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마른 사막에서 샘솟는 ‘아쿠아 천국’
수생태계와 인간의 대안적인 관계를 모색하는 융‧복합 전시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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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쿠아 천국(Aqua Paradiso)>이라는 제목의 전시를 소개하는 리플릿의 표지가 눈에 들어온다. 전시는 ‘아쿠아 천국’이라는 타이틀에서 연상할 수 있듯이 ‘물’을 주제로 하고 있다. 하지만 그 타이틀과 달리 전시 리플릿은 물이 말라버린 사막의 이미지로 관객으로 하여금 의문과 궁금증을 자아낸다. 하지만 리플릿 속 금방이라도 바람에 흩날려 사라져 버릴 것 같은 이 사막의 이미지는 오히려 그 삭막함이 물을 떠올리게 한다.
국립아시아문화전당 문화창조원 복합 3‧4관에서 ‘물’을 주제로 한 기획전시 <아쿠아 천국(Aqua Paradiso)>이 개막했다. 전시는 수생태계와 인간의 대안적인 관계를 모색하는 융‧복합 전시이다. 오래전부터 물은 인류에게 경외와 감사의 대상이었다. 하지만 우리시대 물은 더 이상 신비로운 경외의 대상이 아니라 인류를 위협하는 대상이자 보호해야 할 대상이 되어버렸다. 한쪽에서는 해수면 상승으로 인한 물 넘침, 한쪽에서는 사막화로 인한 물 부족 이 물의 양극화 현상은 인류세의 도래와 함께 극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아쿠아 천국>은 ‘물’이라는 생명의 원천을 시각예술을 통해 다각도로 조명함으로써 자연이 가진 잠재력과 숭고함을 상기시키고자 기획되었다. 인류의 신화와 역사에 깃든 물의 서사, 자연 생태를 순환시키고 치유하는 물, 인간 무의식에 존재하는 물 등 다양하고 풍부한 물의 이야기를 작품으로 물에 대한 인류의 태도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도록 하고 있다.
전시를 여는 첫 작품은 리경 작가의 「나의 환희는 거칠 것이 없어라」(2018)로 천지연 폭포를 빛과 사운드를 매체로 재해석한 작품으로 거울을 통해 반사되며 끊임없이 이어지는 물의 흐름을 보여준다. 작품이 놓인 공간에 들어서 가만히 귀 기울이면 제주가 가진 아름다운 자연환경이 떠오르고 물을 가두지 못하고 바다로 흘러들게 하는 검은 돌이 떠오른다.
이어 만난 작품은 이이란(Yee I-Lann/말레이시아)의 「술루이야기」(2005)으로 배경 위에 모형을 설치하여 하나의 장면을 만드는 ‘디오라마’ 기법이 이용된 작품이다. 섬 사이의 분쟁과 갈등, 그리고 식민주의에 대한 이야기들을 담은 작품으로 술루 이야기는 필리핀과 말레이시아 사이에 실재 존재하는 곳으로 오늘날까지 영토분쟁이 일어나고 있는 곳이다. 실제 이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영토분쟁의 갈등의 기록들을 사진으로 기록해 보여주고 있다. 과거 우리는 자연을 우리와 별개인 정복이나 극복의 대상으로 바라봤고, 이를 위해 과학이라는 문명의 이기를 발전시켜 왔다. 누군가는 기후위기보다 앞서 경제발전을 이뤘고, 누군가는 발전에 뒤처졌다. 이것은 누군가에게는 승리를 또 다른 이들에게는 굴복과 피지배를 동시에 나타낸다. 식민지 수탈의 역사를 드러내는 이 이란 작가의 작품처럼, 인류 문명의 승리는 기후위기라는 지구 수탈의 역사를 드러냈다.
전시장 한쪽 벽을 모두 채운 대형 파노라마 작품 마리안토(Maryanto/인도네시아)의 「띠르따 페르위타사리」(2022)는 자바섬의 풍경을 2주 동안 전시장 벽에 흑연으로 그려낸 작품으로 산업화, 토지오염, 천연자원 착취에 내재된 식민지 개척자와 자본주의자의 충돌을 다루고 있다. 그림의 장소인 자바섬은 전통적으로 물을 숭배하던 곳이었다. 하지만 현재는 이곳의 물을 수적 자원으로 이용하려고 하고 있으며 작가는 이에 자본주의에 의해 지배당하고만 환경을 작품으로 보여주고 있다.
