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이 된 ‘광주오월’을 걷다.

광주비엔날레 5·18민주화운동 40주년 특별전 ‘메이투데이’

이슈&뷰

1980년 오월광주를 나는 5·18혁명이라고 부른다. 40년의 세월이 흘렀다. 하지만 그 시공간은 내 기억 속에 살아있다. 나는 그 때 13살 광주의 소녀였다. 시간이라는 무의식으로 덮을 수 없는 광주의 5월, ‘메이투데이’ 비엔날레 특별전을 통해서 그 찬란한 오월의 아픔이 예술작품으로 다시 현재의 시간에 얼굴을 내민다.

2020 광주비엔날레 특별전-MaytoDay는 1980년 광주 오월의 횃불이 2017년 대한민국의 촛불혁명으로 이어지듯, 타이페이-서울-부에노스 아이레스-쾰른-광주-베니스로, 각 도시의 아티스트들이 ‘오월광주’를 주제로 작업하여 2020년 10월, 광주에서 새로운 기억을 창조하고 연출한다. 디지털 문명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ACC문화창조원 5관, ACC민주평화기념관 3관, 구 국군광주병원, 무각사 로터스갤러리에서 10월 14일~11월 29일까지 열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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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 국군광주병원 외부 전경

나는 먼저 구 국군광주병원(국군광주통합병원 옛터)의 현장과 작품들 속으로 걸어 들어가 보길 권한다. 온 세상이 시각적으로 사라져가는 변화를 보여주는 가을에, 그 현장은 1980년 5월 광주의 시간 속으로 떠나는 여행이 될 수 있다. 국군광주통합병원 옛터(5·18사적지 23호)는 도심 한 복판 숲속에 숨어 있다. 경사진 숲길을 걷다 보면 갑자기 폐허가 되어 방치된 2층 건물 한 동이 가을 하늘을 배경으로 으스스하게 나타난다. 예술작품은 아니지만, 이 초현실적인 건물을 먼저 들여다보시라! 40년이라는 시간이 연출한 깨진 유리창들과 낡아서 열려진 문으로 들어가 보면, 버려진 테이블과 사물들이 ‘40년의 시간’이라는 먼지를 쓰고 있다. 이 충격적인 ‘시간’이 연출한 예술작품의 작가는 ‘오월광주’였고, 제목은 ‘사적지 23호 국군광주통합병원 옛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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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하는 경계들」 카데르 아티아 / 구 국군광주병원

이 건물을 우측에 끼고 뒤편으로 걸어가니 야생 넝쿨들로 덮여 있는 빈 건물들이 나타났다. 하늘색 좁은 문만 열린 채로 관객을 기다리는 작품들이 설치되어 있었다. 시민들의 인터뷰가 상영되고 있는 모니터들이 띄엄띄엄 놓여 있고, 복도를 사이에 두고 양쪽에 방들이 있었다. 빈 방에는 낡은 의료용 다리에 양말과 신발이 신겨져 오래된 의자에 앉혀져서 조명을 받고 있었다. 나무 창틀 밖은 넝쿨들이 유리창을 덮고 있었다. 남자 화장실 변기 앞에 놓인 다리는 한쪽은 벗겨진 채로 무릎이 파손되어 앉아 있다. 각 방마다 다른 모습으로 조명을 받고 있는 오래된 의족은 이곳이 군부 독재시절, 계엄사에 연행되어 고문당하고 다친 시민들이 끌려와 치료를 받던 병원이었다고, 그 말할 수 없는 강압과 고통에 대하여 사물의 언어로 말하고 있었다. 카데르 아티아(Kader Attia)의 「이동하는 경계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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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언어」 시오타 치하루 / 구 국군광주병원

다음 건물로 들어가자 마치 교도소의 기도실처럼 이 병원에도 기도실이 있었다. 어두운 복도의 벽에는 종교적인 안내문구가 그대로 붙여져 있었다. 왼편 방문이 열려 있었다. 천정에서 바닥까지 팽팽한 검정색 실들이 교차하며 큐브의 공간을 동굴과 같은 구조로 바꿔 놓았다. 다양한 언어의 성경 낱장들이 공간 속에서 날아다니다가 거미줄에 걸린 곤충처럼 팽팽하게 얽힌 실들에 걸려 있었다. 시오타 치하루(Chiharu Shiota)의 「신의 언어」다. 나는 동굴처럼 구조화된 설치 작품으로 들어가 잠시 눈을 감고 앉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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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울의 울림」 마이크 넬슨 / 구 국군광주병원

병원 터 맨 뒤쪽에는 폐허가 된 국광교회가 있다. 내부에는 2018년에 마이크 넬슨(Mike Nelson)이 그 병원에서 사용하던 거울들을 수집해서 천정에서 다양한 각도로 공중에서 반사되도록 설치한 「거울의 울림(장소의 맹점, 다른 이를 위한 표식)」이 그대로 남아 있다. 오래된 거울에 현재의 풍경들과 사람들이 부분부분 반사되며 비극을 목격한 사물이 나를 비추고 있었다. 이곳 보일러실을 개조해서 광주시민들의 시신을 모르게 태웠다는 국군광주통합병원 옛터는 비엔날레 기간에만 개방하는 곳이니 전시가 끝나기 전에 그 시간 속으로 들어가 고통을 목격한 듯 서 있는 건물과 사라져가는 가을 숲을 느껴 보시길... 관객은 그냥 걸어 들어가기만 해도 사물들이 말을 걸어오는 곳이다. 눈물을 흘리기에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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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터스갤러리 전시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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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월 판화」 홍성담(좌) / 「광부의 점심」 황재형(우) / 로터스갤러리

