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의 어느 멋진 날에

2021 ACC시민오케스트라 클래식공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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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오후, 공연을 보기 위해 오랜만에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을 찾았다. 예술극장1에서 펼치는 ACC시민오케스트라의 클래식 연주를 보기 위해서였다. 우리 모두는 코로나19 팬데믹이 장기화 되면서 일상을 잃어버린 힘든 시간을 보냈다. 주말이면 가족과 함께 즐기던 공연과 전시는 멈춘 지 오래였고 사람을 피해 다니는 것이 오히려 자연스러운 일이 되었다. 그런데 이제는 단계적인 방안들이 제시되고 사회적 거리두기가 완화되는 위드 코로나시대에 접어들었다. 움츠렸던 어깨를 펴고 다시 일상을 시작할 때다. 무엇보다 반가운 소식은 ACC시민오케스트라 공연이다. 그 동안 공연에 목말랐던 관람객들이 예술극장을 찾은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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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C시민오케스트라는 10월 24일 오후 5시 지휘자 김영언과 함께 38명의 시민 음악가가 모여 클래식향연을 펼쳤다. ACC시민오케스트라는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의 대표 지역협력프로그램으로 일상 속 문화예술 활성화를 위해 기획된 프로그램이다. ACC시민오케스트라는 아마추어 음악가 40-50명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번 연주회를 위해 전문 음악가의 도움을 받아 4개월 연습과정을 거쳤다. 단원들의 이력은 다양하다. 젊은 날, 생활 때문에 음악을 잠시 접었던 사람이나 미래에 연주자로 활동하고 싶은 꿈을 간직한 사람들이다.
ACC시민오케스트라는 2017년 공연사업팀 김희정 본부장이 국립아시아문화전당에 오면서 시작되었다. ‘장롱 속 악기를 꺼내드립니다’라는 시민참여 프로그램을 시작하면서 시민들의 많은 호응과 적극적인 참여를 보며 더 많은 사람들에게 기회를 주자는 취지였다. ACC시민오케스트라는 아마추어 연주자들로 나이와 국적, 연령에 상관없이 매해 단원 모집을 하고 있다. 이전 해에 참여한 사람도 오디션을 볼 수 있다니 공정성까지 갖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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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감독 유형민의 짧은 인사말이 끝나자 모두가 기다리던 공연이 시작되었다. 마스크를 쓴 채 등장하는 단원들과 관람객의 모습은 과거에는 볼 수 없었던 이색적인 연출을 자아냈다. 비록 거리두기 객석제로 예술극장을 꽉 채우는 관람객은 아니었지만 그 열기는 극장을 꽉 채웠다. 모두가 기다리는 지휘자 김영언이 무대에 모습을 보이자 그를 환영하는 박수소리가 곳곳에서 터져 나왔다.
연주회의 시작은 로시니의 「도둑까치」 서곡이었다. 박동감 넘치는 오프닝과 경쾌한 행진곡 풍의 음악이 예술극장을 가득 채웠다. 우울했던 시간을 견디고 새로운 시작을 여는 우리 모두를 위로하고 격려하기 위한 탁월한 선곡이었다. 「도둑까치」는 2막 구성의 오페라 세미세리아(Opera Semi-seria)이다. 비극과 희극이 함께 어우러져 오페라 세리아(Seria)와 오페라 부파(buffa)의 중간 성격을 갖는 작품으로 엘칸토 형식의 효시로 평가되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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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그의 「피아노 협주곡 가단조」는 ACC시민오케스트라와 피아니스트 김민준이 협연했다. 이 곡은 클래식을 듣지 않는 사람도 누구나 한 번쯤 들어 봤을 만큼 우리에게 너무나 잘 알려진 곡이다. 팀파니가 연타로 울리면서 연주가 시작되자 관람객들은 눈을 뗄 수가 없었다. 특히 이 곡은 도입부가 강렬하고 인상적인 하행화음으로 임팩트가 있다. 1주제인 포르티시시모는 피아노가 부서져라 두들겨야 한다는 말처럼 연주자의 기교가 필요한 곡이다. 1주제에 이어 첼로가 2주제에 등장하며 다시 피아노가 선율을 받아 한껏 연주가 고조된다. 관객들은 자신도 모르게 오케스트라 연주를 따라 움직이는 감정의 추이를 느끼게 된다. 음악과 청중이 하나가 되는 순간이다. 또한 김민준의 손이 건반 위에서 열정적으로 움직이는 모습을 직접 볼 수 있다는 것도 관람객이 놓칠 수 없는 즐거움이다. 특히 그가 연주 사이사이에 ACC시민오케스트라와 호흡을 맞추며 아름다운 선율을 함께 만드는 모습은 이곳을 찾은 관람객들에게 아낌없는 박수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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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가곡 「청산에 살리라」는 바리톤 백영준이 선사한 곡이다. ACC시민오케스트라 연주에서 유일하게 연주된 우리 가곡이었다. 작곡가 김연준은 1973년 윤필용 필화사건에 연루되어 구치소에 갇혔을 때 이 노랫말과 선율을 썼다고 한다. 세상의 번뇌와 시름에 대한 고통을 승화시킨 곡으로 짧은 길이의 곡이지만 강한 인상을 주었다. 특히 바리톤 백영준은 시민 음악가 경진대회에서 성악부문 최우수상을 수상한 이력을 갖고 있다. 그의 협연은 ACC시민오케스트라의 취지에 걸맞게 시민 성악가의 기량을 선보이며 관람객들에게 또 다른 즐거움과 웃음을 선사했다.
마지막 곡으로 연주된 브람스의 「하이든 주제의 한 변주곡」은 조셉 하이든이 작곡한 「테마에 관한 변주곡」을 피아노 두 대와 오케스트라 두 가지 버전으로 작곡한 곡이다. 고전양식이 갖고 있는 순수함과 우아함이 따뜻한 음색과 어우러져 이 공연의 피날레를 장식하기에 손색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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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ACC시민오케스트라의 공연이 끝났다. 그런데 청중들은 단 한 사람도 자리를 뜨지 않았다. 깊은 여운과 뜨거운 박수소리만이 예술극장을 가득 채웠다. 힘들었던 4개월 연습이 헛되지 않았음을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관객들의 간절한 부름에 지휘자 김영언이 다시 무대에 모습을 보였다. 지휘를 할 때와는 다르게 수줍은 모습이었다. “지금은 10월이고 오늘은 여러분과 함께 할 수 있어 너무 멋진 날입니다” 지휘자의 말이 끝나자마자 ACC시민오케스라가 연주하는 「10월의 어느 멋진 날에」가 예술극장을 채웠다. 관람객의 일부는 연주에 맞춰 허밍으로 따라 부르기도 했다. 10월의 어느 토요일을 멋지게 장식한 ACC시민오케스트라와 우리 모두에게 아낌없는 박수를 보낸다.

  • 글. 범영 daphnestory20@naver.com
    사진. ACC 제공

    202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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