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가락이 가리키는
그곳에서 너를 만난다

2021 ACC창작공간네트워크 온라인 협력사업
[C_link: click our studio]

이슈&뷰


십여 년 전 미국의 한 다큐멘터리 제작사에서 만든 「인류 이후의 생태계」가 화제가 된 적이 있었다. ‘인류가 갑자기 다 사라져 버린다면 남겨진 문명들은 어떻게 될 것인가’라는 물음에서 출발한 이 다큐멘터리는 과학적인 추론을 통해 환경과 동식물 생태계의 변화를 보여주었는데 우리의 기대와 달리 인간들이 남긴 문명의 흔적은 화재와 홍수로 빠르게 무너져 갔고 얼마 안 가 그 자리에는 새로운 생태계가 생겨났다. 오랜 시간 쌓아온 인간의 문명도 자연의 힘 앞에서 얼마나 나약하고 허망한가를 보여준 이 다큐멘터리처럼 아직 전 세계가 코비드-19로 인한 팬데믹에서 자유롭지 못하고 있다. 국가 간의 인적 물적 교류가 제한되면서 정치적 이유가 아닌 보이지도 않는 바이러스 때문에 문화의 교류마저 단절되다시피 한 것은 냉전 이후 처음일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클릭 한 번으로 해외의 다양한 도시와 예술 공간을 연결시켜 보여주는 프로젝트를 기획했다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국립아시아문화전당(ACC)과 아시아문화원(ACI)이 ACC창작공간네트워크 온라인 협력사업의 일환으로 기획한 [클링크: 클릭 아워 스튜디오 (C_link: click our Studio)]는 아시아와 중동의 5개국 다섯 도시의 모습을 예술 종사자의 시선으로 소개하고 있다. 지난 11월 24일부터 12월 22일까지 5주간 매주 수요일 유튜브 ACC채널에 업로드 된 영상은 손가락 클릭 하나로 우리를 가고 싶어도 갈 수 없는 다른 문화적 공간으로 데려다 준다.

C_link 포스터

처음 떠나는 목적지는 대만의 수도 타이베이이다. 타이베이에 거주하면서 작업을 하고 있는 화가 황완린이 우리를 그의 작업실이 있는 양밍산 자락으로 데리고 가서 자기가 어떻게 작업에 접근하고 어떤 공간에서 작업을 하고 또 어떤 사람들을 만나는지를 잔잔한 발걸음으로 보여준다.(사진 1) 작가는 거리로 나와 사람들을 만나고 지역 음식을 먹으면서 일상을 보여준다. 그리고 서점, 아틀리에, 카페로 구성된 문화공간인 ‘윈싱 아트 플레이스’를 소개하고 두 곳의 국제교류 레지던시 프로그램을 소개하는데 하나는 대만 최초의 공공예술촌인 ‘타이베이 아티스트 빌리지’이고 다른 하나는 낙후된 마을 전체를 리모델링한 예술촌 ‘바오창옌’인데 두 곳 다 예술의 새로운 가능성을 실험하는 곳이다.(사진 2) 그 외 많은 문화예술 공간들을 우리에게 보여준 황왕린은 동북아 지역의 여러 레지던시 프로그램에 참여했던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대만의 문화, 역사, 풍습과 음식 등 자신의 정체성을 다시 돌아보고 창작과 사고에 많은 영감을 받았다고 말하면서 작별 인사와 초대의 말을 전한다.

