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채롭게 변주한 아시아의 옛이야기

ACC의 그림책 「아시아 이야기」 3권 출간

#ACC


초등 1학년 교실에서는 수업 중에도 실내화가 공중부양하고 아이들이 바람도 없이 눕는다. 그림책은 실내화에게 발 냄새를 되돌려주고 상체를 의자 등받이에 붙일 수 있다. 특히 옛이야기라면 더 신속하게, 더 오래 가능하다. 아이들과 그림책을 읽어보면 알 수 있다. 옛이야기는 취향을 고려해 섬세하게 고르지 않아도 흥행을 보장한다는 것을.
흥행 보장, 흥미진진한 옛이야기를 다채롭게 변주한 「아시아 이야기」 3편이 출간된다.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은 2018년부터 아시아 여러 나라(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 타지키스탄, 투르크메니스탄, 우즈베키스탄, 인도, 몽골)의 작가와 국내 작가의 협업을 통해 「아시아 이야기」 그림책을 출간해왔다. 올해는 몽골의 『아롤을 깨물었을 때』, 아제르바이잔의 『거짓말 속의 참말』, 러시아 연방에 속한 부랴트공화국의 『돌아온 백조 부인』이 독자와 만난다.
협업 방식과 내용에서 새로운 시도가 눈에 띈다. 예년과 반대로 올해는 국내 작가의 글에 현지 작가가 그림을 그렸다. 현지의 자연과 생활문화는 더 생생하고, 옛이야기에는 현대적인 가치관과 정서가 덧입혀졌다. 또한 기존의 책들이 각 나라의 고유한 문화와 자연이 담긴 옛이야기를 통해 오래된 가치와 정서를 공유했다면, 올해는 현지의 도시를 배경으로 과거와 현재, 서로의 역사와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엮어 동시대와 적극적으로 소통한다.


『아롤을 깨물었을 때』(몽골) 이상희 글/투바트바야링 투르뭉흐 그림

아롤은 우유를 발효시켜 햇빛에 말린 몽골의 전통 간식이다. 몽골 칭기즈칸 공항에서 우연히 만난 한국 소년 지우, 몽골 소녀 샤르, 쿠툴룬은 함께 아롤을 깨물어 먹다가 13세기 가장 번성했던 몽골로 시간여행을 떠나게 된다.
고려 왕자 지우는 홀로 몽골에 와 시름시름 앓는다. 돌보미 샤르의 고향에서 가져온 아롤을 먹고 겨우 기운을 차리지만 아롤이 곧 바닥나고, 샤르와 쿠툴룬 공주는 아롤을 구하기 위해 샤르의 머나먼 고향으로 떠난다. 돌아오는 길에 강도들에게 아롤을 빼앗기지만 아롤 만드는 법을 배운 샤르와 쿠툴룬 공주는 왕족 여인들에게 아롤 비법을 전수하고, 가난하고 굶주린 몽골 아이들의 간식이 되도록 힘쓴다.
능동적으로 판단하고 용감하게 실행하는 쿠툴룬 공주는 실재했던 몽골 영웅으로, 남성도 거뜬히 물리쳤던 씨름꾼이자 무사였다고 한다. 이 책을 읽고 나면 쿠툴룬 공주의 매력에 빠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쿠툴룬 공주와 함께 마음을 사로잡은 건 ‘아롤’인데, 아롤은 구하기가 힘들어 깨물어보지 못했다. 아쉬움이 크다.

