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으로 만나는 세상

나의 친구, 그림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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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으로 만나는 세상이야기



아이들로 북적거려야 할 곳에 고요한 정적이 가득이다. 아이들을 맞이하지 못하는 동안 부산스레 정리하며 움직이는 소리만이 나지막이 분주하고, 도서관 가득 꽂힌 책들은 하염없이 아이들을 기다린다. 코로나19로 휴관이 길어짐에 안타까운 마음이 가득했다.

어렸을 적, 한때 TV도 귀하던 그때엔 여느 집집마다 ‘세계명작동화’ 몇 권쯤은 방 한구석 으레 꽂혀 있었다. 뒹굴고 놀다 심심함에 집어 든 책은 또 다른 즐거움을 선물했다. 전자문명이 발달하며 한때 종이책이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말이 나오기도 했지만, 책은 결코 사라지지 않으리란 믿음이 확고하다. 어린이들에게 ‘그림책’이라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빠르게 온몸의 감각을 파고드는 화려한 영상에서는 볼 수 없고, 발현해낼 수 없는 수많은 감각과 인식의 돌기를 만들어내게 하는 게 그림책이 아닐까. 엄마, 아빠가 읽어주는 그림책에 빠져들어 그림을 보고 또 본다. 어른들은 찾아내지 못하는 그림 속 이야기들까지 아이들에겐 볼 수 있는 눈이 있다. 문자에 더 눈길이 가는 어른들과 달리 그림에 푹 빠진 아이는 어른이 보지 못하는 자잘한 것까지도 잘도 본다. 주인공 고양이의 콧수염이 몇 개인지, 강아지의 꼬리가 무슨 색이었는지, 주인공 아이가 입은 티셔츠는 무슨 색이었는지 신기하게도 작은 눈은 잘도 기억한다. 그림이라는 것, 어쩌면 인간이 맨 처음 보고 또 처음으로 표현해내는 게 아닌가. 호모 그라피쿠스(Homo Graphicus)라는 단어가 있다. 그림 그리는 인간이었기에 생존할 수 있었음을 증명해주는 단어이다. 실로 ‘그림’이란 것은 무한한 것들을 품어 왔다. 이미지의 홍수에 둘러싸인 아이들에게 그림책은 마음의 생존과 같다. 모든 것이 디지털화되고 숨 가쁘게 바뀌는 이미지의 연속들 속 그림책 안의 그림은 정지한 채로 드넓은 세상을 만나볼 수 있게 한다. 천천히 생각하며 더 큰 세상을 만나고 마음의 길은 더 멀리 멀리 뻗어나간다. 가깝고도 먼 나라들, 중앙아시아 8개 나라로의 여행이 기다리고 있다. 알록달록 너무나도 아름다운 그림들과 만난 이야기들은 아시아의 긴 시간여행으로 이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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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친구, 그림책'



어린이도서관을 들어가는 입구부터 내려가는 길까지 알록달록 예쁘고도 따스한 그림세상이 펼쳐졌다. 아시아의 작가가 글을 쓰고, 한국의 작가가 그림을 그려 함께 완성한 그림책 <아시아의 이야기>시리즈 책에 담긴 그림들이다. 올 8월 출간을 앞둔 책까지 모두 13권이다. 국립아시아문화전당(ACC)이 출판하고, 아시아문화원(ACI)이 기획&제작한 그림책으로, 중앙아시아 나라의 작가들이 글로 쓰고, 한국의 그림 작가들은 현대적이면서도 개성 있는 다양한 표현기법들로 그림을 그려냈다. 그림책은 지난 2009년부터 시작되었다. 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 우즈베키스탄, 투르크메니스탄, 타지키스탄 이 다섯 나라와 교류를 이어오면서 같은 아시아권 나라들의 연구가 본격적으로 진행되었다. 어린이들에게도 중앙아시아의 문화를 접할 수 있게 그림책 제작이 시작되어 각 나라들의 설화를 바탕으로 한 그림책을 만들기에 이르렀다. 현재 아제르바이잔, 투르크메니스탄,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키르기스스탄, 타지키스탄, 인도, 몽골까지 총 8개 나라의 13개 이야기가 엮어진 <아시아의 이야기>시리즈가 아시아의 어린이들과 만나고 있다. 책들은 한국어, 현지어(중앙아시아), 영어, 러시아어 이렇게 4개국 언어로 출간을 해나갈 예정이다. 지난 2019년에는 「진정한 친구」와 「지금, 바로 여기」가 투르크메니스탄에서 어린이 책 경쟁 분야 ‘올해의 책’을 수상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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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삶의 지혜’, ‘환경’. 세 가지 주제에 담긴 이야기들



전시는 크게 세 주제로 나뉜다. 〔삶의 지혜로 풀어낸 이야기〕와 〔전쟁의 아픔을 담은 이야기〕, 〔자연이 들려주는 이야기〕로 ‘전쟁’, ‘삶의 지혜’, ‘환경’에 대한 키워드로 분류된다. 그림책에 대한 소개와 원화의 감동을 그대로 전해주는 그림들, 그림책(외국어 본 포함), 책의 내용과 연계되는 각 나라의 전통 소품들이 함께 전시되어 중앙아시아의 문화에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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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의 아픔을 담은 이야기〕에는 타지키스탄의 이야기 「위대한 전설 테무르말릭」(글 타흐미나 우바이둘로에바, 그림 이명애)와 키르기스스탄의 이야기 「초원의 나라를 지키는 아산과 우센」(글 베크 즈일드이즈, 그림 슈니따)로 2권이 출간되었다. 이 중 ‘아산과 우센’의 이야기는 중앙아시아의 스위스라고 불리우는 키르기스스탄의 이야기로, 웅장한 대지와 깊은 산을 따라가며 전쟁 속에서도 순수한 마음과 사랑을 잃지 않는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적에 맞서 고향 마을을 용감하게 지켜낸 쌍둥이 형제의 전설을 바탕으로 쓰여 있다. 그래도 좋은 사람들이 있어 세상이 평화롭게 돌아가고, 아이들이 이 세상을 좋게 만들고 전쟁이 사라지게 만들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그림책 가득 담긴 아름다운 초록의 자연은 키르기스스탄 대자연의 웅장함을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게 해준다.