(사진1, 2) 대만 타이베이
(사진1, 2) 대만 타이베이
(사진1, 2) 대만 타이베이


여행의 목적은 여러 대상들을 접촉하면서 본연의 나 자신을 깨닫기 위한 것이라는 괴테의 말을 떠올리면서 두 번째 도시인 인도네시아의 자카르타로 향한다. 열도와 군도에서 모여든 많은 사람들이 만드는 다양한 문화, 예술, 창조의 역동성이 독특하게 어우러진 자카르타는 자칭 문화의 용광로답게 많은 콘텐츠와 인프라를 따라가기 힘들 정도로 소개하고 있다. 경제 발전과 더불어 여러 지역에서 예술가와 큐레이터를 위한 창작공간들이 생겨나면서 예술이 경제와 문화를 선도하는 새로운 산업으로 부상하고 있다. 인간과 기술 간의 관계를 탐구하는 예술가 단체 ‘트로마라마’와 자카르트 남부 끄망 지역의 예술과 디자인 전문가들이 모여서 만든 대안공간 ‘디아.로.구에 아트스페이스’는 창의적인 라이프스타일의 중심지가 되었다.(사진 3) 그리고 다양한 대안교육 프로그램과 복합기능 스튜디오 단지를 개발하고 있는 ‘굿스쿨’까지 일상에 예술을 접목시킨다는 목표로 창작산업에 대한 대중들의 인식 제고를 위해 노력하고 있는 모습은 주목할 만하다.
또한 국제적인 관광도시답게 숙박시설에 예술적 감각을 가미해 관광객과 예술애호가를 적극적으로 유치하고 있는 ‘아르토텔’은 일회성의 호텔아트페어가 아닌 예술과 관광의 결합을 잘 보여주고 있고, 낙후지역 노후 건축물 보존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건축유산을 새로운 창작허브로 활용하는 ‘M블록 스페이스’도 문화와 예술을 이용한 도시재생 프로젝트의 좋은 사례이다.(사진 4) 큐레이터 그룹 ‘아르코랩스’의 에블린 황 큐레이터는 자카르타를 표현하는 세 단어로 다문화, 분주함, 기회를 말하고 ‘아르코랩스’의 닌디 큐레이터는 자카르타를 무궁무진한 기회의 도시라 하면서 예술을 이용한 창조산업으로의 여정에 우리를 초대한다.

(사진3, 4)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사진3, 4)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사진3, 4)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요르단의 자연은 예술가에게 큰 영향을 미칩니다”라는 내레이션과 함께 시작하는 요르단 암만의 영상은 우리를 단번에 이국적인 사막의 풍경으로 이끌고 들어간다.(사진 5) ‘와디 피난 아트 갤러리’ 대표 수하 랄라스는 유구한 역사 위에 아로새겨진 문명의 역사가 요르단 작가들의 작품에 담겨 있고 역사는 더욱 독창적이고 뛰어난 작품을 만들 수 있도록 영감을 준다며 요르단의 환경과 역사에 대한 자부심을 내보인다. ‘테이블 포 텐 스튜디오’ 대표 소산 알 칼리디는 암만의 자연에서 얻는 재료의 무궁무진함과 시간과 노동의 가치가 느껴지는 작품들이 세계적인 경쟁력을 가진다고 말하고 있는 한편 중동지역의 예술가를 세계에 소개하는데 주력하고 있는 ‘아티네러리’ 설립자 및 ‘DAR 아트페어’ 공동설립자인 디나 다바스 리파이는 외국에서 가지는 아랍 미술에 대한 선입견(캘리그래피, 오리엔탈리즘, 사막, 낙타를 소재로 한 그림 등)을 넘어서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한다.(사진 6) 이렇게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되고 강력한 문명을 지니고 있는 요르단은 과거와 현재, 미래 세대 등 모두를 아우르는 역사와 문명의 다양성이 존재하는 곳이고 암만은 문화적 다양성과 뛰어난 자연 경관을 품은 도시로서 특정 유형이나 형태에 갇혀있지 않아서 예술가에게 끊임없이 새로움을 주는 최적의 환경임에 틀림이 없다. 암만에서 작업을 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초대 영상이었다.