『아롤을 깨물었을 때』본문 일러스트
『아롤을 깨물었을 때』본문 일러스트


『거짓말 속의 참말』(아제르바이잔) 정해왕 글/레히메카늠 하즈예바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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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크로드의 중간 지점에 있는 나라, 아제르바이잔은 ‘불의 나라’라는 뜻이다. 자연적으로 분출하는 천연가스가 만들어내는 불기둥이 있다고 하니 ‘찐’ 불의 나라다. 고려가 실크로드를 통해 서역과 교류했던 시기 아제르바이잔에는 시르반샤라는 왕국이 있었다.
시르반샤의 왕에게는 일찍 세상을 떠난 아내 몫까지 더해 애지중지 키운 공주가 있다. 공주가 혼기에 이르자, 왕은 자신의 입에서 “거짓말이다”라는 말이 3번 나오게 하는 자를 사위로 삼겠다고 공표한다. 고려 상인 통역사로 시르반샤에 온 슬기마루도 이에 응하는데! 슬기마루는 왕에게서 “거짓말이다”라는 말을 3번 들을 수 있을까? 왕이 마지막 “거짓말이다”를 외칠 수밖에 없게 만드는 슬기마루의 기지는 옛이야기만의 재미를 한껏 뽐낸다. 그렇다고 곧바로 결혼에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왕과 슬기마루는 결정권을 공주에게 주고 선택을 기다린다. 아버지와 낯선 남성의 담판으로 여성의 결혼이 결정되던 옛이야기를 살짝 비튼 사려 깊은 전개가 독자를 미소 짓게 한다.



『거짓말 속의 참말』본문 일러스트


『돌아온 백조 부인』(러시아 부랴트공화국) 임정진 글/ 두가로바 알렉산드라 그림

지구에서 가장 큰 호수인 바이칼호를 품고 있는 러시아의 부랴트공화국엔 우리나라의 “선녀와 나무꾼”과 비슷한 이야기가 전해진다. 하늘에서 내려온 백조 부인은 사냥꾼이 숨겼던 깃털 옷을 되찾자 자식들에게 이름을 지어 주고 하늘로 돌아갔고, 남은 아들들이 열한 개 부족의 시조가 되었다는 이야기다.
바이칼호 안에 자리잡은 올혼 섬의 아이들은 알타르가나 축제 때 백조 부인 이야기를 공연하기로 한다. 아이들은 곱씹어본다. 백조 부인이 왜 떠나게 되었을까? 떠난 뒤는 어떻게 되었을까? 백조 부인은 자식들을 만나러 돌아오지 않았을까? 아이들은 백조 부인이 떠나면서 끝나는 이야기에 희망을 불어넣을 뒷이야기를 만들어 공연한다. 아이들의 공연에서는 돌아온 백조 부인이 장성하여 떠난 자식들을 기다리며 이웃들과 척박한 땅을 일구어 나간다.
어린 독자들과 함께 우리도 “선녀”님에 대한 다양한 질문과 재해석을 시도해보면 어떨까? 저는 전적으로 “선녀”님 편입니다만, 여기서 이러면 안 되는 거겠죠?

『돌아온 백조 부인』본문 일러스트
『돌아온 백조 부인』본문 일러스트

세 이야기는 낯선 듯 익숙하고, 오래된 듯 새롭다. 하여 재미는 물론 각 나라에 대한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 섬나라 같은 대한민국을 벗어나 육로로 대륙을 자유롭게 오갔던 때처럼 실크로드를 따라 먼 아시아를 깊숙이 여행하는 일, 「아시아 이야기」에서 시작해보면 어떨까? 아이들은 평상시 서너 권의 그림책을 읽으며 “다음 책은 뭐예요?”라고 묻는다. 하지만 「아시아 이야기」 세 번째 책을 집어 들 때 아이는 이렇게 물었다. “다음 나라는 어디예요?” 그림책 옆으로 지도를 펼치고 우리 동네에서 출발해 압록강을 건너 실크로드를 따라 중앙아시아의 두 갈래 길을 걸어 보자. 나는 초원으로 너는 사막으로. 그림책을 덮으며 아이처럼 기대한다. 다음 나라는 어디이고,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지.
현재 국립아시아문화전당에서는 다음 해 출간을 위한 준비가 한창이다. 우즈베키스탄, 타지키스탄, 투르크메니스탄 세 나라의 고유한 문화유산 및 자연유산(사마르칸트, 파미르 고원, 전통 카페트)을 주제로 현지 작가가 집필하고, 국내 그림 작가가 작화하여 2022년 출판할 예정이다.

  • 글. 박후란 whorai@gmail.com

    202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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