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 월드 뉴 워드를 꿈꾸며

2021 아시아창작스튜디오 레지던시 결과전시회

레지던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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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아시아창작스튜디오 레지던시 결과전시회 포스터

팬데믹으로 조금 움츠러들긴 했지만 ACC에서는 계속해서 문화예술 활동들이 이어지고 있다. 그 활동들 중에서도 기초 학문처럼 중요한 것은 레지던시 프로그램이라고 할 수 있다. 레지던시 프로그램을 매개로 창의적인 예술가와 연구자 들이 많이 모여 활동할수록 ACC가 활기를 띠기 때문이다. 현재 ACC의 레지던시 프로그램은 두 곳에서 운영되고 있다. 첫 번째 장소는 ACC(문화창조원 등)이다. 여기서는 이미 잘 알려진 것처럼 다양한 장르의 예술가와 연구자 들이 창작, 협업, 교류하는 국제적인 레지던시 프로그램인 'ACC_R'이 진행되고 있다. ACC웹진에서는 그동안 꾸준히 ACC_R에 참여한 예술가와 연구자 들을 소개해왔다.
이에 비해 두 번째 장소는 상대적으로 덜 알려져 있다. ACC 부속건물인 아시아창작스튜디오가 바로 그곳이다. 아시아창작스튜디오는 ACC에서 약 4.1km 떨어진 옛 서구청 별관 자리에 위치하고 있다. 이곳에서도 역시 ACC의 레지던시 프로그램이 매년 진행되는데 주로 국내작가들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이번 호에서는 최근에 진행되었던 '아시아창작스튜디오 레지던시 프로그램'에 대해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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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건 「환영시리즈」, 「그」, 「늘」(2021)

2020년 12월부터 2021년 4월까지 아시아창작스튜디오에 입주하여 활동할 작가들을 선정하는 과정은 예상보다 치열했다. 입주작가 모집 공고가 뜨자 총 142명이 응모했던 것이다. 이들을 대상으로 1차 서류 심사와 여러 분야의 전문가 13명이 참여하는 2차 인터뷰 심사를 거쳤다. 2차 심사는 코로나19 때문에 온라인으로 이루어졌다. 이런 과정을 거쳐 회화, 사진, 입체, 설치 등 다양한 작업을 하는 이들이 입주작가로 선발되었다. 주로 국내에서 활동하는 청년작가 10명이 선발되었는데, 신기철, 양승원, 박상빈, 강건, 튜나리, 홍세진, 신선우, 이영미, 이주영, 서지수가 그 주인공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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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지수 「현대의 자화상」 외(2021)

각자의 작업실을 배정받은 입주작가들은 약 4개월 동안 개인 창작을 하면서 몇 가지 공식적인 세부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먼저 2021년 2월 26일에는 '문화예술기관·전문가 네트워크 프로그램'이 진행되었다. 이 프로그램의 목적은 여러 문화예술기관의 전문가들과 작가들이 함께 교류하고 네트워크를 형성하여 레지던시 프로그램을 활성화하려는 것이었다. 이 자리에는 아시아창작스튜디오 입주작가 10명 외에 광주시립미술관 레지던시 프로그램 입주작가 4명 그리고 ACC, 광주문화재단, 광주시립미술관의 레지던시 담당 직원들과 문화공간 뽕뽕브릿지의 대표 등이 참여하였다. 안타깝게도 이 프로그램은 코로나19 때문에 온라인 줌(Zoom)으로 진행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비대면의 상황에서도 의미 있는 소통은 이루어졌다. 아시아창작스튜디오 측에서는 레지던시 프로그램의 일정과 내용을 공유하였고, 참여한 다른 기관들도 저마다 운영 중인 레지던시 프로그램을 소개했다. 그리고 광주 문화예술의 역사에 대해서 이해하는 시간을 함께 했다. 또한 각 작가들의 작품을 소개하고 서로 소통하는 기회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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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세진 「나란히」, 「숨은 그림자」 외(2021)

두 번째 세부 프로그램으로는 '자문/멘토링'이 진행되었다. 입주작가들과 그들의 작업에 알맞은 조언을 해줄 수 있는 국내 전문가들이 직접 만나는 자리를 마련해주는 것이 이 프로그램의 목적이었다. 이를 위해 김인선(윌링앤딜링 아트컨설팅 대표), 조주현(일민미술관 학예실장), 신보슬(토탈미술관 책임큐레이터), 박경미(PKM갤러리 대표), 맹지영(두산갤러리 큐레이터), 이렇게 5명의 자문위원을 위촉하였다. 각 자문위원은 2명의 입주작가들과 함께 3회에 걸쳐 깊이 있는 대화의 시간을 가졌다. 그들은 작업실 현장에서 구체적인 작품을 앞에 두고 대화를 나누거나 상황에 따라 온라인 줌(Zoom)으로 대화를 이어 가기도 했다. 자문위원들은 자문 내용을 보고서로 작성해 자료로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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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미 「다목적실 유령」(2021)

이러한 과정 속에서 입주작가들은 개인작업을 해 나갔고 창작의 결과물을 마지막 세부 프로그램인 '결과전시회'에서 선보였다. 결과전시회는 2021년 4월 9일부터 19일까지 11일간 개최되었는데, 아시아창작스튜디오 1층의 두 개 전시실과 지하 1층 등에서 총 32점이 전시되었다. 「뉴 월드 뉴 워드(NEW WORLD NEW WORD)」라는 전시회 제목은 결과전시회가 코로나19 이후의 시대에 기존의 방식과 다른 새로운 세계를 추구하는 작가들의 고유한 목소리를 담아내고 있음을 함축하는 것이었다. 전시회 제목처럼 전시작품들은 동시대 청년작가들의 신선한 감성과 상상력을 품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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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빈 「도베르만 핀셔 Dobermann Pinscher」, 「복종강 연체류 플라스틱 Mollusc Gastropoda Plastics」(2021)

