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씨는 다른 곳으로 날아간다

<연대의 홀씨>전 리뷰

이슈&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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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비드19로 인하여 사회적 거리두기가 권장되고 있는 시기에 역설적이게도 사회적 결속을 강조하는 전시가 열리고 있다. 연대(連帶, solidarity)의 역사와 현재, 미래의 가능성을 탐색해 보는 <연대의 홀씨>전은 5.18 민주화 운동 40주년을 맞아 기획된 만큼 80년 5월 광주시민들이 보여주었던 숭고한 희생과 아름다운 연대정신을 관객들과 함께 움직이는 꽃잎으로 승화한 인터랙션 미디어아트 <광장>전을 지나서 전시장으로 들어가는 구조로 되어있다. 높은 에스컬레이터를 오르고 긴 복도를 걷는 시간은 미술과 ‘연대’와의 관계를 생각하기에 충분한 시간이다. 주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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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1) 유고슬라비아와 개발도상국간의 문화연대에 관한 전시장면


전시장에 들어서면 벽면 가득히 적힌 기획의 글과 문화협력의 관계와 흐름을 표시한 세계지도 그리고 언론 보도사진들이 테마에 맞추어 걸려 있는 모습에 흡사 박물관에 들어 온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미술이 사회운동(정치, 계급, 인종, 페미니즘 등)의 영역으로 확장되면서 나타나기 시작한 이러한 아카이브 형식의 전시는 일종의 ‘보고서’처럼 구성되어 있어서 ‘보기’보다 ‘읽기’가 중요한 특성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가능한 모든 텍스트를 읽어보기를 권한다.)
전시는 세 가지 주제를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넓게 보아 과거의 연대와 현재의 연대 그리고 전망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겠다. 사회운동으로서의 ‘연대’는 역사적 배경이 중요한 만큼 고고학적 성격이 잘 드러나는 첫 전시공간에는 동유럽 국가들과 아시아 국가들 간의 문화 연대의 실천적 현장을 기록물과 사진으로 보여주면서 연대의 의미와 성과를 보여주고 있다. (사진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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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2) 1973년 시라즈에서 열린 국제연극축제에 대한 포스터와 영상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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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3) 문화연대의 지형도를 알기 쉽게 보여주는 “유토피아의 흐르는 모래-문화지도”


첫 전시물들이 정치적 성향이 강했다면 두 번째 전시는 문화운동을 통해 유토피아를 건설하려 했던 시라즈-페르세폴리스 예술축제의 기록들로 채워져 있다. 이란에 속하지만 고대 페르시아의 문화가 살아 있는 도시 시라즈와 페르세폴리스를 중심으로 전통예술의 바탕 위에 서구 아방가르드를 접목시킨 실험적인 예술활동은 1967년에서 1977년까지 10년간 지속되었는데 지금은 중단되어 잊힌 이 급진적 예술축제를 발굴해서 ‘유토피아 스테이지’라는 테마 아래 잘 정리해 놓았다.(사진 2) 한쪽 벽면을 가득 메우고 있는 지도 “The shifting sands of Utopia-A cultural atlas (유토피아의 흐르는 모래-문화지도)”는 ‘유토피아 스테이지’ 전시를 이해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데 거기에 나와 있는 활동의 흐름을 자세히 살펴보면 연대의 시작이 문화를 통한 반식민지 독립운동의 한 형태라는 사실과 궁극적으로 유토피아를 꿈꾸었던 문화연대의 지형도를 알 수 있기 때문이다.(사진 3) 하지만 영어와 프랑스어의 한글번역이 부족한 것은 아쉬운 점으로 남는다.
한 가지 간과하지 말아야 할 부분은 6,70년대 이란의 정치, 종교적 상황에서 과감하게 서구 아방가르드 문화뿐 아니라 아프리카 문화까지 도입해 접목했다는 사실이다. 1979년 이란혁명 이후 시라즈-페르세폴리스 예술축제가 금지됐고 참여한 예술가들이 활동금지 당했다는 것만 봐도 전통 위에 다양한 문화를 융합시킨다는 것이 그 당시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주2) 비록 미완의 프로젝트로 끝난 10년의 기록이지만 공동체의 경계를 넘어 타자와의 연대 의식으로 나아갔다는 것으로도 오늘날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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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4) 에카 쿠르니완과 백현진의 협업, <Reimagined truck graffi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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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5) 엄지혜 <AI 옥토퍼스>, 단채널영상, 16분 35초, 2020


세 번째 주제가 전시된 공간으로 가는 길은 푸른 네온 불빛이 호객행위를 하고 있다.(사진 4) “나라가 없으면 힘들다고요? 천만에, 우린 나라가 없어야 흥해요”라는 농담 같은 구호들이 발랄한 형광색 스프레이로 쓰인 벽을 따라가면 설치와 영상, 퍼포먼스와 사운드 등 다양한 매체 작품들이 모여 있는 공간을 만나게 된다. 기획의 글에서 밝힌 대로, 젊은 예술가들이 ‘예술실천을 통해서 새로운 질서, 균형, 공동의 역사에 대한 새로운 희망과 가능성을 열어’ 보이는 작품들을 선보이고 있다. ‘일상의 연대: 차세대 작가들의 잔잔한 제안들’이라는 주제처럼 한국뿐 아니라 아시아 여러 국가들의 작가들이 참여하여 정치, 경제적 연대를 넘어서 일상의 연대와 새로운 관계의 가능성에 대한 고민을 공유하고 있다.
염지혜의 비디오작업 <AI 옥토퍼스>는 연대의 시각적 이미지인 뉴런의 신경조직과 문어의 다리를 오버랩하면서 “혼자 있는 게 편한데... 멀리 떨어져 있으면 연대할 수 없는 거야?” 라는 문어의 내레이션으로 자문하듯 관객에게 질문을 던진다.(사진 5) 염지혜의 물음에 대답이라도 하듯, 김희찬x호상근은 서로 다른 장소에서 떨어져서 활동하는 두 작가가 협업을 해나가는 과정을 통해서 연대에 대한 근본적 질문과 방향성을 모색하고 있다. <느슨한 연대>는 주기적으로 주고받는 소소한 일상의 모습을 각각 그림과 사진으로 이야기를 풀어 나가고 서로의 피드백을 통해 완성해가는 작품으로 과정은 느리지만 의미 있는 연대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사진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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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6) 김희천과 호상근의 협업 <느슨한 연대>의 한 부분, 드로잉과 사진설치, 2016~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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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7) 파트타임스위트 <TOLOVERUIN>, HD비디오, 11분 30초, 2017