우리는 살아가며 원하든 원치 않든 많은 쓰레기를 발생시키고 이는 물을 통해 드넓은 바다로 흘러들어 간다. 이렇게 바다로 간 쓰레기는 우리가 볼 수 없는 거대한 섬을 만들어내고, 태풍이나 쓰나미가 일어나면 해변으로 몰려와 다시 육지로 돌아온다. 쓰레기는 물에 의해 쪼개지고 쪼개져 물속에, 자연에, 그리고 우리 몸속에서 미세플라스틱이 되어 부유한다. 닥드정은 우주복의 이음새를 막기 위해 개발된 우주과학 기술인 자성유체라는 신소재를 이용해 새로운 시각미술을 연구하며 과학실험 같은 아카이브 작업 「원천미술」(2016~2022)을 선보인다. 우주와 예술이 연결되었듯 우주와 쓰레기의 연관성을 떠올려본다. 언젠가 지구에서 처리하지 못한 쓰레기를 우주로 보내게 되는 날, 우리 주변을 넘어서 우주공간에 부유하는 쓰레기들을 마주하게 되는 시대를 상상해 본다. 과연 상상에서 끝날 것인가 의문이 생겨난다.
베니스 대홍수와 영산강을 소재로 제작된 프랑스 작가 아드리앵 M & 클레어 B(Adrien M & Claire B/프랑스)의 「아쿠아 알타-거울을 건너서」(2019)는 팝업북 형태의 증강현실 작품으로 관객이 직접 참여할 수 있는 작품이다. 작품명 ‘아쿠아 알타’는 이탈리아어로 ‘높은 물’을 뜻하는데 베니스에 정기적으로 발생하는 해수면의 높이가 정상적인 상태를 벗어나는 현상을 말한다. 가속화된 지구온난화에 따른 위기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작품으로 적극적이고 새로운 방식의 작품 감상 경험을 제공한다.
무등산, 광주천 일대의 생태계를 연구하고 여기서 나온 질문을 작품화한 권혜원의 「액체 비전 – 프롤로그」(2022)는 ‘양서류의 시각으로 강을 바라보면 어떨까’라는 재밌는 상상에서 시작하는 탐구적 다큐멘터리 작품이다. 양서류의 시각으로 강을 바라보면서 산의 수원지, 계곡, 습지, 저수지의 공간을 쭉 따라가며 양서류의 시각에서 본 강을 관객들과 공유하고 있다.
키네틱 아트를 선보인 빠키의 「무의식의 원형」(2022)는 존재의 생성과 소멸, 순환에 대한 질문에서 출발한 작품이다. 모빌 형태의 작품으로 융의 심리학을 기본으로 재구성했다. 주요한 구성요소로 사용되는 동그라미 형태는 물의 순환성을 형태적으로 가식화한 것으로 특히 안개, 이슬, 비, 구름 등 다양한 모습으로 존재하는 물의 속성은 기본 형태의 반복에서 새로운 생성의 가능성을 모색하는 작가의 작품과도 닮아 있다.
에코 오롯은 「제주산호뜨개」 (2018~2022)를 통해 산호의 죽음으로 보이는 해양생태계 급격한 변화와 이로 인한 위험을 알리고, 동시에 일반인이 뜨개질을 통해 작품을 함께 구성하게 함으로써 사람들에게 행동으로 기후위기에 대처하기를 제시한다. 팬데믹을 겪으며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급격한 변화를 맞이했고, 짧은 시간동안 수많은 생명이 희생되는 것을 지켜봤다. 기후변화가 야기한 이례적인 폭우, 강력해진 태풍, 홍수와 쓰나미에 대해 이야기했고, 반대로 지나친 가뭄으로 갈라지는 땅과 불타는 산을 보았다. 이러한 사태들을 보며 우리는 과연 가까운 미래에 어떠한 변화를 맞이할 것인가? 그 변화를 위해서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인가라는 걱정스러운 질문들이 끊임없이 쏟아낸다. 하지만 이러한 걱정이 질문에서 멈춘다면 기후위기는 위기에서 끝나지 않을 것이다. 에코 오롯의 작품이 말하고자 하는 것처럼 우리는 이제 행동으로 기후위기를 대처해야 한다.
