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시대, 지구를 사유하는 법

2022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융복합콘텐츠 전시 「지구의 시간」

최근 몇십 년에 걸쳐 인간과 자연의 관계에 매우 중대한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지구 온난화로 인한 급격한 기후변화, 산업혁명 이후의 환경오염과 생태계 파괴로 인해 무작정 앞만 보고 달려온 인류는 마침내 위기에 직면했다. 이제 인류와 지구의 관계를 다시 생각해 봐야 할 때다.

문화창조원 복합전시 2관 상상원에서 열리고 있는 「지구의 시간」은 최첨단 융복합 디지털 기술을 응용한 콘텐츠를 선보이는 전시로, ‘인류세(Anthropocene)’에 직면하게 된 우리들에게 지구와 더불어 어떻게 공존할 것인가에 대해 질문하게 한다.

‘인류세’란 인류가 지구 시스템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게 시작한 시기를 뜻한다. 또한 화학자 파울 크뤼천(Paul Crutzen)에 의해 2000년에 명명된 이 용어는 지구의 전체 역사를 나누는 공식적인 지질 연대표에 새로운 지질시대를 추가해야 한다며 제안되었다. 인류세는 공식 지질학적 용어라기보다는 인문학적 · 철학적 용어로서 논의되며 뜨거운 논쟁거리가 되고 있다.

#1. 지구의 연대기 <Imaginary Portal>

전시장에 들어서면, 17x7m 규모의 대형 LED 게이트를 마주한다. 대형 미디어 게이트 <Imaginary Portal>는 「지구의 시간」 전시로 몰입을 이끄는 경계로서, 세계와 세계를 연결하는 동굴을 모티브로 했다. 알타미라 동굴, 고대 이집트, 산업혁명, 백남준의 미디어아트까지, 과거에서부터 지금까지 인류가 거쳐 온 길이 펼쳐진다. 문명의 발달과 함께한 인류의 역사와 지구의 연대기를 되돌아본다. 이 작품에는 아나몰픽 기법이 사용됐다. 아나몰픽은 착시를 통해 3D 효과를 내어 입체감을 극대화하도록 하는 최신 영상 제작 기법이다. 이러한 첨단 디지털 기술은 작품에 더 몰입하도록 만든다.

<Imaginary Portal>

#2. 디지털 기술로 구현된 자연 <물의 순환>

다른 세계로 넘어가는 듯한 이 미디어 게이트를 지나면 눈앞에 파랗게 빛나는 원형 바다가 펼쳐진다. <물의 순환>이라는 미디어 작품이다. 대형 LED 샹들리에에서 빛으로 표현된 물이 폭포처럼 뿜어져 나오고, 파도가 치고, 고래와 해파리, 수많은 물고기 떼들이 헤엄친다. 또 그 물이 마치 블랙홀이 물을 빨아들이듯 사라지고 다시 물이 뿜어져 나오기를 반복한다. 이는 물의 순환을 보여주는 작품으로 오랜 시간 지구가 가지고 있는 회복력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관람객은 파도가 치는 원형 바다 위를 걷는 강렬한 디지털 체험을 할 수 있다. 우리는 거대한 자연을 마주할 때 숭고함을 느끼는데, 미디어로 구현된 자연에서도 일종의 기시감이 느껴졌다. 우리는 이제 자연도 미디어를 통해 느낄 수 있게 되는 것일까? 이 작품은 자연에 대한 우리의 관점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기를 유도한다. 또한 우리가 직면한 위기를 자연 생태계의 선순환과 회복력으로 극복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가능성을 제시한다.

작품 위에 서 있으면, 발밑으로 파도가 지나가고 물고기들이 지나간다. 마치 깊이가 있는 물 위에 서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 일으킨다. 때에 따라 발걸음이 닿으면 그 발걸음 아래로 물의 파장이 생긴다. 2층에서 이 원형 바다를 바라보면 또 다른 시각으로 내려다볼 수 있다.

<물의 순환>

#3. 우주에서 바라본 지구 <New Planetary System>

<New Planetary System>은 우주에서 바라본 지구의 시간을 형상화한 작품으로, 어두운 방안에 태양계 행성을 상징하는 구체들이 떠 있는 듯 하다. 이러한 구체들이 빛과 거울의 반사를 통해 무한 확장하는 우주 공간을 보여준다. 여기서 우리는 무한한 우주의 시공간을 상상할 수 있다.

#4. 지구에서 바라본 우주 <One Day>

앞의 <New Planetary System>이 우주에서 지구를 바라보는 시점이라면, 이 작품은 지구에서 우주를 바라보는 시점이라고 할 수 있다. 지구의 낮과 밤, 지구의 하루를 담고 있는 <One Day>는 누워서 ‘별’ 볼 일이 없는 현대인에게 누워서 ‘별’과 ‘오로라’를 볼 수 있는 경험을 제공한다.

