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년, 그들의 이야기

우직함이 만들어낸 아시아의 하모니

“The only reason for time is so that everything doesn’t happen at once”
시간에 대한 단 한 가지 이치가 있다면 모든 일은 단 한 번에 일어나지 않는다-아인슈타인

 

처음 시작은 이랬다. 
“한국에도 전통악기가 있고, 아시아에도 전통 악기들이 있다. 서양 악기들의 오케스트라는 있는데 왜 전통악기들로는 오케스트라를 만들 수 없지@f0 그렇다면 그 악기들을 한 자리에 모아 연주를 해보는 것은 어떨까@f1”

“야, 그거 재밌겠다! 안될게 뭐야, 까짓것 어디 한번 해보자!”

그래보면 어떨까라는 상상에서 시작된 이 허구 맹랑한 이야기는, 당시 실현 가능성은 없어 보였다. 그 누구도 하지 않은 처음을 만들기란 어려웠고 모두가 예상하듯 그 과정은 쉽지 않았다. 한국에서 시작된 이 제안을 동남아시아 각 정부가 받아들일지도 의문이었다.




아시아 전통 오케스트라의 시작



그러나 다행히도 출발이 좋았다. 2008년 5월, 한국과 동남아시아 11개국은 한 자리에 모였다. 재밌는 아이디어에 대해 모두가 동의했고 그들은 이 말도 안 되는 오케스트라를 함께 만들어보기로 했다. 각 국 대표들의 동의를 얻고 2009년 2월 실무자들은 동남아시아 각 나라를 찾아갔다. 그곳에서 그 나라를 대표하는 전통악기에 대한 설명을 듣고 악기가 연주하는 소리를 기록했다. 악기들의 연주 방법과 소리를 낼 수 있는 음역과 음계가 한 장 한 장 그려졌다.
타악기, 목관악기, 관악기, 현악기... 손으로 치는 악기, 입으로 부는 악기, 심지어 콧구멍으로 부는 악기까지 다양한 악기들이 오케스트라의 후보로 올랐다. 한국과 동남아시아의 전통악기를 후보군들을 모아 실제 곡을 작곡할 한국과 아세안 작곡가들이 모여 곡을 쓰며 조율을 하기 시작했다.









이해와 열정, 영혼의 하모니



그리고 2009년 3월, 한국과 아세안 대표들은 다시 한국에서 만났다.
그들은 그 자리에서 한-아세안 전통음악 오케스트라(현 아시아 전통오케스트라)를 한-아세안 정상특별회담이 잡혀 있는 5월 31일 창단하기로 결정한다. 당시 한-아세안 전통음악 위원회 공동위원장인 조셉 유스타세 얼 피터스는 “한-아세안 전통음악 오케스트라를 창설하기까지 적지 않은 어려움이 있었다. 11개국에서 거론된 악기의 종류가 52개에 육박했고 기보법은 국가별로 제각각이었으며 작곡방식 또한 매우 달라 준비하는 과정에서 상당히 애를 먹었다. 그러나 이번 프로젝트에 참여한 모든 음악인들과 관계자들은 모두 프로페셔널이었다. 이들의 투철한 직업정신과 음악에 대한 이해와 열정, 한국 측의 적극적인 기술 지원 덕분에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었다”라고 밝힌 바 있다.

조셉 위원장의 언급처럼 52종의 전통악기들이 음을 조화롭게 내기는 쉽지 않았다. 연습 과정에서 음을 맞추기 위해 집안 대대로 내려오는 보물과 같은 전통악기를 과감하게 자르는 연주자도 있었고, 오랜 시간을 들여 작곡한 음악을 한 순간에 휴지뭉치처럼 구겨 쓰레기통에 넣는 일도 발생했다. 그들은 자존심이 상했고 방에 틀어박혀 울었다. 맞춰가는 과정은 쉽지 않았고 언쟁이 일어나고 소리와 의견이 맞지 않는 시간 동안 싸늘한 분위기도 발생했다.
음악에 대한 갈등만이 아니었다. 낯선 환경에서 긴 시간을 보내며 아세안에서 온 연주자들은 고향에 대한 그리움도 커져갔다. 그들은 음악과 그리움과 싸워야만 했다.