파트타임스위트의 <TOLOVERUIN> 역시 물리적 거리를 간직한 채 연대를 시도하는 또 다른 영상작업이다. 카메라를 든 세 쌍의 연인이 복잡한 거리 속, 시위하는 군중 속의 혼란함에도 각자의 카메라 뷰파인더 안에 연인의 모습을 담으면서 놓치지 않고 따라간다. 역설적이게도 카메라는 거리가 필요하다. 물리적 거리, 혼돈과 제약 속에서도 서로의 피사체가 되는 순간이 사랑의 확인임을 보여주면서 연대(사랑)에서 물리적 거리는 제약이 아니라 필요충분조건이라는 것을 제시하고 있다.(사진 7)
그 외 많은 작가들이 점점 복잡해지는 현대사회에서 점차 분화되어 가는 개인들을 연대시킬 방법을 나름의 시각과 언어로 풀어나가고 있다. 슬로건 티셔츠를 통해 사회적 이슈에 대한 일상적 연대감를 표현하는 최하늘(사진 8)이나 사진의 설치방식을 통해 일상에 대한 낮고 새로운 시선을 요구하는 이세현(사진 9)의 작업은 기존의 연대가 아닌 새로운 형식의 연대로 바뀌어 가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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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8) 최하늘 <느슨하고 얕지만 촘촘한>, 조각 위에 29가지 구호를 적은 티셔츠,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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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9) 이세현 <에피소드-충돌의 스펙터클>, 사진, 가변설치, 2020


개인의 삶과 노동의 양태가 다양해짐에 따라 과거 방식의 연대는 심각한 위기에 처해있다. 아도르노의 지적처럼 연대가 ‘연대를 위한 연대’로 추상적인 형식에 매몰될 때 사회의 가장 사악한 경향과 너무나 쉽게 제휴할 수 있다는 것도 우리는 많이 보아 왔다. <연대의 홀씨>전은 과거의 꿈이었던 전 인류의 보편적 연대가 이제 도달할 수 없는 유토피아가 되어 버린 지금 우리는 사회의 진보를 위해 어떤 형식의 연대를 꿈꿔야 할까에 대한 물음과 고민을 던져주고 있다. 그리고 앞으로 접혀서 안으로 닫혀버린 낡고 녹슨 유토피아를 두들기고 뒤로 접어서 바깥세상과 만나는 공간을 있다는 것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젊은 작가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연대의 홀씨>전과 연계해서 “연대의 학교”라는 강좌가 9월에서 11월에 걸쳐 서울(시립미술관)과 광주(ACC)에서 진행될 예정이다. 연대에 대하여 더 알고 싶은 분들은 라이너 촐(Rainer Zoll))의 <오늘날 연대란 무엇인가?>를 찾아 읽어 보기를 권한다.










주 1) 미술이 ‘연대’와 관계를 맺는 계기는 쿠르베가 1871년 파리코뮌에 적극적으로 가담하면서 부터였다고 할 수 있다. 파리코뮌은 1871년 3월 파리에 세워진 자치정부로 무능한 나폴레옹 3세의 왕정에 반발하여 프랑스 민중이 주체가 되어 세워졌고 5월 21일 정부군과 연합군의 공격이 시작될 때까지 파리 시민들은 세계최초로 사회주의 정책을 실현해 나갔다. 이때 쿠르베는 부모님께 보내는 편지에 다음과 같이 썼다. “파리는 참으로 낙원입니다. 경찰도 없고 범죄도 없으며 그 어떠한 부당행위도 없습니다. 파리가 언제나 이처럼 있을 수 있었으면 합니다.”(1871년 4월 15일) 그리고 ‘피의 일주일’ 후 5월 28일 파리코뮌은 무너졌고 쿠르베는 체포되어 감옥에 갇히게 된다. 쿠르베를 제일 먼저 떠올린 것은 아마도 파리코뮌의 두 달과 5월 광주의 마지막 닷새가 너무나 비슷해서 일 것이다.

주 2) 1970년대 이란의 정치적 배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마르잔 사트라피의 만화책 <페르세폴리스>를 읽어보길 권한다. 정치적 격변기 속에서 주인공 소녀의 가족들이 겪는 사건, 혁명과 반혁명, 독재와 투쟁을 통해서 정치사와 함께 변해가는 보통사람들의 일상을 알 수 있다. 이 책은 애니메이션으로도 제작되어 세계적인 관심을 받기도 했다.







  • 글. 노순석 nhoss68@gmail.com
    사진. 황인호 photoneverdie@naver.com

    20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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