실제로 누워서 천장의 360° 디지털 영상을 볼 수 있도록 원형 의자가 마련돼 있다. 이 작품에서 흘러나오는 몰입형 사운드는 싱어송라이터로 잘 알려진 ‘루시드 폴’이 이 미디어 영상을 보고 만든 음악으로 우리를 명상으로 이끈다. 누워서 빛과 어둠과 함께 변화무쌍한 하늘을 바라보면 반복해서 흘러가는 지구의 하루가 신비롭게 느껴진다.

<New Planetary System>
<One Day>

#5. 관람객의 음성으로 시각화되는 인류의 경험들 <Sound Wave>

관람객의 음성에 의해 실시간으로 반응하도록 제작된 <Sound Wave>는 흘러가는 지구의 시간 속에서 변화무쌍한 인류의 경험들을 시각화한다. 영상 앞에 두 개의 마이크가 설치되어 있는데, 왼쪽 마이크에 대고 소리를 내면 이미지들이 합쳐지고, 오른쪽 마이크에 대고 소리를 내면 이미지들이 파괴되는 형상이 나타난다. 동시에 소리를 내면 형상들이 새롭게 변화한다. 이는 정반합의 과정을 통해 발전해나가는 인류의 방향성을 상징하는 것처럼 보인다.

#6. 원시지구의 기억 <Largo>

미디어 아티스트 클로드의 작품 <Largo>는 지구가 행성으로 만들어지기 전, 액체와 기체로 구성된 원시 지구의 기억을 형상화한 작품이다. 작품 제목 ‘Largo’는 음악 용어로 ‘아주 느리게’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기포들이 천천히 변화하는 모습들은 산업혁명 이후 빠르게 변화하는 속도에 익숙해진 현대인들에게 아주 오래전 우리가 지닌 고유의 속도를 상기시킨다.

<Sound Wave>
<Largo>

#7. 치유와 회복의 메시지 <미래에서 온 이야기>

처음 들어갔던 미디어 게이트를 나와서 오른 편으로 가면, ACC가 개발한 VR 실감공연 ‘비비런’을 아나몰픽 기법으로 재구성한 콘텐츠 <미래에서 온 이야기>를 볼 수 있다. 이번 전시에서는 VR 안경 없이도 입체감과 몰입감을 느낄 수 있다. 머지않은 미래 2080년 황폐화된 지구에서 각종 오염물질과 바이러스를 먹고사는 비비와 비비런이 생명의 씨앗을 찾아가는 모험을 통해 치유와 회복의 메시지를 지구에 전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8. 우리 모두가 함께하는 노력들 <생명의 씨앗>

<생명의 씨앗>은 비비런의 스토리를 기반으로 한 인터랙티브 영상으로, 폐허가 된 지구에서 눈물을 흘리는 비비런 옆에 관람객이 다가가면 생명의 씨앗으로 꽃을 피워 파괴된 환경을 회복시킨다. 비비런 옆에 많은 사람이 다가갈수록 더 많은 꽃을 피우며 더 큰 회복력을 보여준다.

<미래에서 온 이야기>
<생명의 씨앗>

전시 관람이 끝나면, 전시장 입구에 마련된 ‘나와 지구의 시간’이라는 포토존에서 기념사진을 촬영하여 나만의 포스터를 만들 수 있다.

전시관람을 마치고 포토존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는 관람객
전시관람을 마치고 포토존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는 관람객

이번 「지구의 시간」 전시는 이머시브 영상, 아나몰픽 영상, 사운드 스케이프 등 최첨단 융복합 기술을 응용한 콘텐츠를 소개한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또한 첨단 디지털 기술의 스펙터클함과 시각적 즐거움을 보여주는 동시에, 거기서 그치지 않고 디지털 체험을 통해 관람객으로 하여금 사유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인류세’라는 인류의 위기는 인류의 미래에 어떤 의미를 가져다줄 것인가? 인류와 자연의 공멸로 이어질 것인가? 아니면 예측 불가능한 지구의 미래를 능동적으로 변화시켜 나갈 것인가? 또 우리는 자연이 가지고 있는 고유의 회복 능력을 되찾을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인가? 아니면 또 다른 공생을 생각해야 하는 것일까? 여러 질문을 낳게 한다. 이 전시를 통해 지구의 과거와 현재를 바라보고, 지구의 미래와 인류가 앞으로 나아갈 길을 조망해 보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은 어떨까?





by 소나영
nayeongso@daum.net
사진
ACC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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