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 문제, 프로젝트로 풀어볼까?

디자이너 김보배

레지던스

디자이너 김보배

김보배는 도심 환경, 지역사회, 환경 문제 등에 중점을 둔 커뮤니티 프로젝트 기획자이자 디자이너로 활동하고 있다. 현재 디자인 스튜디오 Co-(코-)를 운영 중에 있으며 지역 생태계를 기록하고 시각화하는 공공디자인 프로젝트를 지속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대표 프로젝트로는 문래동 철공단지 간판을 수집, 디지털 자료로 전환하고 이를 다시 아날로그 매체인 실크스크린으로 변형하는 과정을 통해 지역의 순환적 성격을 레트로(retro) 미학으로 재생산한 「문래간판스타」, 문래동의 오동나무에 관련된 이미지와 인터뷰를 수집하여 이를 사진, 창작 스토리, 일러스트와 디지털 미디어 등 다매체 작품으로 확장시킨 「문래지구」, 그리고 각기 다른 장르의 예술가들의 작품을 아트 상품으로 변환하여 생산하는 「코-랩」 등이 있다.




세상의 모든 것들은 서로 연결되어 있고 직간접적인 영향을 주고받는다. 이런 말에 대해 그저 철학적, 종교적 경구 같은 것이라고 치부할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는 전 세계적인 팬데믹을 겪으면서 이런 말이 허튼소리가 아님을 깨닫고 있다. 개인의 문제가 단순히 개인의 문제로 끝나지 않고 공동체의 문제로 퍼져 나가는 상황을 매일 같이 경험하고 있기 때문이다. 팬데믹뿐만 아니다. 환경 문제를 비롯해 갖가지 사회적 문제들도 처음엔 나와 무관한 것처럼 보이지만 어느새 나와 가족, 나아가 이웃들의 일상생활에 영향을 미치는 것들임을 인식하게 된다. 그리고 나 역시 그런 문제들을 의식하며 어떤 선택이나 행동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만약 여기서 '나'라는 사람이 '예술인'이라면 어떨까? 아마도 예술인이라면 예술인 나름의 방식으로 무언가를 할 것이다.

상상력이 풍부한 예술인들은 이미 다양한 예술 행위를 통해 공동체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이번 호에 소개하는 김보배 디자이너의 경우엔 공공디자인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공동체의 문제를 탐색하고 대안을 모색해 나가는 사람이다. 국내외 대학에서 산업디자인, 광고용 그래픽과 미디어 디자인을 전공한 그녀는 자신이 작업하는 지역에서 오래된 간판을 모아서 기록하는 프로젝트를 하면서 기획자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개인적인 디자인 작업과 달리 여러 분야의 창작자들과 협업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그녀는 하나의 주제를 다양한 시각으로 접근하는 경험을 축적해 왔다. 그녀의 대표적인 프로젝트들을 살펴보면 그녀가 어떤 방식으로 공동체에 대한 다양한 시각을 아우르며 의미 있는 결과물을 만들어내는지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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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풋프린트(Big Foot Print)」(2013)

김보배 디자이너가 사회적 이슈를 다루기 시작한 것은 201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대학에서 공부하는 동안 그녀의 담당 교수와 주변 친구들은 지역의 이슈나 환경에 관심이 많았다. 그래서 그녀 또한 자연스럽게 그런 주제들에 대해 생각하고 작업을 했다. 그 시기에 진행했던 첫 프로젝트가 「빅풋프린트(Big Foot Print)」였다. 이 프로젝트는 일상생활에서 우리의 소비 행위가 환경에 어떠한 영향을 끼치는지 알려주기 위한 것이었다. 그래서 '빅풋프린트'라는 보드 게임을 고안하여 관객들이 참여하도록 유도하였다. 여기서 '풋프린트(Foot Print)'는 '탄소 발자국(carbon footprint)'을 가리키는데 평소 우리가 배출하는 이산화 탄소의 총량을 의미한다. 게임은 보드와 말(발바닥 모양)로 구성되어 있다. 게임 참여자들은 저마다 다른 색깔의 말을 하나씩 가지고 주사위를 던져서 나온 숫자만큼 말을 옮긴다. 그 말이 도착한 원형의 칸에는 질문이 쓰여 있는데, 참여자는 그 질문에 답을 하고 그에 해당하는 행동을 해야 한다. 예를 들어 '오늘 일회용 용기에 든 물을 사 먹었다'라는 질문이 써 있다면 예(Yes)나 아니오(No)로 대답해야 한다. 만약 답이 예(Yes)라면 참여자가 현재 가진 발 모양의 말에 한 단계 더 큰 발 모양을 붙여야 한다. 이런 식으로 진행하다 보면 발 모양의 말은 점점 커지고 상대적으로 질문이 쓰여 있는 원형의 칸들은 점점 좁아지게 된다. 이는 우리가 탄소를 발생시키는 행동을 많이 하면 할수록 지구의 자원과 우리의 자리가 점점 줄어든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처럼 「빅풋프린트」는 관객들이 환경 문제를 쉽게 인식하도록 유도하는 프로젝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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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래간판스타」(2018-2019)