(사진5, 6) 요르단 암만
(사진5, 6) 요르단 암만
(사진5, 6) 요르단 암만


아시아 대륙의 서쪽 끝에서 발길을 돌려서 다시 동쪽 끝으로 날아가서 일본의 나오시마에 도착한다. 예술섬으로 익히 알려진 섬을 방문한다는 것에 여행의 설레임이 조금 사라졌는데 안내를 맡은 사진작가이자 아티스트인 시타미치 모토유키와 함께 섬을 한 바퀴 둘러보면서 다시 설레임이 살아났다. 폐가를 예술현장으로 재탄생시킨 ‘아트 하우스 프로젝트’로 각 집마다 예술가들이 한 명씩 배정되어 영구 전시할 작품을 만들었고, 제임스 터렐, 스기모토 히로시, 쿠사마 야요이의 공공미술 작품이 섬 곳곳에 자리 잡고 있다는 것과 안도 다다오가 설계한 지추미술관이 있고 또 최근에 이우환 미술관을 개관한 것도 시타미치가 현재 진행 중인 프로젝트의 신선함을 따라갈 수 없었다.(사진 7) 가족과 함께 나오시마로 이주한 작가가 섬주민들과 함께 만들어가고 있는 ‘세토우치 “ ” 아카이브 프로젝트’는 나오시마의 예술기관인 후쿠다케 재단의 지원을 받은 프로젝트로 전시를 넘어서 현지도민들이 모일 수 있는 도서관이나 커뮤니티 센터 또는 관광객들이 나오시마의 역사를 알기 위해 들르는 박물관의 역할까지 하는 공간으로 만드는 것이라 한다. 이곳을 고향이라고 부르는 사람들과 이곳을 방문하는 관광객 모두를 위한 작업이 될 것이라며 나오시마에 오신다면 자신의 프로젝트를 꼭 보러와 달라고 말하는 시타미치 작가의 인사에서 과거에 멈춰 있지 않고 계속해서 나아가는 예술섬의 살아있는 모습을 보는 것 같아 기분이 좋아졌다.(사진 8)

(사진7, 8) 일본 나오시마
(사진7, 8) 일본 나오시마
(사진7, 8) 일본 나오시마


한국 광주의 문화공간은 대인시장 내에 있는 스튜디오에서 작업을 하고 있는 서영기 작가가 안내한다. 걷다가 마음을 붙잡는 이미지들을 포착해서 작업을 하는 작가의 뒤를 따라 걷다보면 시각적 경험과 함께 광주 대안공간의 역사를 알 수 있다. 대안공간의 시발점인 대인시장과 대인시장 주변에 생겼다가 사라진 문화공간부터 현재까지 활동하고 있는 ‘바림’, ‘다오라’, ‘뽕뽕브릿지’, ‘오버랩’, ‘호랑가시나무 창작소’를 둘러보면서 광주지역 대안공간의 역사를 알게 해주고 그 공간들이 젊은 작가들의 활동에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를 보여준다.(사진 9) 또 광주의 작가들에게 특별한 기회를 주는 광주시립미술관의 레지던시 프로그램을 소개하면서 서영기 작가 스스로도 양산동 창작스튜디오 입주작가의 경험이 작가로서의 삶에 큰 도움이 되었다고 밝히고 있다. 빼놓을 수 없는 광주비엔날레와 ACC를 거쳐서 발산마을로 우리를 데리고 간다. 7,80년대 방직공장에 다니기 위해 모여든 사람들이 만든 마을로 지금은 낙후된 동네로 남겨진 곳을 예술가들이 참여하는 도시재생사업을 통해 ‘청춘발산’이란 발칙한(?) 이름이 어울리는 마을로 탈바꿈하는 중인 것을 볼 수 있었다.(사진 10) 조용하지만 조금씩 움직이고 있었다. 가장 짙은 어둠이 물러가면 새벽이 온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지 않은가? 코비드-19가 끝나면 더 활발한 활동을 할 것을 기대하면서 작가는 그림을 그리러 작업실로 돌아갔다.

(사진9, 10) 한국 광주광역시
(사진9, 10) 한국 광주광역시
(사진9, 10) 한국 광주광역시


이렇게 손가락 하나로 다섯 도시의 예술가들이 만들어 내는 콘텐츠와 예술가들을 위한 인프라를 둘러보았다. 여행은 일상의 작은 교류이지만 여행을 통한 문화의 교류는 일상을 바꿔 놓는다. “여행의 목적지는 장소가 아니라 사물을 보는 새로운 시야”라고 했듯이 새로운 시각은 창의적인 사고를 가능케 한다. 괴테가 ‘예술의 하늘에는 새 별들이 계속 출현한다’고 했는데 새 별은 문화적 교류를 통해서만 찾을 수 있고 또 그 별들을 바라봐야 우리의 길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클링크: 클릭 아워 스튜디오(C_link: click our Studio)] 프로젝트가 ACC창작공간네트워크 구축 사업의 일환으로 진행된 만큼 향후 코비드-19 팬데믹이 끝나면 국가 간, 지역 간의 문화교류를 위해 창작공간과 문화공간 그리고 문화사업에 관한 교류가 활발히 이루어지길 바란다.