로터스갤러리는 상무지구 공원 무각사 입구 지하에 있다. 지하로 내려가면 전국에서 수집한 1980년대 목판화들로 가득 벽을 채우고 있어서 놀랍다. 특히, 맥락을 알 수 있도록 당대의 주요 작가들의 작품들이 디스플레이 되어 있다. 젊은 시절 책표지에서 만난 목판화의 진품을 보는 즐거움이 있는 곳이다. 중앙 테이블 위에는 책표지에 목판화를 사용한 그 당시의 책들이 수십 권 진열되어 있었다. 80년대 문화운동의 한복판에서 칼로 새기며 반복해서 찍었던 목판화들과 민중이 주인이 되는 세상을 꿈꾸며 펴낸 책들이 유리장에서 격동기의 기억을 되살리며 증언하고 있었다. 1980년 5월 광주, 1987년 6월 혁명, 그리고 1990년대 초반에 이르기까지 민중미술운동의 핵심 매체인 목판화를 통해서 시대성을 통찰할 수 있도록 목판화를 한 곳에 모아 흐름을 잘 정리한 전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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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의 봄] 전시 전경 / ACC민주평화기념관 5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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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빛 좋은 공기」 아르헨티나 여성 인터뷰 장면, 임흥순 / ACC문화창조원 5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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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번째 괘」 호 추 니엔, 영상 / ACC문화창조원 5관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은 최후의 항쟁지다. ACC문화창조원 5관에서는 [민주주의의 봄] 그리고 ACC민주평화기념관 3관에서는 [광주 레슨] 전시가 열리고 있었다. 이 전시물들은 군부 독재를 경험한 독일, 대만, 아르헨티나를 한국의 민주화 운동과 연결하여 비슷한 트라우마를 지닌 도시의 작가들과 시민들이 연대하고 다른 나라, 다른 지역으로 확산되고 있는 진행형의 생물체 같은 전시였다. 즉, 비슷한 경험을 공감하고 표현하며 물결치게 하는 작업들을 광주라는 도시로 모아서 펼치는 프로젝트 전시다.

[민주주의의 봄]에는 1980년대 초에 제작된 익숙한 홍성담의 「오월판화」 연작과 강연균의 「하늘과 땅 사이1」작품부터 최근 작품까지 디스플레이 되어 있었다. 임흥순의 「좋은 빛, 좋은 공기」 2018년 영상은 아르헨티나의 군부독재희생자 어머니들과 광주 5월 어머니들의 아픔을 서로 공감하고, 기억하며 치유로 이끌어내는 프로젝트 영상이었다. 대부분의 작품들이 기존에 발표된 것을 새로운 방식으로 구성하여 전시하고 있지만, 새롭게 발표된 작품도 있었다. 다양한 엔지니어와 아티스트가 결합하여 장르가 뒤섞여지면서 새로운 실험으로 보여주는 애니메이션 「49번째 괘」는 호 추 니엔(Ho Tzu Nyen)이 주역(周易)에서 혁명(革命)이라는 갑골문자의 의미를 해석하여 20세기 한국사의 항쟁들을 담은 영화, 애니메이션 등에서 이미지를 발췌하고 미디어 음악, 게임 등의 표현 기법으로 광주를 말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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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레슨] 전시 전경 / ACC민주평화기념관 3관 1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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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레슨] 시민미술학교 판화찍기 체험 / ACC민주평화기념관 3관 1층

ACC민주평화기념관 3관 1층에는 시민들이 참여한 작업들이 입구에서부터 즐비하게 늘어져 펼쳐지고 “시민들이 예술가입니다.”라고 말하는 듯 전시되어 있었다. [광주 레슨]이라는 전시다. 1980년대 광주에서는 홍성담을 중심으로 전정호, 이상호 등의 작가들과 시민들이 직접 오월의 진실과 자신이 생각하는 저항의 메시지를 담아 목판화를 새기고 찍었던 시민미술학교, 그 시민들이 만든 이미지를 크리스티앙 니얌페타(Christian Nyampeta)가 「혁명의 풍경」이라는 작업으로, 광주의 청년들과 함께 판을 재제작하여 벽에 걸었고, 전시장에서 관객이 직접 판화를 찍어서 가져갈 수 있도록 안내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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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의진과 천 개의 지팡이」 임인욱 / ACC민주평화기념관 3관 2층

ACC민주평화기념관 3관 2층 강당은 최후의 항쟁 당시 지도부가 총을 들고 저항했던 곳이고, 윤상원 열사가 배에 총을 맞아 쓰러진 곳이다. 강당으로 올라가니, 1천 개의 나무뿌리로 만든 지팡이가 강당 가득 바닥에 누워 있었다. 마치 불에 그을려 죽은 자의 뼈처럼 희미한 불빛아래 설치되어 있었다. 임인욱의 설치작업 「채의진과 천 개의 지팡이」는 한국의 불행한 현대사 1949년 문경 석달 마을 양민학살현장에서 가족을 잃고 살다 간 채의진이 남긴 유물들이다. 그 반질거리는 나무 지팡이들을 보며 총에 맞은 뒤 화염방사기로 훼손된 윤상원의 시신을 보고 울었던 순간처럼 눈물을 멈출 수가 없었다. 눈물과 애도는 깨어남과 치유, 그리고 변혁의 시작이다.



  • 글. 주홍 nudehong@hanmail.net
    사진. 황인호 photoneverdie@naver.com


    20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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