〔삶의 지혜로 풀어낸 이야기〕는 투르크메니스탄의 「진정한 친구」(글 고투로브 아자트, 그림 김지영)와 「지금, 바로 여기」(글 레일리 나스이로바, 그림 계명진)와 타지키스탄의 「정의로운 소녀 사드바르그」(글 압두자보로프 압두가포르, 그림 김솔이), 카자흐스탄의 「용감한 토끼」(글 즐크바이 메이르잔, 그림 남성훈), 우즈베키스탄의 「나의 구름 친구」(글 무하바트 율다쉐바, 그림 소윤경)이다. 「나의 구름친구」는 우즈베키스탄의 이야기로, 어린 시절 누구나 한 번쯤 상상해봤음직한 장면들이 등장한다. 구름친구들과 함께 날아올라 하늘 위를 누비며 바람, 비, 폭풍, 무지개를 만나고 자연 속에서 마음껏 상상모험을 한다. 그렇게 배우고 생각하고 사색하는 다양한 마음을 이끌어낸다. 중앙아시아의 대자연을 배경으로 보여주는 파란 하늘과 초록 대지, 그 안에 알록달록 사랑스럽게 등장하는 구름과 주인공 후루쉬드의 귀여운 모습은 책을 보는 내내 웃음을 머금게 한다. 투르크메니스탄의 두 책 중 「지금, 바로 여기」는 당나귀의 모험 이야기로, 자신의 모습에 만족하지 못한 당나귀가 진정한 자신의 소중한 가치와 지금의 소중함을 깨달아가는 이야기이다. 투르크메니스탄의 아름다운 자연과 이들의 유목 생활 방식 등을 살짝 엿볼 수도 있다. 글을 쓴 작가가 어린이들에게 건넨 메시지도 함께 전시되어 책의 감동을 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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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키르기스스탄의 「교활한 꾀쟁이의 속임수」(글 자라보브 딜쇼드, 그림 안소민)와 타지키스탄의 「이식쿨 호수의 술루우수우」(글 알틴 카팔로바, 그림 강혜숙), 카자흐스탄의 「약속의 땅을 찾아서」(글 두이센 케네스 오라즈베쿨르이, 그림 홍승연) 세 권이 있다. 「이식쿨 호수의 술루우수우」는 화려한 색채의 그림이 인상적이다. 끝없이 넓고, 짙푸른 빛을 간직한 키르기스스탄의 이식쿨 호수에 살고 있는 푸른 물의 여왕 술루우수우의 이야기로 강렬하고 아름다운 그림이 물결처럼 신비롭고 아름답게 펼쳐진다. 힌두교의 최고신 크리슈나의 이야기를 담은 인도의 그림책도 있다. 「산을 들어 올린 크리슈나」로 인도 출신 작가 아니타 나이르와 그림작가 이주미가 함께 한 책으로 힌두교에서 최고신이자 비슈누신의 여덟 번째 화신으로 숭배되는 크리슈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몽골 이야기인 「우리 아기는 어디 있지?」까지 총 8개국 13권의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다 보면 마치 세계여행을 하듯 끝을 알 수 없는 이야기 여행으로 흠뻑 빠져든다. 책의 일부는 온라인으로도 만나볼 수 있다. 유튜브 〔ACC온라인문화예술교육〕을 검색하면 선생님이 들려주시는 아시아의 이야기가 영상으로 담겨 있다. 현재는 6개의 컨텐츠가 수록되어 있으며 나머지 책들도 제작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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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과 그림으로 만나는 세상



인간은 말을 배우기 전에, 글을 배우기 전에, 이미지를 인식한다. 언어는 다를지라도 이미지는 소통을 가능케 한다. 중앙아시아의 낯선 나라일지라도 그림을 보고 이야기를 음미하며 그들의 삶 속으로 들어가보는 경험이다. 사는 환경과 쓰는 말이 다를지라도 모든 인간이 살아가며 느끼는 감정들은 크게 다르지 않다. 차근히 그림책 페이지를 넘기며 펼쳐지는 상상의 나래는 온라인 세상 속에서는 만날 수 없는 즐거움을 선사한다. 나를 이해하고 나와 연결된 모든 타인들과 자연의 섭리를 이해해가는 것, 진정한 삶을 배워가는 게 아닐까. 13권의 그림책과 함께 한다는 것은 거리는 가까울지언정 마음의 거리는 멀었던 이들의 삶을 만나는 시간이다. 자연을 사랑하고 자연 안에 살아가며 서로를 소중히 여기고 우리의 지금을 감사하게 여길 수 있는 힘, 그림책들은 그렇게 궁극의 삶의 가치를 바라보게 한다. 전 세계를 뒤덮은 바이러스로 인해 진짜 몸은 떠날 수 없지만, 그림책과 함께 소소한 마음의 여행을 떠나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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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 문희영 moonhy19@naver.com
    사진. 황인호 photoneverdie@naver.com

    20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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