김태은의 「Rectangular System」(2005)는 가운데 테이블을 두고 양쪽에 의자가 서로를 마주하고 있다. 이 작품은 양쪽 끝에 앉는 두 사람의 관계성을 시각화한 작품으로 관객이 의자에 앉아 마주보고 마이크에 대고 대화를 나누면 이는 소리 데이터로 치환되어 사각형의 모양으로 나타나 액체가 유영하듯 공간으로 재생산된다. 이미지를 물질화하고 그것을 물에 용해시켜 표현한 작품이다.
부지현 작가의 「Where is it going」(2022)은 밤에 물고기를 잡을 때 어류를 모이게 하기 위해 켜는 집어등(集魚燈)을 활용한 설치작품이다. 폐집어등에서 떨어지는 물이 조용하게 만들어 내는 궤적이 우리를 명상으로 이끈다. 버려진 것을 작품으로 변모시키며 기후위기와 함께 최근 대두되는 쓰레기 문제-미니멀리즘, 제로웨이스트, 업사이클링-에 대한 우리의 관심을 재고하게 한다.
전시의 마지막에 다 다르면 대만에서 전해지는 대홍수와 창세 신화를 바탕으로 형상화한 토우와 영상작업을 통해 원시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는 리우 위 「이야기가 넘쳐 홍수가 될 때」(2020)를 마주할 수 있다. 전시의 시작과 끝에 배치된 작품을 통해 언젠가 책에서 보았던 제주도의 창세 신화가 떠올랐다. 여성이며 거인인 <설문대할망>의 신화는 전지구가 아닌 제주도라는 특정 지역의 창세 신화라는 점이 독특하면서 지엽적이라고 생각되지만, 동시에 서양의 거인 신화, 254개 이상의 민족들 사이에서 84개의 언어로 전해지는 대홍수 신화와 본질이 닿아 있다.
옛날에 하늘과 땅이 붙어 있는 것을 큰 사람이 나타나서 떼었는데 물바다로 살 수가 없어서 가장자리로 돌아가며 파올려서 제주도를 만들었다.
<한국구비문학대계> 9-2,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81 수록(송기조 화자 구연)
- 신동흔 <살아있는 한국 신화> 한겨레출판, 2014 中 발췌 -
신화로 존재하지만, 아마도 인류가 공통으로 경험했을 ‘대홍수’는 현대로 와 다른 이름으로 우리에게 공통의 경험을 제공한다. ‘코로나19’라는 팬데믹 사태를 경험하며, 그동안 개인의 선택처럼 생각됐던 환경보호에 대한 요구가 개인을 넘어 지역사회, 기업, 국가, 전세계가 함께 극복해야하는, 지구 공동의 경험으로 확장되어야 함을 깨달았다. 우리는 모두 연결되어 있으며 인류의 행동이 지구에 살아가는 생명 전체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에 대해 그 어느 때보다 관심이 높아졌다.
인류가 야기한 기후위기 속에서 ‘물’을 주제로 하는 이번 전시를 통해 우리는 무엇을 떠올릴 수 있을까? 단순히 생각해 보면 물은 흐름이다. 흐르지 않는 물은 고여서 썩을 뿐이고, 흐름은 새로움, 정화, 변화를 일으킨다. 근원에서 시작하는 작은 물줄기는 다양한 물줄기를 만나 새로워지고 변화하여 강으로 바다로 나아간다.
‘물’이라는 생명의 근원을 바라보는 11명의 작가들의 작품을 선보인 이번 전시는 우리에게 현재의 기후위기를 바라보도록 제시하지만, 극단적인 자연으로의 회귀나 복귀를 촉구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우리의 관점을 변화하게 하고, 과학 혹은 기술이 어떻게 기후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지, 우리는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지 고민하게 한다. 11명의 작가, 14점의 작품을 만날 수 있는 <아쿠아 천국(Aqua Paradiso)>은 오는 9월 12일까지 국립아시아문화전당 문화창조원 복합 전시 3‧4관에서 진행되며 관람료는 무료이다. 이 전시를 통해 시각예술의 다양성을 느끼고 동시에 현시대를 살아가는 인류공통의 문제인 ‘기후위기’에 대해 다시금 고민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되기를 바란다.
- by 임우정
- larnian_@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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