박상빈의 「도베르만 핀셔 Dobermann Pinscher」와 「복종강 연체류 플라스틱 Mollusc Gastropoda Plastics」은 작가가 제작한 플라스틱 동물들이다. 작가는 일상에서 쉽게 버려지는 일회용 플라스틱들을 모아 생명력이 느껴지는 예술작품으로 탈바꿈시키는 작업을 해왔다. 그중에서도 특히 인간에 의해 가장 많이 개량된 동물인 '개'의 형상을 통해 현대 사회에서 인공적인 존재와 자연적인 존재의 의미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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튜나리 「GMC」(2021)

특이한 조형물인 「GMC」는 튜나리(Tuna Lee, 이동원)의 작품이다. 작가는 버려지고 방치된 사물들을 조형물의 형태로 되살려낸다. 예를 들면 광주 재개발 지역 철거 현장의 잔해들이 작품 재료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온라인에서 발견한 건물 사진들도 재료로 활용한다. 작가는 이처럼 동시대의 파편과도 같은 것들을 수집하는 행위를 '발굴'이라 생각하고, 수집된 재료들을 시멘트와 함께 쌓아 올린 후 마지막에 레진(resin)으로 코팅한다. 작가 스스로 '유사 유물'이라고 칭하는 이 조형물은 현대 사회의 모습을 함축한 기념비처럼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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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기철 「Depthless」(2021)

신기철의 「Depthless」는 실제와 가상 그리고 디지털 시대의 이미지에 대한 문제들을 일련의 사진 작업을 통해 탐구한다. 작가는 사진, 그림, 조각, 건축 등 다양한 예술의 이미지들이 결국에는 디지털 이미지로 흡수, 통합, 동질화되는 현실을 관찰한다. 그리고 인공지능(AI) 프로그램의 오류를 이용한 사진 작업으로 이러한 현실을 은유한다. 작가는 인물 동상 사진을 찍은 후 AI 인물보정 프로그램에 인식시킨다. 그러면 AI는 이를 사람으로 착각하고 무생물인 동상의 이미지를 생명체인 사람의 이미지로 변화시킨다. 그 디지털 이미지들은 기묘하고 불쾌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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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영 「검은 물 Black Water」(2021)

평면과 설치 작업을 하는 이주영은 「검은 물 Black Water」에서 주로 언어를 이용해 현시대의 문제점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작가는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를 '탈진실의 시대'로 생각한다. 왜냐하면 매일같이 왜곡된 언어와 가짜 정보가 범람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상황 속에서 대중은 편협한 신념에 젖어 살아간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작가는 각종 매체에서 다루어지는 언어를 수집하면서 이런 언어들이 어떻게 우리의 일상 속에 자리잡게 되는지 연구한다. 작품 제목인 '검은 물'은 갖가지 의견에 의해 묻혀 버린 진리를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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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선우 「세러머니」, 「세러머니-모델」 외(2021)

이 밖에도 조각과 회화 작업으로 타인의 시선에 의해 변질되어 버린 자아의 문제를 다루는 강건, 그리고 인터넷과 스마트폰의 등장과 함께 출현한 이미지들 중 특히 셀피(selfie 스스로 자신을 찍은 사진)를 수집하고 변형하며 개인의 정체성을 탐구하는 서지수는 자아와 정체성이라는 비슷한 주제에 대해 전혀 다른 접근 방식을 보여준다.
또한 주변의 사물과 자연의 풍경을 편집하여 낯선 이미지로 그려내는 홍세진의 회화와 설치작품, 그리고 일상에서 무심히 지나칠 수 있는 사물들에 주목하여 이들을 반복적으로 엮어서 설치 형식으로 펼쳐 보이는 이영미의 작업에서도 일상적인 풍경과 사물이라는 비슷한 관심사를 각자 독특한 방식으로 풀어내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마지막으로 현대사회의 문화적 양상과 그것을 향유하거나 인식하는 인간들의 태도, 디지털 세계에서 드러나는 인간의 모습 등을 회화와 입체로 보여주는 신선우의 작업, 그리고 사실과 가공된 이미지가 뒤섞인 사진 이미지를 건물 외벽의 창문에 영구 설치한 양승원의 작업에서는 기존의 회화와 사진의 표현 방식을 확장하려는 의지가 엿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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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원 「Eclipse-Comet-The Sun」(1~3F)(2021)

이번 아시아창작스튜디오 레지던시 결과전시회는 팬데믹을 통과하며 더욱 디지털화되어 가는 현대 사회에 대한 청년작가들의 개성적인 시선과 상상력을 보여준 자리였다. 전시회 제목처럼 그들은 새로운 세상을 꿈꾸며 새로운 이야기를 창조하고자 노력하는 작가들이다. 아시아창작스튜디오의 레지던시 프로그램이 앞으로 그들만의 세상과 이야기를 더욱 풍성하게 일구는 데 하나의 디딤돌 역할을 하리라고 본다. 올해도 아시아창작스튜디오 레지던시 프로그램은 함께할 새로운 청년작가들을 기다리고 있다.








  • 글. 백종옥 icezug@hanmail.net
    사진. ACC 제공

    202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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