관객들이 참여하는 프로젝트는 2018년부터 2019년까지 진행한 「문래간판스타」에서 다른 방식으로 이어졌다. 「문래간판스타」는 철공소가 많은 서울 문래동 지역을 중심으로 진행된 프로젝트인데,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과 도시재생사업으로 사라져가는 오래된 간판과 시트지의 글씨 이미지를 기록하며 지역에 존재했던 공간들을 기억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문래동에서 작업실을 운영하던 김보배 디자이너는 주변의 철공소 새시(sash)문에 쓰인 독특한 글씨들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면서 그런 이미지들을 수집하게 되었다. 알고 보니 이른바 '문래체'라 불리는 그 글씨들은 문래동에서 30년 넘게 간판과 시트지 작업을 하신 분이 제작한 것이었다. 그분은 숙련된 솜씨로 스케치도 전혀 하지 않고 커터 칼만 이용해 그런 글씨들을 만들어냈던 것이다. 그 수집된 글씨 이미지들은 프로젝트 결과물 전시회에서 선보이게 되었고 한편으로 스크린 프린팅(screen-printing) 워크숍에서 관객들의 체험 대상이 되었다. 특히 워크숍에서 참가자들은 철공소 새시문의 글씨를 그대로 따와서 직접 실크스크린을 이용해 인쇄하며 그 단어가 어떤 의미이고 무엇을 하는 곳인지 이해하는 시간을 함께 가졌다. 김보배 디자이너는 직접 손으로 글씨를 찍어내는 작업을 해본 관객들이 사라져가는 철공소들의 이름과 그곳에서 행해진 일들을 오래도록 잊지 않기를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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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래지구」(오동나무 프로젝트)(2020)

앞에 소개한 「문래간판스타」가 문래동 지역의 이야기를 철공소들의 간판이나 시트지의 글씨들을 중심으로 기록하는 작업이었다면, 2020년에 진행한 「문래지구」는 문래동에 오랫동안 뿌리를 내리고 살아온 커다란 오동나무를 주제로 삼아 문래동을 기록하는 프로젝트였다. 문래동 2가의 공장 앞엔 큰 오동나무가 있었는데, 그 공장 옆에 상업시설이 생기면서 오동나무는 그만 뽑혀서 사라지고 말았다. 이런 사연이 있는 오동나무와 관련된 내용을 주제로 프로젝트에 참여한 예술인들은 글을 쓰고, 사진을 찍고, 일러스트레이션과 디지털 미디어 아트 작업 등을 하여 전시하였다. 이렇게 다양한 매체로 표현된 작업들은 오동나무를 통해 문래동을 인간과 자연이 공존하는 생태 공간으로 다시 바라보도록 하였다. 전시회 마지막날에는 작품 이미지를 이용한 스크린 프린팅 워크숍이 진행되었다. 김보배 디자이너가 기획하는 프로젝트는 보통 전시회와 워크숍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워크숍은 전시회에서 전달하지 못한 이야기를 관객들에게 풀어놓고 함께 소통할 수 있는 자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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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랩: 에어로다이나믹」(2020)

