람이 불기 시작하는 저녁 7시 30분, <ACC 나잇> 참여를 위해 ACC로 발걸음을 옮긴다. 투어는 ACC 시민공원에서 시작된다. 이번 <ACC 나잇>은 ‘꽃의 선율’을 주제로 ACC의 밤 정취를 즐기며 주어진 미션을 수행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그래서인지 투어 시작 전부터 참여자들의 얼굴에서 긴장과 설레는 표정이 엿보인다. ‘꽃의 선율’은 어느 날 풀로 변해버린 한 소녀의 원래 모습을 되찾기 주기 위한 탐험으로, 꽃의 정령들이 ACC 일대에 숨겨놓은 5개의 선율을 찾아 선율 티켓을 획득해 소녀를 다시 사람으로 되돌리는 미션이 포함되어 있다. 물론 미션을 해결하면 소녀의 선물이 기다리고 있다.

ACC 나잇

<ACC 나잇> 투어 위해 모인 같은 그룹의 사람들과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본격 미션에 돌입한다. ‘꽃의 선율’ 미션 투어가 시작되자 참여자 개인에게 초대장이 발송됐다. 초대장에는 풀로 변한 소녀의 편지와 각 미션에 대한 힌트가 담겨있다. 자! 이제 풀의 메시지와 힌트를 가지고 본격 미션 해결을 위해 출발!!

# 소녀를 다시 되돌리기 위한 미션 파서블 시작

첫 번째 미션카드인 풀의 메시지에는 식물의 사진과 함께 4개의 힌트가 전달되었다. ACC 시민공원 내에 있는 광주광역시 문화재자료 제20호로 지정된 곳에 있는 이 식물은 삼으로 꼰 새끼줄 같은 덩굴 나무로 하얀 웃음이라는 꽃말을 가진 바람개비 모양의 꽃을 가지고 있다. 서둘러 시민공원 여기저기를 둘러보니 안내판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바로 광주읍성 유허에 관한 글이었다. 덩쿨이 감싸고 있는 이 돌담은 조선시대 축성 방식을 잘 반영한 광주 읍성 유허로 광주광역시 문화재자료이다. 700여 년의 세월을 이겨내고 여전히 자기 자리를 지키고 있는 이 돌담은 이제 풀과 꽃으로 감싸져 마치 정령들의 집처럼 보인다.

정령들의 첫 번째 선율이 숨겨진 식물은 바로 이 광주 읍성 유허에 자리하고 있다. 바로 사철 잎을 뽐내며 바람개비를 닮은 꽃을 피우는 마삭줄이 그것이다. 마삭줄의 선율을 플레이 티켓에 담긴 QR코드로 찍자 음악과 함께 바람개비처럼 대나무 사이를 빙글빙글 돌아가는 필리핀의 민속춤 ‘티니클링‘이 흘러나왔다.

두 번째 미션카드 속 풀의 메시지에는 제주의 이야기가 담겨 있었다. 이 식물은 제주에 많이 피어 있으며, 거센 바람을 막아주는 방풍림으로도 사용된다. 특히 제주 4‧3 사건의 추모곡에도 이 식물과 관련된 이야기가 나오는데 풀이 건네준 힌트인 4‧3 사건의 추모곡을 듣고 가사 속에서 선율이 숨겨진 식물을 찾을 수 있었다. 두 번째 선율은 바로 애기동백 속에 숨어있었다. 한 겨울에도 꽃을 피우며 자연의 힘을 전하는 애기동백은 주로 해안 촌락 부근과 해변 산지에 서식한다. 꽃이 중간 정도 벌어지면 동백꽃, 활짝 피면 애기 동백이라고 부르며 애기동백은 동백에 비해 잎과 꽃이 매우 작아 다 커도 동백나무의 절반 크기밖에 되지 않는다고 한다. 겨울이 되면 ACC 이곳저곳에서 활짝 핀 애기동백을 만날 수 있다.

애기동백꽃 지면 겨울이 가고 봄이면 산에 들에 진달래 피네
울긋불긋 단풍에 가을도 가면 애기동백 꽃 피는 겨울이 온다

- 애기동백 꽃의 노래 일부 -

세 번째 풀에게 전달받은 힌트는 선율을 숨겨둔 식물의 사진이었다. 앗! 그런데 그만 종이가 찢겨 어떤 식물인지 알아볼 수가 없게 되었다. 그러나 다행히도 찢어져 흩어진 종이를 가지고 있던 팀원들과 조각을 모아 선율이 숨겨진 식물을 찾아낼 수 있었다. ACC 시민공원 가운데 보랏빛으로 반짝이고 있는 맥문동이 세 번째 선율의 숨겨진 장소였다. 맥문동은 진시황의 불로장생의 소망이 담긴 식물로 뿌리가 한약재로 사용된다. 그늘진 곳에서도 잘 자라는 특성 때문에 도심 빌딩의 그늘진 정원에서도 종종 발견할 수 있는 반가운 식물이다. 맥문동의 선율은 진시황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 ‘영웅’의 삽입곡 “For The World”로 천하를 통일한 진시황의 기개를 느낄 수 있었다.