이미지 설명

Q1. 코비드-19로 인해 세계 여러 나라들이 국경을 봉쇄하면서 인적교류뿐 아니라 문화적 교류마저 단절되고 있는 이 시국에 아시아 여러 도시들의 예술환경(창작과 소통)을 소개하는 시도가 흥미로웠습니다. 대만의 타이페이, 인도네시아의 자카르타, 요르단의 암만, 일본의 나오시마 그리고 한국의 광주를 선정했는데, 각 나라와 도시를 선정하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요?

김: 2021 아시아 창작공간 네트워크(AASN) 온라인 콘텐츠 기획 방향 중 하나는 기존에 개인 중심으로 축적되어 온 네트워크를 영상 제작을 통해 확장시키고자 하는 것입니다. 코비드-19로 인해 국제교류는 기존의 관계망 안에서 더욱 공고해지는 흐름이 있는데, 네트워크가 없는 사람들도 리서치의 과정으로써 도움이 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자연스레 해당 국가의 대표 지역으로 시작하였습니다. 나오시마의 경우, 동시대 아시아의 다양한 창작공간의 현재를 기록하고자 하는 측면에서 그 섬 지역에 예술가 1인만 거주하며 창작활동을 지속하고 있는 모습을 담게 되었습니다.



Q2. 여러 도시 중에 암만을 포함시킨 점이 흥미로운데 요르단이 아시아에 속하기는 하지만 흔히 우리가 중동이라고 부르는 초기 기독교와 이슬람 문화가 혼재된 나라로 알고 있습니다. 암만을 소개한 것이 아시아의 지평을 넓게 보자는 의도로 읽히는데 기획자의 생각은 어떻습니까?

김: 말씀하신 그런 의도와 같으며, 아시아문화원 측에서도 교류가 적었던 새로운 지역을 발굴하고자 하는 의사가 있어서 선정하게 되었습니다.



Q3. 각 도시마다 문화적 환경을 소개하는 작가들이 등장하고 도시를 돌아다니면서 창작공간과 소통공간을 보여주는 포맷을 취하고 있는데 기획단계에서 작가 섭외는 어떻게 하고 형식은 어디까지 가이드라인을 정해줬는지 궁금합니다.

김: 임종은 총괄기획자님과 각 지역마다 대표 협력자(facilitator)를 선정, 그를 통해 창작공간과 예술씬으로 확장되는 방식을 취했습니다. 협력자는 작가도 있고, 기획자도 있는데 각자의 특징에 맞게 시나리오를 구성하도록 하였으며, 도시마다 알려진 정도에 따라 다루는 범위나 깊이를 다르게 하였습니다. 소개된 공간, 작가, 시놉시스는 참여작가들이 구성하였으며, 영상매체를 통해 전달되는 작업이기 때문에 모든 과정에서 화상회의를 통해 의견을 주고받으며 발전시켰습니다.



Q4. 이 기획이 ACC창작공간네트워크 구축 사업의 일환이라고 했는데 코비드-19가 종식되고 국가 간의 교류가 예전처럼 활발하게 재개되면 각 도시에 있는 창작 레지던시를 활용한 작가교류를 ACC 차원에서 진행할 어떤 계획이 있는지 알고 싶습니다.

김: 제가 외부 기획자여서 ACC차원에서의 계획은 말씀드리기 어렵습니다만... 다시 예전처럼 직접적인 교류가 활발해진다면 ACC에서도 보다 적극적으로 사업 변화를 모색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 글. 노순석 noriso@naver.com
    사진. ACC 제공

    2022.1

 

공감 링크복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