낯설고 서먹했던 그 분위기가 치열한 연습 과정을 거치며 점점 변해갔다.
문화와 전통, 인종과 언어가 다른 이들이 모여 가슴으로 노래를 만들기 시작했다. 낯선 공간에 불편한 신발을 신고 격식을 차리던 사람들은 평소대로 맨발로 다니기도 하고, 쉬는 시간에는 피아노 앞에 함께 노래를 부르는 풍경조차 만들어졌다.
11개국의 그들은 어느 새 친구가 되었고 그들의 손과 입과 코에서 나오는 음악은 마침내 하나의 하모니를 완성하고 있었다.

음악은 언어와 달리 그 자체로 소통이 가능한 모두의 공통 언어였다.
사람들은 그랬다. 이런 얼토당토한 일은 불가능할 것이라고. 어떻게 서로 다른 소리를 내는, 음 영역도 제각각인 전통악기들이 오케스트라를 만들 수 있겠냐고.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이들은 서로를 격려하고 할 수 있다며 열정의 시간을 불태웠다. 음악은 그들의 영혼을 위한 양식이 되었다.









첫 공연... 그리고



2009년 5월 31일. 그 날 아침, 그들이 묵었던 숙소는 긴장감이 감돌았다.
공연장으로 이동하기 위해 단체 버스에 올라타는 그들의 얼굴에는 사뭇 비장함 마저 감돌았다.
한국과 아세안의 정상들과, 그리고 11개국에서 온 귀한 손님들이 객석을 채웠다.
막이 열리고 지휘자의 첫 손짓이 시작되었다.
마침내, 그들의 상상은 현실이 되었고 관객석에서는 기립 박수가 터져 나왔다. 막이 내리고 공연장의 관객들이 빠져 나갔지만 ‘한-아세안 전통음악 오케스트라’의 연주자도 작곡가도 관계자들도 그 자리에서 나가지 못 했다. 모두가 나간 빈 공연장, 막이 다시 올랐다. 그들은 모두 무대에 서서 서로를 얼싸안고 눈물을 훔치며 흐느끼거나 성공적으로 개최한 공연을 기뻐했다.

 

 









ACC, 앞으로의 여정



한-아세안 전통음악은 때로는 실내악단으로 때로는 합창단과 함께하며 아시아 전통오케스트라로 이름을 더 확장시켜 2016년인 오늘날까지도 매년 운영하고 있다.

필리핀 악기 반드리아를 연주하는 일레인 줄리엣 에스페요 카주컴은 2016년 공연을 마치고 이렇게 이야기했다.
“이걸 준비하면서 무척이나 행복했다. 다른 언어, 다른 전통문화, 다른 삶의 방식임에도 불구하고 각국의 음악을 연주할 때면 하나 된 마음으로 연주했다. 하나의 노래로 말이다…정말 굉장한 공연이었다!”라고.

국립아시아문화전당(ACC)의 A는 Asia를 의미한다. 드넓은 아시아에는 문화자원이 무궁무진하다. ACC는 그런 아시아의 음악을 담아 ‘아시아 전통오케스트라’를 창단하고 아시아의 이야기를 담은 ‘아시아 스토리텔링’ 사업을 진행하며 아시아의 몸짓을 함께하는 ‘아시아 무용단’을 창단했다.

아시아 전통오케스트라의 창단부터 지금까지 쭉 함께하는 최상화 감독은 “매년 모든 공연들이 다 특별했다. 모든 연주가 특별하다”라고 밝혔다.

이 특별한 아시아 전통오케스트라 공연이 모든 이들에게, 아시아와 세계에 특별한 존재가 되는 그 날을, 이제 이들은 더 큰 미래를 상상한다.
그들이 과거에 그랬듯, 그 상상은 불가능이 아니라 현실이 될 것이다 언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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