사라진 네 번째 선율은 그윽한 향을 가진 식물에 숨겨져 있다. 풀이 건네준 시향지와 초성 힌트를 통해 네 번째 식물을 찾아 정원 이리저리를 둘러본다. 나무 아래 그늘진 곳 산수국 근처로 가자 산수국 향기가 단번에 발걸음을 사로잡는다. 네 번째 선율은 바로 산수국 안에 숨겨져 있었다. 여름 꽃 산수국은 습기가 많은 그늘에서 자라는 야생화이다. 산수국을 자세히 보면 큰 꽃과 작은 꽃 두 가지 꽃을 발견할 수 있는데, 특별한 점은 안쪽에 피는 꽃은 너무 작아 벌과 나비를 유인하기 어려워 가장자리에 화려한 꽃을 피워 곤충을 유인한 후 안쪽 작은 꽃에서 향기를 뿜어 수정을 한다. 산수국에 담긴 선율은 대만의 국민가요 “만춘풍”으로 사랑이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을 담은 곡이다. 이루어지지 못한 슬픈 사랑의 전설이 담겨있는 산수국과 닮은 곡을 감상하며 잠시 꽃 향과 음악에 빠져본다.

이제 선율을 찾기 위한 마지막 미션만이 남아있다. 다섯 번째 풀의 메시지는 선율을 찾는 것을 방해하는 정령을 찾아 그 정령의 마음을 풀고 힌트를 얻어내야 하는 쉽지 않은 미션이었다. 미션을 진행하는 동안 팀 안에 숨어 계속 방해공작을 펼친 정령 한 명이 곁에 있었다니, 모두 깜짝 놀란 표정이다. 다행히 방해 정령은 어렵지 않게 가려낼 수 있었다! 이제 남은 건 방해 정령과의 게임을 통해 정령을 즐겁게 하여 힌트를 얻어내는 것! 그리하여 치열한 묵찌빠 승부를 통해 얻어낸 첫 번째 힌트는 이 식물의 잘 익은 까만 열매가 염주를 만들 때 사용된다는 것이었다. 두 번째 힌트는 영빈관 백화원 기념 식수로 이 나무가 심어졌다는 것, 마지막 세 번째 힌트는 한여름 나무 전체를 감싸고 흐드러지게 핀 노란 꽃이 떨어지는 것이 마치 금빛 비가 내리는 것 같다고 하여 붙은 영어 명칭 골든레인트리(Goldenrain Tree)였다. 세 개의 힌트를 듣자마자 떠오르는 나무가 하나 있었다. 바로 시민공원 입구에 자리하고 있는 모감주나무이다. 역시 필자의 예상대로 마지막 선율은 모감주나무에 숨겨져 있었다. 모감주나무는 세계 희귀종으로 대부분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보호되고 있다. 열매로 염주를 만들어 염주나무라는 별칭이 있는 귀한 나무를 도시 안에서 볼 수 있어 놀라웠다.

ACC 나잇

모감주나무의 꽃말은 자유와 번영이다. 모감주나무에 담긴 선율은 분단 이전 한반도 어린이들이 즐겨 불렀던 동요 “반달”을 모티브로 하여 통일에 대한 간절한 염원을 담긴 곡으로 슬픔과 웅장함을 동시에 느낄 수 있는 선율이었다.

# 꽃의 선율을 더 감상해 보실래요?

드디어 5개의 선율을 찾아 모든 미션을 완성해 선율티켓을 획득했다. 선율티켓을 들고 다시 돌아온 소녀가 감사의 의미로 준비한 ‘꽃의 선율’ 공연을 감상하기 위해 공공미술작품인 왕두-Victory가 있는 야외 테라스로 이동하여 선율을 모은 플레이 티켓을 제시하고 공연장에 입장한다. 테이블마다 간단한 다과와 작고 귀여운 조명들이 여름밤을 더욱 특별하게 만든다. 공연은 광주의 청년 뮤지션들이 모여 결성한 ‘새날 New Day’팀의 퓨전국악으로 준비되었다. ‘새날’은 전통음악을 다양한 장르의 음악과 함께 재해석하고 널리 보여주자(들려주자)는 뜻을 담은 크로스오버 밴드이다. ‘가로수 그날 아래 서면’, ‘너영 나영’, ‘사랑가’, ‘아리랑 메들리’, ‘쑥대머리’, ‘열두 달이 다 좋아’, ‘제주도의 푸른 밤’ 7곡이 여름밤과 어우러져 ACC 공간에 울려 퍼진다. 바람결에 스치는 푸른 나뭇잎과 여름밤 달빛 같은 연주로 어느새 여름밤에 기분 좋게 물들어간다.

ACC의 다양한 투어 프로그램 중 내 개성과 취향에 맞는 프로그램을 찾아 신청하고 체험하는 것은 마치 다양한 아시아의 이야기들을 탐험하는 것 같다. 계절에 따라 변화하는 아시아의 색, 시간, 향기, 소리처럼 우리가 투어를 통해 가져갈 여름의 기억은 무엇이 될 지 기대된다.

ACC 나잇




by 박하나
play.hada@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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