김보배 디자이너가 문래동에서 진행한 또 하나의 프로젝트는 「코-랩(Co-Lab)」이다. 디렉터 김보배와 문래동을 기반으로 활동해 온 세 명의 예술가들(얄루, 운킴, 안도르)이 결성한 아티스트 콜렉티브 코-랩은 2020년 영등포문화재단이 주관한 ‘예활거활(예술활동 거점지역 활성화 사업) 프로젝트'에 선정되었다. 「코-랩」 프로젝트의 목적은 생산하기 쉽고 실용적인 아트 상품을 개발하여 판매 시스템을 자생적으로 구축하기 위한 것이었다. 5개월 동안 장르가 다른 세 명의 예술가들은 지속적으로 판매 가능한 아트 상품을 구상하고 제작하였다. 미디어 아티스트 얄루는 자신의 작품 속에 등장하는 밝고 경쾌한 이미지를 인쇄하여 다섯 종류의 거울을 만들어냈다. 타투이스트 운킴은 본인의 작업 이미지를 검은색의 부엉이와 해골 향로로 재해석하여 제작했다. 그리고 안도르는 비주얼 아티스트로서 장기간 꾸준히 수집해 온 물건들을 활용하여 문진으로 이용 가능한 독특한 오브제를 만들었다. 이러한 코-랩의 결과물은 「에어로다이나믹(Aerodynamics 공기역학)」이라는 제목으로 문래동에 위치한 갤러리 스페이스나인에서 2020년 12월 4일부터 12월 10일까지 전시되었다. 이 프로젝트는 결과 전시회에 그치지 않고 먼저 참여한 세 명의 예술가들이 나중에 참여할 다른 예술가들의 멘토 역할을 맡도록 하여 지속적인 활성화를 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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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스티코스모스」(2020)

코로나19가 발생한 지난 2020년, ACC_R 레지던시는 ‘바이오필리아(Biophilia 생명사랑)'를 주제로 진행되었다. 여기에 여러 예술인, 연구자 들과 함께 김보배 디자이너도 참여하였다. 이때 진행한 프로젝트에서도 김보배 디자이너는 기획을 담당하고 스토리 작가, 일러스트레이터, 미디어 아티스트, 비누 제작자가 참여하여 함께 결과물을 만들어냈다. 이렇게 협업을 통해 쇼케이스(2020.11.24 - 2021.3.1)에 선보인 작품은 「플라스티코스모스」였다. '플라스틱(Plastic)'과 '코스모스(Cosmos)'가 조합된 단어인 '플라스티코스모스'는 플라스틱 쓰레기들이 바다에 우주의 별들처럼 떠다니는 모습에서 착안되었다. 이 작품은 3개의 세부 작업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스토리북, 퀴즈 게임 그리고 비누가 그것이다.
첫 번째 작업은 아코디언 형태의 스토리북인데, 합성섬유 세탁물이나 바다의 플라스틱 부표에서 발생되는 미세플라스틱과 그 표면에 번식하는 해양생물에 의해 변질된 해양생태계의 유해성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두 번째 작업은 퀴즈 게임으로 일상생활에서 발생하는 미세플라스틱 쓰레기 문제의 심각성을 알리기 위해 만들어졌다. 게임 참여자들은 각각 질문 카드를 한 장씩 뽑아 서로에게 미세플라스틱과 관련된 문제를 낸다. 정답을 맞히지 못한 참여자는 유리 실린더 속의 부표에 플라스틱 조각을 추가해야 한다. 그렇게 무거워진 부표는 점점 물속으로 가라앉게 되고 그에 따라 수면은 높아지면서 유리 실린더 눈금에 표시된 동물들은 멸종하게 된다. 세 번째 작업은 플라스틱 부표 모양으로 만든 비누들이다. 비누는 유해한 해양 박테리아를 깨끗하게 제거한다는 의미와 함께 비누가 녹으면서 플라스틱 부표도 사라진다는 의미도 담고 있다. 이 비누는 일상생활에서 청결성과 안전성의 중요함을 강조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플라스티코스모스」는 이와 같은 세 종류의 세부 작업으로 버려진 플라스틱들이 생태계 속에서 순환하고 있음을 상기시켜 우리의 일상생활을 되돌아보게 한다. 「플라스티코스모스」는 「빅풋프린트」(2013)에서 시작된 환경에 대한 문제의식을 보다 발전적으로 보여준 프로젝트였다.

김보배 디자이너는 끊임없이 손을 움직이며 무엇인가를 만들어낸다. 컴퓨터로 하는 디지털 작업이든 스크린 프린팅 같은 아날로그 작업이든 상관없다. 그러다 보면 점점 생각이 정리되고 어떤 프로젝트를 할 것인지 분명해진다. 그녀가 일상에서 지속하는 작은 예술 노동이 새로운 프로젝트를 가능케 하는 원동력인 셈이다. 그녀는 앞으로도 자신이 몸 담은 지역의 문제를 탐구하고, 환경을 비롯한 공동체의 문제를 고민하며 이를 소통 및 유통 가능한 디자인 프로젝트로 풀어내려고 한다. 그래서 그녀는 끊임없이 손을 움직이면서 늘 상상한다, 다양한 예술가들과 지역민들이 함께 즐겁게 참여하고 재미있게 만들어가는 프로젝트를!




  • 글. 백종옥 icezug@hanmail.net
    사진. 김보배 kbobae@gmail.com

    202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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